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5화
황제와의 첫 만남.
에탄은 지금 이 순간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손짓 한방이면 대륙을 움직일 수 있게 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황제와의 첫 만남이라고 말이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에탄이 황제를 향해 오른쪽 무릎을 꿇었다. 예법을 최대한 갖춘 지극히 공손한 자세였다.
하지만 에탄은 이걸 과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당연한 거였다.
눈 앞에 있는 사람은 자신과는 비교도 할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권력을 가진 황제이지 않은가.
‘호위병이 없다.’
하지만 그런 황제를 지키는 자가 지금 이 자리에는 없었다. 에탄은 그 점을 의아하게 여겼다.
황제라면 무조건 호위병과 함께 하고 있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국을 통치하는 이니 그건 당연한 보호라고 생각했다.
한데. 여기에 왜 황제를 지키는 이가 아무도 없을까? 에탄은 그런 의문을 가졌다.
“아. 내가 혼자인 게 이상한가?”
황제가 그런 에탄의 생각을 간파하고는 픽 웃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에탄을 빤히 쳐다보면서 뒷말을 이었다.
“너무 걱정하지는 말게. 나를 지켜주는 게 꼭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니까.”
“그렇군요.”
“게다가 나는 자네를 믿고 데이른 공작과는 예전부터 긴밀한 관계를 가져왔었네. 그러니 호위병을 대동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 자네가 내 목을 칠 리도 없고 말이야.”
“맞는 말씀이십니다.”
에탄이 황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에탄은 황제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그래봤자 자신한테 이득이 되는 게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황제가 죽으면 제국이 큰 혼란에 빠지고, 나아가서는 마물들이 제국을 침공할 수도 있다.
그러니 에탄은 오히려 황제를 보호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이리 와서 앉게. 소파가 푹신하더군.”
그때. 황제가 여전히 오른쪽 무릎을 꿇고 있는 에탄을 향해 자리에 앉기를 권유했다.
에탄이 그런 황제의 권유에 천천히 다리를 피고 일어났다. 그 후 황제의 맞은편 소파에 조심스럽게 착석했다.
“그래. 얼굴을 실제로 보는건 처음이구나.”
황제가 말을 마치고는 에탄을 빤히 바라봤다. 실제로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두 사람이 마주하는 건 처음이었다.
에탄의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서도 말이다.
“예. 폐하.”
그렇기에 에탄 또한 황제를 대하는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전생에도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인물이다.
그런데 이렇게 처음 보게 됐으니 최대한 탐색을 해야만 했다.
황제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움직이는지 말이다.
“북부를 통합했다고 들었다.”
그런 에탄을 향해 황제가 북부 통합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걸로 무엇을 할 생각이지?”
그리고 두 눈을 반짝이면서 에탄에게 물었다. 북부를 통합해서 무엇을 할 거냐고 말이다.
“…마족들을 섬멸할 겁니다.”
에탄이 그런 황제의 물음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진실을 말했다. 그 순간 황제가 놀란 듯이 두 눈을 끔뻑였다.
마족 섬멸이라는 이야기를 에탄이 꺼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없음을 맹세할 수 있나?”
“맹세할 수 있습니다.”
“호오….”
에탄이 황제의 물음에 단호하게 답했다.
우웅.
그 순간 바닥에서 작은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에탄이 그걸 보고는 두 눈을 끔뻑였다.
설마 이런 곳에 마법진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저 마법진은 자신이 인지조차 못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에탄은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마법진을 바라봤다.
“자네의 말은 완벽한 진실이군.”
그런 에탄을 향해 황제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뒷말을 붙였다. 모든 게 진실이라고 말이다.
그 말은 즉.
저 마법진은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를 알아내기 위한 심문 마법진이라는 뜻이니라.
에탄이 그걸 깨닫고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혹시 기분이 상했나?”
“아닙니다. 이 정도는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흐음.”
“다만… 제가 인식 못 할 정도로 정교한 마법진을 방에 설치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것도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말이죠.”
에탄이 말을 끝내고는 마법진을 빤히 바라봤다. 1회용 마법진이었기에 녀석의 힘은 점점 사그라들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에탄이 거짓말을 해도 구별을 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에탄은 굳이 거짓말을 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저걸 통해서 자신의 진심을 황제한테 전하게 됐으니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자네는 확실히 재밌는 인물이야.”
에탄의 말에 황제가 씽긋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앞으로 기울였다.
“마족 섬멸은 꽤 매력적인 일인 거 같은데. 그 일에 제국도 함께 할 수 있나?”
그리고 에탄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던졌다.
“…제국이요?”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자신도 모르게 황제에게 되물었다. 설마 제국의 최고 권력자인 황제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어째서 제국이….”
그도 그럴게.
제국은 북부와는 제법 거리가 멀리 있다. 그렇기에 마족이 침공을 한다고 해도 어지간해서는 손해를 볼 일이 없으리라.
아니, 애당초 그런 걱정을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에탄이 마족 침공으로 북부가 멸망하는 걸 막기 위해 지금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는 거니까.
그 말은 즉 굳이 이런 진흙탕 싸움에 제국이 끼어들 필요가 없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저런. 나를 너무 속물로 보는군.”
이런 에탄의 말에 황제가 슬프다는 듯 입꼬리를 내렸다. 그러면서 에탄을 빤히 쳐다보고는.
“제국이 꼭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지는 않네.”
단호하게 답했다.
“게다가 마물을 자네가 완벽하게 막아낸다는 법은 없지. 만에 하나 북부가 멸망한다면? 그다음은 중부에 있는 제국이 마물들을 막아내야 하네.”
황제의 말에 에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합리적인 말이었다. 북부가 멸망하면 그다음이 제국이건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납득이 완전히 가는 건 아니었다. 제국의 황제가 이런 식으로 결정을 내릴 줄은 몰랐으니까.
“자네를 만나기 전에 데이른 공작과 긴밀하게 대화를 했었네.”
“?”
“데이른 공작이 자네를 많이 칭찬 하더군. 게다가 그의 입에서 놀랍게도 믿을만한 녀석이다 라는 소리까지 나왔네.”
그때. 황제가 에탄을 향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그러니 나 또한 그대를 믿어보겠네.”
그러면서 에탄에게 신뢰 한다는 말을 하고는.
탁.
“받게.”
“?”
“내 이름이 담겨있는 신분증이네. 그걸 이용한다면 적어도 제국 내에서는 자유롭게 활동을 할 수 있을 거야. 어지간한 일에는 말이지.”
에탄에게 자신의 이름이 담겨있는 패를 내주었다. 사실상 황제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를 내어준 셈이었다.
“폐하….”
에탄이 그런 황제의 호의에 두 눈을 끔뻑였다. 그러면서 그가 내민 패를 소중하게 챙기면서.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 * *
그렇게 에탄은 황제와의 독대를 끝내고 데이른 공작 자택 뒤쪽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정확히는 뒤쪽에 있는 정원이었다.
“흐음. 이야기는 잘 끝낸 모양이군?”
그런 에탄의 얼굴을 보고 데이른 공작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에탄의 올라가 있는 입꼬리가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제와의 이야기를 아주 잘 끝냈다고 말이다.
“예. 덕분에 예상치 못한 이득을 봤습니다.”
에탄이 그런 데아른 공작을 향해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자신이 황제에게 무엇을 얻었는지 보여줬다.
황제의 이름이 각인되어 있는 황금패. 그게 에탄의 품속에서 드러났다.
“호오….”
데이른 공작이 그걸 보고는 감탄을 내뱉었다. 그 또한 황제의 이름이 적혀있는 저 패가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걸로 무엇을 할 셈인가?”
그래서 궁금했다.
에탄이 저걸 이용해서 어떤 행동을 취할지 말이다.
“일단 제국에서 실력 있는 자들을 모집할 겁니다.”
“모집이라.”
“그리고 마족을 무찌르는 데 가담하게 해야죠. 다만 그들에게도 합당한 보상을 줄 겁니다. 가령 예를 들자면 돈이 있겠네요.”
“원래 같으면 불가능한 일이겠지. 제국의 인력을 북부의 일에 쓰는 건 말이야.”
“하지만 패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게다가 황제 폐하께서도 그렇게 하라는 허락을 해주셨습니다. 굳이 패를 쓸 필요도 없을 겁니다.”
“하하!”
에탄의 말에 데이른 공작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벌써 허락을 맡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크게 놀라지도 않았다. 에탄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는걸 데이른 공작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굉장하군.”
하지만 에탄의 행동력은 여전히 데이른 공작을 놀랍게 하는 힘이 있었다.
“언제 그 작업에 착수할 거지?”
“일주일 뒤에 시작할 겁니다. 제가 직접 움직일 건 아니고… 제국에 있는 인력을 활용할 생각입니다.”
“인력?”
“예.”
에탄의 말에 데이른 공작이 두 눈을 끔뻑였다. 인력이라면 누구를 말하는 건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둘째 형이요.”
에탄이 그런 데이른 공작을 향해 자신이 누굴 이용할 건지 알려줬다.
칼라사르 가문의 종잡을 수 없는 인물 중 한 명인 둘째 형이라고.
* * *
칼라사르 가문의 둘째.
그는 대륙을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일들을 해냈다.
게중에는 제법 험악한 일도 있었고, 그가 하기에는 하품이 날 정도로 지루한 업무도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에탄.”
에탄이 그런 둘째 형을 향해 발걸음을 움직였다. 찾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이 시기에 둘째 형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유적을 파헤치시고 계시는군요.”
“흐음.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정답이니까 맞다고는 해줄게.”
에탄의 말에 둘째 형이 순순히 긍정했다. 그러면서 두 눈을 반짝였다. 에탄이 입고 있는 아서왕의 갑옷에 눈길을 주는 거였다.
“무사히 성공한 모양이구나.”
“예. 덕분에 재미 좀 봤습니다.”
“호오….”
에탄의 대답에 둘째 형이 두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무어라 말하려는 찰나.
“저랑 거래하시죠.”
에탄이 먼저 그에게 한 가지 제안을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