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4화
에탄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아서왕의 힘을 과도하게 사용한 대가였다.
“흐음. 이제는 한계에 도달한 건가?”
이름모를 마족이 그걸 보고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곳은 자신이 만들어낸 아공간.
여기서 에탄이 망가진 몸을 회복할 수 있는 수단은 없었다. 그저 외부에 있는 누군가 개입을 해서 도움을 주기를 바라는 게 최고의 수일뿐이었다.
“나도 외부 세상을 못 보는 상태기는 하지만….”
이름 모를 마족 또한 바깥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적어도 여기 안에서 네가 죽는 건 확정일 거 같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에탄을 구할 이는 없다고 확신했으니까.
“그 잘난 덩치 큰 공작 놈도 이 공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바깥에서 내가 세뇌시킨 사제들과 짝짜꿍 소꿉놀이를 하고 있겠지.”
게다가 그녀는 데이른 공작의 발목을 붙잡을 존재들도 미리 만들어냈다.
“애당초 네 녀석은 여기에 들어오면 안 됐어.”
그러니 이 판은 그녀의 뜻대로 흘러가고 있는 게 맞았다.
“…….”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누가 봐도 자신이 명백히 불리한 상황.
두 번째 인생에서까지 이런 위기를 겪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다.
그래서 머릿속에 안 좋은 감들이 스멀스멀 올라오려는 순간.
[포기 하지 말아라.]
아서왕의 목소리가 에탄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너는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 그러니 이번 위기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번쩍였다. 의도한 건 아니었다. 지금 에탄의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여기서 무너지면 아린이와 뇽뇽이를 지킬 수 없을 거라고.
거기에 바깥에 있는 데이른 공작 또한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 말이다.
으득!
그 사실을 깨달은 에탄이 이를 갈았다. 동시에 몸 안에 있는 기운을 강하게 회전시켰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걸 돌려버리겠다는 의지를 담아서 말이다.
…휘이이잉!
그 순간 어둠만 가득했던 공간에 눈보라가 몰아쳤다. 순식간에 기운이 낮아지고 어둠 속에 흰색빛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무슨?”
이름 모를 마족이 그걸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갑자기 에탄의 몸에서 정체 모를 힘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아서왕의 힘이 아닌데.”
이름 모를 마족이 눈보라를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이 알고 있던 아서왕의 힘.
즉. 조금 전까지 경험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기운이 이공간을 가득 채워나가고 있었다.
“죽어라!”
그래서 이 힘이 커지기 전에 에탄을 처리하리라 마음먹으면서.
부웅!
놈에게 마기가 가득 담겨있는 검격을 날리는 순간.
…번뜩!
에탄이 두 눈을 부릅떴다.
“베어라.”
동시에 입으로 한마디를 툭 내뱉으면서.
부웅!
놈에게 검을 휘두르는 순간.
…휘이이잉!
거센 눈보라가 에탄의 검격에 뭉치면서 큰 눈 덩어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콰직!
마족의 오른쪽 날개를 으깨버렸다.
* * *
“후우….”
데이른 공작이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슬슬 체력에 한계가 오고 있군.”
그리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사제들을 보면서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검을 바닥에 휘두르면서 놈들을 기절시킨 지 벌써 50번이 넘어갔다.
주르륵.
그래서일까. 어지간한 일로는 땀을 흘리지 않는 데이른 공작의 이마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물론. 단순히 검을 휘둘렀다는 이유만으로 체력이 바닥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이 마기들이 나를 더 귀찮게 하는군.’
교단에 가득 퍼진 마기들.
이 마기들이 데이른 공작의 몸에 스며들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조금의 빈틈이라도 보이면 어떻게든 파고들려는 게.
꼭 먹잇감을 바라보는 맹수와도 같았다.
“흐음!”
데이른 공작이 자신의 몸을 감싸는 마기들을 내쫓기 위해 온몸에 힘을 줬다. 그러면서 몸에 있는 오러를 다시 활성화 시키는 순간.
-우웅!
교단에 가득 찬 마기가 다시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 짓거리도 얼마나 더 반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데이른 공작이 다시 깔끔해진 교단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어어…
그리고 기괴한 소리를 내면서 자신에게 달려드는 사제들을 향해.
부웅!
다시 한번 대검을 힘차게 휘둘렀다.
* * *
콰앙! 쾅!
나무가 쓰러지고 땅이 파일 정도로 거대한 팔들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뇽뇽아!”
“흐응!”
아린이와 뇽뇽이가 그걸 보고는 뒤로 물러났다.
“떠오름!”
이어서 뇽뇽이가 공중 부양 마법을 발동시켰다. 순식간에 주변 공기가 아린이와 뇽뇽이의 발밑으로 모여들었다.
훙!
그리고 두 사람을 나무보다 더 높게 들어 올렸다.
파파팍!
그 순간 밑에 있던 마물의 팔들이 아린이와 뇽뇽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날아가는 모기를 낚아채듯이 말이다.
“어딜!”
부웅!
하지만 놈의 손은 아린이와 뇽뇽이에게 닿을 수 없었다. 아린이가 놈을 향해서 검을 휘둘렀고.
서걱!
그 검에서 뿜어져 나온 검격이 놈의 손들을 잘라냈기 때문이다.
-끄어어!
놈이 자신의 손들이 잘려나간 걸 보고 괴성을 내질렀다. 지성이 없는 마물이지만 고통을 느끼는 건 가능했다.
그래서 녀석의 눈에서는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뇽뇽아!”
아린이가 그런 놈의 눈을 보고는 다급하게 뇽뇽이의 이름을 불렀다.
“준비 됐음!”
그러자 뇽뇽이가 아린이의 말에 힘차게 답했다.
-우웅!
동시에 녀석의 발밑에 설치한 마법진을 발동하고는.
화르륵!
거대한 불길을 땅에서 하늘로 뿜어냈다.
-끄어얽!
그러자 녀석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쿵! 쿠쿠웅!
동시에 남아있는 팔들이 미친 듯이 사방팔방으로 날뛰었다. 어떻게든 아린이와 뇽뇽이를 잡겠다는 집념이 녀석을 움직인 거였다.
하지만.
…타탁… 탁.
얼마 지나지 않아 놈의 팔들은 축 늘어지게 됐다. 뇽뇽이의 뜨거운 불길이 놈의 몸을 완전히 불태웠기 때문이다.
“드디어 해치웠네.”
아린이가 그걸 보고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생각보다 끈질긴 놈의 생명력에 시간이 제법 소모됐다.
“뇽뇽아. 바로 움직이자.”
“알겠음!”
하지만 여기서 휴식을 취할 수는 없었다. 바로 뒤쪽에 있는 교단에서 데이른 공작이 사제들과 씨름을 하고 있으니까.
탁!
그래서 아린이는 손에 검을 쥔채 교단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뒤에서 용언을 통해 마법진을 만들어내는 뇽뇽이와 함께 말이다.
* * *
부웅!
데이른 공작이 위에서 아래로 대검을 휘둘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50번 넘게 반복했던 자세를 똑같이 실시하고 있었다.
쾅!
그럴 때마다 교단 바닥이 거세게 흔들리고. 거센 바람이 데이른 공작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털썩!
이어서 데이른 공작을 향해 달려들던 사제들이 바닥에 쓰러졌다. 압도적인 충격파에 놈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우웅…
하지만 놈들은 기절할 때마다 몸 안에서 마기를 뿜어내면서. 데이른 공작의 몸을 위협했다.
저 무지막지한 마기중에 일부라도 데이른 공작의 육체에 들어가는 순간. 데이른 공작도 목숨이 위태롭기 때문이다.
“이 애송이 녀석. 도대체 언제 나오는 거냐!”
데이른 공작이 그 사실을 상기하고는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그리고 검은 공간으로 변해버린 지하를 쳐다봤다.
‘저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세뇌당한 사제들을 기절시키고.
저 구멍에 들어가기 위한 시도를 해 봤었다.
하지만 딱딱한 벽에 막힌 듯.
구멍은 데이른 공작의 진입을 조금도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어어…
그때. 데이른 공작의 공격에 기절했던 사제들이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동시에 날붙이를 들고 다시 한번 데이른 공작을 향해 접근했다.
“이런….”
데이른 공작이 그걸 보고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동시에 다시 한번 대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공작님 저희가 왔어요!”
“내가 왔음!”
뒤쪽에서 아린이와 뇽뇽이가 데이른 공작을 향해 자신들이 왔다는 걸 알렸다.
부웅!
동시에 아린이가 사제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뇽뇽아!”
“단단해짐!”
그리고 뇽뇽이가 아린이의 검격에 성질 변환 마법을 부여했다.
퍽. 퍼억!
그러자 사제들이 둔탁한 무언가에 맞은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호오.”
데이른 공작이 그걸 보고는 두눈을 반짝였다. 저런 식으로 검의 성질을 변형 시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흥미를 느끼려는 찰나.
“데이른 공작님. 아빠는 저 안에 있나요?”
이어지는 아린이의 물음에 데이른 공작은 생각을 지워냈다.
“아무래도 그런 거 같다.”
그리고 아린이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네 아빠는 마족과 함께 저 안으로 이동됐다. 그래서 힘을 보태기 위해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부웅!
데이른 공작이 말끝을 흐리면서 검은 공간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까앙!
하지만 거대한 대검의 크기가 무색할 정도로 검은 공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데이른 공작이 그걸 아린이와 뇽뇽이에게 보여주면서.
“이렇게 막힌 지 오래다.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결과는 똑같았어.”
무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흐으음….”
아린이가 그 말을 듣고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데이른 공작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린이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여기서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게 없다는 걸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내가 해보겠음!”
“뇽뇽이가?”
“할 수 있을 거 같음!”
그때.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뇽뇽이가 자신이 해보겠다고 말했다.
터벅! 턱!
동시에 검은 공간을 향해 거침없이 다가가고는.
쓰윽.
양손을 검은 공간 쪽으로 뻗었다.
그리고 두눈을 감은 채 알 수 없는 언어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순간.
파아앗…
뇽뇽이의 손에서 붉은빛들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빛이 작은 원형을 이루는 순간.
취이이익…
데이른 공작의 검도 막아냈던 검은 공간이 아주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