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7화
북부 통합을 위한 대회의.
데이른 공작은 그 회의를 열기로 다짐했다.
“그래서 너희들을 이 자리에 불렀다.”
데이른 공작의 알현실.
이곳에 북부에 있는 중요 인원들이 모였다. 정확히 말하며 데이른 공작과 함께 모리헤움 교단에 함께 들어갔던 이들이었다.
데이른 공작의 요새를 지키는 파엘부터 시작해서 화염의 지배자까지.
그때 그 인원들이 다시 한번 회의실에 모였다. 다만 이번에는 베르사르 가문의 가주와 칼라사르 가문의 가주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회의 말입니까?”
데이른 공작의 말에 가주 지오반이 반문했다. 북부 대회의라니. 그는 이번 자리에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래. 북부 대통합을 위한 대회의다.”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에탄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였다.
여러 갈래로 분열되어있는 북부를 통합한다니. 너무나 허무맹랑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으음….”
파엘이 데이른 공작의 대답에 침을 삼켰다.
“조금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데이른 공작에게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았다.
“북부 대통합을 하는 건 절대 쉽지 않을겁니다.”
“어째서 그리 생각하는 거냐?”
“북부는 하나로 뭉친 적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호오.”
파엘의 말에 데이른 공작이 턱을 쓸어 만졌다. 하나로 뭉친 적이 없다. 확실히 그랬다.
북부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뭉쳐서 움직인 적이 없다.
마족이 나타난 지금이 가장 많이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그러면 지금 이 현장은 무엇이냐?”
데이른 공작이 파엘의 말을 듣고 주변을 둘러봤다. 마탑의 지배자부터 시작해서 북부에 있는 두 가문까지 나름대로 중요한 자들이 모였다.
“이들은 북부인이 아니냐?”
데이른 공작의 물음에 파엘이 침을 삼켰다.
“맞습니다.”
그리고 질문에 덤덤한 목소리로 답했다.
“하지만 저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리고 단호하게 뒷말을 붙였다.
“북부에는 아직 수많은 귀족들과 가문이 있습니다. 그들 모두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눈에 띄는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상징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
파엘은 그렇게 데이른 공작에게 말했다.
“음.”
데이른 공작이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오른편에 있는 에탄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그리고 에탄에 의견을 물었다.
“파엘 님의 말이 정확한 거 같습니다.”
에탄이 데이른 공작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에탄이 생각하기에도 좋은 지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조금은 실망스럽기도 합니다.”
“음?”
“저희가 이런 문제도 모를 거라 생각하시는 거 아닙니까? 데이른 공작님은 몰라도 저는 아닌데 말이죠.”
“…….”
에탄의 말에 데이른 공작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저 말에 무어라 반응할지 감이 안 잡혔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에탄이 그런 데이른 공작을 쳐다보면서 픽 웃고는 파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쓰윽.
그리고 자신의 품속에서 여러장의 종이를 꺼냈다.
“북부를 통합하는데 필요한 요소들이라 생각해서 적은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 요소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들어가는 자금이고요. 한 번씩 살펴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에탄의 말에 다른 이들이 종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안에 적혀 있는 내용들을 훑어보는 순간.
“아니….”
“이 정도 규모가….”
“정말 가능한 일인가?”
이들의 눈에 놀라움이 깃들었다.
에탄이 건넨 종이에 있는 목록들이 하나같이 어마무시했기 때문이다.
북부를 지키는 대요새부터 시작해서, 모든 대장장이들이 보이는 북부 무기고까지.
하나같이 입이 쩍 벌어질 만큼 엄청난 시설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에탄이 건넨 종이에 말이다.
“모리헤움 교단에서 얻어온 비밀 재산들로 전부 건설 가능합니다. 혹시 몰라서 한 번 더 면밀히 검토해봤지만 결과는 충분하다고 나왔습니다.”
에탄이 자신을 쳐다보는 이들을 향해 미리 준비했던 말들을 술술 이어 나갔다.
“여러분들이 먼저 동의를 해 주신다면 그걸 가지고 다른 북부 가문과 귀족들에게도 서명서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흐음….”
에탄의 말에 지오반이 턱을 쓸어 만졌다. 그리고 냉철하게 종이를 다시 한번 살펴봤다.
하지만 거기서 이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확실히 지금 가지고 있는 모리헤움 교단의 재산으로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럼 우리한테 남는 게 없을 텐데. 그건 괜찮은 것이냐?”
하지만 이렇게 진행을 할 경우 에탄과 칼라사르 가문의 개인 이득은 포기해야만 했다.
“상관 없습니다.”
하나. 에탄은 그걸 아까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편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이런 일을 진행하면서 개인적인 이득을 챙기면 그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서명만 해주시면 됩니다. 저를 믿고… 아니. 정확히는 데이른 공작님을 믿고 말이죠.”
“나를 말이냐?”
“예. 저를 믿으라고 해봤자 별로 신뢰가 안 갈 테니까요. 다른 북부인들에게 저는 아직 망나니입니다.”
“흐음. 딱히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은데….”
데이른 공작이 에탄의 말에 두 눈을 끔뻑였다. 마지막 말은 부정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도 공감.”
“크흠… 저도….”
화염의 지배자와 파엘이 그런 데이른 공작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찌릿.
에탄이 그런 이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면서 세 사람을 쳐다봤다.
“넘어가겠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그동안 망나니처럼 행동해오기는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서명을 해주시면 하는데. 이에 대해서 반대하시는 분 있습니까?”
에탄이 나머지 이들을 쳐다보면서 다시 한번 그들의 의사를 물었다.
“난 해줄게.”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자 화염의 지배자와 파엘이 제일 먼저 서명서에 자신들의 이름을 적어 내렸다.
“나도 해주겠다.”
그리고 지오반이 뒤따라 서명서에 이름을 적었다. 그러자 남은 이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베르사르 가문의 가주 베이른에게 집중됐다.
“으음.”
베이른이 눈앞에 있는 서명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제 나만 남았군.”
그리고 서명을 안 한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에탄이 그런 베이른을 향해 고개를 살짝 꾸벅였다. 칼라사르 가문과 마탑의 지배자, 거기에 데이른 공작의 힘이 실렸다.
여기에 북부에 있는 가문인 베르사르 가문까지 합세를 한다면 북부 통합을 위한 일이 훨씬 수월해질 게 분명했다.
“흐으음.”
베이른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팔짱을 낀 채 서명서를 유심히 바라봤다. 자신이 이것에 이름을 적어도 되는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거였다.
“좋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렀을 때.
베이른이 팔짱을 풀고는 서명서를 향해 손을 뻗었다.
쓱.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서명서에 적고는 에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대를 믿기에 내 이름을 내주겠다.”
그리고 에탄을 믿는다는 뒷말을 붙였다.
씨익.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활짝 입꼬리를 올렸다. 동시에 베이른을 쳐다보면서.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믿음이 배신당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 * *
그렇게 북부 대 통합을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이 무사히 뛰어졌다.
에탄은 모두의 이름이 적힌 서명서를 들고 칼라사르 가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른 북부 가문과 귀족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는 편지지를 붙였다.
북부 대통합을 위한 회의를 개최 할테니 데이른 공작가로 오라는 내용의 편지지를 말이다.
“정말 일이 진행되고 있구나.”
데이른 공작이 그 편지지를 살펴보고는 감탄을 내뱉었다. 감히 자신조차 시도할 생각을 못 했던 것을 에탄이 해내고 있으니 놀랄 만도 했다.
“이제 시작입니다.”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데이른 공작을 향해 덤덤하게 답했다. 동시에 편지지에 있는 내용들을 다시 한번 살펴봤다.
일주일 뒤 북부 대통합을 위한 회의를 열 테니 모두 참석하라는 내용의 편지지를 말이다.
“여기에 참석하지 않는 자들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데이른 공작의 이름으로 참석을 하라고 했으니, 어지간한 가문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이곳에 오리라.
하지만 에탄은 이들 중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자들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모든 북부인이 통합을 원하는 건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을 벌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 에탄은 그들을 표적으로 삼을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한다면 강압적으로 이들을 끌어갈 수는 있겠지만, 딱 거기까지인 통합뿐이니 말이다.
“흐음. 어려운 싸움이 되겠어.”
데이른 공작이 에탄의 말에 씩 웃었다. 힘을 다루는 일이라면 자신 혼자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을 얻어야 하는 일은 대검을 휘둘러서 되는 게 아니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들어가는 일이니 데이른 공작은 에탄이 얼마나 어려운 걸 해내려고 하는지 새삼 느꼈다.
“이번 일이 잘 끝난다면 자네에게 뭐라도 하나 돌아갈 수 있게 해주겠네. 개인적인 격려로 말이지.”
그래서 데이른 공작은 에탄에게 보상을 약속했다. 데이른 공작 개인이 주는 보상으로 말이다.
씨익.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데이른 공작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저런 말을 내뱉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에.
“기대하겠습니다.”
그 보상을 기대한다고 답했다.
동시에 손에 들고 있는 각 가문과 귀족들에게 전해진 편지지를 다시 책상에 내려놓고는.
“일주일. 그 안에 여러 가지 준비를 해야겠군요.”
창문 너머에 있는 북부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다짐했다.
반드시 흩어져 있는 북부를 하나로 통합하고 마계에 있는 마족들을 처단하겠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