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9화
그렇게 데이른 공작의 이름으로 개최된 대연회가 무사히 마무리됐다. 이들은 다음날 마차를 타고 각자의 가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약 일주일이 지났을 때 북부에 있는 모든 가문과 귀족들이 통합에 찬성을 한다는 서명을 보내왔다.
데이른 공작의 앞으로 말이다.
“내 생에 북부인들이 이렇게 빨리 움직이는 경우는 처음 보는구만.”
데이른 공작이 수북히 쌓인 서명 편지지를 보고는 감탄을 내뱉었다. 지금까지 일 처리를 하면서 이 정도로 빠른 소식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특히. 자신들의 권력과 관계되어 있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그만큼 얻는 이득이 크다는 거겠죠.”
에탄이 데이른 공작의 앞에 수북히 쌓인 서명지를 집어 올렸다. 그 후 그것들을 천천히 살펴보면서 뒷말을 이었다.
“일단 자기들의 돈이 안 들어가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이득입니다.”
이 모든 시설 투자의 재산은 온전히 에탄과 칼라사르 가문의 돈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칼라사르 가문에서 가져온 모리헤움 교단의 재물이라고 하는 게 맞으리라.
“거기에 북부 통합에 반대를 하면 소외될 겁니다. 통합에 찬성하는 이들에게 말이죠.”
“그리고 시설 이용도 못 하니까 뒤처지겠지.”
“예. 그런 점에서 이들은 통합에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안 하면 바보 취급을 들을 정도로 큰 이득이 있으니까요.”
에탄의 말에 데이른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게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런 점 때문에 북부 통합이 가능했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었다.
“정말 무섭군.”
그래서 데이른 공작은 에탄에게 다시 한번 감탄했다. 이 모든 전략이 에탄의 머릿속에서 나온 거니 말이다.
“그런데… 이 시설을 건축할 인원들은 어디서 구할 것인가?”
하지만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이 막대한 북부의 시설을 건설할 인력이었다.
“그것도 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에탄은 이것까지 미리 생각을 해둔 상황이었다.
“그거 아십니까? 마법사들은 건설을 할 때도 고급 인력으로 들어갑니다. 그들이 가진 힘이라면 무거운 기둥은 물론이고 돌과 벽돌도 한 번에 옮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해답은.
“그래서 저는 화염의 지배자님을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화염의 지배자에게 있었다.
“…그 녀석이 허락을 할까? 라는 의문이 머릿속에 드는데.”
데이른 공작이 그 말을 듣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화염의 지배자가 그것을 허락할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씨익.
“다 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에탄의 머릿속에는 이미 어떻게 하면 인력을 얻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묘수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 * *
“…그래서 나를 찾아왔다고.”
“예.”
“우리 애들을 건설 인력으로 쓰기 위해서.”
“정확히 이해하셨습니다.”
“하.”
화염의 지배자가 에탄의 말에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생각은 도대체 어떻게 하면 가능한 거냐?”
그리고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에탄을 쳐다봤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상인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발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탑주에게 찾아와서 마법사들을 인력으로 쓰겠다니.
당장 마법에 몸이 갈가리 찢어져도 할 말이 없으리라.
“흐음. 그래서 거절하시겠다는 겁니까?”
“당연하지!”
에탄의 물음에 화염의 지배자가 단호하게 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마탑에 있는 녀석들을 인력으로 내보내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그렇군요.”
에탄이 그런 그녀의 대답을 듣고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린아. 뇽뇽아 들어와.”
그리고 그녀의 방 바깥에 있는 아린이와 뇽뇽이의 이름을 불렀다.
끼익.
그러자 아린이와 뇽뇽이가 기다렸다는 듯 화염의 지배자가 있는 방 안으로 들어왔다.
“화염의 지배자님….”
“안 도와줌?”
그리고 화염의 지배자를 향해 한마디씩 입을 열었다.
“에탄. 이 이 자식!”
화염의 지배자가 갑작스러운 두 사람의 등장에 입술을 깨물었다. 설마 이런 식으로 아린이와 뇽뇽이를 활용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그러나 화염의 지배자는 여기서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마탑주의 입장에서 마법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건 생각보다 복잡한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말한다고 해서 들어먹을 자식들이 아니라고. 만약 그랬다면 진작에 내가 부려 먹었겠지!”
그래서 화염의 지배자는 자신을 애처롭게 쳐다보는 아린이와 뇽뇽이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러지 않으면 양심이 무너져 내릴 거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염의 지배자님이라면 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는데요.”
“믿고 있었음!”
그런 화염의 지배자를 향해 아린이와 뇽뇽이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터벅. 터벅.
척!
그리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화염의 지배자를 향해 거침없이 다가가고는, 그녀의 얼굴을 향해 고개를 들이밀었다.
지이잉.
그리고 아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아니….”
화염의 지배자가 그런 두 사람을 보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에탄 혼자서 이 제안을 건넸다면 모를까.
아린이와 뇽뇽이가 함께 하고있는 이 상황에서 냉정하게 아니리고 답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저 두 사람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륵 흐를 거 같았으니까.
‘게다가 뇽뇽이는 내 제자야.’
거기에 뇽뇽이는 화염의 지배자와 함께 마법으로 대련을 해줄 수 있는 몇 없는 상대다.
그런 뇽뇽이가 삐져서 대련을 같이 안 해주기라도 한다면?
그녀는 땅을 치면서 후회할 게 분명했다.
“후우. 알겠어.”
그래서 화염의 지배자는 결국 두 손을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아린이와 뇽뇽이의 무지막지한 기대감을 꺾어버리지 않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거기에는 정당한 대가가 따라야 할 거야.”
“물론입니다. 보수는 섭섭하지 않게 지급하겠습니다.”
“흥!”
화염의 지배자가 에탄의 말에 콧방귀를 꼈다. 보수가 문제가 아니다.
마법사들은 돈에 의해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기는 했다.
“오랜만에 폭군 소리 좀 듣겠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압도적인 힘.
그걸 이용한다면 마탑에 있는 마법사들을 움직일 수 있으리라.
물론 잡음이 많이 생기기는 하겠지만, 아린이와 뇽뇽이에게 미움을 받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여겼다.
* * *
그렇게 에탄은 화염의 지배자와 극적으로 마법사를 고용하는 협상을 끝마쳤다.
그리고 약 일주일이 더 지났을 때부터 본격적인 북부 통합 대 시설 건설을 시작했다.
까앙! 깡!
곳곳에서 돌을 부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기에 나무를 자르고 땅을 파헤치는 작업까지 동시에 이루어졌다.
화염의 지배자가 보내온 마법사들부터 시작해서, 에탄과 데이른 공작과 나머지 이들이 구해온 인력들까지.
모두가 넓은 들판에 구멍을 내고 기둥을 세우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보기만 해도 아찔하구만.”
데이른 공작이 그 공사 현장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척 봐도 수백 명이 움직이고 있다.
북부에서 이렇게 큰 움직임을 보게 될 줄을 몰랐다.
“늘 척박한 땅이라 불리던 곳이었는데.”
데이른 공작이 알고 있는 북부는 딱히 활기가 돋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추위 때문에 늘 먹고 살기 바빠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던 곳이었다.
하나. 에탄이 이렇게 행동을 하면서 북부를 변화시키고 있으니.
“공작은 내가 아니라 네 녀석이 해야 하는 게 맞을 거 같구만.”
데이른 공작은 에탄이 공작위에 올랐으면 하는 마음을 가졌다.
“싫습니다.”
“음?”
“공작위에 오르면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대로가 좋습니다. 차라리 아버지를 공작의 자리에 앉히고 싶네요. 서류 업무를 잘 처리하시니까요.”
“…….”
하지만 에탄은 그런 데이른 공작의 말에 단호하게 답했다. 자신은 공작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그래봤자 돌아오는 이득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아린이와 뇽뇽이 놀아주기도 바쁩니다.”
게다가 에탄에게는 검술 천재 아린이와 마법 천재 뇽뇽이가 있으니.
두 사람의 육아를 담당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상당히 부족했다.
심지어 그 육아마저도 평범하지 않기에, 한번 놀아줄 때마다 체력 소모가 배로 들고 있었다.
“으음… 그렇구만.”
데이른 공작도 그 사실을 알기에 에탄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작에 앉히고 싶다고 했던 자신의 발언을 후회했다.
“그런 의미에서 데이른 공작님이 저를 좀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시간도 널널하니 아린이와 뇽뇽이도 아침 점심으로 놀아주세요. 물론 그 대부분이 대련이겠지만 말이죠.”
이어지는 에탄의 말 덕분에 자신의 일거리가 배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걸 통해 데이른 공작은 깨달았다.
에탄의 앞에서는 무엇을 말하든 세 번 이상 생각해야 한다는 걸.
그러지 않으면 이렇게 된통 당해버리니 말이다.
“아침 점심으로 대련이라. 제법 힘들겠구만.”
심지어 아린이와 뇽뇽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빠른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두 녀석을 한 번에 상대하는 건 데이른 공작에게도 제법 땀이 흐르는 일이었다.
“운동시켜드리는 겁니다.”
에탄이 그런 데이른 공작을 향해 싱긋 미소를 지으면서 답했다.
맨날 업무를 하느라 서류 더미에 묻혀 있는 그였다.
이런 식으로라도 일을 만들어 주지 않으면 파엘의 손에 붙잡혀서 무지막지한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운명이다.
“음.”
데이른 공작도 그 사실을 알기에 에탄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실제로 서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보다는 대검을 휘두르는 게 그의 취향이기도 하고 말이다.
“알겠다.”
그래서 데이른 공작은 에탄의 말에 픽 웃으면서 답했다.
“그러면… 나는 놀이를 해주러 가야겠군.”
그리고 아린이와 뇽뇽이를 찾아 나서기 위해 자리를 떴다.
에탄이 그런 데이른 공작을 향해 작게 고개를 꾸벅였다.
그 후 앞쪽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북부 통합이라….’
자신이 해내고 있는 일에 대해서 감회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