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제65화. Free(3)
우연한 만남을 통해서 이런 고급 정보를 얻게 될 줄은 이연도 몰랐다.
그녀가 생각보다 담담한 목소리로 ‘그래요?’라고 반응하자, 오히려 아야가 더 당황했다.
“괜찮아? 아이비제이 트윙클 선배님들이 너희 그룹 노래로 연습하고 있다는데.”
이연은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네.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선배님들이 많은 노래들 중에서 저희 그룹의 곡을 골랐다니까 영광이라고 생각해야죠.”
그만큼 하니엘의 곡이 무대를 펼치기에 좋은 노래라는 뜻이기도 하다.
혜원의 성격상, 단순히 하니엘을 골탕 먹이기 위해서 그녀들의 곡을 고르진 않았을 것이다.
노래가 좋으니까. 이런 요소도 고려를 안 할 수가 없다.
다른 방면으로 수를 쓴다 할지라도 결국은 자신들의 무대가 좋아야 더 많은 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연은 이렇게 담담한 반응을 보일 수 있었던 거였다.
아야는 이연의 이런 모습이 신기했다.
“우리는 선배님들한테 지목당했을 때 속으로 엄청 당황했었는데.”
아이비제이 트윙클이 MAYO의 곡으로, MAYO가 아이비제이 트윙클의 곡으로 서로 무대를 꾸몄던 적이 있었다.
그때 시청자들 사이에서 상당히 큰 회자가 되었는데.
“생각해 보니까 저희도 아이비제이 트윙클 선배님 곡으로 준비 중이었네요.”
“맞아, 그랬지! 어머어머, 세상에.”
이번에는 MAYO 대신 하니엘이 아이비제이 트윙클과 정면 대결을 벌이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는 서로가 서로의 무대를 평가하고 점수를 매기는 형식으로 진행했었는데.
이번에는 어떤 방식으로 심사가 진행되는지, 정보가 일절 없었다.
“선배님. 자유 미션은 심사 어떻게 하기로 했는지 들은 거 있나요?”
“아니, 전혀. 너희는?”
이연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본인들도 마찬가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미션 내용은 어차피 자유니까 크게 상관은 없는데.
누구에게 평가를 받을지. 이런 것들을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자꾸 숨기려고 하니까 괜히 느낌이 좋지 않았다.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을지에 대한 생각이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계속 들고 있었다.
참가자들에게 알려준 제작진의 정보는 하나밖에 없었다.
당일 녹화 진행할 때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라고.
한마디로 말해서, 그때까지는 알려줄 생각이 일절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아야와 MAYO 멤버들도 이에 관해 상당히 궁금해 하고 있었다.
“설마 글로벌 미션 때처럼 어느 한쪽한테 유리한 심사 위원들을 데려오진 않겠지?”
“선배님도 글로벌 미션 내용이 마음에 안 들으셨나요?”
이연의 물음에 아야는 ‘당연하지!’라고 답했다.
“나, 그런 식으로 이기는 거 안 좋아해. 정정당당하게, 공평하게 붙어서 이겨야 재미있는 거지. 일방적으로 유리한 환경에서 이기면 무슨 의미가 있겠니?”
혜원과 비슷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MAYO와 같이 무대를 준비할 당시만 하더라도 이연과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던 아야.
그러나 아야가 이런 신념을 가진 아이돌이라는 걸 알게 되자, 이연의 마음속에 있는 그녀의 이미지가 한 단계 상승했다.
“아무튼 정보 들어오는 거 있으면 서로 공유하자. 알았지?”
“네, 선배님.”
MAYO와의 동맹 관계는 늘 든든하다.
둘 다 아이비제이 트윙클이라는 공공의 적을 두고 있으니까.
걸파이트 시즌 2가 끝날 때까지, 하니엘과 MAYO의 협력 체계는 아직도 견고했다.
* * *
이연은 아이비제이 트윙클이 하니엘의 곡을 이용해서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멤버들에게도 전부 공유해 줬다.
처음에는 크게 당황했던 멤버들이었지만, 그녀들도 아이비제이의 노래를 고른 입장이다 보니 뭐라 할 말은 없었다.
단지 본의 아니게 선배 그룹과 묘한 대결 구도가 펼쳐지게 되었다는 게 신경 쓰일 뿐.
그래도 연습에 큰 지장은 없었다.
기상 안무를 빼고 새로운 퍼포먼스를 넣는 과정도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오히려 멤버들 사이에선 새로 도입된 안무 동작이 더 편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기상 안무 동작의 경우에는 스테이지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다가 다시 일어서고. 이런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데.
새로운 퍼포먼스는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번거로움이 많이 줄어들었다.
이것만으로도 호평이었다.
그렇다고 너무 안일하게 무대를 준비할 수는 없었다.
“한 번만 더 해보자.”
이미 연습 시간을 훌쩍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이연은 ‘원 모어’를 주장했다.
멤버들의 표정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고개를 수평이 아닌, 수직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번 2차 팀 미션에 사활을 걸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연습을 연장하고 또 연장하다 보니 시간이 금세 새벽 2시에 도달했다.
은서해가 나서서 그녀들의 연습을 만류할 정도였다.
“오늘은 그만하고. 다음 건 내일 이어서 하자. 녹화도 얼마 안 남았는데, 컨디션 조절해야지.”
멤버들은 은서해의 조언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너무 오랫동안 연습에 집중했던 여파 때문일까.
멤버들은 숙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벌써부터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이연은 잠이 든 멤버들의 모습을 한 차례씩 훑어보면서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잘 따라와 주고 있어서 대견하네.’
처음에 하니엘을 결성했을 때에 비하면 그녀들도 많이 성장했다.
언젠가는 아이비제이를 재치고 4세대 걸 그룹의 정상에 우뚝 서는 그날이 오기까지.
이연은 멤버들과 쭉 함께할 것을 속으로 몰래 다짐했다.
* * *
마침내 파이널 라운드 2차 팀미션 녹화날이 밝았다.
스튜디오에 도착한 순간부터 대기실에 이를 때까지.
이연은 뭔가 석연치 않은 것을 본 사람처럼 표정이 잔뜩 굳어져 있었다.
이연의 이런 모습에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사람은 여솜이었다.
“연아. 아까부터 왜 그래?”
신경 쓰이는 거라도 있는지 물었다.
그제야 이연의 무거웠던 입이 열렸다.
“이상해.”
“이상하다니? 어떤 게?”
“아까 스튜디오 봤을 때, 무대 준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안 들었어.”
무대가 있는 날에는 늘 스태프들이 분주히 움직이곤 했었다.
일반 녹화에 비해서 준비해야 할 게 훨씬 많기 때문이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준비해도 모자랄 판국에.
오히려 평소 녹화보다도 더 널널하게 움직이고 있으니, 이연 입장에서 보기에는 당연히 납득이 안 갈 수밖에 없었다.
리샤가 농담조로 자신의 생각을 꺼냈다.
“혹시 제작진분들, 오늘 우리가 2차 팀 미션 공연 있다는 거 잊으시진 않았겠지?”
그럴 일은 절대로 없다.
황이전 PD는 가요 프로그램에서 일했던 스태프인 만큼 무대 준비에 관해서는 꼼꼼하게 신경을 쓰려고 하는 편이었다.
물론 그래도 글로벌 미션 때처럼 가끔씩 사고가 펼쳐지긴 하지만, 그래도 어차피 녹화방송이니까. 크게 의미는 없었다.
아무튼 황이전 PD와 제작진의 평소 스타일을 생각한다면 오늘의 분위기는 확실히 이상했다.
의구심이 깊어지던 때에, 스태프가 하니엘이 있는 대기실을 찾았다.
“5분 뒤에 녹화 시작하겠습니다. 멤버분들 전부 스튜디오로 모여주세요.”
“5분 뒤라고요?”
우미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재차 물었다.
그러자 스태프는 ‘네’라고 대답하면서 자신의 말이 맞음을 재차 확인시켜 줬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녹화가 시작될 줄은 몰랐다.
이연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단 가보자.”
가봐야 제작진이 무슨 계획을 꾸미고 있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
* * *
현장에는 여전히 공연을 앞둔 무대라고 부를 만한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냥 평소 스튜디오 녹화 때와 똑같았다.
아니, 오히려 그때보다 더 규모가 줄은 느낌이었다.
어리둥절하는 아이돌들 앞에 정확히 5분 뒤, 민주린이 모습을 나타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민주린은 아이돌들과 달리 뭔가 들은 바가 있는 모양인지 당황해하는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지금 많이 당황스럽죠?”
말해 무엇하랴.
아이돌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눈치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오늘은 이곳 말고 다른 곳에서 공연하시게 될 겁니다.”
이연의 예상대로였다.
장소가 바뀌는 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바뀌는 장소가 실내가 아닌 실외라고 한다면, 꽤나 큰 변수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은 밖으로 나가셔서 각각 여섯 개의 지역으로 흩어져 동시에 공연을 하실 겁니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거리에서 무대를 펼치실 텐데, 점수 역시 현장 투표로 바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한마디로 게릴라 무대였다.
지금까지 걸파이트 시즌 2를 진행하면서 야외 무대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일까. 아이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투표권도 현장에 무대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에게 즉석으로 부여해서 진행하겠다고 하니.
그야말로 게릴라 투성이였다.
문제는 지역이다.
“지역 선정은 어떻게 정할지, 다들 알고 계시겠죠?”
아이돌들은 이것만큼은 확실하게 예상할 수 있다면서 자신감을 드러냈다.
“네.”
“제비뽑기 아닌가요?”
민주린이 곧장 정답이라고 알려줬다.
“박스 안에 일곱 개의 공이 들어 있습니다. 각 팀의 대표가 나와서 이 공을 뽑아주시기만 하면 돼요.”
이연이 설명을 듣자마자 비아를 가리켰다.
“비아야. 네가 가서 뽑아.”
“언니가 뽑는 거 아니었어?”
“나는 많이 했으니까.”
원래대로라면 이연이 할 생각이었다.
자신이 뽑게 되면, 마법을 이용해서 그나마 젊은 사람들의 왕래가 잦고 이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지역을 원하는 대로 고를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투시 마법으로 상자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자마자 이연은 이 생각을 접어버리고 말았다.
공에 지역명이 적혀 있을 줄 알았는데.
숫자만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면 의미가 없지.’
어떤 숫자가 어느 지역을 가리키는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냥 아무나 가서 아무 숫자나 뽑는 게 낫다.
비아가 비장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순서에 따라서 비아가 박스 안에 손을 불쑥 집어넣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숫자는 ‘4’였다.
숫자를 보자마자 유키가 짧게 윽 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뭔가 불길한데요.”
느낌이 많이 좋지 않았다.
각 팀이 모든 숫자들을 뽑고 나서야 지역이 공개되었다.
대형 화면 위에 각각 번호가 적힌 지도가 공개되었다.
거리 문제 때문인지 일곱 개 지역 전부 다 수도권에 분포되어 있었다.
그녀들이 현재 있는 방송국을 기점으로 가장 먼 지역은 인천.
가장 가까운 지역은 홍대입구역 근처였다.
지역이 발표되자마자 원더존 쪽에서 기쁨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홍대입구역에 당첨된 덕분이었다.
반면, MAYO 쪽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인천에 걸린 탓에 약간의 아쉬움을 토로하는 분위기였다.
하니엘의 경우에는 삼성역 근처로 결정되었다.
모든 팀들이 지역을 할당받음과 동시에 민주린이 재차 순서를 진행했다.
“이동은 바로 시작해 주시면 됩니다. 대신에 공연 개시 시간은 오후 2시로 동일하게 진행될 예정이니, 그 전까지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시기 바랍니다.”
“네!”
정신없이 움직여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