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137화 (137/299)

137화

제39화. 군필 아이돌(1)

‘근무 중 이상 무’라는 예능은 군대라는 독특한 소재로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토요일 저녁이라는 황금시간대에 방영되고 있으며, 시간대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의 재미 역시 입소문을 탄 덕분에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박도수 매니저는 이번에 들어온 섭외 요청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연은 이해가 안 됐다.

“군대 프로그램인데, 저한테 섭외가 들어왔다고요?”

박도수 매니저가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였다.

이연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저, 여자인데요.”

본인이 말하고도 어색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속내는 남자니까.

본인의 입으로 난 여자라고 인정했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기분이 굉장히 복잡했다.

그렇다 할지라도 확인할 건 해야 하지 않겠나.

혹여나 자신과 동명이인의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에게 가야 할 캐스팅이 이연에게 들어온 것일 수도 있으니까.

이런 이유에서 확인 차 물어본 거였는데.

박도수 매니저의 대답이 이러 오해를 풀어줬다.

“이번에는 여군 특집이래. 세 번째라고 그러더라.”

여군 특집이라고 하니 단박에 이해가 갔다.

“첫 번째 여군 특집 때 강라은 씨라고, 너도 아마 많이 들어봤을 거야. 엄청 유명한 여배우 있잖아.”

“네. 사업 쪽으로도 수완이 좋으신 선배님으로 알고 있어요.”

“그분이 ‘근무 중 이상 무’ 여군 특집 때 말 그대로 하드캐리 했거든. 재미있게 나오기도 했고. 그 덕분에 여군 특집이 프로그램 시청률이 조금 저조하다 싶을 때 꺼내 드는 치트키 같은 거로 자리 잡게 되었어.”

이건 다시 말해서.

“제작진이 열심히 밀어주겠네요.”

“출연만 한다면 그렇게 되겠지.”

이연은 결정만 하면 된다.

그러나 2박 3일 동안 실제 군부대에 가서 생활을 하는 거였기에 여타 다른 예능 프로그램 촬영보다 난이도가 훨씬 높다.

훈련도 받아야 하고, 여기에 교관과 조교들의 잔소리도 버텨야 된다.

몸도 마음도 지치는 촬영이 될 것이다.

그래서 박도수 매니저는 이연에게 자유롭게 선택권을 줄 생각이다.

“하기 힘들 거 같으면 안 해도 괜찮아. 억지로 할 필요 없어.”

LC 엔터테인먼트는 소속 아티스트의 의견과 안전을 중시한다.

이건 오채일 대표의 신념과도 같았다.

강제성은 없다. 박도수 매니저는 이 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어때. 고민 한번 해볼래?”

“아니요.”

처음에는 이연의 입에서 부정적인 표현이 나오길래 박도수 매니저는 그녀가 출연 제의를 거절할 줄 알았었다.

그러나 이연은 다른 의미에서 아니요라고 말한 거였다.

“시간 안 주셔도 돼요. 출연할게요.”

“엥? 정말로?”

“네.”

“진짜지?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어차피 전 이미…… 아무것도 아니에요. 방금 한 말은 그냥 잊어주세요.”

말을 하려다가 만 이연 덕분에 박도수 매니저는 안달이 났다.

“왜. 뭔데 그래? 응? 너 말 안 해주면 나 오늘 밤 궁금해서 잠 못 잔다.”

“괜찮아요. 그렇게 말해도 다들 잘 자더라고요.”

“…….”

이연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현생이 아닌 전생에서의 일화 중 하나였다.

그래서 말을 하려다가 멈춘 거였다.

이연은 이미 전생해서 입대했던 적이 있었다.

귀족 가문의 자제라 할지라도 의무적으로 군사 훈련을 받게 법으로 제정되어 있었다.

나라를 지키는 일에는 서민, 귀족 가리지 않아야 한다는 초대 개국공신들의 뜻이 그대로 반영된 제도였다.

그래서 이연은 잠시 음유시인 활동을 접고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군사 훈련을 받았었다.

그 덕분에 검술, 궁술, 맨손 격투와 함께 승마 기술도 습득하게 되었다.

이미 군필인 그녀가 현생에서 다시 입대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내심 기대가 되는 부분도 있었다.

말로만 듣던 한국 군대가 과연 이연이 경험했던 군대와 얼마나 다를지.

언젠가 한 번은 비교 체험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기회가 이런 식으로 찾아오게 될 줄은 몰랐다.

“나머지 한 명은 누구로 하실 거예요?”

“네가 직접 골라봐. 가고 싶은 사람 있는지 물어보고 있으면 데려가도 되고. 없다면…… 제비뽑기라도 시킬래?”

“괜찮아요. 추가 인원은 선택 사항이라고 하셨으니까, 없다면 그냥 저 혼자 갈게요.”

굳이 멤버 한 명을 국방색 지옥으로 끌고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이연이 그렇게까지 무자비한 사람은 아니었다.

* * *

숙소로 다시 돌아오자마자 멤버들이 이연에게 박도수 매니저한테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물었다.

안 그래도 멤버들한테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마침 잘됐다.

“여솜이하고 시우는? 이건 다 같이 듣는 게 좋을 거 같아.”

괜히 입 아프게 두 번 세 번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마침 숙소에 있던 여슴과 시우가 멤버들과 함께 거실 소파에 앉았다.

모두의 이목이 이연에게 집중되었다.

이연은 박도수 매니저한테 들은 내용을 전부 멤버들에게 공유해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하고 같이 군부대 갈 사람, 손.”

“…….”

“…….”

“…….”

어떤 마법사가 와서 사일런스 마법이라도 걸었는지, 멤버들 그 누구도 손을 들거나 입을 열지 않았다.

다들 가기 싫어서 그런 거였다.

하루도 아니고 2박 3일 내내 고생할 게 빤히 보이는데, 누가 먼저 가겠다고 자처할까.

차라리 다른 스케줄에 가고 말지.

물론 ‘근무 중 이상 무’가 시청률이 잘 나오는 프로그램이라는 걸 감안하면 당연히 출연하는 게 맞긴 하지만.

하필 촬영 장소가 군대라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아무도 없으면 제비뽑기라도 할까?”

이연이 박도수 매니저의 말을 인용해 장난삼아 물었다.

박도수 매니저에게 말한 것처럼, 지원자가 아무도 없으면 이연 혼자 참가해도 상관은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용기를 낸 멤버가 등장했다.

“저요. 제가 갈게요.”

막내즈의 멤버, 시우가 손을 들었다.

멤버들은 놀란 표정으로 시우를 바라봤다.

“진짜로?”

“아니, 왜?”

이연은 그쪽 프로그램에서 대놓고 지목해서 러브콜을 보내올 정도였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시우는 의외였다.

“사실 저, 초등학생 때 꿈이 여군이었거든요.”

“여군? 정말?”

“네. 아빠가 예전에 군대에서 일하셨거든요. 군복 입은 모습 보고 저도 나중에 한 번쯤은 저렇게 되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지금이야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회가 왔을 때 어렸을 적 꿈이라도 이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출연료까지 받을 수 있으니, 시우에게는 일석이조의 기회인 셈이었다.

이연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찾으면서 말했다.

“알았어. 그러면 매니저님한테는 그렇게 말 전해둘게.”

“네, 언니.”

입대 예정인 두 사람을 보면서 비아는 몸서리를 쳤다.

“난 절대로 저렇게 못 하겠어. 어후.”

그건 다른 멤버들도 공감하고 있었다.

* * *

오늘도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 음악 방송 프로그램 녹화에 참여한 하니엘 멤버들.

출근길 포토타임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본 촬영까지. 모든 녹화 일정을 마친 멤버들은 이제 집보다도 더 아늑하게 느껴지는 숙소로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

이연과 시우, 두 명을 제외하고 말이다.

다른 로드 매니저에게 나머지 멤버들을 맡긴 박도수 매니저는 홍류현 실장과 짧은 통화를 마치고 이연과 시우가 기다리는 차 안으로 돌아왔다.

“홍 실장님, 방송국에 거의 도착하셨대.”

“저희도 빨리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걱정 마. 차로 10분 거리니까. 금방 갈 수 있어.”

오늘 이연과 시우는 소속사 관계자들과 함께 다음 주에 출연할 ‘근무 중 이상 무’ 여군 특집 3편 사전 미팅을 하기 위해 방송국으로 이동했다.

미리 와 있던 홍류현 실장과 함께 회의실에 도착하자, 주성원 PD가 작가진과 함께 이들을 맞이했다.

“어서 앉으세요. 마실 거라도 드릴까요? 커피, 녹차, 홍차, 물. 종류별로 다 있으니까 말씀만 하세요.”

네 사람은 각자 원하는 음료를 주문했다.

이연과 시우는 물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음악 방송 프로그램 녹화를 끝마치고 바로 넘어온 터라 둘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유독 갈증을 많이 느끼고 있었다.

풀 메이크업을 한 그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작가들은 크게 술렁일 수밖에 없었다.

“두 분 다 TV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예쁘세요.”

“하니엘이 비주얼 그룹들 언급할 때 많이 나오던데. 왜 그런지 알겠네요.”

외모에 대한 칭찬이 이어지자, 두 사람은 어색한 미소와 함께 감사하다는 말을 건넸다.

가벼운 인사는 이쯤에서 마치도록 하고.

주성원 PD가 오늘 이 자리의 주된 목적이라 할 수 있는 촬영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저희가 이번에는 포병 부대를 갈 예정인데, 혹시 155㎜ 견인곡사포라고 아시나요?”

시우는 잘 몰랐다.

반면 박도수 매니저와 홍류현 실장은 아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들이 말문을 떼기 직전.

이연이 먼저 입을 움직였다.

“네, 알고 있어요.”

“정말인가요?”

제작진은 이연이 당연히 모를 거라고 생각했었다.

대부분의 젊은 여성들은 군대, 특히 견인곡사포 포병에 대해 잘 모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연이 자세히 아는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인터넷에서 ‘군대 3대 꿀 보직’이라고 하는 짤방을 본 적이 있거든요.”

이연이 본 것은 공병 장간조립교, 박격포병,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155㎜ 견인곡사포 포병이었다.

말이 꿀 보직이지, 반어적 표현이라고 보는 게 맞다.

사실은 꿀 보직이 아니라 헬 보직이다.

그중 하나를 가겠다고 하니, 시우는 절로 표정이 굳어졌다.

본인의 입으로 어렸을 적 꿈을 이루러 출연하겠다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빡세게 이루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어색한 웃음을 흘린 주성원 PD가 왜 하필 이런 빡센 부대를 촬영지로 고르게 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 알려줬다.

“저희가 이번 여군 특집은 제대로 힘을 주고 제작해 보려고요. 아껴뒀던 필살기 꺼내기로 했습니다.”

여군 특집이라는 치트키에 3대 헬 보직 필살기까지.

제작진은 아예 이번 촬영을 통해 영혼을 갈아 넣을 작정이었다.

물론 갈려 나가는 건 제작진만이 아니다.

부대에 가서 고생할 출연진도 같이 갈려 나갈 예정이었다.

그래서 주성원 PD는 다시 한번 더 그녀들에게 기회를 줄 생각이었다.

“힘드실 거 같다 싶으시면, 지금 말씀하셔도 됩니다.”

최후의 갈림길.

그럼에도 이연의 뜻은 여전했다.

“저는 출연할게요.”

“시우 씨는요?”

“저도…… 요.”

약간 계산에 미스가 나긴 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온 이상 뒤로 물리는 건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설프게 고생하면 방송도 재미없어지고. 그럴 바에야 차라리 빡세게 고생하고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자신을 어필하는 게 좋다.

재차 결심을 굳힌 두 아이돌을 보면서 주성원 PD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흘렸다.

“좋습니다. 그러면 촬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 드릴 테니까 나눠드린 프린트물을 봐주세요.”

“네.”

이연에게 말은 안 했지만.

시우는 이 프린트물이 마치 지옥으로 가는 안내문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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