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제44화. 두 번째 서바이벌(2)
하니엘 팀 멤버들 전원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스페셜 스타 스테이지 출신이다.
그래서일까. 서바이벌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그때 고생했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박도수 매니저가 말을 꺼내자마자 멤버들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싫어요.”
“안 나갈 거예요.”
“서바이벌은 이제 질색이에요.”
즉답이 이어졌다.
박도수 매니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한숨과 함께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박도수 매니저도 멤버들이 이렇게 나올 거라고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런 말을 꺼낸 이유는 같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지만, 이번에는 SSS 때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SSS처럼 연습생들 단체로 모아서 데뷔조를 만드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고. 현재 활동 중인 현역 걸 그룹들끼리 모아서 대전을 펼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거야.”
지금 활동하고 있는 걸 그룹 간의 대전.
그 말을 듣자마자 비아가 먼저 ‘아!’ 하는 소리를 냈다.
그제야 박도수 매니저가 무슨 종류의 프로그램을 말하는 건지 알 수 있었다.
“혹시 ‘걸파이트’ 말씀하시는 거예요?”
“맞아, 그거.”
2년 전에 시즌 1이 방영되었던 걸파이트.
당시 유명했던 걸 그룹들이 총출동하면서 엄청난 화제 몰이가 된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그 프로그램이 2년 만에 다시 시즌 2로 컴백할 예정이었다.
우미도 당시에 걸파이트를 봤었던 모양인지,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시즌 1때 우승했던 선배님들이 아이비제이 선배님들이셨죠?”
비아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맞다고 여러 차례 말을 해줬다.
“그때 아이비제이 선배님들 엄청났잖아! 나, 마지막 경연 무대 보는데 막 눈물이 줄줄 나왔다니까? 다들 너무 예쁘시고…… 아이비제이라는 나라를 하나 세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막 들고, 그랬어.”
원래부터 아이비제이는 인기 있었던 걸 그룹이었지만, 그녀들의 인기를 한층 더 상승시켜 준 프로그램이 바로 걸파이트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박도수 매니저가 하니엘 멤버들에게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겠냐고 물어본 이유에 대해 직설적으로 말했다.
“잘하면 이번 기회를 통해서 하니엘 인지도를 확 끌어올릴 수 있을 거야.”
걸파이트에 출연하는 걸 그룹들 모두가 다 그것을 목적으로 프로그램에 출연할 것이다.
이연도 걸파이트라는 프로그램을 알고 있었다.
여기에 출연하는 아이돌 그룹은 2가지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아까 박도수 매니저가 말한 것처럼 현역으로 활동 중인 걸 그룹이라는 점.
그리고 두 번째는 출연하는 모두가 다 컴백을 눈앞에 두고 있거나 혹은 앨범을 발표하고 막 활동을 시작한 팀들이라는 것이었다.
만약에 하니엘이 걸파이트에 출연한다면, 그때쯤 막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하고 한창 활동할 때일 테고.
시기상으로 따진다면 그녀들 또한 이 두 가지 공통점에 딱 부합되는 팀이었다.
프로그램도 프로그램이지만.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시우가 손을 살짝 들며 물었다.
“어떤 팀들이 나오나요?”
“팀은 총 일곱 팀이고. 참가가 결정된 쪽은 내가 알기론 일단 확정된 쪽은 MAYO하고 원더존, 이렇게 기억해.”
원더존은 하니엘에게도 어느 정도 익숙한 걸 그룹이었다.
특히 이연과 시우에게는 친근함마저 느껴졌다.
‘근무 중 이상 무’ 여군 특집 당시에 같이 고생했던 멤버가 원더존 리더인 윤채미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니엘과 원더존, 둘 다 데뷔 시기도 한 달 차이밖에 안 나고.
만약에 하니엘이 출연한다면, 원더존과 나란히 막내 그룹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원더존보다도 더 관심이 가는 걸 그룹은 MAYO 쪽이었다.
“MAYO 선배님들도 나오세요?”
“엄청 유명하신 선배님들이시잖아요.”
4인조 걸 그룹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걸스힙합 팀이라고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에서 인기가 많지만, 한국보다 외국에서 더 유명하다.
멤버들 역시 한국인은 한 명뿐이고 나머지는 미국, 일본, 태국으로 다국적 멤버들이 모여 글로벌 색채가 강하게 느껴졌다.
하니엘에 데뷔 앨범 활동을 할 당시에는 MAYO 팀과 단 한 번도 같은 무대에 서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눈앞에서 직접 보는 그녀들의 무대는 어떨지 궁금했다.
유키가 시우에 이어 추가적으로 박도수 매니저에게 물었다.
“다른 팀은요?”
“일단 확정된 팀은 그렇게 둘뿐이고. 그리고 이건 소문인데…… 아, 이거 다른 곳에 가서 말하지 마라. 엠바고다. 알았지?”
멤버들은 사이좋게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였다.
“아이비제이가 나올 수도 있어.”
아이비제이라는 말에 멤버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시즌 1때 우승자가 다시 나온다고요?”
“진짜요?”
“그러면 시즌 2도 무조건 아이비제이 선배님들이 우승하는 거 아니에요? 지금 선배님들 인기가 압도적이잖아요.”
원성이 자자한 멤버들을 다독여 주려는 듯이 박도수 매니저가 아직 말하지 못한 사실 하나를 더 털어놓았다.
“완전체가 아니라. 이번에 아이비제이에서 새롭게 유닛을 발표할 생각인가 봐. 뭐였더라. 아이비제이 트윙클(I.B.J. Twinkle)이라고 했나? 줄여서 ‘I.T.’라고 하더라.”
정보기술의 집합체 같은 느낌의 유닛명이었다.
아이돌 그룹에서 유닛 활동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게다가 아이비제이는 인원이 하니엘보다도 많은 9명이니까.
이 9명이 전부 다 온전한 컨디션으로 매번 활동 시기를 맞춰간다는 건 생각보다 꽤 힘든 일이다.
그래서 이번 분기에는 유닛을 결성해 활동하기로 새롭게 전략을 구상한 모양인가 보다.
그래도 아이비제이는 아이비제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이번에는 이연이 물었다.
“멤버 구성이 어떻게 되나요?”
IT에 어떤 아이비제이 멤버들이 소속되어 있는지 궁금했다.
“혜원, 지현, 미수. 이렇게 셋이라더라.”
“인기 있는 멤버들은 다 모였네요.”
리더 혜원은 말할 필요도 없고. 벡스 멤버의 여동생인 강지현과 아이비제이의 메인보컬을 맡고 있는 미수까지.
인기도뿐만 아니라 그룹 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멤버 셋이 모두 뭉쳤으니, 아이비제이 완전체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지닌 유닛이 탄생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아이비제이 유닛의 등장에 하니엘 멤버들은 크게 동요했다.
이걸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처음에는 시즌 1에서 워낙 대박을 친 프로그램이기도 하고. 그리고 멤버들 전부 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던 터라 걸파이트에 출연하면 분명 이점을 가지고 시작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경쟁자들이 하나같이 다 만만치 않다.
게다가 아직 출연 팀이 확정된 것도 아니다.
7개 팀 중 원더존과 MAYO, 두 개 팀만 확정되었을 뿐, IT의 경우에는 아직 출연을 고려 중이고. 또 얼마나 유명한 걸 그룹이 참가를 결정했을지 모르는 일이다.
이런 생각이 드니, 멤버들은 쉽게 출연할지 말지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박도수 매니저도 지금 당장 대답을 들을 의도는 아니었던 모양인지 멤버들에게 천천히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내일부터 다시 컴백 준비 들어갈 테니까 한번 너희들끼리 잘 상의해 보고 알려줘.”
“네, 알겠습니다.”
“저기, 매니저님.”
이번에는 우미가 입을 열었다.
“회사 입장에선 저희가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거 같나요?”
걸파이트에서 섭외 요청이 들어왔다는 건 박도수 매니저뿐만 아니라 홍류현 실장을 비롯한 직원들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의견은 하나같이 동일했다.
“출연하는 쪽이 좋다고 보고 있지. 이런 걸로 압박감 느끼지 말고 너희들 생각을 우선으로 삼도록 해. 우리 대표님 방침, 잘 알지?”
“네.”
소속 아티스트의 의사를 1순위로 존중한다. 이것이 LC 엔터테인먼트가 취하고 있는 방식이다.
박도수 매니저가 물어다준 소식을 듣고 이연은 생각이 깊어졌다.
두 번째 서바이벌.
그러나 SSS 때에 비해서 이번 서바이벌은 난이도가 훨씬 높다.
경쟁자들이 다 하니엘보다 선배들이니까.
괜히 나갔다가 꼴찌만 당하고, 실력 없는 그룹 아니냐는 오명까지 뒤집어쓸 수도 있다.
두 번째 앨범 활동의 행보를 결정지을 중요한 일인 만큼, 생각을 잘해봐야 한다.
* * *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멤버들은 박도수 매니저와 함께 진세혁 프로듀서의 작업실로 향했다.
어제 박도수 매니저가 예고했던 대로 그녀들은 두 번째 앨범에 실릴 곡들을 차례차례로 들었다.
훨씬 나은 음질 덕분인지, 확실히 어제보다 더 듣기가 좋았다.
“어때?”
진세혁 프로듀서의 물음에 멤버들은 밝은 표정으로 각자의 소감을 들려줬다.
전체적으로 다 좋다는 평이었다.
특히 두 번째로 재생된 곡들이 가장 긍정적인 평을 받았다.
“그런데 찐 프로님. 두 번째는 아직 가사가 완성이 안 된 거예요? 중간에 가사 없이 ‘음음~’ 하는 추임새만 들어가 있던데.”
“어. 지금 붙어 있는 가사도 내가 그냥 임시로 짠 거야. 나중에 작사가한테 정식으로 맡길까 생각 중인데…… 그렇지.”
진세혁 프로듀서의 시선이 이연에게 향했다.
“이연이, 네가 맡아서 해볼래?”
“저요?”
“너, 작곡하고 작사 둘 다 가능하잖아. 예전부터 곡 작업에 너도 참여하고 싶어 했고. 그리고…….”
진세혁 프로듀서가 말끝을 흐리는 사이, 박도수 매니저가 그의 차례를 가로챘다.
“멤버가 직접 작사나 작곡을 담당했다고 하면 대중들한테 곡을 더 어필할 수 있거든.”
찐 프로가 ‘내가 하려던 말이었는데……’라고 혼잣말을 흘리면서 아쉬움을 드러냈다.
사실 데뷔 앨범 때에도 마음만 먹으면 이연에게 맡길 수 있었지만, 첫 앨범의 중요성을 생각 안 할 수가 없었던 탓에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되었다.
두 번째 앨범부터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사실은 시기상 빠르긴 하다.
그러나 이연은 이미 SSS를 통해서 자신의 능력을 여러 차례 입증한 적 있었다.
그래서 진세혁 프로듀서는 이연에게 차츰 앨범 작업을 맡겨보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연은 고민 없이 진세혁 프로듀서의 제안을 바로 받아들였다.
“네. 해볼게요.”
“오케이. 그러면…… 두 번째 곡을 타이틀곡으로 가져갈까?”
멤버들 모두가 이에 대해 동의했다.
만장일치로 타이틀 곡을 정했으니, 작사 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안무 시안 구상도 바로 착수하기로 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회의가 끝나서 그런지, 진세혁 프로듀서가 곡 말고 다른 이야깃거리를 먼저 꺼냈다.
“박 매니저님한테 소식 들었지? 너희한테 이번에 걸파이트 시즌 2 출연 제의 들어왔다는 거.”
“네.”
“어제 들었어요.”
그거 때문에 숙소로 복귀한 첫날부터 멤버들은 늦은 밤까지 오랜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럼에도 아직 의견이 하나로 합치되지 못했다.
“출연하기로 한 팀도 알고 있어?”
“원더존 선배님들하고 MAYO 선배님들까진 들었어요.”
이때, 진세혁 프로듀서가 새롭게 갱신된 정보를 멤버들에게 알려줬다.
“지인들 통해서 들었는데. 오늘 한 팀이 더 확정되었다고 하더라.”
“어디인데요?”
멤버들의 관심이 폭발했다.
곡에 대해 이야기할 때보다도 더한 반응이었다.
“아이비제이 트윙클이라고 하더라.”
디펜딩 챔피언의 참가가 확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