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5화 (5/361)

5화 카발 자동차

카발은 대한민국 첫차를 만들어 낸 회사로, 후일 운크라 자금으로 20만 달러를 불하받아, 굴지의 자동차회사를 세우는 업체로 유명해졌다.

길거리에서 어묵에 정신이 팔렸던 복만이는 뒤따라온 강태준을 확인하더니 반쯤 먹던 꼬치 하나를 불쑥 앞으로 내밀었다.

“거, 형님도 한 끼 하실려우?”

“됐다. 임마. 일단 따라와.”

다행히 수리소 앞에는 수위가 자리를 비웠는지 지키는 사람이 없다. 수리소라고 적힌 대문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정비공들이 망치로 드럼통을 두드려 펴는 작업이 한창.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는 김복만을 뒤로하고, 강태준은 보로꾸로 대충 지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안경을 쓴 남자가 사무를 보던 중이었는지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내 배달 안 시켰소.”

“그게 아니라 일자리 찾으러 왔습니다. 혹시 기능인력 두 명 정도 필요하지 않습니까?”

강태준을 위아래로 보던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 그에게 말했다.

“혹시 어디서 소개로 온 분인가?”

“그런 건 아닙니다만.”

“일 없수다.”

“그러지 말고 한번 써 보시지요. 기술은 배웠습니다. 대충 용접이랑 자전거 수리 정도는 할 줄 압니다.”

배를 타다 보면 돌발상황이 생기기 마련. 갑판원에서부터 선장까지 두루 경험해 본 만큼 어지간한 수리는 자신 있는 강태준이었다. 하지만 안경을 올렸다 내린 남자는 그를 위아래로 살피더니 영 미덥지 못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자네. 어디 가출 나온 도련님인가. 뒤에 그 짝은 그 집 머슴인가?”

“머슴이라뇨, 제 아우인데.”

“사촌 동생입니다요.”

약간 불쾌한 듯 말투에 가시가 돋친 복만이에 사무원이 고개를 저었다.

“아 실례. 암튼 간절한 건 이해가 간다만 거짓말은 좋지 않네. 딱 보기에도 기계 한 번 안 만져 본 얼굴인데 더욱이 이런 험한 일은 댁 같은 사람은 절대 못 해.”

맥이 풀린 강태준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하, 왜 그렇게 일을 안 주나 했더니만. 그래

이 희멀건 하게 생긴 몸뚱이가 제일 문제였던가.

하긴 기생오라비처럼 생기긴 했지. 그러나 이쯤 와서 포기할 강태준이 아니다.

“사람을 생긴 걸로 판단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전쟁통에 안 해 본 일이 없으니 한 번만 써 보시죠. 여기 이 녀석도 힘 좋은 녀석입니다.”

“그게 안 된다니까? 여기는 학교가 아닐세. 기술을 배우고 싶으면 딴 데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한 번 기회를 주십시오.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넵, 시켜만 주시죠!”

“거 참. 곤란하게. 왜들 이러나. 자네들 이러는 거 엄연히 영업방해야.”

난처한 듯한 목소리, 하지만 강태준은 막무가내였다. 여기서 쫓겨나면 그로서는 더 이상 갈 곳이 마땅찮은 것이다. 강태준 일행이 나갈 기색을 보이지 않자 상대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때마침 밖에서 부릉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정비공 하나가 들어왔다.

“뭔 일인가? 지금?”

“저기, 손님 오셨습니다. 부장님. 근데 외국 분이라…….”

안에서 실랑이를 벌이던 중, 손님 하나가 도착한 것이다. 밖에서 지프에서 내린 백인 남자는 푸른 눈에 중위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젠장, 스튜어트 중위 아닌가. 두 시간 뒤에 오라 했는데 벌써 왔구먼. 이러면 곤란한데.”

“저…… 일단 어떻게 할까요. 통역하려면 최 이사님부터 불러와야.”

“외근 나갔다고 하지 않았나. 일단 밖에 나가서 통역부터 불러오게.”

당황한 김 부장은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미 김 부장을 발견한 스튜어트는 반가운 듯 손을 흔들고 있다.

부장이 도움을 구하듯 주위를 살피자 슬슬 고개를 돌린 직원들이 일제히 자리를 피했다.

하는 수 없이 김 부장이 영업에 나섰지만 대화는 지지부진했다.

회화가 전혀 되지 않는 김 부장으로서는 버거운 상대.

한동안 what?만 반복하던 그가 난감한 듯 고개를 저었다.

“젠장, 코쟁이 양반도 참. 대체 뭐라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구먼.”

원래 외국인 영업을 전담하는 최 이사는 외근을 나간 상태.

보다 못해 손짓, 발짓으로 나섰지만 전혀 대화가 되지 않는다.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에 보다 못한 강태준이 앞으로 나섰다.

“제가 기본적인 영어는 할 줄 아는데 도와드릴까요?”

“뭐? 그게 정말인가?”

“예. 대충 회화는 할 줄 아니 맡겨 보시죠.”

“음…….”

못 미더워하는 표정을 보이는 김 부장이 중위를 돌아보았다. 아까부터 찾아온다는 통역은 감감무소식.

답답한지 어깨를 으쓱하는 모습을 보니 달리 방법이 없어 보인다.

“알았어. 그럼 해 보시게.”

양해를 얻어낸 강태준이 중위 계급장을 단 장교에게 다가가더니 유창한 영어로 말을 이었다.

“Excuse me, may I help you?”

“Oh, Can you speak English?”

“Just a little bit. so what's wrong with your car?”

“I think my car is not working, steering wheel is getting hard to work sometimes.”

“Let me see…….”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던 중위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얼마나 대화를 나누었을까. 잠시 후 대화를 마친 강태준이 손님의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뭐라는가?”

“들어 보니 자동차 핸들 부분이 좀 뻑뻑하다네요. 추가로 타이어에 문제가 발생한 것 같은데 세부적인 부분은 좀 더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일단 그럼 차는 두고 가라고 하게. 수리까지 시간이 좀 걸리니, 내일 이 시간대에 다시 오시라고 전하시게나.”

강태준이 다시 양해를 구하자 스튜어트 중위도 맘에 드는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차를 맡긴 마친 중위가 사라지자, 홀가분해진 김 부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때마침 영업차 미군부대에 외근을 나갔던 최대길 이사가 귀환했다.

정비장에 세운 군용 지프를 발견한 그가 깜짝 놀라 말했다.

“어, 통역도 없는데 이거 누가 오더받았어?”

“제가 아니라. 이 녀석이요. 회화가 유창한 게 아주 물건입니다요.”

“오 그래? 영어 할 줄 아나?”

“조금은요.”

최 이사의 눈이 이내 이채를 띄었다. 혹시나 하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눠 본 최대길 이사가 놀랍다는 투로 칭찬했다.

“허, 젊은 놈이 영어가 나보다 유창하구먼. 이걸 어디서 배웠나?”

“학교 주변에 미군부대가 있어 거기서 배웠습니다. 사촌이 군속이었거든요.”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강태준이었지만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애초에 이 시기에 영어를 배울 곳이라고는 한정되어 있지 않나.

김 부장이 얼른 덧붙였다.

“이 녀석 차 수리도 할 줄 안답니다.”

“그게 정말인가?”

“예. 선박 엔진을 만져 본 적이 있습니다.”

최 이사는 약간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잠시 망설이던 그가 아까 중위가 맡긴 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실력 좀 보자고. 자네가 오더받았으니, 이거 수리해 봐.”

“사장님! 처음 보는 녀석한테 그건 좀.”

“자기가 수리할 수 있다지 않아? 시켜 보지. 어때? 자신 있어?”

어쩔 거냐는 표정에 강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서는 실력을 선보일 기회인 만큼 사양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 공구 좀 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24조짜리 스패너하고, 랜치 좀 빌려주십시오.”

“오케이. 그 정도야.”

신삥이 수리를 맡는다는 소리에, 궁금증이 생긴 정비공들이 제자리로 몰려들었다.

“실력 검증이라고? 신삥이?”

“저건 신형이잖아, 저거 생각보다 고치기 쉽지 않은데?”

우려 반, 호기심 반으로 그 모양을 지켜보는 사람들.

모인 정비공들이 지켜보는 동안, 강태준은 차체를 주의 깊게 살폈다.

‘확실히 상태가 안 좋아. 이거 꽤 험하게 굴렸군.’

장교가 가져온 윌리스 지프는 M38A1로 초기 윌리스 지프의 개량판이다.

얼마나 막 썼는지 거의 2~3년 동안 제대로 된 정비를 받지 못한 것처럼 낡아 있었다.

차체 뒤축을 확인해 보니 예측대로 편마모가 심하여 지면 접촉 시 핸들이 무겁게 느껴졌던 것이 분명했다.

‘일단 운전대부터 분해하고 업소버를 교체해야겠네. 스트럿이랑 스티어링 너클도 세척해야 할 거 같고.’

바로 작업에 들어간 강태준은 휠 발란스를 맞추고, 배터리 출력을 조절했다. 점화플러그와 점화선을 새 걸로 교체한 다음 타이어를 갈고 시동을 걸자 엔진음이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오오.”

털털거리는 소리가 아닌 부릉부릉한 엔진음에 정비공들의 눈에 감탄사가 어렸다.

경력자인 그들이 보기에도 능숙하게 고치는 솜씨가 보통내기가 아니다.

손수 시범 운전해 본 최 이사가 차 상태를 확인해 보더니 엄지를 추켜세웠다.

“이야, 너 대단한데! 이런 거 어디서 배웠나?”

“그보다 합격이죠? 이제 출근은 언제부텁니까?”

“낼부터 나와. 근무시간은 오전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아침이랑 새참, 점심은 준다. 월에 2일 휴일이야. 정비공의 경우 봉급은 주급 250환, 주임급은 500환이다. 너는 일단 보조니 주급 200환에서 시작한다. 단, 장비값은 첫 봉급에서 제할 거야.”

강태준은 빠르게 머릿속을 셈을 해 보았다.

현 물가를 보면 영남미 1등급에 1두(18kg)당 1,000~1,200환 정도.

쌀 한 가마(80kg)에 5,000환이 좀 넘는다.

“저기, 한 사람 더 안 되겠습니까? 제 아우인데 힘이 장사입니다.”

“응 한 명 더 말인가? 그건 좀 곤란한데?”

최대길은 조금 망설였지만, 복만이의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보곤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덩치가 곰처럼 산만 한 놈이 간절하게 눈동자를 굴리는 모습이 무척이나 처량해 보였던 것이다.

결국 그 모습이 신경 쓰인 그는 마지못해 승낙하고 말았다.

“좋아 자네 잡일도 좋나? 대신 일당은 절반일세. 시다라서 일이 좀 고될 거야.”

“물론입니다. 하루 3끼만 제대로 주시면 저는 만족합니다.”

“좋아. 그럼 자네도 채용하지.”

“그러면 사장님. 개인용 공구는 제가 따로 구할 테니, 대금을 가불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돈이 급해서…….”

강태준을 돌아본 상대가 어이없다는 듯 눈을 흘겼다. 간절한 표정의 복만이가 옆에 가세하자 촉촉해진 눈빛을 견디다 못한 그가 피식 헛웃음을 지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선심 쓰듯 품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주었다.

“첫날부터 가불이라니…… 원래대로라면 불가능하겠지만 오늘 공도 세웠으니. 이건 오늘 사례비야.”

“감사합니다.”

“대신 날 실망시키지 말게. 출근은 내일부터니 잊지 말고 확실히 해.”

근처 목욕탕에 들려 때를 빼자 몸이 개운했다.

“오랜만에 씻으니까. 좋구먼. 근데 인자 어딜 가는 겁니까?”

“따라와, 몸은 대충 씻었으니 공구도 구해야지. 그리고 일단은 목구녕에 때 좀 벗겨야 하지 않겠냐?”

“그거 좋은 생각이고만.”

대략 일을 마친 강태준과 김복만은 국제시장 통술집 골목으로 향했다. 도떼기시장 안에는 음식점들이 즐비했는데, 판잣집으로 된 통술집이라 해 봐야 모퉁이에 창고를 빌려 개조하여 창문 몇 개를 낸 허름한 형태였다. 어두컴컴하고 널찍한 시멘트 바닥, 둥글고 큰 나무통이 의자처럼 나열되어 있었고 이른 저녁부터 식사를 하러 온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거, 이모님, 한 상 주십쇼.”

“예이!”

노릇노릇 맛있게 익은 감자전과 연탄불 위에서 지글지글 구워진 명태에 함지박만 하게 입을 벌린 복만이. 바닷바람에 말려 꼬들한 붕장어는 초장과 찰떡궁합. 우렁 쌈장에 밑반찬인 고둥은 쌉쌀하면서도 짭조름해 자꾸 손이 간다. 음식을 채 다 먹기도 전에 보글보글 끓는 굴탕과 꽃게가 연이어 나왔고, 땡초와 고추를 넣어 끓인 굴국은 얼큰하고 시원했다.

찜기에서 나온 꽃게는 빨갛고 탐스럽게 익었다. 잘 삶아 낸 흰 살이 탱글탱글한 것이 튕겨 나올 것만 같은 외양. 살이 가득 찬 다리를 쪽쪽 빨고 흰 밥을 얹자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흥이 난 김복만은 며칠 굶은 사람인 양 먹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는 강태준 앞으로 아주머니 하나가 동동주 한 사발을 내왔다.

“총각이 잘생겨서 이건 서비스.”

“아이구 감사합니다.”

눈을 찡긋하는 아주머니. 움찔하면서 막걸리를 든 강태준이 술잔을 높이 들었다.

“자, 우리들의 미래를 위하여!”

“위하여!”

옆에서는 술에 감정이 북받친 모양인지 함께 있던 피난민들이 노래를 불렀다.

젓가락으로 운율을 맞춰가며 목이 터지라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율동에 맞춰 춤을 추는 남자들을 뒤로 날이 저물어 갔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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