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화
제77화. 천사 리더(2)
특별 심사 위원들의 자기소개가 끝나고 이연과 혜원, 미랑 세 사람은 기존의 심사 위원들이 앉아 있는 자리로 이동했다.
SSS 시즌 1 때 심사를 맡았던 사람들도 있지만, 이번에 새롭게 참가한 심사 위원의 모습도 보였다.
그들과 짧게 인사를 나눈 세 선배 아이돌은 각자의 지정석에 앉아 다음 녹화가 진행될 때까지 잠시 정비할 시간을 가졌다.
오늘은 연습생들이 심사 위원들에게 평가받는 게 아닌, 2라운드 1차 미션 내용을 공개하고 여기에 맞춰서 새롭게 팀을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미랑이 이연의 왼쪽 팔을 볼펜으로 툭툭 쳤다.
“연아. 최솔림 연습생 팀, 반은 안 보이는데. 혹시 1라운드에서 떨어졌어?”
방송을 보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자세히 보진 않았었다.
누가 상위권에 들었는지. 미랑은 이 점만 빠르게 확인하고 넘겼다.
반면, 이연은 SSS 시즌 2 방송을 첫 회부터 최근 방영된 편수까지 전부 다 챙겨 봤다.
그렇기에 미랑의 궁금증에 대해서 확실하게 대답을 줄 수 있었다.
“네. 강인주 연습생하고 홍미영 연습생, 이렇게 둘이 떨어졌어요.”
“그래? 1라운드 마지막 미션 무대는 나름 잘했던 거 같은데.”
“그전에 자잘한 실수들이 몇 개 있었는데, 그거 때문에 떨어진 것 같아요.”
실수는 최솔림도 똑같이 저질렀다.
그러나 최솔림의 높은 인기에 흠집을 남기기에는 상당히 미비했다.
아마 최솔림 본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어지간해선 당분간 자신이 상위권에 머물 거라는 사실을.
그 생각이 최솔림의 발목을 붙잡을 수도 있다는 점을 그녀는 아직 깨닫지 못한 듯했다.
이연이 보기엔 그랬다.
그렇지 않다면.
‘그때 본인이 일부러 무대에서 실수한 척 따윈 하지도 않았겠지.’
때마침 모든 촬영 준비가 끝났다.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강의찬이 다시 무대에 올라 연습생들에게 미션 내용을 공개했다.
“앞에 적힌 다섯 개의 곡 중 하나를 골라 커버 무대를 꾸미시면 됩니다.”
내용 자체는 굉장히 심플했다.
다섯 개의 곡 가운데에 눈에 띄는 곡들이 몇 개 있었다.
혜원이 ‘어머’라고 짧은 감탄사를 흘렸다.
“우리들 곡도 있네.”
아이비제이, MAYO, 그리고 하니엘. 이 세 그룹의 곡이 모두 포함되었다.
제작진은 그녀들이라면 다른 건 몰라도 본인들 곡에 한해선 신랄하고 냉철한 평가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 기대감 때문에 그녀들의 노래를 미션 곡으로 집어넣은 것으로 보였다.
연습생들은 제각각 다른 반응을 보였다.
몇몇 연습생들은 이연, 혜원, 미랑의 눈치를 살피기까지 했다.
곡을 정하기 전에.
먼저 연습생들이 해야 할 게 있었다.
“팀을 새롭게 다시 구성해야겠죠. 우선 1라운드 투표에서 상위권을 차지했던 1위부터 5위까지의 연습생들은 무대로 올라와 주세요.”
다섯 개의 팀으로 나뉘어 진행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상위 연습생들에게 팀을 꾸릴 권한이 주어졌다.
연습생들을 보고 있자니 이연은 예전에 다재다능 팀을 꾸릴 때의 기억이 절로 떠올랐다.
겉으로는 티를 잘 안 냈지만.
당시 이연은 베스트 멤버를 뽑기 위해 머리를 열심히 굴렸었다.
자신이 점찍어둔 멤버를 다른 팀이 채갈지도 모른다는 변수까지 고려하면서 열심히 플랜을 짰었는데.
그 과정을 SSS 시즌 2 참가자들이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고 하니까 왠지 모르게 감회가 새로웠다.
먼저 1라운드 투표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 최솔림에게 선택권이 주어졌다.
혜원은 최솔림이 누굴 택할 건지 알 거 같다는 듯이 말했다.
“동서남북 팀에서 최솔림 연습생하고 같이 유일하게 살아남은 팀원을 고르겠지.”
“그러면…… 성윤아 연습생이 되겠네요.”
미랑의 추측에 혜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연도 그녀들과 같은 생각이었다.
1라운드 때부터 쭉 최솔림을 지켜봐 왔던 기존의 심사 위원들 역시 그녀가 성윤아를 먼저 지목할 것으로 보고 있었다.
예상대로.
“12번 성윤아 연습생을 팀으로 데려오겠습니다.”
성윤아가 두 손을 모으면서 안도를 표했다.
그녀 입장에선 최솔림과 같은 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미 한번 호흡을 맞춰본 전적이 있고.
그리고 시청자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연습생이니까.
최솔림과 같이 붙어 있는 게 그녀 입장에서는 안전할지도 모른다.
물론 어디까지나 확률 싸움일 뿐이지, 최솔림과 같이 있다고 100퍼센트 생존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그건 서바이벌 프로그램만 두 차례 경험해 본 이연이 잘 안다.
차근차근 순서대로 팀원들을 택하는 상위권 연습생들.
최솔림의 동서남북 팀은 1라운드 때와 다르게 한 명이 더 늘어 총 다섯 명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팀원 선택이 끝났으니.
이제 대망의 곡 선택에 들어갈 차례다.
이번에는 순위대로가 아닌, 제비뽑기를 통해서 우선 선택권이 주어졌다.
최솔림의 동서남북 팀이 가장 먼저 곡을 고를 수 있는 권한을 거머쥐게 되었다.
강의찬이 최솔림에게 물었다.
“곡은 정하셨습니까?”
“네.”
“어떤 곡으로 하시겠습니까?”
최솔림의 시선이 잠시 심사 위원석에 머물렀다.
순간 이연과 최솔림의 시선이 교차했다.
그녀의 눈짓만으로도 이연은 최솔림이 어떤 곡을 택할지 알 것 같았다.
“하니엘 선배님들의 노래를 고르겠습니다.”
하니엘의 데뷔곡, HUG를 택했다.
미랑이 작게 휘파람을 불면서 이연에게 부러움을 드러냈다.
“좋겠네. 유능한 후배한테 먼저 찜도 당하고.”
“글쎄요.”
이게 과연 좋은 건지 어떤지, 이연은 알 수 없었다.
대기 중이던 스태프가 이연에게 마이크를 가져왔다.
동시에 강의찬이 이연에게 멘트를 넘겼다.
“동서남북 팀의 곡 선정에 대해서 권이연 심사 위원님이 한 말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어떤 무대를 보여주실지 굉장히 궁금하네요. 열심히 준비하실 거라고 믿고, 많이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강의찬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농담조로 말했다.
“이연 씨의 저 ‘기대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니까 왜 제가 더 긴장이 되는지 모르겠네요.”
MC인 강의찬이 이 정도인데.
평가받는 입장인 최솔림과 동서남북 팀 인원들은 과연 어떤 기분일지. 다른 사람들은 가늠하기 힘들 것이다.
* * *
SSS 때에도 그랬던 것처럼, 연습생들이 무대를 잘 준비하고 있는지 심사 위원들이 중간 점검을 나서기로 되어 있었다.
이연이 맡은 팀은 하니엘의 데뷔곡을 택했던 동서남북 팀.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매니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이동하는 사이, 이연은 간밤의 녹화 때 있었던 이야기를 멤버들에게도 공유해 줬다.
최솔림이 하니엘의 곡을 골랐다고 했을 때, 멤버들은 크게 놀랐다.
“진짜로? 그 1등 연습생이 우리 노래를 골랐어?”
“어머머, 웬일이래.”
멤버들은 크게 반기는 분위기였다.
최솔림은 SSS 시즌 2에서 가장 많은 화제몰이를 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녀가 하니엘이 부른 곡을 고른 것만으로도 크게 화두가 될 것이다.
이에 관한 반사적 이익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선택받은 선배 그룹 입장에선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연의 표정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여솜이 그녀의 미묘한 반응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촬영 때 무슨 문제라도 있었어?”
“아니.”
“그럼 동서남북 팀 말고 다른 팀이 우리 곡을 선택해 주기를 바랐던 거야?”
“그것도 아니야.”
이연이 고민이 깊어 보이는 반응을 보이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중간 점검 봐주러 갔다가 나도 모르게 팩트 폭행 가해 버릴 거 같아서.”
카메라 앞에서는 너무 직설적으로 말을 꽂아버리지 않도록 주의를 해왔던 이연이지만.
본인이 불렀던 노래를 누군가가 커버한다고 하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
걸파이트 시즌 2때처럼 선배 그룹이 그런다면 모를까.
후배, 그것도 아직 데뷔조차 안 한 연습생의 커버 무대라면 가차 없다.
자신이 연습생들의 무대를 평가할 때 수위 조절을 못 할까 봐.
이연은 이게 가장 큰 걱정이었다.
* * *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
이연은 처음으로 동서남북 팀의 연습실을 방문했다.
같은 LC 엔터테인먼트 식구라서 그런지 특별히 다른 회사로 이동할 필요가 없으니 이 점은 확실히 편했다.
하늘과 같은 선배의 등장에 연습생들은 바짝 긴장한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를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알아서 군기가 잡혀 있었다.
이연은 짧게 고개를 숙이면서 마주 인사를 건넸다.
본격적인 촬영에 앞서 서윤철 PD가 이연에게 어떤 식으로 중간점검이 진행될지 짧게 개요만 압축해서 설명했다.
“연습생들이 준비한 거 보시고, 가감 없이 평가 내려주기만 하면 됩니다.”
“정말로 ‘가감 없이’요?”
이연이 확인차 묻자, 서 PD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필요에 따라서 순화하셔도 됩니다.”
이렇게 말해야 적절한 발언 수위가 유지될 거 같았다.
이연이 먼저 자리를 잡고 그녀들의 무대를 볼 준비를 마쳤다.
최솔림을 중심으로 네 명의 연습생들이 오른쪽, 왼쪽으로 흩어졌다.
대열만 봐도 센터는 최솔림이 맡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건 다시 말해서.
최솔림이 이연의 포지션을 맡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최솔림은 평소 녹화 때보다도 더 긴장한 상태였다.
이연이 그녀들에게 물었다.
“준비 다 끝났나요?”
“네, 선배님!”
“그럼 음악 바로 틀어주세요.”
이연이 SSS 녹화를 하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것이 바로 ‘부족한 연습 시간’이었다.
조금이라도 연습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선 중간점검 같은 자투리 촬영 시간을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게 좋다.
질질 끌어봤자 좋을 게 없다.
이연의 말에 따라 스태프가 HUG 반주를 재생했다.
오랜만에 듣는 하니엘의 데뷔곡.
연습생들의 움직임에 따라 이연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다섯 명의 연습생이 펼치는 모든 안무 동작들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이연이 직접 중간점검을 본다는 소식에 동서남북 팀원들은 밤을 지새워 가면서 열심히 연습했다.
그 노력의 성과가 중간점검 무대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뒤에 서 있던 방송 작가가 서윤철 PD한테 작게 속삭였다.
“지난번보다 훨씬 잘하는데요?”
“그러게.”
서윤철 PD도 다른 스태프들과 마찬가지로 연습생들의 준비 상황을 여러 번 모니터링했었다.
다른 팀에 비해서 안무를 익혀가는 속도가 빨랐고. 평소에 하니엘의 무대를 보고 자주 커버 연습을 해서 그런지 굉장히 능숙해 보였다.
속도와 완성도. 두 가지 요소를 거의 다 챙긴 셈이었다.
그러나 이연은 스태프들 같은 긍정적인 신호를 조금도 보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잠시만요.”
2절이 시작되기도 전에 노래를 아예 꺼달라고 요청했다.
이연의 입에서 아주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기나긴 정적의 끝에 이연이 첫마디를 꺼냈다.
“파트 분배부터 다시 해야겠네요.”
연습실에 싸늘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