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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243화 (243/299)

243화

제68화. 새로운 도전(1)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을 먹으면서 이연은 오랜만에 행복이라는 것을 느꼈다.

비록 눈앞에 있는 가족들이 루웰의 진짜 가족은 아니지만.

루웰이 ‘그’에서 ‘그녀’로 살게 된 동안만큼은 이들이 그의 진짜 가족인 셈이니까.

처음에는 많이 혼란스러웠을지 몰라도, 지금은 어느 정도 마음의 정리가 된 상태였다.

그래서일까.

어머니가 차려준 밥이 오늘따라 더 맛있게 느껴졌다.

그러나 맛과 먹는 양은 별개의 문제였다.

권민준은 누나의 식사량을 보면서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거밖에 안 먹고 힘이 나?”

“아직 활동 기간 끝난 게 아니니까.”

“앨범 활동은 끝났다면서.”

“방송은 계속 하기로 했어. 스케줄도 잡아두고 있고.”

“하긴…… 걸파이트 우승했으니까.”

연예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예인들은 수백, 수천 명이 존재한다.

단지 대중들에게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

극소수의 연예인들만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다 보니 기회가 왔을 때 언제든 붙잡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성공은 늘 준비된 자에게 오는 법이니까.

이연의 어머니가 아쉬움을 담아 물었다.

“그러면 숙소는 언제 다시 가는 거니?”

“모레요.”

“좀 더 오래 있다가 갔으면 좋겠는데…….”

“다음 앨범 활동 끝나면, 그때는 이번에 못 쉰 것까지 포함해서 휴식 기간을 길게 잡을 예정이니까 그때까지만 참아주세요.”

이연의 말에 어머니는 쓴 미소를 지었다.

사실 누구보다도 힘들 사람은 남매의 어머니도, 권민준도 아닌 권이연이라는 걸 잘 안다.

그런 이연이 가족들에게 오히려 이렇게 말을 하니까 딸이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안쓰럽게 느껴졌다.

“일도 좋지만 너무 무리하진 말렴. 힘들면 언제든 엄마한테 오고. 알았지?”

“네. 그렇게 할게요.”

언제든지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언제든 웃으면서 자신을 맞이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가족의 존재 의의가 이런 것이 아닐까.

잠시 멈췄던 이연의 젓가락질이 다시 시작되었다.

* * *

잠시 쉬는 동안, 이연은 촬영 때문에 그간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과 오랜만에 안부를 물을 생각이었다.

오늘은 이연이 기억하는 유일한 친구, 유혜영과 따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보기로 한 장소에 먼저 도착해 있던 유혜영이 이연을 보자마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연아! 여기야, 여기!”

오랜만에 휴가를 맞이한 이연보다도 유혜영이 더 들떠 있었다.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이연의 물음에 유혜영은 친구의 왼쪽 팔을 끌어안으면서 거리를 단숨에 좁혔다.

“오랜만에 너 만나니까! 티비 봤어. 내가 너 결승 무대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를 거야.”

가수들이 하나의 무대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지 유혜영도 얼추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남들은 무대를 보면서 환호할 때, 유혜영은 그럴 수가 없었다.

친구가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생각하니, 도저히 입에서 환호성이 나오지 않았다.

이연은 유혜영의 이런 모습이 내심 기뻤다.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울어줄 수 있다는 건 어떤 의미론 축복이기 때문이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서 미리 예약해 둔 식당을 찾은 그녀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직원, 손님 가릴 것 없이 전부 이연을 알아봤다.

여기저기서 팬 서비스 요청이 쇄도했다.

이연은 불편한 기색을 조금도 보이지 않으면서 사람들에게 사인을 해주거나 같이 사진을 찍는 등, 그들의 요청에 전부 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팬 서비스에 응하는 것 역시 아이돌로서 중요한 업무에 속하니까.

겨우 자리에 앉은 이연을 바라보는 유혜영의 눈빛에 존경이 깃들었다.

“안 힘들어?”

“힘들어도 아이돌이니까 사람들 앞에선 늘 웃어야지.”

“대단하네. 난 그렇게 하라고 해도 못하겠는데.”

친구가 잘나가는 아이돌이라서 그런지, 유혜영은 오늘과 같은 일을 곁에서 지켜볼 때마다 연예인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고 마냥 힘든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녀들이 주문한 적 없는 음료와 사이드 메뉴들을 가득 가져온 중년 남성이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이건 제가 드리는 서비스입니다. 부담 가지지 마시고 마음껏 드세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리고 조금 있다가 괜찮으시다면…… 사인 한 장 부탁드려도 될까요? 가게에 걸어두고 싶어서요.”

가게 입구 정면에 이곳을 방문했던 유명인들의 사인이 몇 개 걸려 있었다.

이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알겠다고 답했다.

그녀의 사인도 머지않아 다른 유명 셀럽들과 함께 저곳에 장식될 예정이었다.

사인 한 번으로 이렇게 호화스러운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람도 대한민국에서 굉장히 드물 것이다.

오늘도 친구 덕분에 호사를 누리게 된 유혜영은 먹거리로 가득한 테이블을 스마트폰 사진으로 남기면서 말했다.

“친구 잘 둔 덕분에 이런 경험도 하고. 좋네.”

이연은 그저 말없이 웃었다.

식사를 마치고 카페에 들려서 서로의 근황에 대해 물었다.

이연의 경우에는 이미 티비를 통해서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근황을 접했기 때문에 유혜영이 굳이 물어볼 것도 없었다.

“광고 제의 엄청 들어오지 않아? 잘나가는 연예인의 상징이 광고라고 하던데.”

“뭐…… 그렇지.”

벌써 계약 논의 들어간 것만 해도 5건에 달한다.

짧은 휴가가 끝나면, 이연은 한동안 방송 출연과 더불어서 광고 미팅에 여기저기 끌려다닐 예정이었다.

이런 일정이 딱히 싫은 건 아니다.

연예인으로서 바쁘다는 건 그만큼 자신을 찾아주는 곳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오히려 좋은 현상이라고 봐야 한다.

“혜영이, 너는?”

“나? 나는 뭐. 오빠 가게 일 도와주고. 평소랑 똑같지. 아, 맞다. 최근에 좋은 일 하나 생겼어.”

“뭔데?”

“우리, 곧 2호점 내기로 했거든. 이번에는 위치 좋은 곳으로.”

“잘됐네.”

유혜영과 그녀의 오빠가 운영하는 가게는 맛, 서비스 측면에서 보자면 일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커다란 단점이 하나 있었다.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거였다.

가게가 워낙 외진 곳에 있다 보니, 식사를 하러 오는 사람들은 무조건 차를 타고 와야 했다.

그나마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널찍해서 큰 문제는 없지만.

그래도 접근성이 높은 장소로 가게를 옮기든 해야 더 크게 번성할 수 있다.

유혜영 남매는 이 해결책으로 2호점을 택했다.

“2호점 운영은 어떻게 하려고?”

“맡길 만한 사람이 없어서. 2호점은 내가 가서 맡으려고.”

“그럼 사장님 되는 거네?”

부끄럼 때문일까. 유혜영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었다.

“아직은 아니야. 배워야 할 것도 많고. 그리고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해보기도 전에 먼저 겁먹지 마. 오히려 본점보다도 2호점이 더 잘 될 수 있잖아. 안 그래?”

성공할지, 실패할지.

이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이연은 이 세계로 넘어오기 전에 다양한 마법을 통달한 마법사들은 숱하게 봐 왔었다.

그러나 그들조차도 유일하게 정복하지 못한 분야가 있었다.

미래를 보는 것. 대마법사라 불리는 이들조차도 앞으로 벌어질 일을 완벽하게 예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았다.

그래서 이연은 무대에 오르기 전에 늘 생각한다.

시작하기 전부터 망했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 무대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유혜영도 마찬가지다.

“너라면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내가 보증할게.”

힘을 주는 친구의 모습에 유혜영은 진한 감동을 받았다.

“가족들끼리도 안 서주는 게 보증이라고 하던데.”

“그만큼 너를 믿는다는 뜻이지.”

“고마워, 연아. 사실 오늘 아침에도 가게 인테리어 공사하는 거 보고 오면서 걱정했었는데. 네 덕분에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어.”

이연은 늘 그녀에게 힘이 되어준다.

유혜영네 가게가 잘 되게 된 것도 전부 이연이 힘을 실어준 덕분이었다.

“늘 너한테 도움만 받네.”

이연은 미안해하는 친구를 보면서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2호점 잘 되면 놀러 갈게.”

“언제든지 와! 지갑은 가져오지 말고. 너라면 내가 풀코스로 대접할 테니까!”

그렇게 유혜영과 오순도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이었다.

테이블 위에 올려둔 이연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박도수 매니저한테서 온 전화였다.

“미안. 전화 좀 받을게.”

“응. 괜찮아. 매니저님한테서 온 거지? 급한 일일 수도 있으니까 얼른 받아 봐.”

박도수 매니저는 웬만하면 휴가 때 멤버들에게 연락을 잘 안 하려고 하는 타입이다.

그런 그가 연락을 해왔다는 것은.

이연에게 꼭 말해줘야 하는 중요한 일이 생겼음을 뜻하기도 했다.

“여보세요.”

―어, 연아. 휴가 중에 연락해서 미안해. 너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데.

“어떤 건데요?”

잠시 뜸을 들이던 박도수 매니저가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을 꺼냈다.

―혹시 연기해 볼 생각 없어?

* * *

휴가가 끝나고 다시 숙소로 복귀한 이연은 멤버들과 환영 파티를 가질 시간도 없이 곧장 소속사로 향했다.

박도수 매니저를 비롯해서 홍류현 실장, A&R의 장현수 팀장, 그리고 오채일 대표까지 회의실에 자리를 잡고 이연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니엘이 LC 엔터테인먼트의 주축으로 자리 잡아서일까. 요즘은 하니엘에 관련된 일이라면 오채일 대표가 자주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이연은 박도수 매니저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에 대해 다시금 곱씹었다.

“저한테 캐스팅 제의가 왔다고 했었죠?”

“어. 윤성준 PD님이라고, 너도 누군지 알고 있지?”

“네. 잘 알죠.”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PD 중 한 명이다.

아시아계 최초로 드라마 쪽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이기도 한 마스터피스 레미상에서 무려 7관왕을 차지한 남자.

연예계에 종사하는 모든 배우들이 그의 작품에 출연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런 윤성준 PD가 최근에 주목하고 있는 핫한 셀럽이 있었다.

그게 바로.

“연이, 너를 단역으로 캐스팅하고 싶으시대.”

“PD님이 직접 저를 지명하셨다고 했죠?”

“어. 맞아.”

윤성준 PD는 이전부터 굉장히 파격적인 캐스팅으로 유명했다.

무조건 이름난 배우를 쓴다기보다는 무명이라도 연기 실력과 잠재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과감하게 주연으로 캐스팅하곤 했다.

그의 성향을 고려한다면, 이연의 캐스팅 제의는 크게 놀랄 것도 아니었다.

“근데 어떻게 하다가 저한테까지 캐스팅 제의가 오게 된 거예요?”

이연은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했던 적이 없었다.

그녀의 연기 실력을 볼 기회조차 없었을 텐데.

아니, 사실 따지고 보면 기회는 많았다.

오채일 대표가 대신 설명을 이었다.

“걸파이트 파이널 무대를 보셨나 봐. 무대에서 네가 노래 부르는 거 보고 마음을 정했다고 하더라.”

노래와 춤, 그리고 연기까지. 무대는 모든 것들이 들어간 종합예술의 끝이니까.

“참고로 연기만 너한테 맡기려는 게 아니고. OST 곡도 같이 불러주셨으면 좋겠대. 어때. 한번 해볼래? 만약 의향이 있다면, 대본 달라고 해볼게.”

모두의 이목이 이연의 입에 집중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고민 끝에 그녀의 작은 입술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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