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230화 (230/299)

230화

제65화. Free(1)

마지막 음악방송 출연을 위해 하니엘 멤버들은 새벽부터 부지런히 준비에 나섰다.

샵에 들어서자, 데뷔 앨범 때부터 지금까지 쭉 그녀들의 미용을 책임졌던 원장이 아쉬운 목소리를 냈다.

“마지막이라니까 내가 더 아쉽네.”

이연의 긴 머리카락을 만지며 말하는 원장의 표정에 진심이 묻어 나왔다.

샵 원장은 하니엘의 열성팬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두 번째 앨범 활동의 마지막 음방 소식을 접했을 때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원장뿐만 아니라 다른 샵 직원들도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이연은 걱정할 필요 없다면서 그녀들을 위로했다.

“아직 걸파이트가 있으니까요.”

“근데 그것도 이제 얼마 안 남았잖아요.”

원장의 말이 맞다.

이제 남은 무대는 파이널 라운드 2차 팀 미션, 그리고 최종 미션.

이렇게 둘뿐이다.

“시청자 입장에선 너무 아쉬워요. 좀 더 보고 싶은데.”

그러나 참가자 입장에선 빨리 끝나는 편이 차라리 낫다.

왜냐하면 녹화 한 번 한 번 할 때마다 피가 말리기 때문이었다.

SSS에서 이미 이런 비슷한 경험들을 많이 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까 그렇지 않았다.

옆에서 원장의 말을 듣고 있던 비아가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저는 당장에라도 끝났으면 좋겠어요. 오늘도 음방 끝나면 저녁에 또 연습하러 가야 한다구요.”

“그러고 보니 이번 미션 내용은 뭐예요?”

“그건…….”

비아가 자신도 모르게 미션 내용을 말하려고 하던 순간.

찌릿.

이연이 눈을 흘기면서 비아에게 무언의 압박감을 선사했다.

덕분에 비아는 손으로 급하게 자신의 입을 텁! 하고 막을 수 있었다.

“큰일날 뻔했다…….”

다행이라고 안도하는 비아와 달리, 원장은 아쉬운 모양인지 짧게 혀를 찼다.

“거의 다 넘어왔는데.”

이연이 한발 빨랐다.

걸파이트뿐만 아니라 프로그램 녹화에 관한 내용은 가급적 외부로 발설해선 안 된다.

비밀 엄수 조약이라는 게 걸려 있기 때문이다.

스포일러를 하게 되면 그걸 접한 기자들이 분명 기사로 실어서 내보낼 테고. 사람들이 전부 내용을 알게 되면 해당 편수에 대한 재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나 걸파이트 같은 경연 프로그램은 더욱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사람의 호기심은 왕성한 법.

원장이 여러 차례 유도 심문을 해봤지만, 비아는 절대로 넘어가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결국 이연이 나섰다.

“나중에 방송으로 보시면 돼요, 원장님.”

아쉽지만, 이연이 나선 이상 더는 캐물을 수 없었다.

하니엘의 리더는 무섭기 때문이다.

* * *

마지막 음악방송 리허설을 위해 멤버들이 모두 무대에 섰다.

중간에 촬영감독이 그녀들에게 물었다.

“오늘 막방인데. 엔딩 때 뭐 특별한 퍼포먼스 같은 거 준비하셨나요? 만약에 준비하셨으면 저희한테 미리 말씀해 주세요.”

그래야 제작진 입장에서도 그녀들에게 맞춰주기가 쉽기 때문이다.

딱히 그런 건 준비하지 않았다.

데뷔 앨범 때에도 그랬고.

그녀들을 대신해서 촬영감독이 아이디어를 하나 제공했다.

“팬들에게 메시지 같은 거 적어서 보여주면 어떨까요? 지난번에 어떤 걸 그룹은 손바닥에 ‘사랑해’라고 하트까지 적어서 보여주던데. 그거 아이디어 괜찮아 보이더라고요.”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종이에 적을 거 없이 손바닥에 뭔가를 적어두면, 나중에 주섬주섬 꺼낼 필요도 없고.

그냥 손바닥만 바로 펼쳐서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안무할 때에도 크게 방해가 되진 않을 것으로 보였다.

우미가 멤버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우리도 저거 할까? 어때?”

“나는 찬성.”

“괜찮은데?”

문제는 과연 누가, 어떤 메시지를 손바닥에 적어서 보여줄지에 대한 거였다.

갑작스럽게 투표가 시작되었다.

가장 빨리 의견을 내비친 사람은 의외로 시우였다.

“전 연이 언니가 했으면 좋겠어요.”

이연을 동경하고 있는 이연바라기다운 의견이었다.

비아와 유키도 이에 동의했다.

막내즈 멤버 셋이 의견을 뭉치자, 순식간에 이연에게만 3표가 몰렸다.

다른 사람들도 막내즈 멤버들의 생각과 동일했다.

“연이가 마지막을 장식하는 게 가장 잘 어울리니까.”

“우리 그룹의 상징이고.”

“연이로 결정!”

정작 이연 본인은 한 마디도 안 했는데. 순식간에 자신이 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렇다고 거절할 수도 없었다.

자신에게 만장일치로 표가 쏠렸기 때문이다.

한숨을 푹 내쉰 이연이 마지못해 알겠다고 답했다.

하기로 한 사람은 정해졌으니까.

이제부터는 메시지를 떠올릴 차례다.

“연이, 너는 어떤 게 좋을 거 같아?”

엔딩 요정 선정은 멤버들이 했으니까.

메시지는 이연에게 양보하기로 했다.

“‘엔딩 요정 맡기지 마라’ 같은 거.”

“그랬다가 무슨 욕을 먹으려고.”

“농담이야.”

그냥 이연의 심정을 약간 어필해 보고 싶어서 해본 말이었다.

메시지는 특별할 거 없이 무난한 게 좋아 보였다.

“‘하니유 사랑해’로 가자.”

팬들에 대한 사랑을 어필하는 것으로 음방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기로 했다.

대기실로 돌아오자마자 멤버들 중에서 가장 명필로 인정받고 있는 우미가 직접 검정 사인펜을 들었다.

왼손에 ‘하니유’라는 단어를 적고.

오른손에 ‘사랑해’를 적었다.

사인펜 끝이 이연의 손바닥을 간지럽힐 때마다 그녀는 온몸이 찌릿찌릿하는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우미가 이연의 양 손바닥에 자신의 손바닥을 착, 착 마주치면서 말했다.

“자, 완성.”

지켜보던 여솜이 불안한 마음을 드러냈다.

“이거, 안 지워지겠지?”

“아마도?”

열심히 준비했는데. 막상 이연이 손바닥을 펼쳤을 때 글씨를 못 알아볼 정도로 지워져 있으면 이래저래 낭패다.

이연은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하면서 둘을 안심시켰다.

“안 지워지니까 괜찮아.”

혹시 몰라서 이연은 자신의 손바닥에 얇은 마나를 펼쳐 발라두기로 했다.

이러면 손바닥에 닿는 모든 것들을 일절 차단시킬 수 있다.

손바닥에 땀이 나도 마나가 알아서 흡수해 주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뒤.

녹화가 시작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자신들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막방이다 보니 오늘은 하니엘이 오랜만에 마지막 순서를 장식하게 되었다.

하니엘을 필두고 걸파이트 시즌 2에 참가하는 그룹들 역시 한 팀 한 팀씩 음악 프로그램 막방을 선보일 예정이다.

다들 파이널 라운드에 전념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대기실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는 사이.

누군가가 똑똑 노크를 하면서 대기실을 찾았다.

“안녕, 얘들아.”

“어머, 선배님!”

오랜만에 이은솔이 하니엘의 대기실을 찾았다.

그녀의 등장에 하니엘 멤버들은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놀란 심정을 감추려고 노력했다.

“너희 오늘 막방이라고 해서 왔지.”

SSS부터 맺어진 인연이니까.

마침 하니엘 대기실이 보이기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걸파이트는 어때. 준비 잘되어가고 있어?”

“오늘 첫 연습하기로 했어요.”

“그래? 다음 미션 내용은 벌써 공개된 거야?”

비아가 신이 난 표정으로 외쳤다.

“네! 뭐냐면…….”

이연이 나서기도 전에 이은솔이 먼저 그녀를 만류했다.

“괜찮아. 미션 내용 말 안 해줘도 돼. 아직 방송으로 안 나간 내용이잖아. 맞지?”

“아…… 네, 맞아요.”

“그러면 말을 아끼는 게 좋아. 특히 방송국에서는. 한마디 잘못했다가 기자가 듣기라도 하면 큰일이거든.”

샵 원장과 현역 연예인의 차이가 여기서 보였다.

대신에 이은솔은 간접적으로 하니엘의 현 상태에 대해 묻고 싶었다.

“어때? 이번 미션은 할 만할 거 같아?”

이은솔의 시선은 이연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이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네. 이번에는 저희가 무조건 1위할 거예요.”

이은솔이 이연에게 호감을 품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언제, 어떤 상황에 처하든 늘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여자.

“이번에도 응원하고 있을게. 힘내.”

“감사합니다, 선배님.”

이은솔 덕분에 이연과 하니엘은 좋은 기운을 얻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 * *

음악 프로그램 마지막 방송을 위해 무대에 오른 멤버들.

마지막이라는 말 때문에 그런 걸까.

오늘은 평소보다 더 기합이 들어가 있었다.

양손을 골판에 걸친 뒤에 엉덩이를 왼쪽, 오른쪽 방향으로 한 번씩 튕기는 이연의 모습에 팬들은 귀엽다며 격하게 환호했다.

이연이 가장 부끄러워하는 안무 동작이었지만, 팬들은 반대로 이 파트를 가장 좋아했다.

마지막 마무리를 위해 흩어져 있던 멤버들이 무대 가운데로 몰려들었다.

카메라 감독이 급하게 다가와 이연을 비쳤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이연은 마치 꽃이 개화하듯 양 손바닥을 천천히 펼치면서 팬들을 향해 준비한 메시지를 선보였다.

[하니유, 사랑해♡]

애교 넘치는 이연의 귀여운 메시지 덕분에 객석을 가득 채운 팬들은 또 한 번 열광했다.

무대를 마치고 내려오면서 우미가 그럴 줄 알았다는 어투로 말했다.

“거 봐. 하자고 하길 잘했지?”

“그러게. 저렇게 좋아해 주실 줄은 몰랐어.”

“나는 그것보다도 메시지 안 지워져서 다행이야.”

“근데 연이 언니 손은 왜 그렇게 멀쩡해? 우리들은 땀 나서 이렇게 축축한데.”

짧은 무대라 할지라도 안무 동작이 격한 데다가 긴장까지 하고 있으니까 땀이 나는 건 당연했다.

그럼에도 이연의 손은 굉장히 보송보송했다.

마법 덕분에……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당연히 믿어줄 리가 없었기에 이연은 평소에도 그렇듯 다른 핑계를 댔다.

“땀 안 나게 최대한 노력했지.”

“그게 노력으로 되는 거였어?”

“하면 다 돼.”

오늘도 멤버들의 마음속에 이연에 대한 미스터리가 또 하나 적립되었다.

* * *

음악방송 마지막 공연을 마친 그녀들은 순위를 확인하기 위해 다른 선후배 그룹들과 함께 다시 무대에 올랐다.

수많은 가수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진행을 맡은 이은솔이 큐시트를 들고서 크게 외쳤다.

“이번 주 1위 후보를 만나보시겠습니다!”

화면이 바뀌면서 1위를 두고 경쟁하게 될 두 후보를 공개했다.

한 명은 최근에 컴백해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남성 듀오팀, 에이티알.

그리고 다른 한 팀은 하니엘이었다.

하니엘 입장에선 꽤나 오랜만에 1위 후보 자리에 오른 셈이었다.

컴백을 기점으로 초반에는 밥 먹듯이 1위 후보로 거론되곤 했었지만, 다른 걸파이트 참가 그룹들이 연달아 컴백을 하면서 점점 순위가 낮아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막방 버프 덕분인지 다시 1위 후보 자리 하나를 꿰차게 되었다.

하니엘을 응원하기 위해 현장을 찾은 수많은 하니유들이 응원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많은 기대 속에서.

“영예의 1위, 공개해 주세요!”

하니엘과 에이티알의 모습을 번갈아 비추던 화면이 어느 순간 멈췄다.

정지되어 있는 화면 속 주인공의 정체는.

“이번 주 1위, 하니엘!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려요!”

폭죽과 함께 MC들의 축하한다는 말이 그녀들에게 향했다.

오랜만의 1위라서 그런지, 멤버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벌써부터 울먹이기 시작했다.

이럴 때에는 늘 이연이 수상 소감을 도맡곤 한다.

“오늘 저희 음방 마지막 무대였는데, 이렇게 뜻깊은 선물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 앨범에도 더 왕성하게, 열심히 활동할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마지막으로 팬 여러분들, 사랑해요!”

믿음직한 리더의 마지막 멘트를 끝으로.

하니엘의 두 번째 앨범 음악방송이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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