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34화
제38화. 만능 알바생(1)
회사를 나가게 된 진절혜.
이연의 시선은 한동안 진절혜가 사라진 방향으로 고정되었다.
막 볼일을 마치고 카페로 돌아온 박도수 매니저가 이연의 모습에 의아함을 드러냈다.
“뭐 하고 있어?”
항상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이연의 멍 때리는 듯한 모습은 박도수에겐 낯설었다.
“진절혜가 연습생 그만두기로 했다는 말을 들어서요. 사실인가요?”
“아…… 들었구나.”
박도수가 머리를 긁적였다.
오늘 마지막으로 회사에 출근한 거였으면, 이곳을 나가겠다고 말한 지는 한참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박도수는 일부러 멤버들에게 진절혜에 대한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여솜과 유키를 제외하고 멤버들이 대부분 진절혜에게 안 좋은 감정을 품고 있다는 걸 알아서였다.
그래서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던 거였는데.
“미안. 말해줄 걸 그랬나.”
박도수 매니저가 사과를 하자, 이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저희 그룹 활동에 엄청 중요한 일은 아니니까요. 사과 안 하셔도 돼요.”
이연의 말대로다.
진절혜의 행보가 하니엘에게 커다란 지장을 주는 건 아니다.
만약 하니엘 멤버 중에서 진절혜와 죽고 못 살 정도로 친한 사람이 있다, 그러면 박도수 매니저가 그 연습생한테만이라도 말을 해주는 게 맞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박도수 매니저의 행동이 옳다고 볼 수 있었다.
“진절혜, 아예 가수 활동을 관두기로 한 거예요?”
박도수라면 회사에서 들은 게 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에 해본 말이었다.
“그건 잘 모르겠네. 다른 소속사로 이적한다는 소문도 있고. 뭐, 너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진절혜도 SSS로 인지도를 많이 끌어올렸잖아. 그거 생각하면 여기저기서 러브 콜 많이 받았겠지. 그리고 인성은 둘째 치고 실력은 있는 애니까. 갈 만한 곳은 많이 있을 거야.”
다만 본인이 계속해서 가수 활동을 하고 싶어 할지.
이에 대한 건 오직 진절혜 자신만 알 것이다.
이연과의 대결에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하기도 했고. 이로 인해 자신감도 많이 하락했을 것이다.
박도수가 어깨를 으쓱이면서 물었다.
“한번 알아봐 줄까?”
이에 대해 이연은 딱 잘라 답했다.
“안 그래주셔도 돼요.”
그렇게 말하며 이연은 진절혜가 사라진 방향 쪽으로 아예 시선을 뗐다.
* * *
숙소로 돌아와 잘 준비를 하려고 하던 이연은 여솜과 비아, 시우, 그리고 유키. 이렇게 네 멤버들이 거실에 모여 야식 타임을 가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연이 언니도 아이스크림 먹을래요?”
유키의 제안에 이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방금 막 이 닦고 와서 안 돼. 근데 이 시간에 웬 아이스크림?”
“시우가 요 앞에서 사 왔어요. 새로 디저트 가게 연 곳 있잖아요? 마침 스케줄 일찍 끝나서 잠깐 들렀대요. 근데 생각보다 맛있더라고요.”
유키도 지나가다가 멤버들의 영업에 의해 아이스크림을 한 입 맛보고, 그대로 자리에 눌러앉게 되었다.
무슨 아이스크림이기에 그런지 이연은 궁금증이 생겼다.
근처에 자리를 잡고서 아이스크림 외형만 구경하는 사이, 멤버들은 아까 나누던 이야기를 마저 이어가기 시작했다.
“절혜가 진짜로 나갔다고?”
“네. 아까 물건 찾으러 잠깐 회사 들렀는데, 직원들이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혹시나 해서 물어봤는데, 진짜였어요.”
여솜은 진절혜가 나갔다는 소식에 꽤 놀랐다.
반면, 비아는 그럴 줄 알았다면서 자신의 생각을 꺼냈다.
“자존심 하나로 먹고살았던 사람이 우리한테 대판 깨졌으니까. 못 버티고 나간 거지.”
“‘우리’가 아니라 ‘이연 언니’한테 발린 거지.”
유키가 이런 비아의 말을 정확하게 정정해 줬다.
비아도 유키의 지적을 인정하듯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여 줬다.
“하긴. 연이 언니 아니었으면 우리가 졌을 테니까. 근데 너는 괜찮아?”
유키가 물음표를 띄우면서 ‘나?’라고 되물었다.
“어. 너, 그쪽 팀이었잖아.”
“팀이긴 했는데, 솔직히 말해서 X같았어.”
예상치도 못한 비속어가 튀어나오자, 여솜과 비아는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사레가 들린 사람처럼 콜록댔다.
“우리, 아이돌이라고. 아이돌!”
“뭐 어때. 카메라 앞에서만 아이돌이면 되잖아. 내 집에서 내가 XXX, XXXX, XX, XXXX라고 말도 못해? 응?”
역시. 처음 배웠던 한국어가 욕이었다고 답한 유키다운 대답이었다.
신랄한 욕지거리 속사포에 여솜과 비아는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반면, 시우는 당황하는 두 사람과 달리 유키의 말에 오히려 공감을 드러냈다.
“절혜 언니는 너무 독단적으로 행동했어요. 팀원이 아무리 좋은 의견을 내도 자기 뜻하고 안 맞으면 바로 칼같이 잘라 버렸으니까요.”
유키가 이때다 싶었는지 그동안의 한을 풀어내려는 것처럼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라니까? XX, 파이널 무대 준비할 때 내가 얼마나 짜증 났는지 언니들은 모를 거예요. XXX! 곡 콘셉트도 내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엄청 말했었는데!”
하니유들이 들으면 기절할 법한 비속어들이 남발했다.
그만큼 유키의 속내에는 억울함이 많이 쌓여 있었다.
이연이 미소를 지으면서 유키의 작은 어깨를 토닥여 줬다.
“다 끝난 일이니까 그만 담아두고 잊어. 그러다가 너, 병날까 봐도 내가 다 걱정이야.”
“괜찮아요, 언니. 쌓이지 않도록 착실하게 스트레스 풀고 있으니까요.”
어떻게, 무슨 방식으로 푼다는 걸까.
멤버들은 굉장히 궁금했지만, 굳이 묻진 않았다.
자신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유키에 대한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조금이나마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연이 소파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진절혜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내일부터 또 스케줄 있으니까 너희도 슬슬 자러 들어가.”
“네, 언니.”
“알았어.”
방으로 돌아온 이연은 침대에 누워 익숙해진 천장을 올려다봤다.
나중에라도 진절혜가 다른 멤버들과 함께 정식으로 데뷔해서 다시 이연의 앞에 선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이 들어도 이연은 크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어차피 결과는 SSS 때하고 똑같을 텐데, 뭘.’
더 이상 진절혜는 이연의 라이벌이 되지 못한다.
진절혜가 성장한 만큼, 이연은 배 이상으로 커갈 테니까.
* * *
오늘은 완전체가 아닌, 몇몇 멤버들만 따로 이동해서 녹화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연과 우미, 유키, 그리고 비아. 이렇게 넷이 오늘 일정의 주인공으로 선정되었다.
그녀들이 참여할 녹화는 ‘잡(Job)것들’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여러 직업들을 한 번씩 체험해 본다는 콘셉트의 프로그램으로, 아이쇼처럼 매회 다른 게스트들을 섭외해서 진행된다.
직업 체험이 메인 소재다 보니 촬영은 주로 실내 스튜디오가 아닌 야외에서 진행된다.
오늘도 그럴 예정이다.
현장에 도착한 곳은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시내 한복판.
멤버들이 모습을 나타내자, 여기저기서 벌써부터 관심이 쏟아졌다.
그러나 촬영이라는 걸 알아서인지 사인이나 악수, 사진 찍어달라는 요청 같은 건 없었다.
그녀들은 PD와 스태프들, 그리고 JOB것들 메인 MC를 맡고 있는 가수 이턴과 인사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 우리, 음방 이후로 처음 보는 거지?”
“네, 맞아요!”
하니엘 멤버들이 데뷔 이후 첫 음악방송에 출연했을 때 인사를 건넸던 가수 팀 중에 이턴도 포함되어 있었다.
벌써 솔로로 가수 활동을 한 지 15년 차에 빛나는 대선배였다.
그럼에도 지금도 그 인기는 여전했다.
잘생긴 외모와 연예계 내에서도 천사라고 소문이 날 정도로 훌륭한 인성까지.
이것이 오랫동안 팬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었던 그의 비결이었다.
빠르게 리딩을 마친 이들은 주변에 더 큰 혼란을 초래하기 전에 바로 오프닝 촬영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이턴이 카메라를 향해 찡긋 윙크를 날리면서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아주 스페셜한 잡것들을 모셔봤는데…… 근데 아무리 우리 프로그램 콘셉트라 해도, 이분들한테 잡것들이라고 표현해도 좋을지 모르겠네. 이러다가 나, 하니유분들한테 막 공격받는 거 아니야?”
잡것들 프로그램에선 게스트라는 용어 대신 ‘잡것’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물론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그 잡것의 뜻으로 사용하는 건 아니었다.
“시청자 여러분들, 오해하지 마시고요. 우리가 여기서 부르는 건 ‘JOB것’입니다. 아셨죠?”
이미 30회 넘게 진행되어 온 프로그램이지만, 그래도 이턴은 녹화 때마다 습관적으로 이 말을 꼭 짚고 넘어가곤 했었다.
“그럼 오늘의 잡것분들을 모셔보겠습니다. 나와주세요!”
“안녕하세요, 하니엘입니다!”
상큼함이 톡톡 묻어 나오는 그녀들의 인사에 구경하던 사람들이 큰 환호성을 보냈다.
중간에 하니유들도 껴 있는 모양인지, 어느새 홈페이지에서 구매한 하니엘 굿즈까지 꺼내 들고 그녀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카메라가 하니유들을 슬쩍 비췄다.
이에 따라 이턴도 요즘 하니엘의 위상이 얼마나 높은지 언급했다.
“장안의 화제던데요? 지금도 들어보세요. 하니엘 여러분들이 불렀던 노래 나오고 있잖아요.”
일부러 의도한 것인지, 마침 핸드폰 매장에서 ‘HUG’가 재생되고 있었다.
이에 맞춰서 멤버들은 몸을 들썩이면서 소심하게 안무를 선보였다.
이턴도 멤버들과 같이 안무를 맞췄다.
그러자 비아가 놀라면서 그에게 물었다.
“어? 선배님. 저희 안무 아세요?”
“당연히 알지! 핫한 걸 그룹인데. 모를 리가 있겠어? 우리 댄스팀들도 요즘 내 거 놔두고 다 너희들 거만 연습하고 있어.”
이턴의 말에 사람들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크게 흘러나왔다.
“기왕 노래 나오는 거, 사람들한테 안무라도 한번 보여주는 건 어때?”
신곡 홍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멤버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대열을 갖추고서 안무 동작을 펼쳤다.
원래는 일곱 명이서 하던 안무를 네 명이서 하려니까 좀 어색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럼에도 즉석에서 한 것치고는 꽤 호흡이 잘 맞았다.
피나는 연습의 결과였다.
이턴이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외쳤다.
“박수 한번 주세요!”
그의 외침에 따라 우렁찬 함성과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대본에도 없던 작은 공연이 무사히 끝났다.
예정에도 없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연은 멤버들에게 잘했다면서 몰래 칭찬을 건넸다.
본격적인 녹화에 앞서서 출연자들이 오늘 하루, 어디서 일할지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었다.
PD가 이턴에게 큐시트를 건넸다.
“여기에 우리가 일할 장소가 적혀 있다는 거죠?”
이턴이 확인 차원에서 PD에게 물었다.
PD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이턴의 말이 맞음을 인정했다.
“오늘 일할 곳은…… 어? 여기, 설마.”
이턴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나, 여기 본 거 같은데. 잠깐만. 혹시 우리 뒤에 보이는 바로 저 가게 아니에요?”
이턴이 가리킨 곳을 향해 멤버들이 고개를 돌렸다.
마침내 공개된 촬영 장소.
가장 먼저 들어오는 단어가 있었다.
[애견 카페]
이곳이 멤버들이 일할 오늘의 장소의 정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