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제45화. Tug of war(3)
제작발표회 시작과 동시에 마이크를 쥔 민주린이 먼저 무대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등장에 수많은 카메라들이 민주린을 포커싱하기 시작했다.
웬만한 연말 시상식 현장 못지않은 뜨거운 관심이 쏟아졌다.
민주린만 다른 출연자들과 달리 한발 먼저 이곳에 올라온 이유는 그녀가 오늘, 제작발표회 MC를 맡기로 되어 있어서였다.
“안녕하세요. 걸파이트 시즌 2, 그리고 오늘 제작발표회 진행을 맡게 된 민주린입니다.”
한 손으로 가슴 위 중앙 부분을 가리면서 조신하게 인사했다.
이은솔만큼 그녀 역시 가요나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 진행자를 자주 맡아본 적이 있었기에 단독 MC를 맡겨도 크게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곳에 참가하는 7명의 걸 그룹 리더들이 더 긴장하고 있을 것이다.
민주린이 그녀들과 함께 황이전 PD를 소개했다.
가장 선배 그룹인 아이비제이 리더, 혜원이 먼저 모습을 나타내자 현장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걸파이트 시즌 2에 참가하는 걸 그룹은 총 7팀이다.
아이비제이 트윙클을 필두로 하니엘, 원더존, MAYO, 가을소녀, CDP, 그리고 샤이걸스까지.
리더들만 이곳에 올랐다고 하지만, 팀이 일곱 개나 되다 보니 웬만한 걸 그룹 완전체 못지않은 인원수를 자랑하고 있었다.
여기에 청일점인 황이전 PD까지 무대에 오르고 나서야 오늘 제작발표회에 참가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모든 사람이 전부 카메라 앞에 서게 되었다.
민주린이 혜원에게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했다.
“데뷔 순서대로 시작해 볼까요. 아이비제이 트윙클부터.”
“데뷔 순서라고 하니까 왠지 제가 제일 왕언니인 거 같네요.”
어색한 미소를 띤 혜원이었지만, 이내 가장 선배답게 능숙한 자기소개를 이어갔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아이비제이 트윙클로 열심히 데뷔 준비하고 있는 혜원입니다. 이렇게 다시 한번 걸파이트 시즌 2에 참가하게 되어서 정말로 영광이에요. 이번에도 저희가 우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세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함인지, 초반부터 우승을 향한 포부를 밝혔다.
뒤이어 두 번째 차례가 된 MAYO의 리더, 미랑이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미랑입니다. 저희 그룹은 서바이벌 오디션이 첫 참가라서 그런지 많이 긴장되네요.”
중간에 민주린이 깜짝 놀란 듯 불쑥 물었다.
“어머, 그래요? MAYO는 경연 관련 프로그램에 한 번도 참가해 본 적이 없나요?”
“네. 서바이벌 오디션은 연습생 시절 때 이후로 없었어요.”
“의외네요. 활동 경력이 오래되어서 한 번쯤은 참가해 봤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데뷔 연도로 따지면 아이비제이와 반년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난다.
최고참과 거의 동급이었기 때문에 그런지 민주린은 처음이라 말하는 미랑의 말이 왜인지 모르게 신선하게 들렸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MAYO에 이어 참가팀 중 가장 12인조라는 가장 많은 멤버 수를 보유하고 있는 가을소녀의 리더, 초영이 나섰다.
“저희는 이미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했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 있습니다!”
현장에 있는 모두가 초영의 귀여운 외침에 웃음을 터뜨렸다.
가을소녀도 하니엘과 마찬가지로 걸 그룹 데뷔를 목표로 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결성된 그룹이다.
그래서인지, 이연은 다른 그룹들은 둘째 치더라도 가을소녀는 왠지 모르게 친숙한 느낌을 받았다.
가을소녀와 아직 단체로 만나본 적은 없었다.
제작발표회가 끝나고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모든 그룹의 멤버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인사를 나누는 사전 회식 자리를 가지게 될 텐데. 그때 이연은 하니엘과 가을소녀가 서로 많은 공감을 나눌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팀이 7개나 되니까.
‘이 중 한 팀하고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도 좋겠지.’
황이전 PD가 경연 방식에 대해서는 비밀이라고 말을 하긴 했지만, 그래봤자 걸파이트 시즌 1하고 크게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이연은 전반적인 틀 자체는 비슷할 거라고 보고 있었다.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바에 의하면, 경연은 총 3번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SSS 때처럼 탈락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순위에 상관없이 모든 팀이 다 끝까지 경연 무대에 설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이번 프로그램은 연습생들끼리 맞붙는 게 아닌, 현역 가수 팀들끼리 붙는 방식이다.
7개 팀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는 건, 그만큼 그 그룹의 실력이나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벌칙이 된다.
어쩌면 탈락이라는 것보다 더 큰 수모를 겪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하니엘뿐만 아니라 각 팀들 모두가 다 출연 요청이 들어왔을 때 바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많은 고민의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그럼에도 가을소녀 팀은 파이팅이 넘쳤다.
“저희도 이번에 반드시 우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테니까 꼭 지켜봐 주세요!”
허리를 깊숙하게 숙이면서 꾸벅 인사하는 가을소녀 리더, 초영의 모습에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다.
가을소녀의 뒤를 이어서 CDP의 리더 리브, 그리고 샤이걸스의 리더 앤서까지 각자 소개를 마쳤다.
다음으로 하니엘과 막내 그룹 라인을 맡게 된 원더존, 최혜윤의 차례다.
“꿈과 환상의 나라로, 슝~! 안녕하세요, 원더존을 대표해서 나온 최혜윤입니다. 이렇게 쟁쟁한 선배님들과 함께 경쟁하게 되어서 정말로 영광이라고 생각하고요. 실망스러운 모습 보여 드리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때, 민주린이 최혜윤의 말속에 숨겨져 있는 오류 하나를 지적했다.
“혜윤 씨. 여기 참가하는 팀들 모두가 다 원더존보다 선배팀은 아닌데요.”
“네?”
“옆에 하니엘 팀도 있잖아요. 원더존보다 후배 그룹인데. 설마 ‘하니엘은 안중에도 없다’라는 뜻으로 언급조차 안 한 건가요?”
민주린이 농담 식으로 묻자, 최혜윤의 얼굴에 당혹감이 빠르게 번졌다.
“아아아아니에요! 절대로 아니에요! 죄송해요. 제가 너무 당황해서…… 선후배님들이라고 정정할게요.”
당황하는 최혜윤을 보고 있자니, 이연은 오랜만에 장난기가 발동되었다.
“괜찮아요, 선배님. 저희는 까마득한 후배니까요. 라이벌로 생각하기조차 싫으시겠죠.”
“연이, 너까지 왜 그래 정말! 그런 거 아니라니까아!”
이연과 최혜윤은 이미 ‘근무 중 이상 무’ 촬영을 통해서 서로 말을 놓을 정도로 친한 관계가 되었다.
원더존이 하니엘보다 먼저 데뷔하긴 했지만, 한 달밖에 차이가 안 나고. 그래서 혜윤이 먼저 이연에게 서로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었다.
그래서 이런 농담을 나누는 것도 가능했다.
마지막으로 하니엘의 차례가 되었다.
“이번 걸파이트 시즌 2 참가팀 중에서 막내 팀 자격으로 오게 된 권이연입니다. SSS가 끝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저희 그룹이 가장 최근에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무기로 1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담담하게 소개와 앞으로의 각오를 알리는 이연을 보면서 혜원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강력한 라이벌이자 쟁쟁한 선배 그룹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연인 전혀 기죽지 않았다.
이 모습이 이연의 가장 큰 강점이다.
* * *
무대 위에 각각 놓여 있는 스탠딩 의자에 자리를 잡은 일곱 명의 걸 그룹 리더들과 황이전 PD.
민주린이 황 PD에게 시즌 2에 대한 방향성과 콘셉트에 대해 간략하게 물었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짧게만 부탁드릴게요.”
민주린의 부탁에 황 PD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야심 차게 준비 중인 걸파이트 시즌 2에 관해 입을 열었다.
다른 걸 그룹 팀원들도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들이 이곳에 참가하는 당사자들이었기에 관심이 안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즌 2의 경우에는 시즌 1에 비해서 규모나 모든 것들이 더 크고 화려하게 바뀔 겁니다. 그리고 더 잔혹해질 예정이고요.”
“잔혹해진다는 말씀은…… 경선 투표 방식이 바뀐다는 뜻이겠네요?”
“역시 주린 씨네요. 정확합니다.”
연예계 짬밥은 허투루 먹은 게 아니다.
민주린은 황이전 PD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직감했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가장 잔혹한 방식은 바로 투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린은 투표 방식이 시즌 1과 동일하게 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바로 직감했다.
“어떤 방식일지는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기 힘들고요. 나중에 첫 방송을 통해서 확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자들은 못내 아쉬움을 감출 수밖에 없었다.
한편, 황이전 PD의 말에 리더들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이연도 생각이 많아졌다.
‘어떤 방식으로 바꾼 걸까.’
호기심이 무럭무럭 피어오를 때쯤, 민주린이 이연에게 다음 질문에 관해 물었다.
“이연 씨는 여기 참가하는 팀들 중에서 어느 팀이 가장 어려운 상대가 될 거 같나요?”
“저는…….”
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을까.
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이비제이 트윙클 선배님들입니다.”
이연의 말에 다른 그룹 멤버들도 모두가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였다.
시즌 1 우승자이자 이번 디펜딩 챔피언이기도 한 아이비제이.
물론 이번에는 완전체로 나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장 강력한 라이벌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혜윤 씨는요?”
자기소개 때에 비해서 이번에는 데뷔 연도 역순으로 질문이 돌아갔다.
그녀 역시 아이비제이를 골랐다.
다음으로 샤이걸스의 차례.
리더인 앤서는 다른 선택지를 골랐다.
“저는 MAYO 선배님들이요.”
지목당한 미랑도 예상 못 했던 모양인지 깜짝 놀라는 액션을 취했다.
민주린이 미랑을 대신해서 앤서에게 물었다.
“이유가 있을까요?”
“아이비제이 선배님들도 충분히 무서우신 분들이지만, 저희는 MAYO 선배님들이 의외로 더 강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 경험이 없다는 대도요?”
“네. 그래서 오히려 틀에 박히지 않은 작전으로 참신한 무대를 보여주실 수 있을 거 같아요.”
게임이나 도박에서 그렇듯, 초심자의 행운이 무서운 법이다.
게다가 MAYO는 앞서 말했던 대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경험이 없는 탓에 그녀들이 어떤 방법으로 경연에 임하는지, 관련 자료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샤이걸스는 MAYO를 고르게 되었다.
CDP의 리브, 그리고 가을소녀의 초영 역시 샤이걸스와 동일하게 MAYO를 1순위로 골랐다.
다음으로 MAYO의 차례.
“저희는 아이비제이 선배님들 고르겠습니다.”
이것으로 아이비제이 트윙클과 MAYO가 각각 3표로 동률을 이루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강력한 라이벌 상대로 지목당한 아이비제이 트윙클의 순서가 되었다.
혜원이 마이크를 들고 입을 열기 전, 이연은 그녀와 잠깐 시선이 마주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는 이게 단순히 자신의 착각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저는 하니엘 팀이 가장 무서운 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착각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