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26화
제36화. 음방 대결(1)
성공적으로 무대를 마친 하니엘 멤버들.
그렇게 미니 앨범 1집 타이틀곡인 ‘HUG’를 시작으로 이연이 미리 언급했던 나머지 두 곡도 전부 팬들에게 무사히 공개했다.
긴장 탓인지 중간에 안무가 잘 안 맞는 부분이 있었지만, 눈에 띌 만큼 큰 실수는 아니었기에 특별히 별다른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민주린은 충분히 만족하는 모양인지 데뷔 쇼케이스가 진행될 동안 내내 흡족해하는 표정을 유지했다.
준비했던 모든 무대가 다 끝났고.
이제 앞으로 어떤 가수가 될지, 포부 겸 오늘 쇼케이스 무대의 소감을 전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멤버분들이 한 명씩 돌아가면서 할까요? 마지막은 리더가 장식하는 걸로.”
이런 순서는 이미 사전에 다 리허설로 합을 맞춰뒀기에 멤버들은 당황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소개 때와 다르게 이번에는 역순으로 소감을 말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막내 라인인 유키가 오늘 무대 봐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던 도중에 민주린에게 물었다.
“가족하고 친구들한테도 말하고 싶은데. 일본어로 말해도 되나요?”
“네, 물론이죠.”
유키는 기다렸다는 듯이 일본어로 자신의 가족들에게 응원해 줘서 고맙다고, 앞으로 힘내겠다는 말을 전했다.
이연의 옆에 서 있던 리샤가 목소리를 최대한 낮췄다.
“그러면 나도 영어로 말해야 하나?”
“하고 싶으면 해도 되고.”
“하도 한국에서 오래 있다 보니까 영어 다 까먹었는데.”
생긴 건 누가 봐도 미국인인데. 정작 다른 외국인을 만나면 굳어버리는 그런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연습생 생활을 하게 된 부작용이었다.
실제로 어제 컴백을 한 아이비제이의 일본인 멤버들도 한국에서 너무 오랫동안 생활한 탓에 가끔씩 일본말을 해야 할 때 한참을 생각하고 난 다음에 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곤 한다.
아무리 모국어라 할지라도 너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기억이 안 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셈이었다.
그래서 리샤는 능숙하게 일본어로 본인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인사말을 건네는 유키가 굉장히 신기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연이 작게 웃고서 이런 제안을 했다.
“뭣하면 내가 대신 말해줄까?”
“너, 영어도 할 줄 알아?”
“어. 대충.”
루웰이 현 세계로 넘어오기 전, 원래 세계에 존재하는 국가 중 하나가 영어와 아주 흡사한 체계를 갖춘 언어를 사용했었다.
그래서 이연은 영어라는 게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만약 루웰이 이연의 몸으로 다시 태어났을 때 언어를 아예 모르는 상태였더라면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를 더 빨리 습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리샤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괜찮다고 답했다.
“그래도 내 목소리로 직접 말해야지. 가족들도 그걸 원하고 있을 테니까.”
SSS에서 겪었던 그간의 고충 덕분일까.
처음 이연이 그녀를 만났을 때에는 그다지 생각이 깊어 보이는 타입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한층 성장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순식간에 차례가 리샤까지 오게 되었다.
마이크를 건네받은 리샤는 멤버들처럼 먼저 한국말로 오늘의 무대를 봐주셔서 감사하다고 팬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런 뒤, 영어로 가족들에게 잘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까지 전했다.
여솜에게 마이크를 건넨 리샤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이연을 바라봤다.
“어때? 잘했지?”
“아니. 중간에 어법 이상한 거 많았어.”
“…….”
“그래도 뜻만 잘 전해지면 되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마.”
그냥 시도만 좋았던 걸로 하자.
* * *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넘겨받은 이연의 인사와 함께 민주린의 클로징 멘트가 이어졌다.
이렇게 해서 무사히 데뷔 쇼케이스 무대를 마치게 된 하니엘 멤버들.
무대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오채일 대표와 박도수 매니저가 그녀들을 열렬히 환영했다.
“다들 고생 많았다!”
“수고했어! 오늘은 뭐 하자고 터치 안 할 테니까 들어가서 쉬자! 아니지, 밥부터 먹어야지? 너희,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리샤를 제외한 모든 멤버들이 거의 하루 종일 쫄쫄 굶었다.
이연도 빈속이 움직이기 편하다는 이유로 오늘은 본의 아니게 단식을 선언했다.
무사히 데뷔도 마쳤으니까.
저녁 식사만큼은 원 없이 먹기로 했다.
그녀들의 체형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트레이너들도 오늘 저녁은 예외로 쳐준다고 미리 말을 해뒀다.
다들 고생했을 텐데. 먹는 것까지 통제하는 건 너무 가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은 내일부터 다시 빼면 되니까.
무엇을 먹을까. 이게 가장 고민이었다.
이럴 때에는 역시.
“뷔페 가요, 뷔페!”
굶주림과 가장 동떨어져 있는 리샤가 정작 가장 먼저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뷔페라는 말에 오채일 대표가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하면서 앨리샤의 의견에 동조했다.
멤버들도 좋은 생각이라면서 찬성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멤버들뿐만 아니라 스태프들도 다 같이 가서 먹어야 하는데.
이 시간에 갑자기 예약이 가능한 뷔페가 있을지 의문이었다.
오채일 대표가 부랴부랴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가만있어 보자…… 괜찮은 데가 어디 있으려나.”
박도수 매니저와 다른 스태프들도 눈치껏 뷔페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난감해하던 이때, 우미가 목소리를 높였다.
“제가 잘 아는 데 있는데, 거기 어때요?”
“어디?”
“엘바티브요. 마침 근처에 있으니까 이동하기도 편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엘바티브라는 말에 몇몇 스태프가 헛숨을 삼켰다.
YN그룹이 운영하는 최상급 호텔 브랜드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가격도 상상을 초월한다.
가서 밥 한 끼 먹고 오는 것만으로도 1인당 몇십만 원은 우습게 깨질 텐데.
아무리 우미가 YN그룹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너무 부담스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우미도 사람들의 생각을 바로 읽어낸 모양인지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말해줬다.
“안 그래도 저희 고모가 언제 한번 멤버들하고 스태프분들한테 식사 대접하고 싶다고 하셔서요. 오늘 회식할 곳 안 정해져 있으면 언제든 자리 만들어줄 수 있으니까 엘바티브로 오래요.”
“근데 갑자기 가도 되려나 모르겠네.”
“오늘은 예약 손님이 많지 않대요. 그리고 단체로 온 손님들하고 다른 손님들하고 따로 섞이지 않도록 공간을 분리해 두고 있으니까 사람들 눈치 보면서 식사할 일도 없을 거예요.”
회식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다.
단지 이용 가격이 미칠 듯이 비싸다는 것만 빼고.
그러나 우미 찬스를 이용하면 이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
오랜 고민 끝에 결국 우미의…… 아니, 정확히는 우미 고모의 선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엘바티브 뷔페를 이용할 수 있다는 말에 비아가 호들갑을 떨었다.
“우리, 옷 단정하게 입고 가야 하는 거 아니야? 나, 오늘 그냥 청바지하고 티 입고 왔는데.”
우미가 작게 웃으면서 당황하는 비아를 안심시켜 줬다.
“괜찮아. 나는 예전에 추리닝 입고 간 적도 있는 걸, 뭐.”
“우와…… 이것이 상류층의 위엄이구나.”
우미가 얼굴을 붉히면서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답했다.
이연의 기억 속에도 엘바티브에서 식사해 본 경험은 없었다.
새로운 체험 앞에 이연과 멤버들은 데뷔 무대에 설 때와는 다른 종류의 기대감이 솟아올랐다.
* * *
엘바티브 호텔로 향하는 길.
대한민국 최고층을 자랑하는 호텔인 만큼, 시티뷰 역시 상당히 좋았다.
서울 전체가 다 내려다보이는 모습에 멤버들은 배고픔마저 싹 잊어버릴 정도였다.
발밑에 있는 도심 야경의 모습에 멤버들은 어느 순간부터 시선을 떼지 못했다.
뷰 맛집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초고층에서 즐기는 약간 늦은 저녁 식사.
이들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엘바티브에 도착한 우미의 고모, 양진혜가 상냥한 미소로 일행을 직접 환영했다.
“오늘 데뷔 쇼케이스 방송, 저도 봤어요. 다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우미도. 너무 예쁘고 귀엽게 나오더라.”
고모가 우미를 한 차례 부드럽게 안아줬다.
우미는 고모,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할 것 없이 전부 다 예쁨을 받고 있었다.
왜냐하면 자식들 중에 우미만 유일하게 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자신이 낳은 자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미만큼은 ‘우리 딸, 우리 딸’이라고 부를 정도로 아끼고 귀여워했다.
양진혜는 우미뿐만 아니라 멤버들 역시 많은 관심을 보였다.
“다들 어쩜 이렇게 예쁠까. 나는 우리 우미만큼 예쁜 애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돌은 진짜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봐.”
하니엘 멤버들은 수줍게 웃으면서 이렇게 좋은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그녀에게 건넸다.
오채일 대표 역시 양진혜에게 따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면서 친근하게 말을 붙였다.
“예전에 부사장님 한번 뵌 적 있었는데. 혹시 기억하시나요?”
“어머, 물론 기억하죠. 오랜만이에요, 대표님.”
어른들끼리 따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하니엘 멤버들은 어서 밥 달라고 조르는 배를 달래기 위해 접시를 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반 손님들하고 동선이 겹칠 일이 없어서 그런지 마음 편히 음식을 고를 수 있다는 게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한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멤버들.
여솜이 스마트폰으로 오늘 있었던 하니엘 데뷔 무대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실시간으로 살피기 시작했다.
“언니. 이 댓글 봐봐.”
우미에게 직접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면서 자신이 본 것을 같이 공유해 줬다.
오늘 데뷔 무대 너무 좋았다는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중간에 회선 문제가 약간 있었지만, 오래 지속되진 않았기에 큰 불만은 나오지 않았다.
“노래도 너무 좋다고 하네.”
“열심히 연습한 보람이 있어서 다행이야.”
SSS가 끝나고 난 다음에 최대한 빨리 데뷔 준비를 해야 했기에 사실 불안감도 없지 않아 있었다.
게다가 아이비제이의 컴백이 바로 어제이기도 했고.
그런 것치고는 상당히 선방했다.
그래도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데뷔 무대 반응이 좋다 할지라도, 이것이 반드시 음원 성적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아이비제이의 컴백 앨범 타이틀곡은 벌써 음원 일일 차트 탑 10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앞으로도 쭉쭉 올라갈 것이다.
하니엘의 경우에는 이제 막 음원이 공개된 탓에 아직까지는 가늠할 수가 없다.
식사를 하던 중간에 이연이 잠시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고 말했다.
“이번 주에 있을 음방이 가장 중요해. 다들 알고 있지?”
리더의 말에 멤버들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가수들과 함께하는 첫 음방 무대.
그곳에서 컴백과 데뷔 시기가 겹친 아이비제이와 같이 무대에 오르게 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앨범 활동이 예정되어 있는 한 달 동안, 하니엘은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경쟁에 경쟁을 이어나가야 한다.
연습생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 더 각박하고 힘든 프로의 세계로 진급하게 된 그녀들.
첫 대결 상대가 아이비제이라는 게 크나큰 함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멤버들은 주눅 들지 않기로 했다.
무대에 올랐을 때만큼은 늘 그녀들이 최고라는 생각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회사가 정한 하니엘의 이번 목표는 메이저 스트리밍 플랫폼 음원 순위 종합 5위 안에 드는 것.
더 나아가서 이연은 1등도 노려볼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다시 열심히 움직이자. 알았지?”
이연의 물음에 멤버들은 기운찬 목소리로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