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8화
많은 사람들이 드래곤 로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녀를 둘러싸고는 한마디씩 내뱉었다.
“정말 살아계신다!”
“시체가 아니야!”
드래곤 로드가 그들의 말을 듣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이 살아 있는 것에 기뻐하는 건 괜찮았지만, 어째서 살아 있다는 사실에 경악까지 하는지는 납득할 수 없었다.
“내가 살아있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
그래서 드래곤 로드는 그들을 찌릿하면서 째려봤다. 그러자 드래곤 로드를 보려고 달려온 사람들이 ‘히익’ 소리를 내면서 뒤로 물러났다.
비록. 드래곤로써의 힘은 사라졌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패기까지 나약해진건 아니었다.
“아니… 요.”
“그냥… 신기해서.”
드래곤 로드의 반응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뒤로 물러났다. 지금 이곳에 있는 북부인들은 모두, 제2의 북부를 건설하기 위해서 모여든 일반인들이다.
그러니 드래곤 로드의 포악한 성격을 견뎌낼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너무 뭐라고 하진 마시죠. 다들 드래곤 로드님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그러는 겁니다.”
그때. 에탄이 드래곤 로드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그 후 주변에 있는 인파들을 쳐다보면서 뒷말을 붙였다.
“아직 드래곤 로드님은 깨어나신지 얼마 안됐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각자 할 일에 집중해주세요. 드래곤 로드님이 조금 평온해지시면 그때 만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에탄의 말에 제2의 북부를 건설하던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자신들의 일을 하기 위해서 각자의 위치로 우르르 움직였다.
“…….”
드래곤 로드가 이런 그들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에탄의 말 한마디에 순식간에 사라지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아무도 드래곤 로드님의 힘이 없어졌다고 해서 얕보지 않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사라지자, 에탄이 드래곤 로드를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게다가 약해졌다고 해서 정말 약한것도 아니잖아요. 드래곤 로드님의 육체 수준이 저희보다 뛰어 나다는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흥.”
에탄의 말에 드래곤 로드가 콧방귀를 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조금 전 인파가 몰려왔을 때도, 그녀가 마음만 먹었다면 진작에 모든 사람을 멀리멀리 내던져 버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드래곤 로드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드래곤 로드는 사람들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의 두 팔을 아래로 내리고 있었다.
“다 나를 위해서 온 자들이다. 그런 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할만큼 난 멍청하지 않다.”
드래곤 로드가 에탄을 향해 툭 쏘아붙이듯 말했다.
“그나저나 꽤 많이도 지었구나.”
그리고 제2의 북부 건설 현장을 보고는 감탄을 내뱉었다. 자신이 사라진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 짧은 시간에 제2의 북부에 꽤 많은 건축물이 올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기 위한 난방 시설은 물론이고, 북부에 있었던 통합 대장간에 이어서 제2의 통합 대장간까지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거기에 요새까지 짓고.”
“혹시 모르잖아요. 앞으로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흐음….”
“게다가 야만족들이 언제 성벽을 넘어올지 몰라요. 그것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방비를 철저히 하는 게 맞죠.”
“맞는 말이다. 방심을 했다가 얻어맞으면 그것만큼 막기 힘든 게 없지.”
드래곤 로드가 에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제2의 북부를 눈으로 쓰윽 훑어봤다.
이어서 주변에 있는 산들을 보고는 콧방귀를 꼈다.
“겨울을 완전히 물리쳤군.”
북부에 계속해서 몰아치던 겨울. 그것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눈은 물론이고 바닥에 쌓여있던 눈과 얼어있던 얼음까지 모든 게 녹아 내려있었다.
“예. 어쩌다보니….”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저것을 의도하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저 뇽뇽이가 자신들을 따뜻하게 해주겠다고 만들었던 화염구를 막아내는 과정에서 생긴 여파였다.
“누가 함께 했지?”
“아린이와 뇽뇽이가 작업을 도와줬습니다.”
“훌륭하다.”
하지만 드래곤 로드에게 그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녹아내린 겨울이 에탄이 의도한 대로 행해진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초를 칠 필요는 없지.’
그리고 드래곤 로드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역시 아린이와 뇽뇽이의 이름만 나오면 드래곤 로드도 기분이 좋아지나 보네.’
에탄은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추측할수 있었다. 아린이와 뇽뇽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순간, 그녀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으니 말이다.
꼬르륵!
그때. 드래곤 로드의 뱃속에서 밥을 달라는 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졌다.
“흠….”
드래곤 로드가 그것을 깨닫고는 시선을 회피했다. 자신의 배에서 저런 소리가 나올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배가 고프군요.”
그때. 에탄이 자신의 배에서 소리가 난것마냥 픽 웃었다. 그리고 드래곤 로드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우선 밥부터 먹죠.”
그 순간 드래곤 로드는 새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에탄은 드래곤 로드와 아린이 뇽뇽이를 데리고 제2의 북부에서 데이른 공작의 영지까지 움직였다.
“용캐 살아 있군.”
그리고 데이른 공작에게 드래곤 로드를 마중나오게 햇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그였지만, 드래곤 로드가 마차에서 내리자 데이른 공작은 크게 놀랬다.
“다른 차원에서 피를 흘리는 걸 보고 죽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하하하!”
데이른 공작이 크게 웃었다.
다른 이들이 그 말을 듣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중에서 아린이와 뇽뇽이가 데이른 공작을 향해 쏘아 붙이듯 말했다.
“드래곤 로드님 앞에서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예의 없음!”
아린이와 뇽뇽이가 데이른 공작의 말에 화를 냈다. 드래곤 로드를 향해 낄낄 웃으면서 말하는 데이른 공작의 모습이 마음에 안들었기 때문이다.
“…….”
데이른 공작이 두 사람의 성화에 입을 다물었다. 조금 전 보였던 웃음기 대신, 그의 얼굴에는 묘한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흥. 꼴 좋구나.”
드래곤 로드가 그걸 보고는 픽 웃었다. 하지만 데이른 공작에게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 또한 자신처럼 원정에 참여하면서 많은 힘을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그의 머리카락은 이제 백발로 서서히 변해가고 있었다.
“네 녀석도 몸 관리를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몸은 드래곤과는 다르게 훨씬 더 약하니까.”
“난 아직 늙지 않았다!”
“그런거 치고는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군. 북부에 내리던 눈이 전부 자네의 머리로 흘러들어간 모양이지?”
“…크흠.”
드래곤 로드의 대답에 데이른 공작이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온 것이냐?”
그리고 에탄을 쳐다보면셔 여기는 왜 왔냐고 물었다. 지금 드래곤 로드와 대화를 이어 나가봤자, 자신의 자존심만 구겨질게 뻔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혹시….”
그래서 에탄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설마 또 다른 적이 나타난건가 라는 의문을 가지려는 순간.
“밥먹으러 왔습니다.”
에탄이 데이른 공작을 향해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당당하게 말했다.
“?”
그리고 데이른 공작은 그 말을 듣고 멍하니 에탄과 드래곤 로드를 빤히 바라봤다.
그게 정말이냐는 듯이 말이다.
꼬르륵!
그때. 다시 한번 드래곤 로드의 뱃속에서 밥을 달라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이 들을 정도였다. 에탄또한 그 사실을 상기하고 슬그머니 드래곤 로드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
드래곤 로드가 자신의 주위에서 멀어지는 사람들을 보고는 두눈을 부릅 떴다. 놀리면 죽여버리겠다는 그녀의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밥. 그래 밥은 소중하지.”
데이른 공작이 그런 살벌한 눈빛을 보고는 다급히 뒷말을 붙였다.
“식사를 차리라고 하겠다. 안으로 들어가자.”
그리고 드래곤 로드와 나머지 이들을 데리고 자신의 저택으로 움직였다.
* * *
데이른 공작의 빠른 대처 덕분에 식사는 금방 나왔다. 그리고 드래곤 로드는 식탁에 있는 무수히 많은 고기들을 혼자서 흡입하다 싶이 쓸어 먹었다.
자신의 위장속으로 말이다.
“잘 먹었다.”
식사는 무려 한 시간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이유는 간단했다. 드래곤 로드가 그동안 계속해서 고기를 집어 먹었기 때문이다.
“이번 달 식비가 상당히 많이 나오겟군….”
데이른 공작이 그걸 보고는 아연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안 그래도 제2의 북부에 들어가는 재료비들을 데이른 공작이 지원해 주고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거기에 드래곤 로드의 식사까지 함께 더해지니, 그로서는 속이 쓰릴 만도 했다.
“이런 식사를 한 달 동안 제공하라고?”
이게 단 한번의 식사였다면 그러려니 하면서 넘겼으리라. 하지만 드래곤 로드는 한번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데이른 공작에게 한 달 동안 지금과도 같은 양의 식사를 제공하라고 말했다.
“어쩔수 없다. 육체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양질의 음식을 많이 먹어 치워야 하니까.”
“끄응….”
드래곤 로드의 대답에 데이른 공작이 미간을 찌푸렸다. 저 말에 반대할만한 건덕지가 없었다.
드래곤 로드의 회복을 위해서 하는 일들이니 말이다.
“앞으로 사냥꾼들이 더 바빠지겠군.”
그래서 데이른 공작은 어쩔수 없이, 드래곤 로드를 자신의 저택에 머물게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때.
타타탁!
“데이른 공작님. 황제 폐하께서 서신을 보내셨습니다!”
병사 한 명이 데이른 공작과 이들이 있는 곳에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리고 황제의 서신이 도착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