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309화 (309/361)

309화 컴퓨터 게임

무어의 법칙.

반도체 메모리칩의 성능 즉, 메모리의 용량이나 CPU의 속도가 18개월에서 24개월마다 2배씩 향상되고 가격은 반으로 떨어진다.

트랜지스터 집적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고, 컴퓨터의 연산속도는 해가 갈수록 빨라졌다. 초창기 컴퓨터에 대한 용도는 회계나 자료를 정리하는 관리 목적에 국한되었지만 곧 시대가 변하면서 다른 가능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마우스와 같이 일반적으로 이용되는 도구들이 사회에 첫선을 보였던 것이다. 거대한 스크린을 설치하고 컴퓨터로 정보를 투시하는 연구는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새로운 반향을 일으키고 있었다.

강태준으로서도 이 거대한 흐름에 편승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금액이다. 견적을 뽑아 본 노기철이 고개를 흔들었다.

“컴퓨터 한 대에 10만 불이 넘는다니 미쳤군요. 중고에 최저가도 2만 5만 불이라니.”

“그 정도면 많이 싸진 거지. 그래서 도입할 장비는 정했나?”

“16 비트 미니 컴퓨터나 PDP-11시리즈가 인기랍니다. 현재로서는 PDP-10가 우세하지만 돌리고 있긴 한데 범용성 측면에서는 노바가 더 나은 것 같습니다.”

“그래? 뭐가 나은지는 모르겠고?”

“일단 사용을 해 보지 않고서는 잘 모르겠네요.”

솔직하게 대답하는 노기철에 약간 난감해진 강태준. 하지만 데이터 시스템 구매 비용이 상당했기에 그냥 아무렇게나 도입할 수는 없다. 그러자 잠시 생각하던 오재갑이 제안을 올렸다.

“뷰록스 사에 직접 가서 시연을 보는 것은 건 어떻겠습니까?”

“뷰록스에?”

“네. 팔로알토 연구소 쪽에서 컴퓨터화된 사무실을 프로토타입으로 구축하고 있다는군요. 중앙 메인프레임 시스템을 구축해 놨다는데 이번에 직접 컴퓨터를 만들어서 시스템을 도입했답니다.”

“그쪽에서 허락하겠나?”

“본사는 모르겠지만 도전해 봐서 나쁠 건 없잖습니까. 분위기가 꽤나 자유분방한 곳이라더군요.”

팔로알토 연구소. 토너를 이용한 흑백 프린터와 복사기로 유명한 곳이다.

군부 쪽과 커넥션이 깊은 강태준이 기술 상용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에 꽤나 환영의 뜻을 밝혔다. 견학을 허락받은 강태준이 도착하자 미리 연구소 직원 하나가 마중 나와 있었다.

안으로 들어간 강태준이 연구 과정을 살펴보았다.

“연구 종류가 무척이나 다양하군요.”

“대부분은 스탠퍼드 연구소에서 개발하던 상품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지금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GUI) 기반 운영 체제를 도입할 신형 컴퓨터를 개발 중이지요..”

직원인 블룸의 말에 데스크를 확인한 강태준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흠, 여기 컴퓨터는 범용이 아니라 자체 개발품입니까?”

“예. MABC입니다. 아무리 연구용으로 쓰는 거지만 경쟁사 기기를 도입하는 건 좀 꼴불견 아니겠습니까. 이래 봬도 멀티테스킹도 됩니다.”

“오 신기하군요. 어떻게 쓰는지 보여 주실 수 있겠습니까? 궁금하군요.”

“아 그런 거라면 저보다 적임자가 있습니다. 어이 버트!”

“옙. 부르셨습니까?”

블룸의 부름에 두꺼운 안경의 남자가 나타났다. 너드처럼 보이는 남자에게 어깨동무를 한 블룸이 자랑스레 녀석이 소개했다.

“버트라고 이 녀석이 여기 MXTC 프로세서를 설계한 사람입니다. 암펙스(Ampex) 출신으로 이곳에서 영상 디지털 기록을 연구하는 엔지니어로 근무했지요.”

“오 대단하군요.”

그러자 버트가 머쓱한 듯 머리를 긁었다.

“대단할 게 없습니다. 사실 여기 뷰록스에서는 빡센 일은 신참이 맡아서 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여기 있는 저희는 일종의 에시드 헤드 같은 사람들이죠.”

“에시드 헤드?”

“환각제 먹은 히피들 말입니다. 본사에서는 그런 놈들이랑 놀면 수준 떨어진다고 질색하지만 사실 본질은 같지 않겠습니까?”

“어떤 점에서요.”

“환상을 추구한다는 거지요.”

버트의 말에 블룸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 친구 말은 걸러 들으십쇼. 암튼 이건 훨씬 쉽게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추가 범용 레지스터입니다. 메모리 액세스를 사용하여 외부 장치를 시스템에 쉽게 인터페이스할 수 있는 물건입니다…….”

선도적인 기술들이 개발되는 현장을 구경하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연구소에 대한 한계도 명확했다. 산업의 방향성이 없이 연구가 제품 설계와 따로 놀았던 것이다.

고해상도 디자인의 카세트 플롯 포인트 기기 등 진보를 상징하는 물건들이나 구성들은 전부 상업성에 대한 판단을 배제한 채 이루어지고 있엇다.

뷰록스의 방임주의는 창의성을 부여하는 데 분명 도움을 준 건 분명했지만 반대로 연구소에서 나온 수많은 연구가 상업화로 이어지지 못한 원인이었다.

‘역시 저주받은 혁신의 아이콘인가?’

아무리 좋은 기술이 나와도 그걸 실용화하는 것은 다른 문제.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은 좋지만 연구원들에게 하고 싶은 연구만 시키는 것은 어쩌면 양날의 검 아닐까.

강태준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삐~~

갑자기 회사 네트워크가 느려지자 갑작스럽게 소란이 일었다. 경고음과 함께 삐 소리가 복도 전체로 울려 퍼졌다.

“뭔 일인가요?”

여기저기 흘러나온 삐 소리에 뭔가. 불이라도 났나 착각했지만 이유는 곧 확인할 수 있었다. 성난 언성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던 것이다.

“테드! 업무시간에 게임 하지 말랬잖아. 그 빌어먹을 게임을 안 지웠나?”

“리, 난 한 판밖에 안 했다고요.”

언성을 높인 두 사람이 억울하다는 듯이 떠들었다. 다툼의 원인은 스페이스 배틀이란 게임 때문. 그 삐 소리가 다름 아닌 업무 태만을 알리는 효과음이었던 것. 소리를 지르며 훈계를 늘어놓던 남자가 경고했다.

“젠장, 다음에 또 그래 봐. 위쪽에 보고할 테니까.”

“네네. 죄송합니다.”

제 성질에 못 이긴 직원이 담배를 한 대 피우려는지 밖으로 나갔다. 아까의 호들갑은 어떻게 된 것인지 다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업무로 복귀하는 행동에 강태준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저래도 괜찮은 겁니까?”

“일부러 저러는 겁니다. 어차피 혼자 한 게 아니니 말입니다.”

옆을 돌아보니 다들 시치미를 떼고 딴청을 피우고 있다.

“죄다 공범들이군요.”

“뭐, 생산성 문제로 본부에서 게임을 삭제하라는 명이 떨어지긴 했으니 그것도 이번 주까집니다. 뭐 이쪽에 오신 김에 지워지기 전에 일단 한 판 해 보시겠습니까?”

“그래도 됩니까?”

“어떻게든 둘러대면 되지요. 뭐 스피커만 끄고요. 견학을 이대로 끝내기에는 좀 아쉬울 거 같지 말입니다.”

능글거리는 블룸의 대답에 일행을 돌아보니 하고 싶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결국 강태준 일행도 시험 삼아 조작을 해 봤다.

보기는 단순해 보이지만 조이스틱이 없어서인지 꽤 어려웠다.

“생각보다 어렵네요. 이거.”

“우주 공간의 특성을 생각하면 좀 쉽습니다. 진행 방향에 가속을 주면 관성의 법칙을 따라가니까요.”

블룸이 친절하게 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소행성과 클랭온을 상단에 그리고 스크린 윤곽을 그리고 슬래시나 파이프 같은 걸로 문자화한 것이었다.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문자의 조합이 함선과 잔해를 3D처럼 표현해 낸다.

미사일을 발사하여 상대편 우주선을 맞히는 형식.

페이저로 타이밍을 잘 맞춰서 저격하면 텍스트로 만든 폭발 보상이 나왔다.

붐업 된 화면에 하얀 글자가 폭죽처럼 그려지는 향연에 놀라워하는 광필이였다.

“우와, 컴퓨터로 이런 것도 할 수 있군요.”

“이건 기본적인 겁니다. 레이아웃만 제대로 잡는다면 텍스트를 애니메이션화시킬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이걸 게임으로 만들어서 판 녀석들도 있지요.”

“이걸 게임으로 만들어서 팔았다고요? 하지만 컴퓨터 단가가 비싸지 않습니까?”

“게임용 단말이면 훨씬 단순하니까요. 단순 게임으로 쓸 거라면야 단가를 많이 내릴 수 있습니다.”

“호. 그렇습니까?”

그 부분은 강태준도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벌써부터 게임이라. 이걸 판 녀석들이 있다고?

수소문해 본 결과 누구인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심지어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아케이드 게임 쇼에서 선보인 적이 있었다는 것.

로빈이 곧바로 시제품을 공수해 왔다.

“모양이 참 괜찮네.”

“놀런이라는 녀석의 작품입니다. 엘펙스에서 근무하던 놈인데 뭐 대부분 부품은 거기서 구매했고 나머지는 동료들에게 수소문했다는군요.”

점토를 주물럭거려 만들어 낸 미래적인 디자인이 눈을 끌었다

우주선 하나만 조종하면 끝. 투박한 그래픽에 좀 어설픈 점이 많았지만 이 시대에는 그야말로 혁명적인 일이었다.

“흠. 이걸로 돈 좀 벌었겠어.”

“그건 아닌 듯싶습니다. 콘솔게임이면 몰라도 이렇게 동전을 넣고 하는 게임기는 잘 팔려 봤자 천 대 정도면 잘 판 거거든요.”

“그놈의 쓸데없는 이펙트만 안 넣었어도 더 잘 팔렸을 거 같군요. 조작이 너무 어렵지 말입니다.”

게임에 대한 평가는 대동소이하다. 강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녀석들은 어떻게 되었다고 하나?”

“독립했답니다. 노팅 사랑은 진즉에 결별했다네요. 아마 자기네들끼리 게임을 만든다고 했다는군요.”

아무래도 재고가 많이 남아 노팅 사와 트러블이 있었던 모양.

독립 후에 그 로얄티로 인피그램이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했다고.

사정을 알아보자 최근 새로 만든 게임을 회사 근처 한 술집에 설치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핀볼 기계 같은 게임이라고?’

혹시나 싶어 강태준이 직접 찾아가 확인해 보기로 했다.

어스름한 분위기의 술집에 도착하자 술집 주인이 신기한 동물을 보듯 강태준을 살펴보았다.

“어디서 돈 많이 버신 사업가신 거 같은데 여기는 무슨 일이요?”

“쓸 만한 게임기가 있단 소리를 듣고 왔습니다.”

그러자 주인의 표정이 짜게 식더니. 잔을 홀짝이며 말했다.

“젠장. 그쪽도 술 말고 그쪽에 관심이 있나. 안타깝지만 오늘은 플레이는 못 할 거 같은데.”

“아니 왜요?”

“어제부터 먹통이지 그래. 고장 난 거 같아서 업체 불렀소. 다음에 다시 오게.”

그냥 가기 뭣한 강태준이 잠시 기계를 살펴보았다. ‘듈(dual)’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기계에는 최고점에 도전하라는 문구가 고딕체로 붙여져 있었다.

고물상에서 주워 온 듯한 모니터를 살핀 강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네? 내가 보기로는 고장이 아닌 거 같은데요.”

“아니, 그쪽이 뭘 안다고?”

“아니 모니터에서 송출되는 화면은 멀쩡하지 않습니까? 동전통이 꽉 차서 그런 거 같은데요.”

“응 설마?”

혹시나 하고 기계를 열어 보자 25센트짜리 동전이 촤르르 쏟아져 나왔다.

술집에 방문한 사람들이 하도 게임을 해 대서 동전통이 터져 버린 것이다.

그걸 본 술집 주인의 눈을 멍청하게 꿈뻑거리더니 다시 입을 벌렸다.

“허억! 이게 무슨.”

벙찐 표정으로 얼을 타는 주인에 강태준이 슬쩍 물었다.

“여기 게임사 전화번호 아십니까?”

* * *

같은 시각, 인피그램 본사.

본사라고는 하지만 창고 수준의 구멍가게.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채 기판을 만지고 있는 선배의 모습에 알트가 다가왔다.

“거, 버니, 주인아주머니가 세 못 내면 방 빼라는데요?”

“엉 한 삼 개월 밀렸나?”

“그럼 제 월급은?”

“없어. 임대료 줄 돈도 떨어졌는데 있겠나?”

입사 선배인 버니는 고개를 숙인 채 얼굴도 마주치지 않았다.

덤덤한 버니의 말에 알트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니 그게 뭔 소립니까? 놀런은, 놀런은 어딨어요?”

“지금. 자금 융자받으러 갔지.”

“자금 융자요. 아니 예전에 G.I랑 계약했다며요? 계약금은 있잖습니까?”

“아 그거. 순 뻥이야.”

“뭐요?”

“자네 실전 연습하라고 대충 말해 본 거지.”

“네?”

알트는 실로 어이가 없었다. 자기 회사에 오라고 꼬셔 놓고는 정작 게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질 않나. 게임을 만들라 해 놓고 이것저것 추가하라 훈수나 두지를 않나.

얼기설기 만든 시제품을 완성하는 데까지 대략 수개월.

그래 놓고는 이제 와서 계약조차 없었다고?

“그…… 그럼 그 말씀은 저한테 우리 회사의 운명이 걸려 있다는 말입니까?”

“그래. 그게 잘 팔려야지.”

“안 그러면?”

“파산 아니겠나?”

알트는 할 말을 잃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화낼 기운도 없었던 것이다.

때마침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 돌아왔소!”

창립자인 놀런이 게임을 팔기 위해 막 출장을 다녀온 것이다.

히피 스타일의 남자가 소파에 걸터앉은 모습에 버니가 서둘러 물었다.

“융자는 어떻게 됐어?”

“어 실패야. 다들 어렵다는군. 우리 게임을 짝퉁 핀볼 기계 정도로 알고 있더라고.”

“뭐?”

그러자 잔뜩 기대했던 버니가 짜증을 냈다.

“그러니까 깔끔하게 머리라도 깎고 가라니까? 누가 댁 같은 사람을 믿고 대출해 주나?”

“아예 안 받은 건 아니야. 5만 불까지는 가능하다네.”

“5만 달러? 이봐요. 그걸로 공장 짓고 사람은 어떻게 구해. 그걸 누구 코에 붙이라고!!”

“그럼 어쩌라고?”

곧바로 멱살을 잡고 투닥거리는 둘에 알트의 분노게이지가 차올랐다.

이런 걸 선배라고 믿고 사업을 시작했다는 말인가.

열받은 알트의 얼굴이 활화산처럼 터지려는 순간, 들려오는 전화벨 소리.

잠시 후, 전화를 받은 알트의 표정이 멍청해졌다.

“여보세요. 네…… 네…… 20만 불이라고요?”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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