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4화
여왕 요정이 에탄을 돕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이 나는 순간, 요정계에 있는 요정들이 여왕 요정의 앞에 모두 모습을 드러냈다.
수백 수천에 달하는 요정들이 한곳에 모이는 순간, 그곳에서 나오는 아름다움과 묘한 느낌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휘황찬란했다.
“우아….”
아린이가 여왕 요정의 부름에 답한 요정들을 보고 넋을 놓았다. 지금까지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은 본 적이 없었기에.
“흐음!”
그리고 그건 뇽뇽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뇽뇽이는 요정들을 향해 두 눈을 반짝이면서 호기심을 잔뜩 표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만히 지켜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뇽뇽이는 아린이와 함께 요정들에게 다가갔다.
“잘 부탁함!”
그리고 요정들에게 씩씩하게 인사를 건넸다.
-어머. 어머. 아린 님과 뇽뇽이 님이군요.
-어쩐지…
-마계를 무찌르느라 고생 많았어요.
그러자 요정들이 아린이와 뇽뇽이를 에워싸고는 한마디씩 입을 열었다. 마치. 오랫동안 기다렸던 연인을 만나듯, 그들은 아린이와 뇽뇽이를 향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냈다.
“요정들이 우호적이군요.”
에탄이 그 모습을 멀리서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여왕 요정이 그런 에탄을 향해 싱긋 웃었다.
“저 아이들 또한 그대와 두 딸이 얼마나 큰일을 해냈는지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배척을 할 이유가 없는 거죠.”
“음….”
“걱정하지 말아요. 요정들이 북부에 간다고 해서 인간들을 배척하지는 않을 거예요. 여왕인 제가 아이들에게 인간을 따뜻하게 대해주라는 명령을 내렸으니까요.”
여왕 요정은 이미 에탄에게 많은 걸 배려해주고 있었다. 거기에는 요정들이 인간을 싫어한다는 점도 봉쇄를 시키는 것도 포함이었다.
“감사합니다.”
에탄이 여왕 요정의 배려에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꺄르륵!
그때. 아린이와 뇽뇽이와 요정들의 웃음소리가 에탄의 귀에 들려왔다. 에탄이 즐겁게 어우러져 놀고 있는 요정과 아린이 뇽뇽이를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이제 출발해보죠.”
그리고 여왕 요정에게 말했다.
인간계로 떠나자고 말이다.
* * *
그렇게 에탄은 여왕 요정과 요정들을 데리고 요정계를 빠져나왔다. 그 후 사람들이 모여있는 북부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진짜 요정이잖아?”
화염의 지배자가 제일 먼저 에탄과 나머지 요정들을 발견하고는 크게 놀랐다. 설마 에탄이 여왕 요정을 정말로 데려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 요정은 인간을 싫어하는 존재였다.
“우리를 해치는 거 아냐?”
그래서 화염의 지배자는 요정들을 보고 내심 걱정했다. 저 요정들이 자신들과 마찰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정들은 순한 존재지만, 한번 전투를 시작하면 상대방을 놓치지 않는 무서운 사냥꾼으로 변모하기까지 하니. 화염의 지배자인 그녀가 경계를 하는 게 충분히 이해가 갔다.
사르륵.
그때. 여왕 요정이 에탄을 지나쳐 화염의 지배자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화염의 지배자에게 기품있게 인사를 건넸다.
“어….”
화염의 지배자가 여왕 요정의 인사에 당황했다. 인간에게 인사를 많이 받아보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요정에게 받아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예. 어. 안녕하세요.”
그래서 그녀는 여왕 요정에게 예의를 갖추어 답했다. 아무리 자신이 마탑주라고 해도, 여왕 요정을 하대했다가는 안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걸 그녀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싱긋.
화염의 지배자의 인사에 여왕 요정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삐그덕 거리면서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 화염의 지배자를 향해 양손을 뻗었다. 그 후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쓸어 만지면서 감탄했다.
“피부가 정말 좋으시군요.”
“예?”
“이렇게 고운 피부를 갖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여왕 요정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화염의 지배자가 두 눈을 끔뻑였다. 그러다가 이내 콧방귀를 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관리 좀 했죠.”
누군가 자신을 칭찬한다는 건 화염의 지배자인 그녀에게도 기쁜 일이었기에. 그녀는 여왕 요정의 칭찬에 금방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렇군요. 혹시 나중에 저한테도 비결을 알려줄 수 있을까요?”
“크흠! 당연하죠!”
화염의 지배자가 여왕 요정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녀는 여왕 요정에게 순식간에 홀라당 넘어가 버렸다.
‘거참 다루기 쉬운 사람이구만.’
에탄이 그걸 보고는 속으로 픽 웃었다. 몇 초 전까지만 해도 경계를 했던 그녀가,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화염의 지배자와 이런저런 대화를 재잘재잘 나누게 됐다.
‘화염의 지배자님뿐만이 아니라….’
하지만 그건 대표적인 그림에 불과했다. 이미 이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요정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살면서 이런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전생 때는 물론이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마계에 쳐들어가 마왕을 죽이는 그 순간까지도 요정이 이렇게 북부에 나와서 인간과 교류를 할 줄은 몰랐다.
그 정도로 요정들은 인간을 멀리해왔으니까.
‘…뭐. 누군가 이런 모습을 본다면 그럼 나는 뭐냐고 따지겠네.’
그러다가 문뜩 한 존재가 떠올랐다.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드래곤 로드였다.
그녀가 있었다면 에탄을 향해 분명 이렇게 말했으리라.
자신은 드래곤인데 왜 자기가 인간이랑 대화하는 건 놀라지 않냐고 말이다.
“….”
에탄은 드래곤 로드의 마지막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마왕이 되려고 하는 존재를 죽이기 위해서 차원을 완전히 분리 시켰었다.
그곳에서는 그 누구도 드래곤 로드를 도와줄 수 없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만 말이다.
‘보고싶구만.’
에탄은 드래곤 로드를 잊지 못했다. 그녀가 있었기에 이 모든 일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를 찾으러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드래곤 로드의 마법을 구현할 정도로 실력 있는 마법사가 대륙에 없으니까.
“아빠. 동상은 어떻게 만들까요?”
그때. 아린이와 뇽뇽이가 에탄을 향해 총총 다가왔다. 그리고 동상에 대해서 물었다.
“으음….”
에탄이 동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어떻게 만들겠다라. 상당히 어려운 질문이었다.
“글쎄.”
그래서 구체적인 대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했다.
“일단 모두와 이야기를 나눠보자. 이건 나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이것으로 인해 북부가 한 번 더 크게 뭉치게 될 거라는 거였다.
* * *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에탄은 다른 이들과 함께 드래곤 로드의 동상을 어떤 식으로 만들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중에서 몇 가지 방법이 에탄의 눈에 들어왔다.
“남부에 있는 특수한 돌을 깎아서 만들면 되겠네요.”
그리고 그것들 중에 추린 끝에, 동상을 만들기 위한 첫 번째 발판인 재료 고르기가 완성됐다.
남부에 있는 특수한 돌.
햇빛이 닿으면 무지갯빛을 내고, 밤에는 별처럼 반짝이는 신기한 돌들이 남부에 있다.
에탄은 그 돌을 이용해 드래곤 로드의 동상을 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남부에 있는 신기한 돌이라… 그걸 구매하는데 꽤 많은 돈이 나가겠군.”
데이른 공작이 그 돌을 구하겠다는 사실에 침을 삼켰다. 남부에서도 그 돌은 상당히 비싼 돌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그건 큰 문제 없어요.”
하지만 그때. 베네시슨이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데이른 공작을 향해 입을 열었다.
“북부의 경제력이라면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을 수준이거든요. 그걸로 어마무시한 동상을 만든다고 해도 걱정 없을 수준이에요.”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제가 북부 경제를 휘어잡으면서 비축한 자금이 어마무시하거든요. 장담하건데 데이른 공작님이 금고에 넣어둔 금들보다 더 많을 거예요.”
“허어.”
데이른 공작이 베네시슨의 대답에 감탄을 내뱉었다. 베네시슨이 저런 말을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는 그 정도로 많은 돈이 베네시슨의 길드에 저장되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놀랍군.”
그래서 데이른 공작은 진심으로 놀람을 표했다. 베네시슨의 말에 불쾌함을 느끼진 않았다.
그녀가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답한다는 것에 오히려 크게 만족했다.
그녀 또한 북부를 위해 일하는 일원 중 한 명이니까.
“그러니까 돌을 구하는 건은 제게 맡기세요. 어차피 제2의 북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많은 재료들을 구해와야 하니까요.”
“알겠습니다.”
베네시슨의 말에 에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직접 움직여 준다는걸 굳이 마다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이 모든 건 제2의 북부를 건설하기 위함이니 말이다.
‘드래곤 로드….’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바로. 드래곤 로드를 다시 이곳으로 불러올 방법이 정말 없는가에 관한 거였다.
그래서 에탄은 화염의 지배자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화염의 지배자님은 한가지 마법을 연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떤 마법?”
“드래곤 로드님을 다시 이곳으로 불러낼 수 있는 차원 이동 마법이요. 어려운 건 알겠지만… 한번 시도라도 해봐 주세요.”
“흐음….”
화염의 지배자가 에탄의 말에 팔짱을 꼈다. 차원을 이동하는 마법을 만들어 달라니. 상당히 허무맹랑한 부탁이었다.
“알겠어.”
하지만 그녀는 에탄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드래곤 로드가 없었다면 이 모든 게 불가능했을 거 라는 걸 그녀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드래곤 로드 구하기와 동상 제작하기가 동시에 진행 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