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24화
제35화. 데뷔 무대(1)
우미가 양진석 회장의 딸이라는 사실을 밝혀진 날.
이틀 후에 있을 데뷔 쇼케이스를 위해 리허설을 준비하고 있던 멤버들은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우, 우미 언니! 인터넷에 언니 기사 난 거, 정말이야?”
“YN그룹의 양진석 회장님이 언니 아버님이시라고? 진짜?”
멤버들도 우미의 집안이 어느 정도 산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스케일이 큰 집안의 자제였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당황한 나머지 몇몇 멤버들은 말까지 더듬을 정도였다.
우미는 동생들의 이런 반응에 어색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 말 안 해서 미안해.”
“아니, 우리한테 미안해할 것까진 없는데…….”
“그보다 이거, 괜찮은 거야? 언니, 우리들한테도 숨기려고 했었잖아. 근데 이렇게 기사가 나버렸는데…… 어쩌지? 매니저님한테 말해봐야 하는 거 아니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들이 있는 대기실 문이 활짝 열렸다.
박도수 매니저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멤버들을 찾아왔다.
“우, 우우우우미야! 바, 방금 기사…….”
“네, 그거 사실이에요.”
“지, 진짜였어?”
오늘 하루, 우미가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진짜’ 아니면 ‘사실’일 것이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똑같은 질문을 계속 해오니 입이 아플 정도였다.
힘들어할 우미를 위해서 이연이 대신 나서기로 했다.
“언니는 괜찮대요. 그리고 언니 집안에도 기사 뜨자마자 이러이러한 기사가 났으니까 그렇게 알고 계시면 된다고 미리 말씀도 드렸다네요.”
“야, 양진석 회장님께서는 뭐라셨는데?”
“우미 언니 오빠분이 대신 말해줬는데, 알았다고 하고 끝났데요.”
“그, 그래……?”
박도수 매니저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얼떨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근데 타이밍이 참 기가 막히긴 하네. 하필이면 아이비제이 컴백 하루 전날에 기사가 뜨냐.”
“그러게요. 참 우연이죠?”
그렇게 말을 하면서 이연은 슬쩍 우미와 시선을 마주쳤다.
이 모든 것이 전부 이연의 계산대로다.
우미의 집안 내력이 밝혀지자마자 사람들의 관심사는 당연히 그녀와 YN그룹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각종 언론들도 발 빠르게 이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조만간 LC 엔터테인먼트 측에서도 기사로 나간 정보가 모두 사실임을 인정하는 공식 발표가 있을 예정이다.
YN그룹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되면, 파급력은 더 커지겠지.’
그래도 이 소식을 아이비제이 컴백 하루 전에 터뜨리게끔 한 건 그녀들을 위한 나름의 배려였다.
만약 컴백 당일에 우미와 YN그룹의 관계성에 대한 기사를 내보냈다면, 아이비제이가 받았을 타격은 훨씬 더 컸을 것이다.
이연도 그렇고, 오채일 대표 역시 아이비제이에 딱히 악감정은 없다.
오히려 SSS 녹화 당시, 아이비제이를 대표해서 나온 혜원은 이연과 하니엘 팀을 계속 응원하겠다는 지지 의사까지 보여줬다.
그래서 이연은 오채일 대표를 따로 찾아서 아이비제이의 컴백 당일이 아닌 하루 전날에 기사를 내보내자고 먼저 제안했다.
안 그래도 오 대표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그게 오늘의 결과로 이어지게 된 거였다.
‘이걸로 얼추 조건은 동등해졌겠지.’
사람들의 관심이 아이비제이 쪽으로 아예 쏠려 있다가 우미, YN그룹으로 흐름이 바뀌게 되었다.
하루가 지나고 아이비제이의 컴백 쇼케이스가 시작되면, 다시 어느 정도 원위치가 될 터.
그다음부터가 본격적인 승부의 시작이다.
* * *
다음 날, 이연과 멤버들은 일찍 리허설을 마치고 숙소로 향했다.
오늘은 중요한 일이 있다.
오후 다섯 시. 아이비제이 컴백 쇼케이스가 시작되었다.
멤버들과 박도수 매니저, 그리고 최 코디를 비롯해서 하니엘과 함께 움직이는 스태프들 전체가 숙소 거실에 위치한 티비 앞에 자리를 잡았다.
비슷한 시기에 컴백하는 라이벌의 무대를 보는 것도 하나의 중요한 공부가 된다.
그래서 이연은 멤버들과 함께 오늘의 마지막 일정으로 선배님들의 쇼케이스 무대를 시청하기로 했다.
카운트다운이 끝나자마자 화면이 전환되었다.
사람들의 뜨거운 함성과 함께 국민 MC라 불리는 강한도가 무대 위로 먼저 모습을 나타냈다.
-아이비제이의 다섯 번째 앨범 발표 쇼케이스 행사에 오신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는 이번 MC를 맡게 된 강한도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깔끔한 자기소개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강한도는 코미디언으로 데뷔해서 수년째 각종 예능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동 중인, 베테랑 중에서도 베테랑 MC다.
당연히 그만큼 출연료도 비싸다.
소속사가 얼마나 아이비제이에게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게다가 강한도도 아이비제이와의 인연이 꽤 깊은 편이었다.
아이비제이 9명의 멤버들이 무대로 모두 올라와 자기소개를 마친 뒤에 강한도가 리더인 혜원에게 먼저 말을 붙였다.
-혜원 씨, 저하고 오랜만에 보는 거죠?
-네, 선배님. 저번에 지현이하고 같이 ‘대쉬맨’ 나갔을 때 한번 뵌 뒤로 처음인 거 같아요. 한…… 8개월? 9개월? 그 정도 됐을걸요?
-그렇게 오래됐어요? 시간 엄청 빠르네요.
아이비제이는 가수 활동뿐만 아니라 예능에도 자주 얼굴을 비치는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쪽에서 활동 중인 셀럽들과도 나름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이비제이 멤버들의 모습을 찬찬히 살피던 비아가 혼잣말을 흘렸다.
“선배님들, 어쩜 저렇게 다들 예쁘실까.”
“여신님들이야, 여신님들.”
경쟁 상대라는 사실조차 까먹게 만들 정도로 하나같이 다 비주얼이 만만치가 않았다.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나 보이는 아이비제이 멤버들의 모습에 비아가 갑자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 우리 쇼케이스 할 때 선배님들하고 비교 엄청 될 거 같은데. 어떻게 하지?”
이연이 나서서 비아에게 일침을 가했다.
“벌써부터 그런 걱정하지 마. 그리고 내가 보기엔 우리도 충분히 예쁘고 귀여워.”
“그거, 언니도 포함된 말이지?”
“…….”
이연은 지금까지 살면서 남들 앞에서 본인의 입으로 ‘나 예쁘다’라는 말을 해본 경험이 없었다.
물론 그런 생각은 여러 번 가져본 적은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권이연 본인이 아닌 루웰로서, 철저하게 제3자의 관점으로 봤을 때나 들었던 생각이지, 평소에는 전혀 그렇진 않았다.
짧은 토크가 끝나고.
마침내 아이비제이의 이번 신곡이 공개되었다.
노래 타이틀은 ‘레크리에이션(recreation)’.
레트로풍의 느낌이 짙은 곡이었다.
노래 중간에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사람들에게 팔 크게 휘저으면서 자신의 동작을 따라 해보라는 느낌을 진하게 주는 간단한 안무가 들어가 있었다.
‘싸비 파트에 배치되어 있는 것도 그렇고. 저게 저 곡의 포인트 안무인가 보네.’
춤에 전혀 문외한 사람들도 따라 하기 쉬운 동작이었다.
아이비제이의 타이틀곡 무대가 끝나자마자 박도수 매니저가 크게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우리하고 곡 콘셉트까지 겹치지 않아서 다행이네.”
“다행은 뭐가 다행이에요, 매니저님.”
유키가 곧장 신경질을 내기 시작했다.
“선배님들 무대 못 보셨어요? 노래 엄청 좋잖아요. 안무도 귀엽고. 이번 곡도 대박이라고요.”
그러니까 더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무대가 너무 좋으면, 내일 있을 하니엘의 공연과 비교가 될 테니까.
만약에 두 그룹 다 쇼케이스가 끝났는데, ‘무대는 아이비제이가 역시 하니엘보다 훨씬 낫더라’ 하는 소리를 들으면 유키의 성격상 못 참을지도 모른다.
말없이 무대를 조용히 지켜봤던 이연은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역시. 걸 그룹 톱은 다르네.’
SSS에서 연습생들끼리 펼쳤던 경쟁은 아이비제이의 무대 앞에선 말 그대로 애들 장난에 불과했다.
연습 게임조차도 안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아이비제이의 무대는 오랫동안 인상에 남았다.
노래도 꽤 중독성 있고.
골치가 아파왔다.
이때였다.
갑자기 우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멤버들을 격려하기 시작했다.
“괜찮아.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어. 벌써부터 주눅 들지 말고 내일 있을 무대에만 집중하자. 알았지?”
적극적으로 나서는 우미의 모습에 다른 멤버들도 용기를 얻었다.
“멋지다, 우리 왕언니!”
“맞아. 엊그제 우미 언니 기사까지 터졌는데. 팬분들한테 약한 모습 보여주면 안 되잖아.”
“우리도 할 수 있다! 그렇지?”
평소였더라면 이연이 했을 역할을 우미가 나서서 했다.
맏언니다운 면모를 보여준 우미.
이연은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진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힘든 환경이라 할지라도.
왠지 이 멤버들과 함께라면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 *
마침내 다가온 데뷔 쇼케이스.
오후 2시로 예정되어 있었기에 멤버들은 새벽부터 정신없이 움직여야 했다.
아침잠이 많은 멤버들도 오늘만큼은 누구보다도 먼저 눈을 뜨고서 박도수 매니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얘들아, 준비 다 끝났지?”
“네!”
“샵부터 들를 거니까 바로 출발하자.”
일곱 명의 멤버들이 박도수 매니저를 따라 우르르 이동했다.
차에 오르면서 여솜이 비어 있는 보조석을 보자마자 고개를 갸우뚱했다.
“공예 언니는요?”
“의상팀하고 같이 미리 현장에 가 있기로 했어. 너희 의상 나온 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체크하고 싶다고 그러더라. 특히 연이 꺼.”
갑자기 지목을 받은 이연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저요?”
“저번에 너, 상의가 많이 타이트하다고 했잖아. 그거 수선 다 끝내뒀대. 가자마자 옷 바로 입어봐.”
비아가 키득키득 웃으면서 말했다.
“연이 언니, 완전 글래머야.”
“……시끄러워. 조용히 좀 해.”
괜히 민망함이 밀려왔다.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겨우 샵에 도착한 그녀들.
새벽부터 미리 대기 중이었던 직원들이 동시에 일곱 명을 자리에 앉혔다.
원장의 진두지휘 아래에서 빠른 속도로 메이크업과 헤어 작업에 돌입하는 직원들.
그중에서 유키를 담당하기로 한 미용사가 크게 놀랐다.
“유키 씨. 언제 머리 자르셨어요?”
“지난주예요. 어때요? 어울려요?”
유키는 멤버들 중에서 머리 스타일을 가장 많이 바꾸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SSS 때에도 곡 이미지에 맞춰서 염색도 하고.
이번의 경우에는 귀여운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긴 머리카락을 과감히 포기하고 단발을 택했다.
멤버들 중에서 유일하게 단발머리 스타일을 고수해서 그런 걸까.
유키의 헤어 스타일링 작업이 가장 빨리 끝났다.
자유의 몸이 된 유키를 보면서 이연도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머리 자를까.’
일찍이 탐내던 헤어스타일이 몇 개 있었다.
단발, 그리고 숏컷.
아무래도 남자의 몸이었던 탓에 장발보다는 단발이 확실히 편하긴 했다.
이연의 마음속을 읽기라도 한 걸까.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손수 다듬어주던 담당 직원이 소신 발언을 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이연 씨는 머리 짧게 자르시면 안 돼요. 아셨죠?”
“왜요?”
“이렇게 머릿결이 좋은데. 자른다고 하면 제가 더 아쉬울 거 같아서요.”
너무나도 솔직한 직원의 말에 이연은 무슨 반응을 보여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