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제44화. 두 번째 서바이벌(1)
집으로 돌아가기 전.
이연은 멤버들과 잠시 숙소에 들렀다.
차를 세우고 먼저 숙소로 들어가 있자, 곧이어 우미와 함께 같은 차를 타고 움직였던 시우가 몸을 부르르 떨면서 말했다.
“배고파 죽겠어요.”
“방금 밥 먹고 왔는데도?”
“그 분위기에서 어떻게 밥을 먹겠어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언제 또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는 호화로운 저녁 식사 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우는 숨이 턱 막힐 것 같았던 그 자리에서 고기 한번 마음 놓고 썰어보지 못했었다.
가장 마음고생이 심했던 건 누가 뭐라고 해도 우미였을 것이다.
이연이 겉옷을 걸어놓고선 우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언니. 이사님한테는 연락 왔어?”
“응. 오면서 짧게 통화했어. 엄마 데려와서 미안하다고. 자기도 고의는 아니었대.”
우미는 양우섭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SSS 파이널 생방 무대 당시, 유일하게 찾아와 준 가족이 바로 자신의 친오빠 아닌가.
사실 굉장히 어려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만약 양우섭이 자신의 아버지나 할아버지처럼 언론에 많이 노출되었던 상태였더라면 그날 무조건 기사가 났을 것이다.
YN그룹의 관계자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SSS 촬영 현장을 찾진 않았을 테니까.
게다가 SSS 제작 후원사도 아니고.
양우섭 입장에선 많은 용기를 낸 행동이었다.
단지 여동생을 응원해 주기 위해서.
다른 연습생의 가족들처럼 자신도 우미의 가족으로서 힘을 보태기 위해 그런 행동을 보여준 것이다.
우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빠가 사람은 참 착한데. 엄마하고 아빠한테는 많이 약해서 탈이야.”
반면, 우미는 양우섭과 달리 매우 용맹(?)스러웠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집을 혈혈단신으로 집을 뛰쳐나올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이연은 우미와 양우섭,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봤던 이들의 어머니를 떠올리면서 생각했다.
‘신기한 집안이야.’
이때, 우미가 이연에게 사과했다.
“미안해, 연아. 괜히 나 때문에 엄마하고 이상한 약속 하게 만들어서.”
“괜찮아. 그리고 언니나 시우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가수로서 성공하고 싶어서 이쪽 업계 문을 두드리게 된 거잖아. 그렇지?”
우미와 시우는 이연의 물음에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
이 달콤한 열매를 맛보기 위해 사람들은 연예계로 몰려든다.
모든 사람이 도전할 수 있는 곳이지만, 모든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곳은 절대로 아니다.
노력과 재능, 그리고 운. 모든 것들이 맞아떨어져야 말 그대로 빛나는 별(Star)이 될 수 있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 멤버들은 이곳 숙소로 모이게 되었다.
이번에는 시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어떻게 해요, 언니들.”
“뭐가?”
“우미 언니 어머님한테 반드시 성과를 보여주겠다고 했잖아요.”
이연은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하면 되잖아.”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이번에 준비가 들어가게 될 두 번째 앨범의 성적이 잘 나와야 한다.
이연이 설정한 1차 목표는.
“음원 공개하고 곧장 차트 인. 그리고 1위 달성. 이렇게 가야지.”
“가능할까요? 저번에는 아이비제이 선배님들 말고도 다른 쟁쟁하신 분들 많이 계시잖아요.”
유명한 가수팀이 한둘이 아니다 보니 무조건 하니엘의 컴백 시기와 겹치는 팀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에 또, 역주행이라는 이름의 복병을 잊으면 안 된다.
의도치 않게 역주행까지 하는 노래들을 생각해 본다면, 1위라는 목표는 결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이연은 자신 있다.
“걱정하지 말고 오늘은 푹 쉬어. 다 잘 풀릴 거야.”
괜히 벌어지지도 않은 미래의 일 때문에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이연이 이렇게 말해주니, 우미와 시우는 조금이나마 마음의 부담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
이연은 한다면 하는 남자…… 아니, 여자니까.
* * *
이사 첫날.
아침부터 잔금 납부에, 이삿짐 정리에. 정신이 하나도 없던 이연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고 나서야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훨씬 깔끔해지고 넓어진 자신의 방을 보고 있자니 그제야 조금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예전에 내가 살던 곳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긴 하지만.’
이 세계로 넘어오기 전에 이연은 지금의 방보다 최소 다섯 배 되는 크기의 방에서 생활했었다.
방 한가운데에 침대가 놓여 있고. 다른 한쪽에 자신이 좋아하는 책들과 대륙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둔 기념품으로 전시해 둔 진열장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옛날 자신의 방에 비하면 크기며 인테리어며 한참 부족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사 오기 전보단 훨씬 나으니까. 그걸로 만족해야지.’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다.
이거 원하고 저거 원할 거면, 이연은 여기에 있으면 안 된다.
작은 섬 하나 정도는 통째로 사들여야 한다.
‘그때까지 열심히 일해야지.’
제2의 삶을 살게 된 가장 큰 목적은 부유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바라는 ‘완벽한 무대’를 만드는 것이니까.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권민준이 누나의 방을 찾았다.
“누나. 저녁 뭐 먹을 거야?”
“글쎄. 땡기는 게 없는데.”
고민하는 사이, 이연의 어머니가 아이디어를 하나 냈다.
“중국집에서 시켜 먹자. 원래 이사한 날에는 중식이 기본이잖아.”
“듣고 보니 그러네요. 점심도 바쁘다고 대충 삼각김밥으로 때웠잖아요.”
“그렇지. 저녁은 엄마가 살 테니까 먹고 싶은 거 마음껏 골라보렴.”
“아싸!”
그러나 이연은 어머니에게 괜찮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지갑을 찾았다.
“계산은 제가 할게요.”
“괜찮아. 우리 딸이 이렇게 좋은 집도 구해줬는데. 저녁 정도는 엄마가 사게 해줘.”
권민준도 어머니의 편을 들어줬다.
“맞아, 누나. 이럴 때에는 엄마가 사게 해달라고. 나도 나중에 학교 졸업하고 알바해서 한턱 크게 살 테니까.”
그 말에 어머니가 손으로 아들의 등을 쓸어내려 주면서 기특하다고 칭찬했다.
처음에는 이런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게 어색했었는데.
지금은 많이 편해졌다.
마치 진짜 가족처럼.
‘그래. 집이 어떻게 생겼든 간에 그게 문제가 아니지.’
누군가와 같이 있는지.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이연은 오랜만에 깨달았다.
* * *
데뷔 앨범 활동 기간이 끝난 후에 주어졌던 3주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틀 전날부터 먼저 숙소에 들어와 우미, 시우와 함께 지내고 있던 이연이 차례차례로 복귀하는 멤버들을 반겨줬다.
리샤가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왔다.
“짜잔! 이거, 우리가 먹을 간식들이야. 미국에서 잔뜩 사 왔지!”
“‘우리’가 아니라 ‘리샤 언니’가 혼자서 다 먹을 간식들이겠지.”
비아가 리샤의 말 속에 담긴 오류를 정확히 지적해 줬다.
간식을 사 오면 그중 대다수는 리샤의 배 속으로 직행하곤 했다.
그걸 아는 모양인지, 리샤가 사 온 과자들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멤버들이 입이 심심할 때마다 먹을 간식거리들을 모아놓는 보관함에 다 안 들어갈 정도였다.
넓은 숙소가 다시 멤버들의 소란스러움으로 채워지자, 이연은 그제야 다시 원래의 장소로 돌아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가장 마지막에 숙소로 복귀한 인물은 유키였다.
“안녕하세요, 언니들!”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는 유키를 보면서 멤버들은 크게 놀랐다.
“유키! 너, 머리 어떻게 된 거야!”
“아, 이거요? 숏컷으로 잘랐어요. 어때요. 잘 어울려요?”
멤버들 중에서 헤어스타일이 가장 변화무쌍한 사람이 바로 유키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에는 상당히 과감했다.
그래도 숏컷이 꽤나 잘 어울리는 편이었다.
여솜이 유키의 숏컷 헤어를 앞으로, 옆으로, 뒤로 돌아가면서 관찰했다.
“이런 스타일 소화하기 쉽지 않은데. 예쁘네. 귀엽고.”
“그렇죠? 움직이기도 편하더라고요. 머리 감을 때도 금방이고요.”
“맞아. 그건 확실히 부럽네.”
“언니도 짧게 잘라보는 거 어때요?”
“나? 아니야. 난 날씨 추울 때에는 머리 기르는 게 좋더라. 은근히 보온 효과도 있고.”
멤버들 각자의 취향이라는 게 있으니까. 서로 존중해 주는 게 좋다.
유키까지 합류함으로 인해 드디어 완전체로 뭉치게 된 하니엘 멤버들.
“다 모인 김에 파티하자, 파티!”
비아가 기운찬 목소리로 홈 파티를 제안했다.
마침 멤버들이 숙소로 들어오면서 각자 사 들고 온 먹거리들이 꽤 쌓여 있기도 하고.
밖에서 마실 것만 간단하게 구해 오면 금세 파티 분위기가 형성될 것 같았다.
“잠깐만.”
마침 이연이 좋은 생각이 난 모양인지 멤버들에게 마시고 싶은 술이나 음료를 묻고서 누군가에게 연락을 취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띵동! 소리와 함께 박도수 매니저와 최공예 코디가 숙소를 방문했다.
“어머, 매니저님!”
“언니도 오셨어요?”
“너희 파티한다길래 우리도 끼려고 왔지. 자, 이거. 너희가 주문한 것들이다.”
박도수 매니저가 양손으로 쥐고 있는 봉지들을 들어 보였다.
멤버들은 이연이 연락한 상대가 박도수 매니저였음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박도수 매니저가 단순히 음료 셔틀만 하기 위해서 이곳을 찾은 건 아니었다.
한창 파티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무렵.
그가 본론을 꺼냈다.
“찐 프로님이 곡 몇 개 뽑아봤다는데. 오늘 내가 대신해서 너희한테 들려주려고 왔어.”
“벌써요?”
“엄청 빠르네요.”
진세혁 프로듀서의 강점이 바로 속도다.
멤버들이 쉬는 동안 진세혁은 녹음실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하니엘이 다음 앨범 활동 때 날아오르게 해줄 새로운 날개를 제작하고 있었다.
어떤 종류의 날개인지, 멤버들은 박도수 매니저가 가져온 노트북에 이목을 집중시켰다.
노트북 스피커 볼륨을 최대한으로 키운 박도수 매니저가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했다.
준비된 파일은 총 다섯 개.
콘셉트도 각기 달랐다.
박도수 매니저가 혹시나 해서 멤버들에게 못 했던 말을 들려줬다.
“여기서 노래 듣고 바로 정할 필요는 없고. 어차피 내일 회사 가서 찐 프로님 작업실에서 다시 들어볼 거거든? 그러고 난 다음에 어떤 곡을 타이틀로 삼을지 말해주면 돼. 다섯 개 다 마음에 안 들면 없다고 해도 되고.”
“네, 알겠습니다.”
곡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를 짓도록 하고.
박도수 매니저는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소식을 꺼냈다.
“그리고 너희 컴백하고 나서 방송 활동 할 때 출연할 프로그램들도 같이 살펴보고 있는 중인데.”
“벌써요?”
“컴백 쇼케이스 끝나고 바로 방송으로 노출되어야 하니까. 그 전에 미리 녹화해 두고 그래야지.”
맞는 말이다.
그날 녹화한다고 그편이 바로 내일 방송으로 나가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미리미리 해두는 게 무조건 좋다. 나중에 가면 정신없이 바빠질 테니까 말이다.
몇몇 프로그램들을 언급하던 박도수 매니저가 남은 하나를 두고 많은 고민을 보였다.
그의 태도에 멤버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요, 매니저님?”
“문제 있는 프로그램이에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박도수 매니저가 멤버들에게 이상한 질문 하나를 건넸다.
“너희, SSS 출연할 때 어땠어? 할 만했지?”
멤버들은 서로를 쳐다보다가 이내 아리송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면 말이지…….”
말끝을 흐리던 박도수 매니저가 결심을 굳히고서 냅다 질렀다.
“서바이벌 프로그램, 한 번 더 나가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