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255화 (255/299)

255화

제72화. 아운대(1)

오후 2시 반에 라디오 녹음을 마무리 지은 이연은 이로써 생애 첫 솔로 활동을 마무리 짓게 되었다.

라디오 진행을 맡았던 가요계의 대선배, 박진섭이 이연에게 미리 준비한 작은 선물을 건넸다.

“오늘 솔로 활동 마지막 일정이라고 들어서 스태프들하고 같이 준비했습니다.”

꽃다발을 건네받은 이연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박진섭과 스태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감사합니다. 소중히 간직할게요.”

“숙소에 도착하면 꽃들 빼서 꽃병 같은 데에 물 넣어두고 꽂아두면 오래 보관할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요?”

친절하게 보관법까지 알려주고. 이런 것 또한 정성이다.

박진섭이 연신 미소를 지으면서 이연에게 다음을 기약하는 말을 건넸다.

“그룹 활동도 힘내시고요. 나중에 컴백하시면, 그때도 저희 프로그램에 꼭 출연해 주세요. 우리 스태프들 중에서 하니엘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어쩐지.

스튜디오에 들어서자마자 이연을 바라보는 스태프들의 눈빛이 유독 다른 현장들에 비해 남달랐다.

좀 더 사심이 담겨 있는 그런 시선들이었다.

박진섭의 말을 듣고 나서야 이연은 스태프들이 왜 그런 반응을 보였던 건지 이해했다.

“네, 선배님. 약속할게요.”

이연의 말을 듣자마자 스태프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렇게 박도수 매니저, 최 코디와 함께 공개 스튜디오 현장을 빠져나온 이연은 쏟아지는 팬들의 환호성에 일일이 화답하면서 차에 올랐다.

최 코디가 이연의 흐트러진 머리카락들을 직접 정리해 주면서 말했다.

“고생했어, 연아. 오늘은 들어가서 푹 쉬어.”

“아니요. 회사 가서 멤버들하고 같이 안무 연습하기로 했어요.”

“안 피곤해? 너, 오늘 새벽부터 움직였잖아.”

마지막까지 솔로 활동 일정을 열심히 불태웠던 그녀.

피곤해할 법도 한데. 그럼에도 이연의 목소리에는 아직도 힘이 남아 있었다.

“괜찮아요. 쉬는 건 내일 해도 되니까요.”

방송 일정을 소화하고, 남는 짜투리 시간에 틈틈이 멤버들과 합을 맞추면서 다음 앨범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이런 이연의 모습을 바로 곁에서 지켜본 최 코디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비아가 가끔 농담 식으로 이연을 향해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다’라고 말을 하는데.

어쩌면 그게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최근 강하게 들었다.

“그래도 너무 무리하진 말고. 너 쓰러지면 그룹 전체가 흔들리니까. 알았지?”

“네. 그렇게 할게요. 걱정해 주셔서 고마워요.”

최 코디가 걱정한 대로, 이연은 크게 무리하지 않을 생각이다.

컨디션 관리는 그녀가 멤버들에게 늘 강조했던 거니까.

회사로 돌아오자마자 이연은 곧장 멤버들의 안무 연습에 합류했다.

은서해 트레이너의 주도하에 합을 맞춰보는 그녀들.

연습 시간으로 따지면 이연이 압도적으로 적음에도 정작 실력 순위는 정반대였다.

연습 시간과 결과물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외적인 인물이 바로 이연이었다.

오히려 이연이 다른 멤버들의 부족한 점들을 알려주면서 몸소 시범까지 보였다.

말로 하는 것보다 직접 동작으로 알려주니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훨씬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때. 알겠지?”

확인차 묻는 이연의 물음에 비아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면서 납득했다는 반응을 취했다.

“근데 언니는 언제 내 파트까지 연습한 거야?”

“연습 안 했어.”

“……응? 안 했다고?”

“어. 방금 보고 처음으로 따라 한 거야.”

“거짓말. 나보다도 훨씬 잘하는데?”

비아는 처음 자신의 안무 동작을 배웠을 때에 이해가 잘 안 돼서 하루 종일 헤맸었다.

그러나 이연은 눈으로 몇 번 슬쩍 본 것만으로도 금세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연을 볼 때마다 비아는 깨닫는 게 있었다.

“이것이 재능의 영역이구나.”

이연은 비아의 말에 작게 웃으면서 답했다.

“노력 없는 재능은 없어.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기본적인 노력이 밑바탕이 되어 있어야 발휘할 수 있는 거니까. 너도 언젠가는 하다 보면 익숙해질 거야.”

“아무리 그래도 언니만큼 될 거 같진 않은데.”

“그거야 모르지.”

비아를 위해서 빈말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이연은 비아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었다.

물론 비아만 그런 게 아니었다.

하니엘 멤버 모두가 다 언제든 날아오를 수 있는 준비를 마쳤다.

이대로, 조금만 더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연습생 시절 때 그토록 바랐던 풍경이 눈앞에 한가득 펼쳐지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그날이 과연 언제 올 수 있을지.

이건 멤버들 하기 나름이다.

이를 위해서는 부지런히 준비하고, 연습하고, 그리고 활동해야 한다.

안무 연습실을 찾은 홍류현 실장이 은서해 트레이너에게 잠시 양해를 구했다.

“애들한테 급하게 전해야 할 게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괜찮으니까 말씀하셔도 돼요.”

“감사합니다.”

멤버들을 잠시 불러 모은 홍류현 실장의 말이 빨라졌다.

“방금 연락 왔는데. 아운대 녹화가 앞당겨졌다고 하더라.”

“네?”

“언제인데요?”

홍류현 실장이 스마트폰으로 재차 날짜를 확인했다.

“이번 달 21일.”

“바로 다음 주인데요?”

원래 녹화는 다음 달 초로 잡혀 있었다.

2~3주가량 더 앞당겨진 셈이었다.

“다른 아이돌 그룹하고 일정 조율하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당기기로 한 거 같더라.”

홍류현 실장이 말한 ‘다른 아이돌 그룹’이라는 게 어떤 팀인지 멤버들은 알 것 같았다.

분명 인기 많은 가수팀일 게 틀림없다.

아이돌 운동 대회, 줄여서 아운대의 시청률은 얼마나 인기 있는 아이돌 그룹들이 최대한 많이 참여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차피 하니엘 멤버들이야 컴백하고 한창 방송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단계는 아니었기에 조율은 가능했다.

대신에 다른 그룹들이 신경 쓰였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는 그룹들 쪽에서는 불만이라는 걸 제기할 입장이 아니었다.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홍류현 실장이 구체적인 일정에 대해 알려줬다.

“아침 8시부터 시작한다고 하니까 미리 준비해 둬. 끝나는 시간은 그때 정해질 거 같으니까 각오 단단히 하고.”

대충 언제 끝내야겠다는 예정은 있지만.

여기에 맞춰서 녹화가 딱 끝난 적은 없었다.

홍류현 실장이 연예계에서 몸담고 있는 동안에는 늘 그래왔다.

경험에서 묻어 나오는 그의 조언에 멤버들은 무거운 고개를 끄덕였다.

“전달 사항은 이것으로 끝. 경기 규칙이라든지 일정표 같은 건 오늘 중으로 박 매니저 시켜서 전달하게끔 할 테니까 일단은 여기서 안무 연습 계속 하고 있어. 알았지?”

“네!”

아운대는 아운대고.

연습은 연습이다.

* * *

멤버들을 바래다주면서 잠시 숙소를 방문한 박도수 매니저가 홍류현 실장이 언급했던 아운대 관련 이야기를 꺼냈다.

“종목들은 방금 나눠준 프린트물에 기재되어 있으니까 확인해 봐.”

안내문을 면밀히 살피던 유키가 궁금한 것에 대해 물었다.

“매니저님. 1인당 1종목밖에 못 나가는 거예요?”

“어. 원래 이전에는 안 그랬는데. 최대한 많은 아이돌 멤버들한테 기회를 주려고 일부러 1인 1종목 참가로 제한했대.”

취지는 나쁘지 않다.

그리고 운동 잘하는 멤버가 여러 종목들을 독식해 버리면, 다른 아이돌 멤버들은 그야말로 들러리가 될 뿐이니까.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는 없는 법이지만, 그래도 다들 조금이라도 주목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간절함을 담아 출연하는 건데. 이런 기회마저 앗아가 버리는 건 너무 잔인하다.

그래서 이연은 종목 참가 제한에 딱히 큰 불편함을 느끼진 않았다.

중요한 것은 누가 어느 종목에 나가느냐. 이 점이니까.

박도수 매니저가 다음 장을 넘겨보라고 말하면서 계속 설명을 이어나갔다.

“원래는 각 조로 흩어져서 팀전으로 진행했었는데. 이번 아운대는 청팀 백팀, 둘로 나눠서 진행한다고 하더라. 우리는 백팀으로 갈 거야.”

백팀. 하니엘의 컬러와도 잘 어울리는 팀이 걸렸다.

“백팀 멤버들은 밑에 쭉 보면 나와 있지? 이번 주 주말에 각 팀별로 미팅해서 어느 멤버가 어떤 종목에 나갈지 미리 정한다고 하니까 그전까지 잘 생각해 봐.”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대표님이 당부한 건데.”

박도수 매니저가 목소리에 힘을 주면서 오채일 대표의 메시지를 강조해 말했다.

“한 종목이든 좋으니까 꼭 우승하래. 그래야 좀 더 화면에 오래 나올 수 있다고.”

솔로, 그룹 등 참가하는 가수팀만 하더라도 총 50여 팀이 넘는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단연 우승이다.

그러나 무대 덕분에 체력적으로 이미 정점을 찍은 아이돌들 사이에서 우승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려운 업적이라는 건 오채일 대표도, 박도수 매니저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한다.

이연도 같은 생각이었다.

박도수 매니저가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하라는 말을 남기고 숙소를 벗어나자마자 멤버들의 입에서 긴 탄식이 흘러나왔다.

“우승하라고 해도…….”

“보니까 쉽지 않을 거 같은데.”

50여 개 팀 중 작년 아운대에서 우승의 맛을 봤던 팀들도 몇몇 보였다.

심지어 그들 대부분이 청팀에 속해 있었다.

리샤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이거, 추첨 잘못한 거 아니야? 랜덤으로 돌렸다고 하기에는 너무 언밸런스인데.”

전력상 청팀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걸 그룹 중에서 독보적인 실력을 뽐냈던 아이비제이와 MAYO도 청팀에 배치되어 있었다.

적으로 만나게 된 선배들.

후배 입장에선 상당히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연은 크게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가서 잘하면 돼. 원래 스포츠엔 절대 강자라는 게 없으니까.”

잘하는 사람이 무조건 1등 하라는 법은 없다.

때로는 경기장의 환경에 따라, 그리고 그날의 컨디션에 의해 실력 차이가 나는 경우도 꽤 된다.

우미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연의 말에 동의했다.

“맞아. 그리고 우리에게는 연이하고 리샤가 있으니까.”

체육계 넘버 원, 넘버 투가 나란히 하니엘에 소속되어 있으니 왠지 모르게 든든함이 느껴졌다.

특히나 이연의 운동 신경은 가히 독보적이다.

남자들 못지않은 근력과 반사신경, 민첩함에 유연함까지 보유하고 있는 이연이라면 어느 종목에 가도 다 잘할 거란 믿음을 준다.

여기에 헬스가 취미인 리샤까지 힘을 보탠다면, 오채일 대표가 강조했던 ‘최소 한 종목 이상 우승하기’라는 목표도 꿈은 아니다.

대신에 주의할 게 있다.

어느 종목에 나갈지에 관한 것이다.

시우가 종목 명단을 쭉 훑어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흘렸다.

“눈치 싸움 엄청 치열하겠네요.”

남자 여자 육상, 릴레이 달리기, 양궁, 그리고 특이한 종목이 하나 섞여 있었다.

“e스포츠도 있네요?”

게임 종목도 따로 편성되었다.

이연은 박도수 매니저가 건네준 정보들을 보면서 속으로 여러 번 감탄을 삼켰다.

‘신기한 게 많네.’

전생에서는 검술, 창술, 승마, 마법 대결 등등이 기본이었는데.

이렇게 평화적인 대회는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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