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260화 (260/361)

260화 분유파동

광필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암튼 오지랖입니다 오지랖. 솔직히 정부가 할 일을 형님이 그걸 왜 합니까?”

“한번 환아를 보고 오면 그런 소리 못 할 거다. 태어나서 먹은 거라곤 모유밖에 없는데 아미노산 분해 효소가 없어서 죽을 때까지 지적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니 말이야.”

“에휴, 할튼간에 은근 마음이 약하시다니까?”

“이미 세브란스 쪽이랑 약속했는데 어쩔 수 없잖나. 이미 유엔이랑 수출 협약까지 맺었는데 여기서 파토 내면 골치 아파져. 정부가 못 하면 누군가는 해야지”

“거 보조금도 안 주는 마당에 국내용만 커버할 거면 차라리 수입하는 게 낫지 않습니까? 별로 수요도 없더만.”

“문제는 공급 안정성이지. 갑자기 단가가 오르거나 수입이 끊기면 죽으라는 소리니까. 게다가 유니세프 덕분에 우유제조 공법도 지원받을 수 있었는데 말이야.”

로버트 구쓰리 박사가 DBS 방식의 선별법을 개발하여 국가 주도의 신생아 집단 선별검사가 시작된 것도 고작 몇 년차.

미국에서의 발병률이 1만 4천분의 1. 특수 분유를 생산하는 회사는 애보트, 미드젠, 퀜센 정도가 불과한 만큼 까다로운 미국 의약품 시장을 뚫는 데 이만한 명분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지금 당장이야 손해겠지만 의료용 특수분유 생산을 할 수 있는 회사가 몇 개 없지 않나. 특수기능이 있는 제품을 팔면 복제약을 들여오기도 쉬워질 테고 여러모로 장점이 많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기업 이미지 재고할 수도 있고.”

“알았습니다 알았어. 일단 적자부터 손보자고요. 어찌 되었든 좋은 일을 해도 돈은 벌어야 할 거 아닙니까.”

하지만 그런 훈훈한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어디선가 달려온 것인지 얼굴이 흠뻑 젖은 배춘삼은 꽤나 심각한 분위기를 하고 있었다.

“사장님! 지금 밖으로 나오셔야겠습니다. 지금 공장 앞에 주부들이 몰려들어서 항의를 하고 있어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게…… 분유를 먹고 아이들이 배탈이 났답니다.”

“응?”

분유를 먹고 배탈이라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그러나 강태준의 상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공장으로 나가 보니 붉은 머리띠를 쓴 시위대가 꽹과리를 치며 목청껏 소리를 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백경유업은 각성하라! 각성하라!!”

“아니 대체 왜들 이러십니까? 말로 합시다 말로.”

“말로라니! 이게 말로 될 일이야? 우리 애가 아프다고 애가!”

성난 엄마 부대에 당황한 직원들이 말리려 했지만, 사태는 점입가경이었다.

그때 누군가 강태준을 알아보고는 소리를 질렀다.

“아니, 저 인간. 강태준 아니야?”

“예가 어디라고 기어들어와!!”

“갑시다. 저런 후안무치한 인간은 혼구녕을 내줘야 해요!”

와르르 몰려드는 시위대는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었다. 사방에서 오물과 계란이 날아들자 경호원들이 몸으로 시위대를 막았다.

육탄돌격을 감행하는 아줌마들의 모습에 바리케이트를 치는 경비들.

서둘러 뒷문으로 피신한 강태준이 자초지종을 들었다.

“이게 어찌 된 영문입니까?”

“애들이 배탈이 나서 집단으로 설사를 했답니다.”

“예? 갑자기 그게 무슨. 어떻게 된 겁니까. 노 이사?“

급당황한 노기철이 다급하게 변명했다.

“저도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위생문제는 전혀 없었는데요.”

“아이한테 그럼 너무 많이 먹여서일 수도 있을 거 같은데. 한국인에게 젖당 분해효소가 부족해 너무 먹이면 배탈이 나지 않습니까?”

“소비자가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아. 락토스 문제야 어느 분유에나 다 있는 문제 아닌가. 일단 상황 파악하고 어떻게 된 영문인지 확인하게.”

강태준은 발 빠르게 움직였지만, 하루가 되지 않아 사태는 더 악화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더 큰 사건이 터진 것이다.

[유명업체가 만든 영·유아 분유에서 쥐 사체 발견!]

[OO분유서 벌레알로 추정되는 검은색 이물질 검출!]

서울 성동구, 생후 5개월 된 아들을 가진 주부 양모씨는 거의 다 먹은 분유통 안에서 길이 5cm의 쥐가 말라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당국에 신고했다. 제보에 따르면 쥐는 발견 당시 임신한 것으로 알려져……

흰 분말을 뒤집어쓴 채 마른 버짐처럼 눌어붙은 쥐는 그야말로 혐오물 그 자체.

백경분유를 타겟으로 한 기사에 그룹이 한바탕 뒤집어졌다.

상황을 확인한 강태준은 임원회를 소집해 사태 파악에 나섰다.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분유에서 쥐가 어떻게 나옵니까?”

“이건 물리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액체상태와 분말단계 모두 4차례의 거름망을 거치게 되어있습니다. 마지막 거름망은 지름 1.2mm라서 대형 이물질이 들어갈 가능성이 없어요. 게다가 분유를 만들기 전에 분말로 빻아지면 형체를 알아보기도 힘듭니다.”

설사 대형 생물이 혼입된다 해도 형체가 남아 있는 것이 이상한 일 아닌가.

사건의 경과를 듣던 광필이가 책상을 치며 광분했다.

“형님! 이건 백프로 저격이에요. 개미나 날벌레 같은 것도 아니고 5cm도 넘는 쥐새끼가 거기를 어떻게 들어가요? 이건 저희에 대한 음해입니다.”

“저도 동감입니다. 이건 경쟁사의 자작극일 확률이 더 높습니다.”

“나도 그 부분을 의심하고 있어. 다만 그 말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는지가 문제 아닌가?”

애초에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것보다 무고를 입증하는 일은 훨씬 어려운 일이다. 담양의 푸쉬를 받은 언론은 여전히 불타올랐다. 사방에서 불매운동이 계속되면서 기껏 확보했던 점유율은 한 달 만에 반 토막 아래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강태준은 결심을 굳혔다.

“이럴 때는 결국 정면 승부밖에 없어.”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사안을 철저히 검증받는 것이 오히려 사는 길 아니겠나. 검찰에 진상조사를 의뢰해 과실유무를 철저히 밝혀야 할 것 같아.”

“하지만 사장님. 검찰 수사까지 진행되면 생산라인을 멈춰야 할 수도 있습니다.”

사건의 여하와 관계없이 소비자와 정면으로 대결하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

오재갑이 더 큰 문제를 우려했지만, 강태준은 고개를 저었다.

“식품에서 제일 중요한 건 소비자 신뢰야. 한번 이미지를 조지면 영영 못 따라잡는다. 기자들 불러서 대국민 담화를 준비하게. 내가 직접 해명하지.”

강태준이 해명한다는 소식에 백경그룹 본사 앞에서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검찰에 사건수사를 직접 의뢰하셨다니 그것이 사실입니까?”

“예. 백경에서는 이번 사태를 매우 엄중하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본 업체는 그간 논란을 의식해 최대한 자중했으나 유언비어가 확대 재생산되는 속도가 빨라 사안을 철저하게 검증하는 길이야말로 신뢰를 되새길 최선의 방도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쥐 혼입이 진짜라는 게 밝혀지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처리할 것입니다. 분유사업에서 전면 철수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강태준의 발언에 주변이 술렁거렸다.

“사업에서 철수하신다니 정말입니까?”

“그렇다면 책임자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모든 것은 검찰 조사에서 명명백백히 밝혀질 것입니다. 저희는 결백을 확신합니다. 이 사태를 의도적으로 개입한 자들이 있다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기자들이 바쁘게 펜대를 놀렸다. 그룹 총수가 직접 나서 적극적으로 해명을 한 것이 신뢰 회복에 효과가 있었는지 분유 판매의 하락세는 곧 멈추었고 그동안 검찰에서는 처음 의혹을 제기한 양모씨를 소환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양애란 씨 분유에 쥐가 있었다는 것 사실이 아니지요?”

“무슨 말씀을. 저는 사실대로 이야기했어유.”

“오 그래요? 여기…… 분유 성분과 제조 연월일이 영 맞지 않잖습니까 이건 대체 뭡니까.”

“이보세요. 아주머니 사실대로 진술하지 않으면 그쪽 영창 삽니다. 선처를 바랄 수 있는 것도 지금뿐이에요.”

사건이 급진전한 것은 제조년원일 덕분이었다. 문제의 분유가 하필 특수분유 생산일자와 겹친다는 게 밝혀지면서 꼬투리가 잡힌 것이다.

계속되는 수사에 궁지에 몰린 양씨가 실토했다.

“아이고, 저는 아무 잘못 없어유. 저희 사촌 동상이 준 분유예유. 시키는 대로 야그한 죄밖에 없어유.”

“그거 큰일 날 짓 했구만. 그래서 누구요?”

“담양의 영업부장인 박강수라는 사람이 지한테 돈을 줬어요.”

강태준 측에서는 빠르게 고소조치를 진행했다. 조사차 온 백경유업 법무팀이 취조실에서 나오자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담양에서는 벌써 손절했더군요. 사실관계 확인한 결과 자기가 단독으로 저지른 범행이라는데요, 담양분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고 있습니다.”

“이거 꼬리 자르기로군요.”

검찰에서 중간수사결과 담양분유 영업부장과 임직원이 관여되었다 의심했지만, 이미 몇 달 전에 영업부장에서 잘린 것으로 서류처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연행된 박강수는 며칠째 아무 말 없이 묵묵부답이었다. 지속적인 회유와 협박에도 소용이 없자 강태준이 직접 나섰다.

“일단 박강수를 대면시켜 주길 부탁합니다.”

“사장님께서요?”

“제가 직접 만나서 설득해 보죠.”

* * *

취조실 안.

강태준과 일대일로 마주 보는 자세가 된 박강수가 눈을 감고 있었다.

“여기 힘들지 않습니까. 저도 몇 번 와 본 적이 있는데 취조실이란 게 마음이고 정신이고 피폐해지는 곳입니다.”

“…….”

“이 사건 주모자가 당신이라고 양애란 씨가 진술하던데, 뭐 할 말 없습니까?”

“저는 절대로 모르는 일입니다.”

딱 잡아떼는 박강수가 입을 굳게 다문 것이 대화의 의지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상대가 그러든 말든 강태준은 서류철을 들춰 보았다.

“어디 보자, 13형제 중에 맏이라니 고생이 많으셨겠군요. 어이쿠야. 자식도 5명이나 되는군요. 어깨가 무거우시겠습니다.”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박강수 씨가 빵에 가면 밥줄 끊길 사람들 명단이죠 그래. 제일 어린 아들이 7살이군요. 곧 학교 갈 나이네요. 아비가 범죄자 되면 학교생활이 힘들 텐데 말입니다.”

“저 협박하시는 겁니까?”

눈을 파르르 떠는 박강수에 강태준이 말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봅시다. 박강수 씨. 제가 여기 얼마 투자한지 아십니까? 제가 투자한 금액이 설비비만 3억 정도인데 마케팅비에 부대비용까지 포함하면 10억이 좀 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이 몇 명일 거 같습니까? 관계까지 포함하면 최소 천 명은 되지 않겠습니까?”

“…….”

“저도 책임질 사람이 많다는 겁니다. 당신은 그만한 책임감 느껴 본 적 있습니까?”

강태준이 깍지를 끼고 그를 가만히 주시하다 팔짱을 꼈다.

“담양에서 그쪽을 언제까지 비호해 줄 것 같나요? 한 2~3년 정도?”

“전 담양에서 퇴사한 사람입니다. 한데 묶지 마십시오.”

“대단한 충심이군요. 짤린 사람이. 담양에서 재채용이라도 약속받았습니까. 아니면 조만간 대리점이라도 하나 내준답니까?”

“…….”

“저도 비슷한 건 해드릴 수 있는데 말이죠.”

“전 더 할 말 없습니다.”

대화를 거부하는 행동에 침묵하던 강태준이 사진을 하나 내밀었다.

“그럼 이걸 한번 보시고 스스로 판단해 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건 세브란스에 입원한 조카의 사진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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