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제39화. 군필 아이돌(2)
군대 예능, ‘근무 중 이상 무’ 여군 특집 촬영이 3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동안 이연은 이전에 방영되었던 2편의 여군 특집들을 챙겨보기 위해 스케줄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태블릿 PC를 꺼내 들었다.
뒤에 앉아 있던 시우가 이연의 태블릿 PC 화면을 보자마자 관심을 보였다.
“언니. 여군 편 보는 거예요?”
“어. 너는 봤어?”
“아니요. 오늘 가서 보려고요.”
“그러면 같이 볼까?”
어차피 함께 출연하기로 되어 있는데. 모니터링도 같이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연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우미가 두 사람의 모니터링을 위해 자리를 양보해 주기로 했다.
“감사해요, 언니.”
시우의 말에 우미는 싱긋 웃으면서 괜찮다고 답해줬다.
이연의 옆에 바짝 달라붙은 시우가 한쪽 블루투스 이어폰을 건네받았다.
‘근무 중 이상 무’ 특집 편들을 넘어서 본편들 중 가장 재미있다고 평가받았던 첫 번째 여군 특집편 영상이 재생되었다.
시우가 출연진 중 독보적인 미모를 자랑하는 여배우, 강라은을 가리켰다.
“라은 선배님이 이때 하드캐리하셨다고 그러던데요.”
“엄청 화제였다고 하더라.”
이연도 강라은의 활약상이 궁금해서 이렇게 영상을 보게 되었다.
여군 특집편을 보는 동안 이연은 강라은이 왜 이때 당시에 많은 인기를 끌었는지 얼추 알 수 있었다.
‘군 생활 잘하네.’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뭐라고 해야 할까. 여군 출신인 것처럼 누가 시키지 않아도 먼저 찾아서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많은 호감을 산 듯했다.
하이라이트 영상 댓글에도 강라은의 이런 활약상에 놀라는 반응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거다.
‘훈련 잘 받으면 되네.’
비록 대한민국 군대는 처음이지만, 이연은 나름 군필자다.
군필 아이돌로서의 위엄을 보여줄 생각에 벌써부터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 * *
대망의 촬영일이 다가왔다.
이연과 시우는 155㎜ 견인곡사포 부대가 있는 최전방으로 향하기 위해 새벽부터 눈을 떠서 준비에 돌입했다.
그나마 군대 예능 촬영의 좋은 점이 하나 있었다.
“메이크업에 신경 안 써서 좋긴 하네.”
숙소에서 간단하게 기초화장 정도만 하고 나가기로 했다.
어차피 부대 들어가서 훈련받을 때 얼굴에 위장크림을 덕지덕지 바를 테니까.
풀메이크업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부지런한 이연, 시우와 달리 다른 멤버들은 오전에 스케줄이 없었기에 여전히 단잠이 취해 있었다.
멤버들이 깨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나서려고 하던 찰나였다.
“……이제 가는 거야?”
우미가 눈이 반쯤 감긴 채로 두 사람을 배웅하기 위해 나섰다.
“안 나와도 돼, 언니.”
“아니야. 너희 2박 3일 동안 우리들 대표로 고생하러 가는 건데. 그냥 보낼 순 없지. 잠깐만.”
우미가 빠른 걸음으로 부엌에 잠시 들렀다.
보온병 두 개를 가져온 우미가 그것을 동생들에게 각각 하나씩 건넸다.
“어제 우롱차 타뒀거든. 가면서 마셔. 알았지?”
우미가 멤버들과 나이 차이가 크게 안 남에도 불구하고 이것저것 챙기는 모습이 정말로 엄마 같은 느낌을 선사했다.
“고마워, 언니.”
“잘 마실게요.”
“그래. 조심해서 갔다 오고. 몸 안 다치도록 조심해. 알았지?”
아이돌은 몸이 재산이다.
특히나 얼굴이나 팔, 다리처럼 노출이 자주 되는 신체 부위에 상처라도 생기면 큰일이다.
이연도 우미가 걱정하는 게 어떤 건지 잘 안다.
가급적이면 몸 건강히, 무사히 촬영을 마치는 것이 이들의 첫 번째 목표다.
이런 멤버들과 달리, 박도수 매니저는 상당히 들떠 있었다.
시우가 이런 박도수 매니저의 모습에 가장 먼저 의아함을 드러냈다.
“기분 좋아 보이시네요, 매니저님?”
“오늘 너희가 촬영가는 부대 말이야. 알고 보니까 예전에 내가 군 생활 했던 곳이더라고. 이야, 이런 우연이 다 있나 싶었다니까.”
“정말이에요?”
“어! 나도 듣고 놀랐다고. 처음에 연천, 전곡 쪽 부대라는 말 들었을 때 설마 했거든. 근데 그 설마가 사람 잡을 줄 누가 알았겠어? 이야. 옛 생각이 절로 나더라.”
전역하고 나서 세월이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박도수 매니저는 자신도 모르게 신이 난 목소리로 군대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차가 톨게이트를 지나서 막 고속도로에 접어들 때쯤, 박도수 매니저가 뒤늦게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다. 여자들은 군대 이야기 별로 관심 없지?”
안 좋아한다는 걸 박도수도 알고 있었지만, 너무 신이 난 모양인지 자신도 모르게 훈련소 시절 때부터 상병 진급할 때까지의 일화를 쭉 늘어놓고 말았다.
군대 이야기를 관두려고 했는데.
이연이 오히려 나서서 만류했다.
“괜찮아요. 더 해주세요.”
“엥? 더 해달라고?”
“네. 특히 훈련에 관한 거 위주로 말씀해 주세요.”
“들어봤자 재미없을 텐데.”
그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다르다.
“이번 방송, 제가 캐리하고 싶어서요. 그래서 많이 알아두려고요.”
이연은 여군 특집 편에서 제2의 강라은을 노려볼 생각이었다.
* * *
오늘 이들이 촬영할 장소로 향하기 전에 먼저 위수 지역 내에 위치한 작은 시내 거리에서 오프닝 촬영을 진행하기로 예정이 잡혀 있었다.
이연과 시우가 출연자들 중에서 가장 먼저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시우가 당황한 기색을 보이면서 이연에게 물었다.
“언니. 카메라 돌아가고 있는 거 아니에요?”
이연도 그렇게 보이는 모양인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스태프들이 다가와 그녀들에게 마이크를 채웠다.
PD의 손짓에 따라 자연스럽게 카메라 앞에 서게 된 두 여성.
‘근무 중 이상 무’는 특별히 진행자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없었다.
매회 출연자들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른 출연자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졸지에 프로그램 진행을 떠맡게 된 두 사람.
시우는 진행이라는 것과 전혀 연이 없었다. 이 때문에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기도 전에 벌써부터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어버렸다.
이럴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명밖에 없다.
“……언니.”
시우가 이연의 옷소매 끝을 잡고서 소심하게 당겼다.
이연은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시우의 등을 몰래 토닥여 줬다.
“PD님. 다른 분들은 아직 안 오신 건가요?”
카메라 너머에 있는 PD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네. 도착하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리실 거 같네요.”
얼마나 걸릴지, 구체적인 시간은 전해 듣지 못했다.
시우는 이렇게 둘만 덩그러니 서 있는 이 시간이 위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연은 오히려 기회라고 보고 있었다.
이럴 때 최대한 시청자들에게 자신들을 어필해야 한다.
“시우야.”
“네, 언니.”
“가족분들 중에서 군 관계자 출신이신 분 계시다고 하지 않았어?”
그분이 누구인지, 이연은 다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일부러 모른 척하면서 시우에게 물었다.
방송에 시우와 군대의 연관성을 의도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PD의 표정이 흥미진진하게 변했다.
미팅 때에도 나오지 않았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네. 저희 아버지가 간부 출신이셨어요.”
“정말?”
이쯤 되니 시우도 이연이 고의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눈치 못 챌 수가 없었다.
“그러면 어렸을 적에 아버지 보고 여군 돼보고 싶다는 꿈 같은 건 꿔본 적 없었어?”
“있었죠. 그래서 오늘 이렇게 녹화 참여하게 된 게 너무 기뻐요.”
예능도 드라마나 영화처럼 스토리가 중요하다.
군 간부 출신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던 아이가 아이돌로 데뷔해 이렇게 군대 예능에 참가해 간접적으로 꿈을 이루게 되었다.
PD로서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는 스토리였다.
이런 개인 스토리 하나 가지고 있으면, 나중에는 제작진이 알아서 시우의 분량을 만들어줄 것이다.
이연은 어차피 본인이 알아서 분량 챙길 생각이었으니까. 그래서 다른 출연자들이 오기 전까지 그녀의 같은 멤버 띄워주기 작전은 계속되었다.
15분 정도 지났을까.
마침내 또 다른 출연자가 막 도착했다.
강라은과 함께 여군 특집 1기 멤버로 활약했었던 배우, 장유하.
대선배를 보자마자 이연과 시우는 허리를 깊숙하게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하세요!”
장유하는 그녀들을 처음 본다. 그래서인지 하니엘 멤버들처럼 존댓말을 사용하면서 인사를 건넸다.
장유하의 뒤를 이어 또 다른 1기 참가자였던 조인혜, 멀리뛰기 국가대표 출신 최혜종,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니엘의 첫 음악방송 출연 당시에 인사를 나눴었던 한 달 선배 그룹, 원더존 소속의 윤채미까지.
총 여섯 명의 여군 참가자들이 마침내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장유하가 출연진을 쭉 훑으면서 말했다.
“혹시 이번에도 내가 최연장자야?”
조인혜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표로 대답했다.
“그런 거 같은데요?”
나이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연이 이런 제안을 했다.
“저희한테 말 편하게 하셔도 돼요, 선배님.”
“어머, 그럴까?”
2박 3일 동안 같이 울고 웃고 떠들고 이럴 텐데. 미리 친분을 다져두는 게 좋다.
서로 나이를 묻다 보니 시우가 가장 막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다음으로는 이연과 원더존의 리더인 윤채미가 동갑내기로 나이가 어렸다.
서열 정리가 끝남과 동시에 그녀들은 부대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은 장유하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으면서 긴장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1기 때에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는데. 오늘이 더 긴장되는 거 같아.”
“저도요, 언니.”
장유하와 같이 이번이 두 번째 참가인 조인혜도 같은 심정임을 어필했다.
오히려 경험자인 두 사람이 유독 더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장유하가 조인혜에게 물었다.
“라은이는 왜 안 왔대?”
“라은이 요즘 많이 바쁘잖아요. 저희보다 훨씬 잘나가는 대배우님이신데.”
“아쉽네. 라은이 있으면 엄청 든든했을 텐데.”
이연도 내심 강라은과 같이 촬영하기를 바랐었다.
그러나 일정 문제라고 하니까. 어쩔 수가 없었다.
대신에 장유하와 조인혜가 열심히 힘을 내보기로 했다.
이들 중 유일한 경험자들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출연자들 각자의 각오를 다지는 사이.
점점 위병소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신분 확인을 위해 차가 잠시 정차했다.
좌경계총을 하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만 봐도 출연자들의 긴장감은 배가 되었다.
7087대대 연병장 한가운데에 멈춰 선 버스.
차 문이 열림과 동시에 조교를 상징하는 빨간 모자를 쓴 한 남성이 버스에 올랐다.
“지금부터 신속히 하차해서 2열 종대로 헤쳐 모입니다. 실시!”
차가운 조교의 날 선 외침에 출연자들은 벌써부터 혼비백산했다.
그러나 이 당혹감도 잠시.
“……어라?”
조교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출연자들의 머릿속에 거대한 느낌표가 떠올랐다.
이연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있었다.
빨간 모자를 쓴 조교의 얼굴이 낯이 익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정우재 선배님……?”
설마 그를 여기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