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5화
베이덴프. 에탄. 아린이. 뇽뇽이.
네 사람이 거실 소파에 앉아서 서로를 바라봤다.
“제국에 있는 모리헤움 교단에서 스텐을 재판에 회부하기로 결정했소.”
그리고 베이덴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
세 사람의 낮빛이 더 어두워졌다.
“모리헤움 교단이라….”
모리헤움 교단.
제국에서 신성력을 이용해 마족들을 처벌하는 전투 교단 중 한곳이다.
권력도 상당하기에 어지간한 제국의 귀족들은 건드릴 생각조차 못하는 집단이기도 했다.
“그 교단에서 왜 스텐을 잡아가는 겁니까?”
하지만 모리헤움 교단은 제국에서 활동을 하는 곳이니.
“여기는 제국도 아닌데 말이죠.”
굳이 번개 산맥에서 일어난 일에 관여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소. 원래라면 명분도 없겠지.”
베이덴프가 에탄의 말에 동의했다.
이곳 산맥은 중부에 있는 장소 중 한곳일 뿐이다. 게다가 오래전부터 어떤 왕국이나 제국의 소유도 아니었다.
“하지만 모리헤움 교단의 사제가 이곳에서 스텐에게 치명상을 입었소.”
하지만 이번에는 명분이 있었다.
마계 대공에게 조종을 당하던 스텐이 교단 사제를 공격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지만. 모리헤움 교단이 올 이유로는 충분하고도 남소.”
“…….”
에단이 베이덴프의 말에 침을 삼켰다.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자신 교단 소속 사제가 공격을 받았으니.
그들이 스텐을 재판하려는 건 이상한게 아니었다.
“스텐이 한 게 아니에요!”
“조종 당한 거임!”
하지만 아린이와 뇽뇽이는 납득할수 없었다. 이 모든 일은 스텐이 아닌, 그녀를 조종하던 마계 대공이 벌인 짓이기 때문이다.
“스텐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해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어요.”
“저항 했음.”
스텐을 마주친 모든 사람이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그중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포레스트에게 조종을 당하던 스텐이 계속 저항을 한 덕분이었다.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교단이 데려가는걸 막을 수는 없을 거요.”
베이덴프 또한 그걸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하나. 자신은 이 상황을 바꿀 수 없었다.
“그건 자네들도 마찬가지겠지.”
“…맞습니다.”
에탄이 베이덴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는 에탄이라고 해도. 교단의 결정을 바꿀 힘은 없었다.
“나도 그 아이가 죽는 걸 원하지는 않소. 녀석에게… 아니 정확히는 아이를 조종하던 마족에게 부상을 당한 내 동료들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고.”
베이덴프가 말을 마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라고 마음이 편할 리가 있을까.
“하지만 나는 이걸 바꿀 힘이 없소.”
그러나 베이덴프는 힘이 없었다.
“무리한 부탁인 거는 알지만… 손좀 써주시오.”
그래서 에탄을 찾아온 거였다.
“저도-”
“알고 있소. 그대에게도 교단에 간섭할 권리는 없다는걸. 하지만 시도는 가능할 거라 생각하오.”
“…….”
“적어도 산맥에서 탐험가들 안내만 하던 드워프 보다는 훨씬 높겠지.”
에탄이 베이덴프의 말에 침을 삼켰다. 딱히 틀린말은 아니었다. 에탄은 북부에 있는 귀족가의 아들이고.
베이덴프는 아무런 연줄이 없는 드워프니까.
“스텐에게 화가 나지는 않으십니까?”
그런 베이덴프에게 에탄이 진지하게 한 가지를 물었다.
“잘못했으면 죽을 뻔 했습니다.”
스텐에게 분노하지 않냐는 물음이었다.
“그 아이가 우리에게 사과를 하러 왔었소.”
“…….”
“자신이 죽을 놈이라고 말하더군. 변명 같은 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처음에는 사과를 받지 않던 녀석들도 계속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결국 용서를 해주게 됐소.”
베이덴프가 말을 끝내고 에탄을 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10살짜리 어린아이오. 게다가 스스로 원해서 한 짓도 아니지. 그러니까 우리는 그 아이에게 기회를 주고 싶소.”
그러면서 에탄이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던 감정을 대신 표현하듯이 뒷말을 이었다.
“…스텐은.”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에탄은 무언가를 결심한 것처럼 두눈을 반짝이면서.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스텐의 위치를 베이덴프에게 물었다.
* * *
끼익.
스텐이 자신의 방에 있는 창문을 열었다.
“달이 예쁘네….”
그리고 허공에 떠 있는 보름달을 보면서 싱긋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거기에 기쁨은 자리를 잡고 있지 않았다.
‘이제 내일이면 잡혀가는구나.’
그렇게 쓸쓸하게 입꼬리를 올리고는. 낮에 한 남자가 전해준 종이의 내용을 떠올렸다.
‘난 죽겠지.’
스텐이 받은 종이에는 모리헤움 교단의 인장이 각인되어 있었다. 그리고 안에 써 있는 내용은 지극히 간단했다.
모리헤움 사제를 공격한 죄를 심판대에서 묻겠다. 그게 교단이 스텐에게 취하는 자세였다.
“…….”
스텐 또한 알고 있었다.
교단에 끌려가면 자신은 높은 확률로 죽을 거라는 걸 말이다.
그래서 도망칠까, 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지금 이 몸으로는 무리겠지.’
스텐은 아직 부상이 심한 상태였기에.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도주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조용히 자신의 운명을 받아 들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뇽뇽…
-알…
그래서 보름달을 보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응?”
이런 스텐의 귀에 사람의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잘못 들었나?’
스텐이 목소리들을 듣고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었다.
‘몸이 안 좋아서….
그리고 환청이라고 결론을 내리려는 순간.
파아앗!
“스텐 안녕!”
“인사함!”
아린이와 뇽뇽이가 스텐이 열어재낀 창문을 향해 나타났다.
“흐아악!”
스텐이 그걸 보고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사람이 아래에서 위로 불쑥 튀어나왔으니 놀라는 게 당연했다.
“쉿. 조용히 해.”
뒤늦게 공중에 떠오른 에탄이 스텐을 향해 입을 다물라는 손동작을 취했다.
“…….”
그러자 스텐이 두손을 이용해 입을 틀어막았다. 살짝 겁을 먹었기에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걱정 하지 마. 우린 널 어떻게 하려고 온 게 아니니까.”
에탄이 그걸 보고는 부드러운 말투로 뒷말을 붙였다.
탁!
그리고 아린이와 뇽뇽이를 데리고 스텐의 방에 조용히 착지했다.
‘역시….
이어서 스텐의 몸을 살펴보고는.
‘내 이럴 줄 알았어.’
환자지만 제대로 된 간호를 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잔뜩 야위어진 얼굴과 말라가고 있는 입술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 여기는 왜 오신 거예요?”
그래서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
스텐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방에 들어온 세 명을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야심한 밤에 올 이유가 없었으니.
그녀로서는 당연히 물어볼 만한 질문이었다.
“너를 탈출시키려고.”
“네?”
“이대로 있으면 교단에 끌려가서 목이 댕강 잘릴 거 아니야. 그러니까 산맥에서 빠져나가게 해주려고 왔어.”
“아.”
에탄의 대답에 스텐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저는 벌을 받아야 하는 걸요.”
그러나 기뻐하지는 않았다.
스텐은 스스로를 죄인이라 여겼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죽어야 하는 건 아니에요.”
“맞음!”
아린이와 뇽뇽이가 그 말을 듣고는 입을 열었다.
“비록… 우리 아빠를 상처 입혔다고 하지만. 그건 스텐에 의지가 아니었잖아요.”
“뇽뇽이도 느꼈음.”
그리고 그때 당시 스텐이 느꼈던 감정을 대신 말해줬다.
“게다가. 스텐은 누구도 죽이지 않았어요. 게다가 스텐은 아무도 죽게 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 했어요.) 그러니까 목숨을 내놓는 건 너무 과한 벌이에요.”
몸을 빼앗겼지만 어떻게든 저항하려고 했던 행동까지 말이다.
“아린 님….”
아린이의 대답에 스텐이 멍해졌다.
“어째서 저를 이렇게까지 감싸 주시는 거죠?”
자신을 저렇게까지 변호해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린이에게 대놓고 물어봤다.
자신을 왜 챙겨주냐고.
씨익.
아린이 그녀의 물음에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스텐의 두 손을 꼬옥 잡고는.
“스텐은 아직 어리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저런 실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스텐을 위로했다.
“아린님….”
스텐이 아린이의 눈을 쳐다봤다.
감정이 벅차서 눈물이 일렁거렸다.
조금만 툭 하고 건들면 또르륵 떨어질 지경이었다.
“스텐 울음? 스텐 울보임?”
하지만 뇽뇽이의 이어지는 말에.
“아니거든요!”
눈물이 쏙 들어가고 말았다.
뇽뇽이의 질문이 자신을 꼭 놀릴 준비를 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알겠음.”
정작 뇽뇽이는 별생각 없이 물어본 거였기에. 스텐의 대답에 아쉬움을 보이지 않았다.
‘역시 애는 애라니까.’
에탄이 그걸 보고는 피식 웃었다.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는 뇽뇽이와.
그런 뇽뇽이를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보는 스텐의 모습이 재밌었기 때문이다.
짝!
“스텐. 이제는 슬슬 결정해야 할 시간이야.”
마음 같으면 자신도 합류해서 스텐을 놀리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때문에. 에탄은 박수를 치면서 세 사람이 자신에게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결정해. 우리랑 나갈 거야. 아니면 여기 남아서 목이 데구르르 바닥에 구를 거야.”
그리고 스텐에게 살벌하기 그지 없는 말들을 꺼냈다.
“…….”
꿀꺽.
스텐이 에탄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동시에 교단에 끌려가 목이 잘리는 모습을 상상하고는.
“저는… 살고 싶어요.”
에탄에게 자신의 진짜로 원하는 마음을 드러냈다.
“좋아.”
하지만 에탄은 그걸 나무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황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됐으니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래서 스텐을 향해 환하게 웃으면서.
“그럼 창문을 통해서 바깥으로 바로 뛰어내려.”
“…네?”
스텐의 입장에서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탈출을 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