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2화
모리헤움 교단의 제일 아래쪽에 있는 지하 깊은 곳. 그곳에 이름 없는 여인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새로 오신 사제님들의 숫자가 제법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여인의 옆에는 검은색 후드를 뒤집어 쓴 젊은 사제가 한 명 서 있었다.
“제물로 바치기에 충분한가?”
여인이 젊은 사제의 말에 눈썹을 까딱거리면서 말했다. 모두의 앞에서 보여줬던 신성력 넘치던 모습은 온 데 간 데 보이지 않고, 지금은 그저 탐욕스러운 눈빛을 가진 한 마리의 뱀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피를 최대한 많이 흘려주면 좋겠는데.”
거기에다가 듣는 이의 귀를 섬뜩하게 할만한 발언까지. 어딜 봐도 교단을 위해 일하는 여인의 모습이 아니었지만.
“예. 아무래도 충분할거 같습니다.”
남자는 전혀 개의치 않아했다.
그 또한 여인이 만들어낸 수하중 하나였으니까.
“흐음… 그래. 그렇단 말이지.”
여인이 남자의 대답에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가.
그러니 결과가 흡족하게 나와야 하는 게 당연했다. 적어도 이름 모를 여인인 그녀의 입장에서는 그러했다.
“그런데 말이야. 몇몇 잔챙이들이 숨어든 거 같은데.”
탁.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녀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어서 몸 안에서 마기를 뿜어냈다.
그러자 허공에 검은 안개들이 모여들고는.
“이놈들.”
에탄과 그를 따라 이곳으로 온 나머지 사람들의 얼굴이 안개 속에 나타났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제 아무리 교단을 집어삼킨 마족이라고 해도, 에탄과 이들의 정체까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이들이 왕국에서 신분을 철저히 세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몸 안에 있는 힘들까지 최대한으로 숨기고 있으니.
“적당한 애들 몇몇 보내서 제거해.”
이름 모를 여인은 에탄과 이들에게 큰 경계심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간단히 죽일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에탄과 이들의 힘이 척 보기에 강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녀의 눈에는 그리 보였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만든 수하 또한 그리 생각했기에 별다른 의견을 붙이지 않았다.
-우웅!
대신 마기를 이용해서 다른 이들에게 전언을 넣었다. 에탄과 다른 이들을 죽이라고 말이다.
“시기는 언제쯤으로 하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전언을 보내면서 놈은 이름 없는 여인에게 한 가지를 질문했다.
“흐음….”
여인이 그 말을 듣고는 턱을 쓸어 만졌다. 그리고 덤덤한 눈빛으로 검은 안갯속에 있는 에탄과 다른 이들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오늘 밤.”
이들이 죽을 시간을 선고했다.
* * *
야심한 밤.
보름달이 뜬 새벽.
“사제님. 마음이 좀 허해서 그런데 아이들과 함께 바깥 산책 좀 하고 와도 되겠습니까?”
에탄은 복도를 지키는 사제에게 정중한 말투로 한 가지를 부탁했다.
자신과 두 딸이 바깥을 돌아다닐 수 있게 해달라는 거였다.
쉽게 말해서 밤 산책을 할 건데 눈을 감아달라는 뜻이다.
“으음….”
사제가 에탄의 말에 곤란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원래 이 시간에는 누구도 바깥으로 나가게 할 수 없다.
안전상의 이유와 이들을 지켜보라는 교단 본부의 명령이 있기 때문이다.
“조심히 다녀오셔야 합니다. 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 사제는 에탄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에탄과 함께 나온 아린이와 뇽뇽이가 자신을 아주 애처로운 눈빛으로 쳐다봤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에탄이 사제의 허락에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고개를 아래로 꾸벅이고는.
“오늘의 선택을 후회하시지 않을 겁니다.”
사제에게 미묘한 말을 건넸다.
다만. 사제는 에탄이 저 말을 왜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밤 산책을 나가는 게 그렇게 기쁜가, 라는 의문만 가질 뿐이었다.
탁.
그렇게 에탄은 사제와의 대화를 끝내고 복도를 빠져나왔다. 그 후 긴 복도를 지나 바깥으로 나가고.
끝내는 수풀이 한가득 있는 숲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 누구도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없는 아주 깊숙한 장소였다.
스르륵.
그렇게 숲 한가운데로 들어가자, 검은 그림자들이 에탄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까지 오는 내내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은폐를 잘하는 놈들이었다.
스르릉…
그렇게 나타난 검은 그림자들의 손에 날카로운 날붙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사람이 사용하는 검의 형상이 아니었다.
놈들의 그림자 중 일부가 날카롭게 변한 것이다.
“흐음.”
에탄이 그걸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다른 이들이 저걸 봤다면 겁에 질려 소리를 질렀으리라.
하나. 에탄은 아니었다.
이보다 더 한 마족들도 상대를 해본 그였기에, 고작 저런 그림자 따위에게 겁을 먹지 않았다.
“아빠. 어떻게 처리할까요.”
“처리함!”
그건 아린이와 뇽뇽이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에탄이 말만 하면 언제든지 그림자들을 제거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깨지 않게 조용히 처리하자. 세 놈이니까 각자 한 놈씩.”
에탄이 그런 두 사람의 말에 픽 웃으면서 답했다. 동시에 사제복 속에 숨겨두고 있던 검을 빼 들고는.
탁!
자신들을 죽이기 위해 나타난 그림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서걱!
이어서 제일 앞에 있는 그림자를 깔끔하게 베었다.
탁! 타탁!
그 순간 양옆에 있는 또 다른 그림자들도 무기력하게 쓰러졌다.
아린이와 뇽뇽이가 자신들의 힘을 이용해서 그림자들을 반으로 절단낸 거였다.
“자….”
에탄이 그걸 확인하고는 검집을 집어넣으려고 했다.
탁!
하지만 1초도 지나지 않아 검을 다시 빼 들고는, 아린이와 뇽뇽이와 함께 뒤로 거리를 벌렸다.
꾸물. 꾸물.
“…아무래도 한 번으로는 부족한 모양이네.”
분명 깔끔하게 반으로 절단된 녀석들이 다시 합쳐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씨익.
에탄이 그걸 보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어쩐지 너무 쉽더라.”
동시에 그림자들을 비릿한 미소로 쳐다보면서.
-우우웅!
오러를 방출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보름달이 뜬 밤이었다.
-우우우웅!
그래서일까.
에탄이 뿜어내는 오러가 평소보다 더 밝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보름달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에탄의 검에 스며들면서.
화아앗!
주변을 보름달의 힘으로 완전히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 * *
채앵!
“…시작 되었나 보군.”
그 시각. 데이른 공작은 멀리서 들려오는 소음을 듣고 감았던 눈을 떴다.
“우리도 슬슬 준비해야겠어.”
그리고 양옆에 있는 파엘과 화염의 지배자를 향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면서 뒷말을 붙였다.
“저쪽을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그럴 겁니다. 뇽뇽이는 저희가 가르친 수제자니까요.”
화염의 지배자의 말에 파엘이 자랑스럽다는 말투로 답했다. 데이른 공작이 그걸 보고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 콧방귀를 꼈다.
“언제는 그렇게 싸우더니. 이제는 서로를 치켜세워주는 관계가 된거냐?”
처음과 비교를 해보면 완전히 달라진 두 사람의 모습에 어이가 없는 거였다.
분명 처음 가르칠 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더 잘 가르친다는 걸로 싸우던 두 사람이었다.
“계약서로 합의했거든.”
“뇽뇽이는 공동으로 가르친 거라고 서명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뇽뇽이의 성장이 곧 자신들의 이름을 빛내주는 구조로 변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에게 공평하게 말이다.
“허참….”
데이른 공작이 두 사람의 대답에 고개를 저었다. 자신한테 생각 좀 하고 다니라고 구박하던 두 명이다.
한데. 지금 모습을 보면 솔직히 자신이나 저 두 명이나 별 다른 차이점이 없는 거 같았기에 어이가 없었다.
물론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랬다가는 그림자들과 함께 제거 될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스릉!
그래서 두 사람에게 말을 거는걸 포기 하고는 등에 있는 대검을 빼들었다.
“그럼 이놈들부터 처리해야겠군.”
이어서 들뜬 목소리로 뒷말을 붙였다.
“거참. 또 저러네.”
“하여간 검만 잡으시면 성격이 바뀌십니다. 저 성질을 죽여야 할 텐데 말이죠.”
화염의 지배자와 파엘이 그런 데이른 공작을 향해 혀를 차면서 한마디씩 붙였다.
“…….”
데이른 공작이 두 사람의 잔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 조금 전 자신에게 보이던 추태를 지적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러지는 않았다.
일단 수적으로 자신이 밀리는 상황이니 말이다.
“각각 한 놈씩 맡아라!”
게다가 지금은 눈앞에 자신들을 처리하러 온 검은 그림자들도 있으니, 말싸움을 할 때가 아니라고 데이른 공작은 판단했다.
타탁!
동시에 검은 그림자들이 뭉쳐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움직이고는.
부웅!
있는 힘껏 대검을 휘둘렀다.
파파팍!
그 순간 데이른 공작과 이들의 눈앞에 나타난 검은 그림자들이 순식간에 반으로 갈라졌다.
“우리 보고 한놈씩 맡자고 하지 않았나?”
화염의 지배자가 그걸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달려들 때 한놈씩 담당하자고 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한지 3초도 지나지 않아 혼자서 모든 그림자를 대검으로 베어버렸으니.
그녀의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만도 했다.
“데이른 공작님은 숫자를 중요하게 여기시지 않습니다.”
파엘이 화염의 지배자의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면서 묘한 눈빛으로 그림자들이 있던 자리를 살펴봤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숫자가 의미가 없을 거 같군요.”
꾸물. 꾸물.
데이른 공작이 대검으로 밴 그림자들. 분명 반으로 갈라진 놈들의 몸이 다시 합쳐졌기 때문이다.
그 뿐이랴. 이전보다 더 많은 숫자로 증식도 시작했기에.
“저희도 들어가야 할거 같습니다.”
파엘은 몸 안에 있는 마나를 바깥으로 방출했다.
“잘됐네.”
화염의 지배자가 그걸 보고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화르륵!
동시에 작은 불덩어리 수십개를 만들어 내고는.
“나도 몸이 좀 근질거리거든.”
파엘을 따라 그림자들을 향해 마법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모조리 녹여주마.”
그리고 다시 합쳐지는 검은 그림자들을 향해 불을 쏟아 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