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5화
에탄이 이름 모를 마족의 오른쪽 날개를 뭉갰다.
처음으로 녀석의 공격을 받아만 내는 상황에서 반격에 성공한 거였다.
탁!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에탄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놈과 거리를 좁혔다.
계속해서 방어만 해오던 자세를 버리고 이제는 한 마리의 사냥개처럼 놈에게 달려들었다.
“무슨!”
이름 모를 마족이 그걸 보고는 크게 당황했다. 설마 여기서 자신을 향해 거리를 좁힐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부정을 하고 싶은 거였다.
이곳은 그녀가 만들어낸 아공간.
즉 그녀의 뜻대로 흘러가야만 하는 무대니까.
“죽어!”
그래서 이곳에 들어오고 처음으로 격양된 목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쿠쿠쿵!
이어서 공간이 흔들리고 주변에서 거대한 팔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척 봐도 에탄의 몸을 뛰어넘을 만큼 큰 녀석들이었다.
[에탄!]
“알고 있습니다.”
아서왕이 그 점을 에탄에게 말하자. 에탄이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우우웅!
동시에 몸 안에 있는 겨울 산맥의 힘을 검에다가 집중시키고는.
“뿌려져라.”
몸을 180도 비틀면서 검을 회전시켰다. 그 순간 겨울 산맥과 아서왕의 힘을 머금은 검격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파파팡!
순식간에 이름 모를 마족이 만들어낸 팔들이 터져 나갔다. 그 모습이 꼭 부풀어 오른 풍선이 사라지는 것과 비슷했다.
“이게….”
이름 모를 마족이 그걸 보고는 당황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힘을 에탄이 내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심장이 빨리 뛰고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지금 이곳에서 놈을 끝내지 못 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으득!
그래서 그녀는 숨겨왔던 비장의 수를 꺼내기로 결심했다.
“끄으읅!”
푸욱!
이름 모를 마족인 그녀가 스스로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 순간 녀석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저건…!]
아서왕이 그걸 보고는 놀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금 죽여야 한다!]
그리고 에탄에게 지금 당장 저 마족을 쳐야 한다고 다급히 말했다.
탁!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놈을 향해 접근했다. 동시에 녀석의 머리를 치기 위해서 아서왕의 검을 휘두르는 순간.
까앙!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아서왕의 검을 막아냈다. 단단한 바위가 주변을 두른 것과 같았다.
‘마기의 성질이 변했다.’
에탄이 그 사실을 깨닫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어서 녀석과 거리를 벌리기 위해 뒤로 물러나려는 순간.
쿵!
에탄의 등 뒤가 돌처럼 단단해진 마기에 의해 막혀 버리고 말았다.
“끝이다.”
그리고 이름 모를 마족의 날선 목소리가 들려오고.
-우우웅!
녀석의 손에 검붉은 마기들이 모이는 순간.
쩌적!
무언가에 금이 가는 소리가 에탄의 귀에 들려왔다. 동시에 빛 한점 없는 이공간에 바깥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
에탄이 그걸 보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을 하려는 순간.
“메테오!”
뇽뇽이의 명쾌한 목소리가 아공간에 울려 퍼졌다.
쿠쿠쿵!
이어서 무지막지한 돌덩어리가 아공간을 부수면서 내려왔다.
“어떻게!”
이름 모를 마족이 그걸 보고는 경악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이 아공간은 자신이 만들어낸 절대 공간중 한곳이니.
무지막지한 마력을 가진 이가 아니라면 뚫을 수 없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게 있었다.
뇽뇽이가 무식할 정도로 많은 마력을 가지고 있는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데 저거 어떻게 피하지?”
그때. 에탄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저 거대한 메테오는 아군 적군을 구별하지 않고 때려버리는 광범위 마법이다.
그래서 저 무지막지한 공격을 어떻게 회피해야 하나 고민하려던 순간.
“순간 이동!”
뇽뇽이가 에탄을 향해 작은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팟!
그 순간 에탄의 몸이 순식간에 아공간에서 빠져나왔다. 뇽뇽이와 아린이가 있는 위쪽 공간으로 말이다.
“노오오옴!”
이름 모를 마족이 그걸 보고는 두눈을 부릅떴다. 동시에 자신도 순간 이동을 통해 아공간을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막을 거임!”
뇽뇽이가 이름 모를 마족인 그녀의 마법들을 파훼시켜버렸다.
“안. 안돼!”
이름 모를 마족이 사라져가는 자신의 마법진들을 보고 당황했다. 어떻게 마나도 아닌 마기를 이용한 자신의 힘을 뇽뇽이가 방해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
그 순간. 뇽뇽이가 녀석을 향해 용언을 중얼거렸고. 이름 모를 마족인 그녀의 몸에 두꺼운 쇠사슬이 감기게 됐다.
“드래곤?”
그제서야 이름 모를 마족인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의 아공간에 틈을 만들고 메테오를 떨군 저 아이가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 하하!”
그걸 깨닫는 순간 그녀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드래곤이라니.”
그리고 끝내는 반쯤 포기한 표정으로 뇽뇽이를 빤히 바라보면서.
“이거 참 재미있-”
나지막한 목소리로 뒷말을 이으려고 했지만.
콰아아앙!
자신을 뭉개버리는 메테오의 소리에 그녀의 말은 묻혀 버리고 말았다.
“뇽뇽아! 아공간 닫아버려!”
“알겠음!”
쿵!
에탄의 말에 뇽뇽이가 허물었던 아공간을 복원했다. 그러자 이름 모를 마족인 그녀의 눈에는 다시 어둠컴컴한 아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이전과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화르륵…
거대한 메테오가 불을 뿜어내면서 떨어지고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그 메테오가 그녀가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 * *
“후우….”
에탄이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그리고 호흡을 간신히 가다듬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아린이. 뇽뇽이. 데이른 공작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살아서 돌아왔구나.”
그래서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려던 찰나. 데이른 공작이 에탄을 향해 먼저 말을 걸었다.
“예. 어찌어찌 살아서 왔습니다.”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아찔한 상황이었다.
목숨이 정말로 날아갈 수도 있을 정도로 절망적이었으니까.
“데이른 공작님도 무사하시군요.”
“네 녀석 덕분에 온몸이 쑤시고 있다. 돌아가면 당분간은 요양이나 해야 할 판이다.”
데이른 공작이 에탄의 말에 콧방귀를 꼈다. 말은 저렇게 했지만 에탄을 걱정하는 눈빛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었다.
“아빠. 괜찮아요?”
“몸 멀쩡함?”
그리고 에탄을 걱정하는 사람은 데이른 공작만 있는 게 아니었다.
아린이와 뇽뇽이도 에탄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걱정을 표했다.
“아빠는 괜찮아. 저번처럼 기절도 안 했잖아.”
에탄이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픽 웃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몸이 멀쩡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팔과 다리를 거침없이 움직였다.
“다행이네요. 만약 또 다치셨으면 한 달 정도는 집에서 못 나오게 할 생각이었는데.”
“…….”
에탄이 아린이의 말에 몸을 움찔했다. 어째 날이 갈수록 점점 아린이의 행동이 과격해지는 것 같기에 불안감도 느꼈다.
‘이건 조금 무서운데.’
그래서일까. 에탄은 처음으로 아린이에게 공포감을 느꼈다. 물론. 저 모든 행동이 자신을 위한 거라는 걸 알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안감을 떨쳐낼 수는 없었다.
“가두면 밥도 줘야 함!”
그때. 아린이의 말에 뇽뇽이가 뿌듯하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맞아. 밥도 드려야지.”
“흐음!”
그리고 자기들끼리 눈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녀석도 고생 좀 하겠구나.”
데이른 공작이 그걸 보고는 픽 웃었다. 그 모습이 꼭 자신을 나무라 하던 에탄에게 통쾌함을 느끼는 것과 같았다.
“…끄응.”
하지만 에탄은 반격을 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그렇게 될 거 같았으니까. 자신이 데이른 공작을 뭐라고 하는 것처럼. 아린이와 뇽뇽이가 자기를 쏘아붙이리라.
[피할 수 없다면… 즐기지는 말고 그냥 버텨라.]
그때.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서왕의 갑옷이 입을 열었다.
“호오. 아직도 살아 있는 건가?”
데이른 공작이 그런 아서왕의 갑옷을 보고 두눈을 끔뻑였다. 참고로 에탄이 들고 있는 검은 사라진 상태였다.
아서왕이 검을 유지할 정도로 힘이 넘치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건가는 반말이다! 이 새파랗게 어린놈아!]
“흐음?”
[이 몸에게 예의를 갖춰라!]
아서왕의 말에 데이른 공작이 두눈을 끔뻑였다. 그 후 개구쟁이처럼 씨익 웃고는.
“그대가 정말 아서왕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뭐라?]
“그리고 이미 죽은 사람한테 예의를 갖춰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정 나한테 예를 받고 싶으면 직접 눈앞에 나타나서 나와 대련해라.”
[이… 이게 무슨.]
아서왕의 입장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대답을 내놓았다.
“저도 그게 맞다 생각합니다.”
에탄이 데이른 공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자신이 입고 있는 아서왕의 갑옷을 빤히 쳐다보면서.
“애당초 아서왕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졸렬하 리도 없습니다. 어떻게 기껏 정신을 깨워준 사람한테 갑옷을 내놓으라고 할 수 있습니까? 동네 양아치도 그런 짓은 안 할 겁니다.”
아서왕이 자신에게 했던 행동을 지적했다.
[이… 이놈들이.]
아서왕이 에탄과 데이른 공작의 말에 충격을 먹은 듯 말을 덜덜 떨었다.
[내 갑옷 내놔! 내놔라!]
-우우웅!
그리고 에탄에게 갑옷을 돌려달라고 말했지만.
“자꾸 그러시면 산속 깊은 곳에 던져버리고 갈 겁니다.”
[…….]
이어지는 에탄의 협박에 입을 다물었다. 에탄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인물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끄윽….”
그래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려는 순간. 뒤쪽에서 앓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게 무슨…?”
“교단이 엉망이 됐잖아?”
그리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사제들이 하나둘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
에탄이 그 모습을 보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완전히 박살 난 교단과 자신들을 빤히 쳐다보는 사제들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탁!
“튀어!”
누구보다 빠르게 교단을 벗어나면서 외쳤다.
지금 이 현장에서 도망가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