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5화
그렇게 북부에서 꽤 긴 시간이 흘렀다. 계절이 바뀌고 어느덧 차가운 겨울이 올 정도였다.
북부에서 거침없이 진척을 이루던 건설도, 혹독한 겨울이 오는 순간 작업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물론 모든 작업이 중지된 건 아니었다. 화염의 지배자가 특별히 겨울이 몰아치는 이곳에 자신의 불덩어리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뇽뇽이와 화염의 지배자의 불 마법.
두 사람의 화염 덕분에 북부에서는 최소한의 작업 정도는 진행할수 있었다.
‘동상이 거의 완성되어 가네.’
그리고 그 최소한의 작업은 제2의 북부를 만들 수 있게 해준 드래곤 로드를 기념하는 동상 제작이었다.
후룩.
에탄이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동상이 세워지고 있는 곳을 바라봤다.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지만 에탄은 옷을 두껍게 입지 않았다.
애당초 겨울 산맥의 힘을 다루고 있는 상태이니, 그가 추위를 느낄 리가 만무했다.
“아빠. 동상이 거의 다 완성됐어요.”
그리고 그건 아린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린이도 에탄과 마찬가지로 겨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옷차림이 가벼웠다.
“그러게.”
하지만 에탄은 아린이에게 옷을 따뜻하게 입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아린이가 지금 느끼는 온도가, 자신과 똑같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겨울이라서 그런지 힘이 더 나는거 같아. 아린이는 어떻게 생각하니?”
“저도 그래요. 여름이었을때는 조금 기운이 늘어지는거 같았는데… 눈보라가 몰아치니까 몸에서 힘이 나고 있어요.”
-웅…
아린이가 에탄의 물음에 미소를 지으면서 답했다. 동시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겨울 산맥의 힘을 바깥으로 방출했다. 그러자 혹독한 눈보라가 순식간에 겨울 산맥의 눈들로 뒤바뀌었다.
‘여전히 엄청난 힘이네.’
에탄이 그걸 보고는 감탄을 내뱉었다. 지금 몰아치고 있는 눈보라를 순식간에 자신의 눈보라로 바꿔 내다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린이의 능력은 넋을 놓게 할 정도로 어처구니 없었다.
물론. 좋은 의미였다.
그 정도로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니 말이다.
‘아린이가 이 힘을 좋은곳에 쓰고 있어서 다행이지… 만약 조금이라도 삐뚤어졌다면 아주 큰 참사가 벌어졌겠어.’
아린이의 힘은 무지막지하다.
에탄은 그걸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이 회귀를 하기 전부터 아린이의 힘에 여러모로 감탄을 했었다. 그때 당시에는 아린이가 인간이 아닌 검이었지만 말이다.
‘결국 아린은 없어졌고.’
혹시나 싶어서 회귀를 한 이후에도 겨울 산맥에서 아린을 찾기 위해 움직였었다.
하지만 아린은 발견하지 못햇다.
그러나 에탄은 그걸 아쉬워하지 않았다. 아린이 환생한 시점부터 아린은 사라졌을 거라고 추측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린이 존재했으면… 그게 더 이상했을 수도 있어.’
오히려 없는 편이 낫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에탄이 앞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눈을 멈추게 했어요.”
미친 듯이 휘몰아 치던 눈보라가 순식간에 그친 상태가 됐다. 이 모든게 아린이에 의한 일이었다.
아린이 자신의 힘으로 겨울을 집어 삼키고, 그것을 끝내는 완전히 제어해버린거였다.
자연을 제어하는 경지.
그 경지에 오른 아린이의 모습에 에탄이 묘한 기분을 느꼈다.
‘나보다 더 강하네.’
에탄또한 만만치 않은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린이와 뇽뇽이에 비해서는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아무리 에탄이 날고 긴다고 해도, 전생이 검이었던 아린과 드래곤인 뇽뇽이를 이기는 건 불가능했다.
“아린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니까 아빠 마음이 든든하네.”
하지만 그건 에탄에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에탄에게 있어 중요한건 아린이와 뇽뇽이가 자신의 딸이라는 점이었다.
“저도 아빠가 강해지는 걸 보니까 기분이 좋아요.”
아린이가 에탄의 대답에 입꼬리를 활짝 올렸다.
“앞으로도 계속 대련을 하고 싶은데. 해주실 거죠?”
그리고 에탄을 똘망똘망한 눈동자로 쳐다보면서 뒷말을 이었다.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아린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만졌다.
“언제든지 해 줄 수 있지. 다만 아빠가 죽을 위험에 처하지만 않게 해줘. 알았지?”
“네!”
아린이가 에탄의 대답에 환하게 웃었다. 언제든지 대련을 해준다는 저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탁탁!
“흐음!”
그때. 뇽뇽이가 에탄과 아린이가 있는 쪽으로 눈을 밟으면서 거침없이 다가왔다.
에탄과 아린이가 그걸 발견하고는 동시에 뇽뇽이를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뇽뇽아. 그 불덩어리는 뭐야?”
뇽뇽이가 눈을 녹일 정도로 뜨거운 불을 만들어서 왔기 때문이다.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화염구들이, 바닥에 있는 눈들을 녹게 만들었다.
“추움! 가져옴!”
뇽뇽이가 에탄의 물음에 콧방귀를 끼면서 답했다. 그 후 잘했지? 라는 눈빛으로 에텐과 아린이를 쳐다봤다.
“어어….”
에탄이 뇽뇽이의 물음에 당황했다.
솔직히 말하면 자신들은 지금 추운 상태가 아니다. 혹독한 눈보라가 몰아치기는 하지만, 애당초 에탄과 뇽뇽이의 몸 속에도 겨울 산맥이 있으니까.
“아빠. 여기서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는게 좋을거 같아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하지만 아린이와 에탄은 알고 있었다. 뇽뇽이가 저런 표정을 지었을 때는 장단을 맞춰주는 게 제일 좋다는 걸 말이다.
“그래. 뇽뇽이 덕분에 좀 더 따뜻해진 거 같네!”
“맞아요. 움직이기도 한층 더 편해지고 주변에 있는 눈이 녹아서 신발이 젖지도 않게 됐어요.”
에탄과 아린이가 뇽뇽이를 향해 잇옴을 보이면서 웃었다. 그러면서 뇽뇽이 덕분에 자신들이 한결 편해졌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흐응! 더 크게 할수 있음!”
뇽뇽이가 그 말을 듣고는 힘껏 미소를 지었다.
-웅!
동시에 에탄과 아린이가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몸 안에 있는 마나를 바깥으로 방출 시키고, 자신이 만들어낸 화염구에 그 마나를 계속해서 주입 시켰다.
“어어?”
에탄이 그걸 보고는 당황했다.
설마. 여기서 저 화염 덩어리의 규모를 키울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뇽뇽아 멈춰!”
그래서 다급히 뇽뇽이를 말릴려고 했지만.
쿠쿠쿠쿵!
이미 그때는 늦은 때였다.
뇽뇽이가 신나게 화염구에 마나를 불어 넣자, 작은 횃불 수준이었던 화염구가 순식간에 덩치를 불려 나갔다.
화르륵!
그리고 주변에 있는 눈들을 모조리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 * *
“…타버리는 줄 알았네.”
“뇽뇽이가 중간에 멈춰서 다행이에요.”
에탄과 아린이가 얼굴에 있는 검은 잿가루를 닦아냈다. 그러면서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서 안도했다.
뇽뇽이가 만들어냈던 화염구가 주변을 불태웠다. 그리고 아린이와 에탄이 자칫하면 그 범위에 들어갈 뻔했다.
“우리가 검을 휘둘러서 막아내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동상이 타버렸을거에요.”
하지만 아린이와 에탄은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벗어났다. 바로 뇽뇽이의 화염구를 향해 있는 힘껏 검을 휘두르는 거였다.
물론 단순히 말 그대로 힘을 잔뜩 실어서 휘두른 게 끝은 아니었다.
겨울 산맥의 힘을 옹축 시켜서 화염구에 집중시키는 고도의 작업으로 뜨거운 덩어리를 얼게 만들었다.
“후웅….”
그 결과. 뇽뇽이는 어깨를 축 늘어트린체 속상한 표정을 짓고, 에탄과 아린이의 앞에 반성의 자세를 취하게 됐다.
“잘못했음.”
하마터면 동상과 제2의 북부 전체를 태워 먹을 뻔했다. 뇽뇽이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시무룩한 표정으로 반성을 하고 있었다.
“그래. 이건 주의할 필요가 있어.”
에탄이 그런 뇽뇽이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지간한 일이라면 괜찮다고 하면서 넘길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번 사건은 예외였다.
제2의 북부가 홀라당 타버리면 그걸 복구하는 데도 제법 긴 시간이 걸릴테니 말이다.
“다음부터 그러면 안돼.”
“…알겠음.”
뇽뇽이가 에탄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땅이 꺼져라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자신은 그저 아린이와 에탄을 따뜻하게 해주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결과는 그 이상의 대참사가 날 뻔했으니, 뇽뇽이의 기분이 안 좋을만도 했다.
“그래도… 어쩌다보니 겨울이 금방 사라지게 됐네요.”
그때. 아린이가 에탄과 뇽뇽이를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 후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눈보라가 몰아치던 혹독한 제2의 북부 건설 지역이,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화창한 날씨를 보이고 있었다.
“설마 이걸로 겨울이 끝날줄은 몰랐어요.”
겨울이 끝났다.
아린이와 뇽뇽이 에탄의 힘에 의해서 겨울이 완전히 날아갔다. 지금 북부는 다른 대륙보다 훨씬 빠른 봄을 맞이하게 됐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에탄이 그 사실을 상기하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그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않은 계절 바꿔버리기를 자신들이 해 버렸으니 말이다.
심지어 원래 의도한 목적도 아니니, 에탄이 당황을 할만도 했다.
“흐음!”
그때. 뇽뇽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후 겨울이 물러난 하늘을 보면서 콧방귀를 꼈다.
“뇽뇽이. 강함!”
자신의 화염구가 겨울을 물리쳤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끼는 거였다.
피식.
에탄과 아린이가 그런 뇽뇽이를 보면서 오른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뇽뇽이에게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웅!
이들 앞에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여기 모여있었네?”
그리고 화염의 지배자가 꾀죄죄한 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