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제45화. Tug of war(1)
구체적인 녹화일, 제작발표회 일정, 기타 등등의 내용을 황이전 PD로부터 듣게 된 멤버들은 결의가 느껴지는 표정을 보이며 미팅을 마무리 지었다.
“아마 제작발표회 때에 7팀이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게 되겠네요.”
황 PD의 말대로다.
물론 모든 멤버들이 다 제작발표회 무대에 서진 않을 예정이다. 그러기에는 인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각 팀을 대표하는 리더들만 나와서 걸파이트 시즌 2에 임하는 각오를 밝힐 예정이다.
하니엘 팀은 당연하게도.
“이연 씨가 나오시겠죠?”
멤버들과 박도수 매니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황 PD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연도 제작발표회에 관한 간략한 개요를 들었을 때, 본인이 나가게 될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걸파이트 제작진과의 미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박도수 매니저를 따라 이동하던 멤버들.
이때, 마침 아는 얼굴과 마주치게 되었다.
“어머, 얘들아!”
민주린이 먼저 그녀들을 불렀다.
오랜만에 대선배를 봐서 그런지 하니엘 멤버들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반가운 마음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 여긴 어쩐 일이야?”
민주린도 하니엘 멤버들이 한창 두 번째 앨범을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앨범 활동 기간이 아니었기에 스케줄이 없을 텐데. 그래서 팀원들 전체가 방송국에서 나오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던 거였다.
유키가 내숭 모드를 발동한 듯 애교 섞인 목소리를 냈다.
“저희, 이번에 걸파이트 시즌 2에 출연하기로 했거든요.”
“세상에. 진짜로?”
멤버들의 프로그램 출연 여부 때문에 놀란 게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민주린 역시 걸파이트 시즌 2와 연관이 있었다.
“나, 거기 MC 맡기로 했는데.”
“네?”
“정말이에요, 선배님?”
멤버들이 미팅 당시에 들었을 때는 MC 맡아줬으면 하는 분에게 출연 제의를 요청했지만, 아직 확답을 듣지 못해서 정체를 공개할 수 없다고 했었다.
마침 민주린은 오늘 방송국을 찾아서 황 PD와 제작진에게 걸파이트 시즌 2 MC를 맡겠다고 이야기를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거기에 참가하는 후배 가수팀과 만나게 된 거였다.
“우연이네. 이거, 하늘이 나한테 MC 역할 꼭 맡으라고 압박 넣는 건가?”
“선배님이 MC 맡아주시면 저희야 좋죠!”
낯선 프로그램에 아는 얼굴이 한 명이라도 더 있으면 조금이나마 힘이 될 것이다.
게다가 민주린은 SSS 촬영 당시에 연습생들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했고.
그렇다 보니 하니엘 멤버들이 그녀의 합류를 반가워하는 건 당연했다.
SSS에서 심사위원으로 연습생들에게 이런저런 조언들을 아끼지 않았던 민주린.
이번에도 그 당시의 기억이 떠오른 모양인지, 멘토로서 하니엘 멤버들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들려줬다.
“이번에는 SSS에 비하면 훨씬 더 힘들 거야. 그러니까 각오 단단히 하고. 이럴 때일수록 팀원들끼리 믿고 의지하고 똘똘 뭉쳐야 해. 알았지?”
“네, 선배님!”
“응원할게. 너희라면 분명 잘 해낼 거야.”
민주린이 후배들을 한 명 한 명씩 직접 안아줬다.
그렇게 짧게나마 민주린과의 우연한 만남을 마무리 지은 멤버들은 박도수 매니저가 끌고 온 차에 다시 올라탔다.
숙소로 향하는 동안, 이연은 민주린이 했던 말을 머릿속으로 다시 되새겼다.
‘SSS 때와 비교도 안 될 만큼 힘들 거란 말이지.’
그럼에도 걱정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나, 이런 서바이벌 오디션이 취향에 잘 맞나 보네.’
여자가 된 후, 자신도 몰랐던 새로운 취향을 찾게 되었다.
* * *
걸파이트 시즌 2 참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높게 비중을 둬야 하는 건 바로 하니엘의 두 번째 앨범 작업이다.
이연이 준 가사를 입혀서 새롭게 가이드곡을 만들어본 진세혁 프로듀서가 멤버들을 다시 작업실로 불렀다.
개인당 하나씩 가사지가 돌아갔다.
상단에 영어 문장 하나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Tug of war]
영어, 수학, 이런 쪽에 굉장히 취약한 비아가 ‘윽’ 하는 외마디 소리를 흘렸다.
딱 봐도 뭔 뜻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모르면 뭐다?
물어보면 된다.
“리샤 언니. 이거 뭐야.”
평소에는 리샤가 자신과 같은 무식 2인방으로 불리지만, 그래도 미국인이니까 이 정도 문장은 충분히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일순간 리샤의 눈빛이 크게 흔들리는 모습이 비아의 눈에 그대로 포착되었다.
“이, 이건 말이지…… 그래! 주, 줄다리기라는 뜻이야.”
“언니. 방금 잠깐 헷갈렸지?”
“아, 아닌데? 보자마자 바로 알았는데?”
누가 봐도 거짓말이다.
그래도 결국 알아맞히긴 했으니까. 비아는 노골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언니를 용서해 주기로 했다.
연애 감정을 줄다리기에 비유한 노래 가사 대로, 제목 역시 ‘Tug of war’라고 짓게 되었다.
이 타이틀 제목 역시 이연의 작품이었다.
노래 가사도 나쁘지 않았다.
“‘내가 줄을 당기면 나에게 얌전히 끌려와 줄래, Love you, to you. 선을 넘은 순간 넌 내 거야.’라니. 가사 귀엽다!”
“연이가 겉보기 하고는 다르게 귀여운 상상 같은 거 많이 하는구나.”
늘 시원스럽고 쿨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연이다 보니 온도 차가 날 수밖에 없었다.
멤버들이 자신이 직접 쓴 가사를 쭉 훑어 내리며 읽자, 그녀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창피해서였다.
“곡이 그렇게 나왔으니까. 어울릴 만한 가사를 쓸 수밖에 없잖아.”
일렉트로닉 팝 장르를 통한 상큼하고 발랄한 곡조에서 ‘다 부숴버리겠어’라든지. ‘널 없애버릴 거야, Kill you’ 같은 가사가 어울릴 리가 없다.
약간의 놀림을 받긴 했지만, 그래도 비아는 이연이 부러웠다.
“나도 연이 언니처럼 창작 능력 같은 거 있으면 좋을 텐데.”
“나중에 배우면 할 수 있을 거야.”
“배운다니.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네.”
멤버들이 비아의 자책에 작은 웃음을 흘렸다.
가이드곡도 나왔고. 전체적으로 노래를 한 번씩 들어봤으니.
이제부터 파트를 정해야 한다.
지난 데뷔 앨범 당시에 멤버들끼리 본의 아니게 경쟁을 벌이게 만들었던 파트 분배의 시간.
그러나 이번 앨범의 경우에는 1집 때와 다르게 큰 갈등 없이 빠른 속도로 결정될 수 있었다.
다 같이 한번 앨범 활동을 하고 나니까 나나 다른 사람이 어느 파트에 잘 어울리는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메인 보컬 파트는 이번에도 역시 이연이 가져가게 되었다.
진세혁 프로듀서가 혹시나 해서 메보를 맡게 된 이연에게 물었다.
“’HUG’보다 옥타브가 좀 높은데. 괜찮겠어?”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더 빠를 때가 있다.
이연은 그의 불안감을 일찍이 종식시키기 위해 직접 메인 보컬 파트를 소화했다.
전혀 흔들림이 없는, 완벽에 가까운 보컬 솜씨.
심지어 일어서서 부르는 것도 아니고. 앉은 상태에서 준비도 안 하고 바로 불렀음에도 이연은 여유롭게 고음 파트를 부르는 모습을 보여줬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진세혁 프로듀서는 어깨를 한 차례 으쓱이면서 말했다.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 보네.”
“찐 프로님. 연이 언니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저희가 걱정이죠.”
이연에게 뒤처지지 않도록 그녀들 역시 이번 앨범에 최선을 다할 예정이었다.
* * *
은서해와 퍼플피플 크루들이 각각 하니엘 멤버들의 이름이 크게 적힌 옷을 입고서 각각의 포지션에 따라 대열을 갖췄다.
이연의 이름을 달고 있는 댄서팀 크루가 센터에 섰다.
그녀가 손키스를 날리는 동작을 시작으로 안무가 펼쳐졌다.
줄다리기는 주로 운동회 같은 곳에서 펼치는 게임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안무 콘셉트도 여기에 연관을 짓고 싶었던 건지 치어리딩 느낌이 나는 구분 동작들이 많았다.
가만히 있는 시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항상 방방 뛰었다.
이걸 보자마자 이연은 본능적으로 생각했다.
이번 안무 동작도 난이도가 꽤 될 거라고.
두 눈으로 보기만 할 때보다 직접 해보는 게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은서해가 댄서들이 펼치는 동작들을 직접 손으로 가리키면서 어디에 어떤 포인트를 주면 되는지, 또 유의 사항은 무엇인지 등을 상세하게 설명해 줬다.
“특히 뛰는 동작이 많아서 호흡이 중간에 좀 부족할 수 있어. 라이브 때에는 더 힘들 테니까 컴백 쇼케이스 무대 가지기 전까지 운동 꾸준히 해둬. 그래야 체력이 느니까. 알았지?”
“네!”
“안무 복장은 의상팀이 열심히 고안하고 있다니까 그렇게 알아두고. 치어리더들이 입는 그런 느낌으로 갈 거 같던데…….”
은서해의 시선이 이연에게 향했다.
“괜찮지? 연아?”
“네. 문제없어요.”
치마에 대한 거부감은 이제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속바지를 입으면 그만이니까.
이연에게 있어서 속바지는 치트키 같은 존재다. 자신이 꺼려 하는 여성 의상 같은 게 있어도 속바지만 있으면 다 입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기 때문이었다.
“오케이. 그러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댄서들 추는 거 보고, 이다음부터는 바로 실전으로 들어가자. 준비 기간이 많이 타이트하니까 너무 설렁설렁하려고 하지 말고. 알았지?”
“네!”
이연이 가장 좋아하는 동작은 따로 있었다.
‘줄다리기’라는 제목에 맞게, 멤버들이 각각 세 명씩 흩어져서 서로 밀고 당기고 하는 줄다리기 동작을 안무로 녹여낸 부분이 있다.
이연은 좌우 측으로 흩어지는 인원들 한가운데에 서서 심판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
여기서 다시 자연스럽게 센터 포지션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고, 후렴 파트가 시작된다.
아이돌 그룹 안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동선이라고 할 수 있다.
큰 춤 동작을 선보이지 않는다 해도 잦은 동선만으로도 충분히 화려하게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안무를 창작하는 사람들은 아이돌 멤버들의 각 동선에 많은 신경을 쓰는 편이었다.
이연은 처음과 후렴구 부분, 그리고 마지막 엔딩 포즈에서 센터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눈으로 보고, 머릿속으로 데이터를 입력한 이연은 바로 이어지는 첫 연습부터 두각을 드러냈다.
“원, 투, 쓰리, 포. 연이가 잘하네. 금방 배우고.”
“감사합니다.”
“우미는 ‘너무 당기진 마, 일방적인 이끌림은 싫어’라는 가사 부분 있지? 그때 둘, 셋 세고 난 다음에 몸을 뒤로 돌리는 게 좋겠어. 다른 멤버들하고 타이밍이 잘 안 맞아.”
우미가 그렇게 하겠다고 곧장 대답했다.
그밖에 다른 멤버들 역시 디테일한 피드백을 줬다.
SSS 때부터 하니엘 멤버들과 호흡을 맞춰온 은서해라서 그런지, 어떤 방식으로 멤버들에게 안무를 알려줘야 가장 효과적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연습 도중에 은서해의 인상에 가장 깊게 남은 멤버가 한 명 있었다.
바로 비아였다.
“비아, 예전에 비해서 실력 많이 좋아졌네. SSS 때에는 체력도 부족하고, 집중력도 낮고. 그래서 나한테 많이 혼났었잖아.”
“저도 성장한다고요, 트레이너님.”
비아가 양손을 허리춤에 올리면서 작은 어깨를 활짝 펴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에 은서해가 ‘어라?’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비아야. 그 포즈, 그대로 유지해 봐.”
“이, 이렇게요?”
“어. 이거, 안무 동작으로 써먹어도 되겠는데?”
아이디어는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불쑥 찾아오는 법.
의도한 건 아니지만, 비아도 안무 창작에 기여를 하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