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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재벌 강태준-38화 (38/361)

38화 제품 개량

잠시 망설이던 강태준이 침착하게 물었다.

“언제까지 말입니까?”

“일단 공사가 완공될 때까지는 필요하지 않겠어? 대신 그동안 발생하는 사고의 책임은 전적으로 우리 태준이가 감당해야지. 뭐 추후 화재가 발생하거나 도유꾼 같잖은 벌레가 꼬인다면 그때는…… 알지?”

“좋습니다. 그럼. 그 안에 발생하는 문제는 저희 쪽에서 책임지죠.”

어차피 딱히 기억에 남을 큰 사건이 없었던 만큼 그 정도야 충분히 허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복만이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

그로서는 갑작스레 보직이 변경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네? 저보고 무안에 가서 미군부대 군속을 하란 말입니까?”

“그래. 명목상으로만 출근하면 돼. 월급도 나온다.”

“아니 제가 왜요? 대체 왜? 당사자 동의도 없이 이렇게 얼렁뚱땅 정하는 게 어딨습니까?”

격하게 항의하는 녀석에 강태준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니 이놈이 그래서 싫다는겨?”

“아니 좋고 싫고를 떠나서, 이건 누가 봐도 완전히 개 목줄 채우는 용도 아닙니까. 사건 터지면 제가 독박 쓸 게 보이는데. 게다가 전 영어라면 몸에 두드러기 날 정돕니다. 대화가 통해야 뭘 하지. 전 아무것도 모른다고요.”

“그거야 지금부터 준비하면 되지. 영어는 실전으로 배우면 되고. 뭐 군속이 되면 가끔 군사 훈련도 해야 하니 각오해 두고.”

“아! 형님! 진짜”

“임마 이거 남들은 못 가서 안달 난 자리야. PX에서 물건도 맘대로 살 수 있고, 월급도 빵빵하니. 니는 어차피 군대 가야 할 거 아녀. 그래 생각해 보니, 이참에 병역 문제까지 한 방에 해결해 버리는 건 어때? 아주 말뚝 박는 것도 좋고.”

“아오 형님! 결국은 인질 노릇 하란 말을 왜 그렇게 돌려 해요?”

“임마,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용뺄 재주 있나? 긍정적으로 생각해 봐, 기본 수당만 월 50달러. 칼퇴에 휴일 보장. 생명 수당도 나온다.”

“흠…….”

“거기다 제일 중요한 건 여자들을 만나기 좋은 환경이야. 퇴근 후에는 자유 시간도 많고 군속은 일반 군인과 다르게 여자 비율도 꽤 높으니. 군산 쪽이면 의무대 소속 여군들도 꽤 되거든.”

“에이, 인물이 좋아 봤자 뭐 어차피 군바리 아입니까?”

“군바리만 있나? 민간인들도 많지. 주한미군 군속이라고 하면 밖에서 먹어 줄걸. 특히 야전병원 쪽엔 미녀들도 많다는데…….”

질풍노도의 시기인 복만이에게 있어 즉효다.

언제 그랬냐는 듯 불만이 수그러든 녀석이 호기롭게 외쳤다.

“형님이 등 떠미는데 안 갈 순 없지요, 대신 말과 다르면 탈영할 테니, 그리 아쇼.”

“복만이 너 가서 물 좋다고, 귀가 안 한다 하지 말거래!”

“가야죠! 가, 언제 출발하면 됩니까?”

* * *

깡깡깡~!!

며칠 후 덕창 단조.

화로 속의 불이 혀를 날름거리는 동안, 대장장이의 망치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보조를 맡은 집게잡이가 익숙한 듯 방향을 바꾸자. 박자에 맞추어 떨어지는 망치에 쭉쭉 늘어나는 쇳덩이.

하지만 너무 힘을 준 탓일까.

파직 소리와 함께 작업하던 쇳덩이가 파삭하고 부서져 나갔다.

“이런 또 깨졌군. 실패인가.”

허탈감에 숨을 고르는 집게잡이가 부서진 파편을 훑어본다.

다래끼가 생긴 채 벌겋게 충혈된 눈. 과자같이 깨진 단면을 살펴본 천대광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취성이 높은 금속들이 섞여 들어가서 그런가. 품질이 별로 좋지 않군.”

“어떡하죠?”

“어떡하긴, 다시 해야지, 조금만 힘내 봄세.”

숨을 가다듬은 그가 다시 망치를 들었다. 어찌 되었든 끝장을 봐야 하지 않나.

이쯤 되면 오기로라도 성공시키겠다는

다시 철제 자투리를 섞어 화구에 넣으려는 때쯤, 밖에서 화물차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찾아온 손님은 바로 강태준이었다.

“이런 영감님, 뭔가 잘 안 풀리십니까?”

“답보 상태일세. 역시 연철로는 날이 물러서 오래 못 쓰겠더군. 애초부터 불순물이 적고, 인장 강도가 높아야 쓸 만한데 애초에 그런 양질의 철을 구하기가 어렵더라고.”

얇은 박판을 만들려면 연철을 쓰는 게 쉽지만 그래서는 인성(toughness)에 문제가 생긴다. 내구성 강화를 위해 합금을 섞었지만, 문제는 자꾸 깨지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렇게 굳이 수고로운 단조 작업을 거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저도 그럴 줄 알고 준비했죠.”

“뭘 말인가?”

천 영감의 반응에 강태준이 대답 대신 나무 상자에서 물건을 꺼냈다.

차에서 내린 은백색의 강철판에 주름진 눈매에 이채가 어렸다.

“짜잔, 어떻습니까?”

“이건, 미가끼 판이로군. 이런 걸 만들려면 품이 많이 들었을 텐데, 대체 어떻게 구했나?”

“제련소에 맡겨서 때를 확 뺀 거죠. 불순물을 최대치로 제거한 순도 높은 냉연강판입니다.”

군산의 미군부대에서 수거한 파철을 제련소로 보내 제작한 물건.

표면에 생긴 스케일과 산화철을 제거하고. 슬래브를 고온으로 가열해 압연롤로 눌러 만든 것이다.

내마모성 증가를 위해 산세 처리까지 한 물건이다 보니 표면부터가 아주 반들반들한다.

화로 불빛에 반사되는 결을 황홀한 듯 쓰다듬는 천 영감에 강태준이 미소를 지었다.

“고수는 무기를 가리지 않는다지만 상품을 만들려면 재료가 좋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거라면 좀 더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죠.”

“확실히 이 물건은 도움이 될 것 같군.”

천 영감은 다시 의욕을 불태웠다. 의뢰인이 이 정도 성의를 보였다면 이젠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렇게 지원을 받고 실패한다면 체면 깎이는 일이 아닌가.

장인으로서의 오기가 발동하자 그는 식음도 전폐하고 면도기 제작에 열중했다.

몇 주 후 시행착오를 거쳐, 마침내 면도기가 완성되었다.

유려한 빛깔의 제품을 확인한 강태준이 감탄했다.

격자무늬가 들어간 몸통까지 통짜로 된 물건으로 헤드가 분리되는 쓰리피스 방식이었다.

“몸통에 공을 많이 들였군요.”

“선반 가공 후에 보로꾸로 구멍을 뚫었지. 날도 한번 다시 굽고 급냉해서 강도를 높인 걸세. 내구성은 보장하이.”

“그럼 한번 시험해 봐야겠군요.”

번들거리는 칼날은 티 한 점 없이 매끄러웠다. 비누 거품을 탄 칼날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깔끔하지만, 깊숙한 면도는 아니다. 부드럽게 손질된 턱을 만져 보는 강태준에 천 영감이 긴장한 어조로 물었다.

“어떤가?”

“전보다 깔끔하네요. 피부가 느끼는 감촉도 부담이 적어 더 편안하고요. 다만 시간이 오래 걸리니 굳이 손잡이 부분에 품이 많이 드니, 문양을 넣을 필요는 없을 거 같습니다.”

“알았네. 그 점 참고하지.”

다행히 새로 만든 제품은 무난했다. 무엇보다 웬만한 털가죽을 대패질해도 무난할 정도로 마일드하게 밀린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몇 가지 수정을 거치며 만들어 낸 초도 물량이 200개 정도

가격은 시중에서 팔리는 면도날의 1/2로 설정하고, 백경 면도기라는 음각을 새겼다.

하지만 들뜬 마음으로 각 철물점과 상점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비치하도록 동의를 구했지만 몇 주간 물건이 생각보다 잘 팔려 나가지 않았다.

이삼 주가 지나는 동안, 팔린 물건이라곤 대여섯 개가 전부.

생각보다 부진한 판매량에 춘삼이가 걱정을 금치 못했다.

“생각보다 물량이 안 나가네요. 이렇게 질이 좋은데 말이죠.”

“어쩔 수 없지 않나. 물건은 잘 빠졌어도 아직 인지도가 없으니까. 입소문을 탈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테지. 게다가 단가가 낮은 물건은 아니니 말이야.”

“확실히 부담스러운 가격이긴 합니다. 게다가 얼굴에 쓰는 물건이니 보수적인 부분이 없잖아 있겠죠.”

“그래도 걱정하지 마. 설탕도 그랬잖아. 소비자들은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고.”

하지만 춘삼이의 생각으로는 좀 걱정이 되는 면이 없잖아 있었다.

“흠, 하지만 판매가 너무 늦어지면 그사이 저희랑 비슷한 아류작들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런 게 나와 버리면 좋은 품질이 도리어 묻혀 버리는 수도 있습니다.”

“확실히 그 말도 일리는 있군. 그래서 말인데 일단은 공짜로 나눠 주는 건 어떻겠습니까?”

강태준의 말에 춘삼이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공짜로? 누구한테?”

“네. 듣자 하니 정육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짐승 털을 깎는데 이런 면도기를 많이 쓴다고 하더라고요. 가죽 손상 없이 깔끔하게 밀리니까요. 하지만 새 면도날이 비싸니 폐기한 물건을 수거해서 쓰는 경우가 잦다네요.”

“호오. 정육점 점주들이라. 근데 그게 효과가 있을까?”

“어차피 면도기는 자체는 몰라도 날은 소모품 아닙니까. 날 교체하는데 서로 호환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일단 써 보고 가성비가 좋다고 느껴지면 계속 쓰지 않겠습니까. 싼 게 비지떡이라고 일단은 접근성을 높여 보는 게 어떤가 해서요. 게다가 사람 말고 동물을 대상으로 하다 보면 뭐가 불편한지 미리 확인해 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거 괜찮은 생각이군.”

도축된 돼지의 털은 굵고 뻣뻣하다. 그래서 또한 돼지를 삶거나 뜨거운 물로 부드럽게 한 후에 털을 제거하는데 이때 면도기가 애용되는 것이다.

나름 일리 있는 제안이라 생각한 강태준은 다시 국제시장에 들렀다. 이번에 그가 방문한 곳은 종종 찾던 정육점이었다. 도축한 돼지가 거꾸로 걸려 있는 정육점 안에는 앞치마를 한 아저씨가 삶은 족발을 큼직하게 썰고 있었다.

“한씨 아저씨.”

“어이, 마침 잘 왔네. 태준이 마침 오늘 새 물건이 들어왔구먼. 실한 게 나왔는데, 어째 한 근 줄까.”

“뒷다리 한 근 주시죠. 간이랑 내장도 섞어서요.”

“오키, 알았네.”

고기를 손질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강태준이 슬쩍 운을 띄웠다.

“보아하니 거래량이 꽤 는 거 같은데, 장사가 잘되나 봅니다.”

“요새 미군 놈들이 자주 들르거든. 우리 집 족발이 꽤 인기일세. 코쟁이 놈들도 족발 맛을 좀 알아주는 거 같아.”

“좋은 일이네요. 근데 고기를 통으로 손질하려면 힘이 많이 들 텐데. 혹시 손질할 때 털 제거용으로 뭘 쓰십니까?”

“나는 보통 이걸 쓰지.”

그가 오래되어 보이는 칼을 자랑스레 보여 주었다.

손잡이에 묻은 손때가 완연한 것이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물건. 신중하게 칼날을 살펴본 강태준이 다시 칼을 돌려주었다.

“외날 면도칼이군요. 꽤 연식이 있어 보입니다만.”

“독립할 때 스승님께 선물로 받은 거야. 한 50년쯤 되었나. 스승님도 물려받은 거라는군.”

“이게 잘 드나요?”

“그럴 리가 있나. 그냥 관성으로 쓰는 거지. 날이 너무 쉽게 무뎌져서, 없는 것보다 나으니 쓰는 거지. 사실 이것보단 미제 면도날이 더 잘 갈려서 주워서 쓸 때가 많지.”

멋쩍게 웃는 행동이 순박해 보인다.

마침 잘 됐다고 생각한 강태준이 미리 가져온 면도기를 꺼냈다.

“그럼 이거 한번 써 보시는 거 어떤가요?”

“응. 처음 보는 물건인데? 어디 제품인가?”

“저희가 자체 제작한 겁니다.”

강태준을 돌아본 한씨가 깜짝 놀란 듯이 위아래를 살폈다.

“오 진짜? 태준이 출세했구먼. 이젠 칼 같은 물건도 만드나?”

“하하, 나름 야심작으로 내놓은 건데 아직 사람들이 모르더라고요. 대창 단조 천 사장님이랑 같이 만든 겁니다.”

“오, 그 꼬장꼬장한 영감님이? 천 영감 그거 아주 까다로운 양반인데?”

“날 두 개를 같이 드릴 테니, 함 써 보시죠. 혹 맘에 들면 소문 좀 내 주십쇼.”

“하하. 알았네. 고마워 잘 쓸게.”

족발집과 정육점주들을 통해 면도기를 무료로 배포한 것은 올바른 판단이었다. 보통 돼지를 삶거나 뜨거운 물로 부드럽게 한 후에 털을 제거하기 때문에 할 지적도 그만큼 많았던 것이다.

“직접 써 보니 사용 중에 고정이 흔들리는 경우가 좀 잦더군. 그러면 털 제거가 어려워. 피부에 마찰이 높아져서 힘이 더 들어.”

“손잡이를 더 강하게 조여 보겠습니다.”

“그리고 가격은 더 낮출 수 없나?”

“하하. 그게 단가도 그렇고 수공이 많이 들어서 좀…….”

“통짜 쇠로 만들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 헤드는 몰라도 몸통의 전후단 정도는 각각 다른 재질로 만들어 보는 건 어때? 플라스틱이나 고무 재질로 만들면 모양 성형도 더 편리하지 않나?”

“흠. 확실히 손잡이 부분은 따로 생각해 봐야겠군요.”

안전면도기가 등장한 지 벌써 수십 년. 제조사마다 모두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모두 말로 표현하기 힘든 노하우 때문. 강태준은 조언에 힘입어 헤드의 면도날에 홈을 길게 파고, 몸통의 손잡이 부분은 사출 플라스틱 재질로 과감히 교체했다.

본체 가격을 1/3 수준으로 낮추고 면도날을 10개 묶음으로 합쳐 판매하니, 판매량도 호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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