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229화 (229/299)

229화

제64화. 글로벌 미션(4)

계단을 올라 무대에 섰을 때, 하니엘 멤버들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위화감을 느꼈다.

이상했다.

분명 이전까지 쭉 섰던 스튜디오인데도 불구하고 뭔가 공기가 달랐다.

아무래도 지금까지와는 무대와는 다른 콘셉트로 무대를 꾸며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이런 위화감이 드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연은 멤버들과 전혀 다른 형태의 위화감을 느꼈다.

혹시 자신이 뭔가 잊은 게 있나 싶어서 재차 확인을 했지만.

‘딱히 없는데.’

그럼에도 은연중에 느껴지는 이 낯선 감각은 계속해서 이연을 신경 쓰게 만들었다.

무대 시작 신호와 함께.

이연은 처음에 느꼈던 불안감이 뭔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반주가 흘러나오자마자 멤버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이연이 양팔을 X자로 교차시켰다.

“스톱! 노래, 잘못 나왔어요.”

이연과 하니엘이 준비한 무대는 HUG다.

그러나 다섯 번째 순서로 배치되었던 CDP의 반주가 깔리게 된 거였다.

음향 쪽의 중대한 실수였다.

음향 감독이 자신이 데리고 있는 스태프의 실수임을 인정하고 하니엘에게 재차 사과했다.

시작하기도 전에 흐름이 끊어져 버리고 말았다.

이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일인지, 음향감독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여기서 하니엘이 음향감독을 크게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실수는 실수고.

무대는 무대니까.

이연은 당황했을 멤버들을 다시금 다독이면서 괜찮다는 말을 반복했다.

“액땜했다고 생각하자. 알았지?”

멤버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연의 말대로 방금 일은 빠르게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려고 노력했다.

이제야 노래가 정상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반주에 맞춰서 멤버들이 안무 동작을 취했다.

잠시 소란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하니엘 멤버들은 준비한 대로 착착 무대를 펼쳐갔다.

I'll give you a hug, hug, hug.

Come to me, my love.

Let's burn this night up!

데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름 영어 발음 연습도 많이 했었다.

그래서인지 멤버들은 외국인이 들어도 전혀 거슬리지 않을 만큼 영어 가사를 소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외국인 청중평가단 사이에서 하니엘의 인지도는 원더존과 함께 가장 적은 편이었다.

걸파이트 시즌 2를 통해서 한창 핫한 그룹 반열에 올라서긴 했지만.

이걸 반대로 해석하면, 걸파이트 시즌 2에 관심이 없는 시청자들에게는 여전히 하니엘이 미지의 그룹이라는 소리이기도 했다.

외국인들 대부분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본인이 하니유임을 밝힌 외국인 팬도 몇몇 있긴 하지만, MAYO처럼 그 숫자가 광범위하게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연과 하니엘은 더더욱 열심히 무대를 꾸며야 했다.

최대한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

그녀들이 노력이 50인의 외국인들 마음에 닿은 건지, 처음에 비해서 지금 객석의 온도는 많이 뜨거워졌다.

그녀들의 목표는 객석에 앉아 있는 이들 모두의 머릿속에 하니엘이라는 그룹 명칭을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거였다.

무대가 끝나고. 이연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들의 목적이 무사히 달성되었음을.

“감사합니다!”

“저희, 잘 부탁드려요!”

그녀들의 마무리 멘트에 다시 한번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자신을 스스로 하니유라고 소개했던 외국인 역시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니엘을 응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연은 그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하니유를 위한 이연만의 작은 팬서비스였다.

* * *

두 번째라서 많은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장점이 있었다.

리샤가 자리에 털썩 앉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무대 빨리 끝나서 좋네. 이제는 마음 편히 다른 선배님들 공연 보면서 기다리기만 하면 되잖아.”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말이 정말이었다.

멤버들도 리샤의 말에 깊은 공감을 표현했다.

편안한 의상으로 갈아입은 이연은 세 번째 순서로 배치된 펼칠 아이비제이 트윙클의 무대에 집중했다.

이연은 그녀들이 본가 노래를 가져와서 공연을 펼칠 줄 알았었는데.

의외로 아이비제이 트윙클의 첫 데뷔 타이틀곡을 가지고 무대에 올라섰다.

‘하긴. 안 그래도 영어로 개사해서 불러야 하는데. 9명이 불렀던 노래를 가지고 오기에는 많이 부담스럽겠지.’

최대한 편안한 여건에서 최고의 무대를 펼치겠다.

선곡에서 이런 의도가 다분하게 느껴졌다.

다들 이번 미션에서 최대한 좋은 성적을 일궈내기 위해 나름의 전략을 들고 나왔다.

아이비제이 트윙클의 무대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번에도 상당히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는 그녀들의 모습에 하니엘 멤버들은 어느 순간 푹 빠져들었다.

모니터 너머에 있는 세 여자가 자신들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라는 사실도 잠시 잊어버릴 정도였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을 지닌 아이비제이 트윙클 멤버들.

아이돌로서 최고의 무기를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그녀들의 무대가 끝나자마자 시우는 연속으로 감탄사를 흘렸다.

“역시 선배님들이시네요.”

매 순간마다 놓칠 거리가 전혀 없었다.

그냥 모든 동작들이 다 사랑스럽고, 다 예뻐 보였다.

경쟁 팀한테도 이렇게 느껴지는데. 하물며 관객들은 어떨까.

이미 외국인 청중평가단들은 아이비제이 트윙클이라는 그룹에 푹 빠져든 상태였다.

앞에는 MAYO가. 뒤에는 아이비제이 트윙클이.

하니엘은 졸지에 고래들 사이에 끼어버린 새우 신세가 되었다.

* * *

차례차례로 다른 팀들의 무대가 이어졌다.

아이비제이 트윙클 이후에는 소수 그룹에 포함되어 있는 일본어 개사 팀들이 연달아 무대를 꾸몄다.

가을소녀, CDP. 둘 다 일본 쪽 걸그룹 느낌을 풍길 수 있는 콘셉트를 지닌 노래를 가져왔다.

청순, 그리고 귀여움.

무대 의상도 이 콘셉트에 걸맞게 교복 느낌이 나는 옷으로 준비했다.

두 팀의 무대가 끝나고 원더존의 차례가 도래했다.

원더존도 하니엘과 마찬가지로 데뷔 앨범 타이틀곡을 영어로 개사했다.

동일한 방식을 취했지만, 하니엘과 비교했을 때 약간 아쉬움이 남는 공연이 되었다.

특히 라이브 쪽에서 많은 실수를 범했다.

아마 가사가 입에 잘 달라붙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마지막은 샤이걸스가 장식했다.

보컬만큼은 그 어떤 팀들과 비교해도 뛰어난 면모를 보이는 그룹답게 안정적인 라이브 실력을 뽐냈다.

특히나 앞에서 원더존이 라이브에 약한 면모를 보였던 터라 샤이걸스의 무대가 더 돋보이는 효과를 낳았다.

그렇게 참가했던 일곱 개 팀의 모든 무대가 마침내 전부 마무리되었다.

제작진이 청중평가단들의 평가 점수를 취합하는 사이, 멤버들은 대기실에서 잠시 쉬며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스태프가 다시 대기실을 찾아왔다.

“마무리 녹화하겠습니다. 스튜디오로 모여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결과가 다 나왔다는 것을 뜻했다.

항상 무대가 끝나면, 이런 식으로 모든 참가팀이 한자리에 모여 결과를 듣는다.

이 순간이 경쟁에 참가했던 아이돌들에게 매번 긴장감을 준다.

여솜은 벌써부터 심장이 크게 뛰기 시작한 모양인지, 양손을 자신의 가슴 위에 올려두는 자세로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뒤에서 리샤가 그녀를 안아주면서 팀원을 진정시켜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사이, 이연은 다른 팀들의 동향을 살폈다.

MAYO는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힌 팀답게 담담한 표정으로 순위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혜원과 아이비제이 트윙클 역시 MAYO와 비슷한 반응을 취하고 있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이번만큼은 이연조차도 예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평소였더라면 당연히 하니엘이 우승할 거라고 강한 자신감을 보였겠지만.

이번에는 변수가 너무 많았다.

특히 하니엘이 MAYO 바로 뒤로 배치될 거라고는 예상 못 했다.

게다가 무대 시작하기 전에 음향 쪽 실수도 있었고.

그 와중에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쉬움을 완벽하게 지우진 못했다.

최대한 마음을 편안하게 먹기로 했다.

그래야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일 수 있을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얼마 뒤.

민주린이 큐시트를 들고 아이돌들이 올랐던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도 정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파이널 라운드 첫 팀 미션이었는데, 다들 만족할 만한 무대가 되었나요?”

‘네!’라고 기운차게 답하는 아이돌도 있고. 반대로 대답하기를 망설여하는 아이돌도 있었다.

무대라는 건 늘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이연은 아직도 ‘완벽한 무대’를 좇고 있는 중이었다.

“제 바람 같아선 다들 1등 주고 싶은데. 그래도 경연 프로그램이니까요.”

후배들의 고군분투를 지켜봐야 하는 선배 입장에선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무거운 마음으로 큐시트를 바라본 민주린은 다시 멘트를 이어나갔다.

“그럼 7위부터 순서대로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7위에는 원더존이 랭크되었다.

원더존 멤버들도 그럴 줄 알았다면서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였다.

라이브 때 실수를 남발했으니까.

오늘의 무대는 핑계 댈 만한 게 없었다.

6위는 CDP, 5위는 샤이걸스가 차지했다.

4위에는…….

“의외의 팀이 4위를 차지했네요.”

민주린이 ‘의외’라는 표현을 쓴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4위의 주인공이 바로 하니엘이었기 때문이다.

초반부터 늘 준수한 성적을 보여줬던 하니엘이 오랜만에 중위권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늘은 하니엘에게 너무 가혹한 하루였다.

3위는 아이비제이 트윙클이 차지했다.

그렇다면.

“MAYO하고 샤이걸스, 두 팀이 맞붙게 되었네요.”

MAYO가 우승 후보 명단에 오른 것은 당연한 거라 치더라도.

샤이걸스는 아무도 예상 못 했다.

하니엘이 오늘 하루 운이 너무 안 좋았다고 한다면, 반대로 샤이걸스는 운이 너무 좋았다.

일단 순서상 MAYO한테서 가장 멀리 떨어진 팀이었기도 하고. 마지막 순서를 차지한 덕분에 그나마 외국인 청중평가단에게 가장 많은 여운을 남기는 그룹이 될 수 있었다.

게다가 원더존의 라이브 실수도 샤이걸스에게 호재로 작용했다.

그러나 그녀들의 운에는 천장이 존재했다.

그 천장의 이름은 MAYO였다.

[1위. MAYO]

[2위. 샤이걸스]

모두의 예상대로 글로벌 미션에선 무난하게 MAYO가 1위를 차지했다.

“마지막으로 MAYO팀의 소감을 들어볼까요?”

마이크를 건네받은 미랑이 오늘 무대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이번에는 저희 그룹한테 많이 유리했던 미션이라서 우승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1위를 차지하고도 순수하게 기쁘다는 마음이 잘 안 드네요.”

너무나도 솔직한 그녀의 소감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돌들도 몇몇 있었다.

“다음에는 글로벌 미션보다 더 공평한 조건에서 미션을 수행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찌 보면 제작진이 싫어할 만한 멘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미랑은 끝까지 소신 발언을 이어갔다.

과연 황이전 PD가 미랑의 이 발언을 어떻게 생각할지.

이건 글로벌 미션 편이 어떻게 방송으로 나가는지 보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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