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제60화. 견제(2)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멤버들은 피곤한 기색을 드러내면서 각자 휴식을 취하기 위해 움직였다.
어떤 멤버는 바로 씻을 준비부터 하고.
또 어떤 멤버는 씻는 건 나중에, 일단은 눕자는 생각으로 소파에 몸을 던졌다.
이연의 경우에는 후자였다.
화장실이 여러 개 있다 보니까 숙소에 일곱 명이나 같이 머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불편함을 느끼진 않았다.
옷을 벗고 속옷 차림이 된 이연이 머리를 묶을 끈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어디에다 뒀는지 기억이 안 나네.’
이럴 때는 어쩔 수 없다.
“미안한데, 머리끈 하나만 빌려줄 사람.”
이연의 부탁에 여솜이 자신의 손목에 감겨 있는 머리끈 하나를 건네줬다.
“이거 써, 연아.”
“고마워. 근데 유키는 표정이 왜 저래.”
여솜의 옆에 앉은 유키의 얼굴이 아까부터 심상치 않았다.
불평불만이 가득해 보이는 그런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여솜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팀 때문에 그렇지, 뭐.”
여솜과 유키는 혜원과 같은 보컬 2팀으로 편성되었다.
안 그래도 다들 쟁쟁한 실력을 갖춘 사람들인데. 여기에 혜원이라는 걸출한 아이돌까지 있으니까 같은 보컬 2팀 멤버들은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 이 팀에서 고득점 얻을 생각은 말아야겠구나.
이렇게 말이다.
그러나 유키는 아무리 강력한 라이벌이 눈앞에 있다 하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성격이다.
오히려 상대방이 지칠 때까지 계속해서 물고 뜯고 덤벼드는 스타일이다.
그룹 내에서는 싸움닭이라고 불릴 만큼 성격이 드세다.
그럼에도 유키가 여태껏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가면 뒤에 자신의 이런 본래 모습을 잘 감춰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 처음으로 이 강철 가면에 금이 갈 뻔했다.
“왜 하필이면 우리 그룹에 혜원 선배가 들어와서…… 아니, 그리고 다들 왜 혜원 선배한테 그렇게 쉽게 센터 자리를 양보하냐고요! 아이비제이 트윙클은 본인들이 우리 견제하려고 베네핏까지 날렸는데. 이러면 가만히 앉아 있다가 공짜로 베네핏 하나 더 얻어낸 것하고 다를 바가 없잖아요!”
“센터 맡을 만한 사람이 혜원 선배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랬겠지.”
“여솜 언니, 설마 혜원 선배님한테 투표한 건 아니죠?”
“나는…… 아니지.”
약간 애매한 대답이었다.
유키가 찌릿 노려보자, 여솜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아니라고 더 강하게 부정했다.
“정말이라니까!”
“진짜죠?”
“언니 못 믿니?”
“…….”
말을 아끼던 유키가 ‘이번에는 믿어줄게요’라고 마지못해 답했다.
이연이 보기엔 여솜은 혜원에게 투표할 것 같진 않았다.
유키가 말했듯이, 아이비제이 트윙클은 하니엘을 견제하기 위해 일부러 자기들한테 유리할 수 있는 베네핏을 버렸다.
그렇게까지 했는데. 아무리 선배라도 이건 선을 세게 넘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근처에서 이연과 마찬가지로 두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리샤가 물었다.
“그쪽 팀은 벌써 센터까지 정했어?”
“응. 우리는 베네핏을 사용한 팀이 없었으니까.”
“하긴. 그렇겠다.”
리샤와 이연이 속한 댄스 2팀은 센터가 인지로 정해졌으니까. 그래서 보컬 2팀처럼 따로 센터를 정할 필요가 없었다.
좋은 의미로 보자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게 된 셈이었다.
물론 인지가 센터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어떨지.
이건 지켜봐야 한다.
* * *
이번 파트 미션은 여러 팀이 뒤섞여서 진행하다 보니 연습할 수 있는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이걸 대비해서 제작진은 파트 미션으로 팀을 나누기 전에 미리 일곱 그룹의 소속사에게 협조를 요청해서 그곳의 안무 연습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둔 상태였다.
이연이 속한 댄스 2팀은 CDP의 소속사에서 연습을 진행하기로 했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이연은 인지와 관련된 기사 몇 개를 추가로 검색했다.
이번에 CDP의 인지가 새롭게 모 유명 의류업체 브랜드 모델로 선정되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본문에는 인지가 해당 의류 업체의 옷을 입고서 사진을 찍은 모습이 담겨 있었다.
화보 사진 중 일부를 발췌한 건 아니었다.
촬영 중간에 주어지는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기자가 아무렇게나 찍은 사진을 가져다 붙였는데.
‘이것도 화보처럼 보이네.’
그만큼 인지의 비주얼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물론 이연보다 한참 앞서다고 말하기에는 애매하다.
미의 기준이라는 게 절대적이지 않으니까.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4세대 걸 그룹 비주얼 톱 순위 상위권에 인지를 올려놓을 정도였다.
인지의 미모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당연하게도 이연 역시 비주얼 순위권에 이름이 올라 있었다.
비주얼 멤버만 두 명이나 되는 댄스 2팀.
그래서인지 팀이 정해졌을 당시, 사람들은 다른 팀들보다 유독 댄스 2팀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제작진도 마찬가지였다.
댄스 2팀 연습 날에 황이전 PD가 직접 녹화에 참여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여러 개의 팀으로 나뉘어 촬영하고 있을 텐데. 그중에서 메인 PD의 픽은 댄스 2팀이 차지하게 되었다.
이연과 리샤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황 PD가 밝은 미소로 그녀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입니다, 이연 씨. 리샤 씨.”
“안녕하세요, PD님.”
“스태프들 있다고 너무 긴장하지 말고. 평소 연습하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하시면 됩니다. 아셨죠?”
“네!”
이미 이연과 리샤는 경연 프로그램만 두 번째 경험 중이다.
그렇기에 부자연스러움에 대한 걱정은 접어둬도 괜찮다.
곡과 센터도 정해졌으니.
오늘은 본격적으로 안무 연습에 돌입할 차례다.
안무는 팀원들이 각자 상의해서 직접 창작하기로 했다.
댄스 실력을 평가하는 자리인데. 다른 사람이 따준 안무를 가지고 그대로 추기만 하면 좀 그럴 거 같다는 의견들이 팀원들 사이에서 다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들 춤을 좋아하고. 그렇다 보니 안무 창작 능력도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는 다들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인지는 그렇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이 어느 파트에서 어떤 동작을 하면 좋지 않겠냐는 아이디어를 마구 제시할 때, 인지는 멀뚱멀뚱 앉아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숫기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다른 멤버들만큼 댄스에 관한 지식이 해박하지 않아서였다.
채미가 조용히 있는 인지에게 슬쩍 말을 붙였다.
“선배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 뭐가요?”
“2번 동작이요. 저하고 하영이가 생각해 온 안무 동작인데, 아직 인지 선배님한테만 의견을 못 들어서요.”
“아, 그, 그래요? 저는 좋다고 생각해요.”
인지가 당황해하면서 금방 찬성하는 의견을 비쳤다.
이연은 인지가 회의 때 왜 이렇게 소극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는지 대충 배경을 알고 있었다.
인지는 다른 CDP 멤버들과 같이 아이돌 지망생부터 시작해서 데뷔 순서를 밟은 게 아니었다.
원래 그녀는 모델 일을 하던 소녀였다.
그러다가 새로운 걸 그룹을 만들고 싶다는 소속사 대표의 눈에 띄어 스카웃을 받게 되었고, 그 계기를 통해 지금의 인지가 탄생하게 되었다.
노래 부르는 거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아이돌 생활을 하게 될 줄은 본인도 몰랐다.
그렇다 보니 보컬이나 댄스, 그리고 랩 등의 분야에서 취약한 면모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CDP 멤버들 중에서 인기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이유는 바로 피지컬, 즉 빼어난 미모와 잘 관리된 몸매 덕분이었다.
몸 라인이 예쁘다 보니 간단한 동작만 선보여도 아름다운 춤선이 완성된다.
이 덕분에 인지는 몇 차례나 CDP의 센터를 담당하곤 했었다.
퍼포먼스 측면에서 보자면 인지만한 인물이 없었다.
다만 늘 트레이너한테서 보컬, 안무 교육을 받으며 연습해 온 그녀 입장에선 안무 회의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낯설었다.
이에 대해서 이연은 이렇게 생각했다.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할 건 해야 한다.
미수도 원더존 멤버들의 의견에 말을 보탰다.
“혹시 괜찮을 거 같은 안무 동작 떠오르면 언제든 말해주세요.”
“네, 선배님.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어요. 인지 씨 탓하려고 이런 말을 한 게 아니니까요.”
참여도를 높이게 만들고 싶어서. 단지 그뿐이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을 보면 시청자들이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왜 인지는 회의 때 말하는 장면이 하나도 없냐고.
이러면 인지에게도, 팀에게도 손해다.
괜히 팀원 간의 불화설이 돌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돌은 이미지가 생명이다.
적어도 시청자들 앞에서는 서로 사이가 안 좋더라도 친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다.
오랫동안 머리를 굴리던 인지가 오랫동안 닫혀 있던 입을 겨우 열었다.
“그, 그러면 7번 동작에서 가만히 서 있지 말고 다 같이 빙그르르 턴 도는 건 어때요? 괜찮을 거 같은데.”
모처럼 인지가 의견을 제안하긴 했지만.
이연이 딱 잘라 말했다.
“그건 좀 무리수인 거 같습니다. 6번하고 7번 동작이 대열 이동하면서 안무 펼치는 구간인데, 여기서 한 바퀴 돌면 대열이 흐트러질 가능성이 있어서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미안해요. 제가 그걸 생각 못 했네요.”
“괜찮습니다, 선배님.”
어렵게 용기를 낸 인지였지만, 그래도 이연은 성격상 할 말은 해야 했다.
인지에게 좀 더 의견을 활발하게 내보라고 말했지, 엉망인 의견까지 받아주겠다고 말한 건 아니었으니까.
* * *
전체적인 동작들을 모두 짠 뒤에 슬슬 합을 맞춰보기로 했다.
이연이 앞으로 나와서 팀원들의 위치를 재차 확인했다.
“미수 선배님. 반 발자국 왼쪽으로 이동해 주시겠어요?”
“이렇게?”
“네. 그 위치 좋습니다. 그리고 채미. 표정 너무 어색해. 웃는 얼굴로.”
“응, 알았어.”
댄스 능력만 놓고 본다면, 이연이 멤버들 중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편이다.
그렇다 보니 이연이 이렇게 트레이너 역할도 도맡게 되었다.
미수도 할 줄은 알지만, 그녀의 포지션은 어디까지나 보컬 쪽이다.
그래서 안무 구성에 일가견이 있는 이연에게 대신 지휘 자격을 맡기기로 했다.
팔짱을 끼고서 멤버들이 서 있는 모습을 다시 한번 훑어보던 이연은 살짝 고개를 갸우뚱했다.
“인지 선배님. 죄송한데, 오프닝 포즈를 다른 걸로 바꿀 수 있을까요.”
“어떻게요?”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이지 말고 정면으로 봐주세요. 지금 제가 서 있는 위치를 참고 삼으시면 됩니다. 그리고 팔은 너무 올라가 있어요. 허리춤에 손을 살짝 올려놓는다는 느낌으로. 네, 지금 좋아요.”
이연이 상세하게 설명을 해준 덕분에 인지의 동작이 한층 자연스러워질 수 있었다.
이연이 한 명 한 명씩 어떻게 포즈를 취하면 좋을지 설명해 주는 사이.
채미가 리샤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저 정도면 연이가 리더하고 센터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게.”
댄스 2팀의 리더는 미수, 센터는 인지지만.
팀원들이 봤을 때 실질적인 리더와 센터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연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