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8화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금방 흘렀다.
그리고 이주 째가 되는 날 데이른 공작의 영지에 수많은 귀족들이 모여들었다.
“다들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줘서 고맙군.”
연회가 아닌 대회의를 위한 모임이었기에 파티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연회장은 음악이 흐르지 않았다. 그리고 춤을 출 수 있는 공간에는 책상과 의자가 잔뜩 들여져 있었다.
“마음같으면 여독을 풀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럴수 없다고 판단을 했네.”
데이른 공작이 그런 의자에 앉은 이들을 향해 덤덤하게 뒷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데이른 공작의 말에 무례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들 또한 데이른 공작이 어떤 목적으로 자신을 불렀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북부를 하나로 통합시키고 싶다.”
데이른 공작이 연회장에 모인 이들을 쳐다보면서 단결하게 입을 열었다.
“그 이유는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서가 아니다. 다가오는 마족에 맞서 싸우기 위해 꼭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북부 대 통합을 원하는 것이다.”
북부 대통합.
그 말에 연회장에 있는 모든 이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깃들었다. 개중에는 데이른 공작을 앞에 두고 옆 사람과 수군수군 이야기를 나누기까지 했다.
“북부 대통합이라니요.”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하십니까?”
“아무리 공작님이라고 해도 그건 무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심지어 데이른 공작의 말에 반발하는 이들도 있었다. 당연한 거였다. 이들은 각각의 이익을 중요시 하는 자들이니까.
가문을 성장시키고 북부를 집어삼키려는 경쟁자와도 같다.
그러니 북부 대통합에 많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흐음.”
데이른 공작이 그런 이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아무런 감정도 깃들지 않은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봤다.
그러자 손을 들고 한마디씩 입을 열던 자들이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그러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이럴 때는 정말 공작답네.’
에탄이 그걸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공작의 자리는 확실히 무거운 자리인 걸 새삼 느꼈다.
저 많은 인원을 통솔하고 압박하고 지배하는 건 절대 쉽지 않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실력까지 갖추고 있어야 하니… 나는 시켜도 안 할 자리다.’
공작의 자리.
확실히 탐나는 이름이기는 하지만 에탄은 그 이름을 넘겨받고 싶지 않았다.
거기에 따르는 책임이 너무 막중한걸 알고 있으니까.
“가능한 일이냐고 물었는가.”
그때. 데이른 공작이 조용해진 회의실의 적막을 깨트렸다.
“이걸 하지 않으면 모두가 죽는다.”
그리고 모두에게 단언했다.
이 북부 대통합을 이루지 못하면 전부 죽을 거라고 말이다.
“돈과 명예는 물론이고 그대들의 가문도 남지 않을 것이다.”
데이른 공작의 거침없는 언행에 연회장에 있는 이들이 침을 삼켰다. 저 이글거리는 눈빛이 절대 이게 장난이 아니라는 걸 잘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들은 마족과 싸워본 적이 있는가.”
데이른 공작이 말을 마치고는 이들의 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쉽게 답을 할 수 없었다. 마족을 상대해본 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데이른 공작의 뒤에 서 있는 에탄과 베르사르 가문의 일원, 그리고 파엘과 화염의 지배자와 나머지 이들을 제외하면 말이다.
“우리는 싸워봤다.”
데이른 공작이 조용한 이들을 향해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 후 뒤에 있는 에탄과 눈을 마주쳤다.
“그 어떤 전장보다 더 치열했다.”
그리고 에탄을 쳐다보면서 뒷말을 이었다. 무수히 많은 마족들을 함께 처리한, 아니 어찌 보면 자신보다 더 고생을 해 온 에탄을 보면서 말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할 거라는 걸.”
데이른 공작의 말에 연회장에 있는 이들이 침을 삼켰다.
“그래서 북부 대통합을 시도하려는 거다. 물론 그대들에게 희생을 강요하지는 않을 거다.”
데이른 공작이 말을 끝내고는 에탄을 쳐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탁.
그러자 뒤에 서 있던 에탄이 데이른 공작을 지나쳐 앞으로 나왔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에탄에게 집중됐다.
하지만 그중에 누구도 에탄이 나온 것에 의아함을 가지지 않았다.
그가 어떤 행동들을 해냈는지는 이미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북부 대통합에 대한 계획에 대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에탄이 그런 이들을 향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망나니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기품있으면서 힘 있는 목소리였다.
“…이상입니다.”
북부 대통합을 위한 계획 설명은 약 한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그동안 에탄은 북부인들에 여러 가지 질문 공세를 혼자서 받아냈다.
“더 궁금하신 점은 없습니까?”
그리고 끝내는 연회장에 있는 모든 이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정말 우리는 아무것도 안해도 되는건가?”
“가만히 있기만 해도 된다니….”
회의장에 있는 이들의 얼굴에는 어느덧 놀라움이 깃들었다. 정말 자신들은 이름을 넘기면 끝나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가문에서 무언가를 내놓을 이유도 없었다. 에탄이 모리헤움 교단에서 가져온 막대한 재산을 북부 통합에 쏟아 부으면 해결 되는 문제였으니까.
“예. 가만히 있으시면 됩니다. 다만 이제는 하나의 북부인이라는 걸 기억하셔야 합니다.”
에탄이 그런 이들을 향해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각자의 앞에 있는 서명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찬성하시는 분은 앞에 있는 서명서에 이름을 적어주시면 됩니다.”
“만약 거절하면?”
“그래도 불이익은 없습니다. 다만 북부를 통합하면서 만들어지는 시설을 이용하기는 힘들수도 있습니다.”
“으음….”
에탄의 말에 나머지 이들이 침을 삼켰다. 북부가 통합되면서 세워지는 여러 시설은 이들에게 있어 엄청난 곳이나 마찬가지였다.
한데. 그곳을 이용하지 못한다면 다른 가문에게 뒤처질 게 분명했으니.
스슥.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모두가 자연스럽게 서명을 해나갔다. 데이른 공작과 나머지 이들이 그걸 보고는 침을 삼켰다.
그리고 에탄은.
씨익.
자신의 계획이 차근차근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에 미소를 힘껏 지었다.
* * *
그렇게 북부 대통합을 위한 회의가 끝나고, 남은 귀족들은 모두 작은 연회를 즐기기로 했다. 데이른 공작이 먼 거리에서 온 이들을 위해서 연회를 마련한 거였다.
“모두가 즐거워 보이는군요.”
에탄이 위층에서 연회장을 내려다봤다. 그러면서 하하호호 웃고 있는 저들의 모습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연회장에는 아린이와 뇽뇽이도 함께 하고 있었다. 다른 북부 가문의 아이들과 노는 모습이 제법 보기 좋았다.
“왜 같이 즐기지 않는 거야?”
그런 에탄을 향해 화염의 지배자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리고 에탄에게 연회에 참석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물었다.
“아까 말을 하느라 체력을 전부 소모해서요. 지금은 조용히 쉬고 싶네요.”
에탄이 그런 화염의 지배자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나머지 사람들은요?”
그리고 데이른 공작과 그 외의 인원들은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
“연회에 참석하고 있어. 정확히 말하면 그중에서도 영향력이 제법 있는 자들을 따로 부른 거 같아.”
“그렇군요.”
“함께 가지 않아도 상관 없는 거야?”
“제가 없다고 해서 무슨 사고가 생기지는 않을 겁니다. 데이른 공작님도 다른 사람들도 전부 똑똑하니까요.”
에탄의 말에 화염의 지배자가 픽 웃었다. 하지만 반박하지는 않았다. 에탄의 말이 제법 맞기는 했으니까.
“이제 많은 게 바뀌겠네.”
화염의 지배자가 에탄을 따라 연회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까지는 각각 다른 가문의 일원으로 살아왔던 이들이다.
하지만 북부 대통합을 시작한 이후부터는 모두가 한 식구가 될 게 분명했다.
“제국에서 이걸 허락할지 모르겠어.”
하지만 거기에는 수많은 난관이 있을 게 분명했다. 그중에는 중부의 지배자인 황제도 있었다.
“마족이 날뛰고 있는 걸 알고 있으니 막지는 않을 겁니다. 만약 그럴 의도였다면 모리헤움 교단의 재산도 가지고 나오지 못하도록 조치했을 거고요.”
“흐음.”
화염의 지배자가 에탄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황제라면 그럴 게 분명했다.
북부를 견제할 의도였다면 말이다.
“마족 섬멸이라….”
마족을 죽인다.
그 목적만을 가지고 북부는 하나로 뭉치게 됐다.
누구도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일이 에탄에 의해서 실현됐다.
“네가 마탑주를 했다면 마법계에 엄청난 파장이 일어났겠어.”
그래서 화염의 지배자는 지금 이 순간 에탄을 아주 높게 평가했다. 비록 마법에 한해서는 자신이 우월한 상태지만, 그 외적인 것들은 에탄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과찬입니다.”
에탄이 그런 화염의 지배자의 말에 고개를 꾸벅였다. 그 후 연회장에 있는 아린이와 뇽뇽이를 가만히 쳐다봤다.
꺄르르 웃으면서 돌아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제법 보기 좋았다.
“저는 어디까지나 제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움직일 뿐입니다.”
에탄의 목적은 늘 변함 없었다.
다가오는 북부의 멸망을 막는 것.
그것만 제대로 완수한다면 자신이 죽어도 여한은 없을 거라고 에탄은 확신했다.
“그래. 그렇겠지.”
화염의 지배자가 그런 에탄의 어깨에 오른손을 올렸다.
“하지만 목숨마저 바치려고 하지는 마.”
그러면서 단호하게 뒷말을 붙였다. 마치. 에탄의 마음을 꿰뚫어 본 듯이 말이다.
에탄이 그런 그녀의 말에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덤덤히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알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전생과는 다르게 지금은 자신의 목숨을 걱정해주는 이들이 몇십 배로 늘어났다는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