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133화 (133/299)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33화

제37화. 첫 예능(4)

이연을 중심으로 멤버들은 각자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 움직였다.

아이돌들이 나오면 이렇게 테스트를 이유로 자신의 곡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은연중에 제공한다.

이걸 위해서 일부러 이곳 ‘아이쇼’에 출연하는 그룹들도 꽤 된다.

목표는 하나다.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노래가 오랫동안 방송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무사히 마지막 퀘스트를 완료해야 한다.

김운혁이 스태프들에게 신호를 줬다.

“음악 주세요!”

하니엘의 첫 번째 정식 앨범 타이틀곡인 ‘HUG’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초반 부분은 순조롭다.

데뷔하기 이전부터 하루에 수십 시간씩 투자하면서 연습했던 안무였기 때문에 낯선 스튜디오라 하더라도 어렵지 않게 무대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김운혁이 세 손가락을 펼쳤다.

그러더니 이내 손가락을 하나하나씩 접기 시작했다.

3, 2, 1.

김운혁의 손이 주먹을 쥐었을 때.

노래가 바뀌었다.

-술 한 잔 주세요.

오늘 밤도 그대와 취하고 싶어요.

나 집에 보내지 마요.

밤은 아직 길어요.

구수한 트로트 가락이 스튜디오를 채웠다.

완전히 달라진 리듬.

이로 인해 멤버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노래와 함께 열심히 무대를 꾸미고 있었는데. 전혀 다른 장르의 노래가 나오니까 스탭이 꼬일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하니엘 멤버들은 깨달을 수 있었다.

여태껏 ‘아이쇼’에 출연했던 아이돌들이 왜 그렇게 허둥댔는지를 말이다.

티비로 봤을 때에는 몰랐는데. 본인들이 직접 나와 이걸 겪어보니까 상상 이상으로 어려웠다.

지금까지 성공했던 그룹이 단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아이비제이조차 이 도전은 실패했었다.

겨우 트로트에 익숙해지려고 할 때쯤.

마치 ‘어딜 감히!’라는 것처럼 노래가 또 한 번 바뀌었다.

이번에는 ‘HUG’보다도 훨씬 빠른 비트를 지닌 힙합 장르의 곡으로 바뀌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곡이 착착 변하니까 멤버들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대형이 흐트러지기 일보 직전.

이연이 멤버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헷갈릴 거 같으면 나를 기준으로 해서 움직여!”

스튜디오에 어떤 노래가 흘러나오든, 이연은 개의치 않고 나만의 길을 가겠다는 듯이 계속해서 본인들의 노래 안무를 펼쳐가고 있었다.

멤버들은 이연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평소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연습을 했던 안무 동작이다. 그렇다 보니 자신의 동작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의 안무 동작까지 어느 정도 숙지를 해둔 상태였다.

이연의 안무를 기준으로 나는 언제, 어느 때쯤에 어떤 안무 동작을 펼치면 될지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움직였다.

그렇다 보니 적어도 아까처럼 서로 다른 파트의 안무를 펼치는 일은 없어졌다.

통일은 되었지만.

아직 곡에 맞춰서 안무를 이어가고 있는지 어떤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었다.

2분 정도 지났을 때.

김운혁이 안무에 매진하고 있는 멤버들을 향해 목소리를 크게 외쳤다.

“자! 이제부터 하니엘 여러분들의 노래로 다시 돌아갈 겁니다! 여기서 안무 동작이 얼마나 맞는지 평가할 테니까 집중해 주세요!”

과연 노래에 맞춰서 제대로 안무를 취하고 있을까.

멤버들도 궁금할 지경이었다.

김운혁이 아까처럼 다시 손가락을 펼쳤다.

또다시 시작된 카운트다운.

펼쳤던 손가락을 다 접었을 때.

하니엘의 노래가 다시 흘러나왔다.

동시에 멤버들의 얼굴이 가득 상기되었다.

-당신을 꽉 안아줄게요.

HUG, HUG.

마침 노래 제목에 맞춰서 포옹하는 자세에서 따온 안무를 취하고 있었다.

김운혁과 보조 MC들, 심지어 스태프들조차 촬영이라는 걸 잠시 망각할 정도로 크게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김운혁의 말이 빨라졌다.

“제대로 들어맞고 있습니다! 우리 프로그램 녹화 시작한 이래로 처음 아닙니까?”

“맞아요!”

“와, 이걸 맞추네요!”

하니엘 멤버들은 이대로 노래가 끝나는 마지막까지 무대를 펼쳤다.

‘아이쇼’에 출연했던 아이돌 그룹 중 최초로 완곡에 성공한 하니엘.

MC들의 점수는 볼 필요도 없이 각각 10점씩, 도합 30점 만점의 결과가 나왔다.

“5점 획득해서 총 15점을 달성하셨습니다! 하니엘 여러분, 축하드립니다!”

“여기, 상품 받아 가세요.”

종현이 나서서 멤버들에게 직접 투플러스 한우 세트를 건네줬다.

오늘 밤은 고기 파티다.

그렇게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 * *

무사히 녹화를 끝내고 대기실에서 각자 짐을 챙긴 채 숙소로 향할 준비를 마친 멤버들.

그 전에 김운혁이 멤버들을 따로 찾아왔다.

“오늘 녹화 고생 많으셨어요.”

“아니에요. 선배님께서 더 고생하셨죠.”

김운혁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오늘 녹화에 대한 짧은 소감을 알렸다.

“오늘 촬영은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일하러 온 게 아니라 여러분들하고 같이 어디 놀러 와서 오랜만에 레크리에이션 하는 기분이었어요. 특히 이연 양, 상자 안에 뭐가 들었는지 맞히는 코너 때 있잖아요.”

아직도 두려움의 여파가 남아 있는지, 미소를 유지하던 이연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김운혁은 이연의 이런 반응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방송 살리려고 일부러 무서운 척했던 거죠? 그때 이연 양, 예능감이 살아 있다는 느낌이 팍 오더라고요. 나중에 다른 프로그램 나가서도 잘하실 거 같던데요?”

멤버들이 시선이 이연에게 쏠렸다.

“연이 언니. 그랬어?”

“하긴. 연이가 장난감 벌레 같은 걸로 놀랄 리가 없지.”

“맞아, 맞아. 귀신 나오는 공포영화도 비명 한번 안 지르고 봤는데.”

어쩐지.

멤버들은 그럴 리가 없다면서 김운혁의 추측을 그대로 믿는 모습을 보였다.

아쉽게도 그녀들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이연은 그냥 진짜로 벌레가 무서워서 그랬던 거였다.

심지어 그녀는 상자 속에 있던 게 진짜가 아니라 놀래키기용 장난감 벌레인 줄 알면서도 그걸 만질 용기가 나지 않았었다.

그 정도로 벌레를 끔찍이도 싫어한다.

그렇다고 멤버들 앞에서 자신의 약한 부분을 드러내고 싶진 않았다.

“마, 맞아. 방송 살리려고 그랬던 거야. 역시 선배님이세요. 속일 수가 없네요.”

얻어걸린 우연이지만, 아무렴 어떠랴.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다.

* * *

첫 예능 신고식을 마친 하니엘 멤버들은 토요일 때처럼 음악방송에 계속 나가면서 라디오, 토크, 예능 등. 다양한 분야의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데뷔한 지 1주일이 조금 넘었을 때.

이연과 여솜, 비아는 지금까지 출연했던 방송과는 많이 다른, 색다른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다.

바로 뉴스다.

아이돌로서 활동할 때, 설마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요즘 뉴스는 예전만큼의 딱딱하고 사무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하고자 요즘은 핫한 인사들을 게스트로 초빙해서 짧게나마 인터뷰를 진행하는 코너를 편성하는 추세였다.

오늘은 하니엘의 일부 멤버가 이 코너의 주인공을 맡게 되었다.

남녀 아나운서가 나란히 앉아 있는 세 명의 여성 아이돌을 향해 먼저 인사와 함께 대본대로 첫 부탁을 건넸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려도 될까요?”

고개를 끄덕인 세 여성은 타이밍에 맞춰서 동시에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하니엘입니다.”

타 프로그램이었다면 여기저기서 박수와 환호성이 쏟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뉴스를 진행하는 스튜디오다.

그렇다 보니 멤버들도 오늘은 세미 정장 느낌을 주는 복장을 갖추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리더가 이연 양 맞죠?”

“네, 맞습니다.”

“아이돌을 소개하는 모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엄청난 화제가 되었던데요. 영상 중에 상자 안에 든 물건을 맞히는 코너가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이연 양에게 푹 빠진 것 같더군요. 그 하이라이트 영상 조회 수만 벌써 2백만이 넘었고요.”

이연은 내심 PD가 자신의 흑역사를 편집해 주길 바랐었는데.

어림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영상이 업로드된 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연의 그 장면은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여태껏 이연에게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저희가 댓글을 보니까 귀엽다, 사랑스럽다. 이런 반응이 엄청 많던데. 어떤 기분이 드셨나요?”

“많은 분들이 저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반대로 좀 더 침착하게 문제를 맞히고 싶었는데, 너무 호들갑을 떤 게 아니었을까 하는 후회도 좀 되고요.”

“후회라니요. 저는 오히려 좋게 봤습니다. 옆에 있는 백다운 아나운서도 같은 생각이죠?”

단정하게 단발머리 스타일을 한 백다운 아나운서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 그 영상 보고 하니엘 팬카페에도 가입했어요.”

멤버들이 눈빛을 반짝이면서 ‘감사해요, 선배님!’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확실히 예능 프로그램의 파장이 크긴 컸다.

앨범 홍보도 제대로 되었고.

LC 엔터테인먼트도 하니엘의 지금 성적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었다.

“데뷔한 지 아직 2주가 안 되었는데도 벌써 음원 차트 순위 2위시더라고요.”

“네. 맞아요.”

1위는 아이비제이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내부에서는 잘 싸웠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원래 목적은 3대 음원 서비스 플랫폼 종합 5위 안에 드는 거였는데, 셋 다 2~3위를 왔다 갔다 하고 있으니까. 당연히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밖에 추가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포부를 밝히면서 짧은 인터뷰를 마무리 짓기로 했다.

이번에도 이연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저희 하니엘, 열심히 활동하고 있으니까 많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짧았던 뉴스 녹화를 마친 멤버들은 박도수 매니저와 함께 숙소로 향하기 전에 잠시 회사에 들르기 위해 차를 타고 이동했다.

여솜과 비아가 회사에 깜빡 두고 갔던 가방을 찾으러 간 사이.

이연은 회사 1층 내부에 위치한 카페를 찾았다.

이곳 카페는 LC 엔터테인먼트 소속 직원이나 연예인은 50퍼센트 세일가로 싸게 음료를 주문할 수 있다.

값이 싸다고 맛이 안 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이연은 회사에 들를 일이 있으면, 이곳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었다.

오늘도 카페에 들러서 멤버들과 박도수 매니저가 마실 커피를 대신 사 가려고 하던 찰나였다.

주문을 마치고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이, 이연은 투명한 유리벽 너머로 익숙한 얼굴과 마주치고 말았다.

진절혜. 그녀가 이연을 보자마자 크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돌려 빠르게 회사를 빠져나갔다.

마침 카페 직원이 이 장면을 목격한 모양인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이 마지막이었나 보네요.”

“마지막이라니. 무슨 뜻이에요?”

“어머, 이연 씨. 모르셨나요?”

이곳에서 일하는 카페 종업원은 거의 매일 LC 엔터테인먼트 직원들과 만난다.

그래서인지 회사 내부에 도는 웬만한 소식도 다 알고 있었다.

“진절혜 씨, 여기 회사 나가기로 했어요.”

이연은 처음 듣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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