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116화 (116/299)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16화

제32화. 파트 분배(2)

SSS를 통해서 연습생들은 같은 팀을 짜 다른 팀과 경쟁하는 구도에 많이 익숙해진 상태였다.

그러나 내전을 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재다능 팀으로 활동할 당시에는 무대에 서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그리고 이연이 주로 파트 분배를 맡아서 진행했었으니까 크게 의견이 충돌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다르다.

정식 데뷔 앨범인 만큼, 최대한 팬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켜 둘 필요가 있다.

파트 욕심을 내는 건 아이돌 그룹 멤버로서 당연한 일.

이연이 우미에게 말했던 것처럼, 양보의 미덕은 잠시 주머니 속에 꼬옥 넣어두는 게 좋다.

“그럼 먼저 여솜이부터 불러볼까?”

“네.”

처음부터 강력한 라이벌이 등장했다.

우미, 비아, 그리고 유키. 셋은 여솜의 등장에 몰래 마른침을 삼켰다.

나여솜은 이연도 인정한 실력자다.

어떤 파트를 담당하든, 충분히 제 역할을 소화해 낼 수 있는 멤버라고 할 수 있다.

여솜이 목을 푸는 동안, 비아는 시우에게 부러운 마음을 드러냈다.

“넌 좋겠다.”

“나? 갑자기 왜?”

“파트 경쟁할 일이 없으니까.”

하니엘의 랩 담당은 연시우가 유일했다.

시우를 제외하고 다들 랩에는 자신이 없었기에 어떤 곡이든 랩 담당은 항상 그녀가 맡기로 했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이연도 랩까지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되지만, 안 그래도 메인 보컬로서 맡고 있는 파트가 많은데 그것까지 욕심을 내는 건 너무 양심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하니엘이라는 팀명이 정해진 이후부터 줄곧 랩 파트는 시우의 차지였다.

그렇다고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만큼 자신이 유일한 랩 담당으로서 다른 멤버들에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좋은 모습을 항상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두 막내가 잠깐 대화를 나누는 사이.

여솜이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준비가 다 되었음을 알렸다.

“시작할까요?”

“언제든지. 반주는?”

“괜찮아요. 무반주로 부를게요.”

스태프들의 입에서 ‘오~’ 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기선제압 세게 들어가네.”

“이러면 안 들어볼 수가 없죠.”

SSS 때와는 또 다른 대결 구도가 펼쳐지자, 스태프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그녀들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관객들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솜은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침착하게 자신이 원하는 파트를 생각하면서 목소리를 냈다.

사라지지 않는 깊은 상처.

포근함으로 낫게 만들어줄게.

Look at my eyes.

Come over here.

내 품에 안겨 봐.

평상시에 여솜이 내던 목소리보다 한층 더 깊이가 있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파트에 맞춰서 걸맞은 목소리를 구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컬도 보컬이지만.

진세혁 프로듀서는 여솜의 가사 표현력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스태프들 또한 짧게 박수를 치면서 여솜의 미니 라이브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감사합니다.”

짧은 소절이었지만, 상당히 인상적인 모습을 남길 수 있었다.

진세혁 프로듀서가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이면서 다음 차례를 호명했다.

“비아, 준비 다 끝났지?”

“네!”

자신감 있게 나서는 비아였지만.

여솜만큼의 임팩트를 남기진 못했다.

“사라지지 않는 상처! 포근함으로 낫게 만들어 줄게에!”

의욕이 넘치는 건 좋지만, 그래서인지 쌩목으로 무리하게 내지른다는 느낌이 너무 강하게 들었다.

“오케이. 다음, 유키.”

그래도 유키는 비아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전반적으로 무난하게 잘했다.

그러나 SSS에서 보여줬던 유키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뭔가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은 우미의 차례다.

앞에서 나여솜이 너무 잘한 탓인지, 비아와 유키는 기대만큼의 라이브를 보여주지 못했다.

우미 역시 두 사람 못지않게 많은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가수가 무대에 한 번 선 이상, 도망칠 수는 없다.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진세혁 프로듀서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물었다.

“우미도 무반주로 부를 거야?”

“네.”

“……그래?”

쩝.

진세혁 프로듀서가 입맛을 다시면서 아쉬운 마음을 살짝 내비쳤다.

모처럼 키보드도 세팅해뒀는데. 나여솜이 무반주로 스타트를 끊어서 그런지 다른 연습생들도 반주 없이 가고 있었다.

먼저 ‘아, 아’ 소리를 내면서 음을 잡은 우미.

모두가 나여솜이 B 파트를 차지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와중에.

놀라운 반전이 펼쳐졌다.

“사라지지 않는 깊은 상처…… 포근함으로 낫게 만들어줄게. Look! at my eseys, Come! over here.”

‘상처’ 단어 끝을 일부러 늘어뜨리는 식으로 약간의 기교를 첨가했다.

영어 가사에서는 ‘Look’과 ‘Come’을 발음할 때 의도적으로 힘을 주어 포인트가 될 수 있는 부분을 강조하고.

“내 품에 안겨 봐!”

문장 끝을 억세게 외치면서 확실한 끝맺음을 지었다.

짧은 가사임에도 그 안에 나름의 기승전결이 들어가 있었다.

진세혁 프로듀서도, 이연도. 둘 다 속으로 우미가 보여준 기량에 크게 놀랐다.

나여솜도 같은 생각인지, 라이벌인 그녀가 가장 먼저 우미에게 박수를 보냈다.

“언니, 너무 잘하셨는데요?”

“고마워, 여솜아.”

나여솜과 양우미.

둘 다 접전이다.

진세혁 프로듀서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깊은 고민에 잠겼다.

“야…… 어렵다, 이거.”

그래도 둘 다 동일한 파트를 줄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일곱 명이나 되는데. 그래도 한 명씩 돌아가면서 원샷이라도 받게 해줘야 하지 않겠나.

“리더는 어떻게 생각해?”

진세혁 프로듀서가 이연에게 의견을 물었다.

이연과 눈이 마주친 여솜은 싱긋 미소를 지으면서 먼저 입을 열었다.

“괜찮아. 솔직하게 말해도 돼. 팀을 위한 결정이니까.”

개개인보다는 우선 그룹이 먼저 잘 되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 프로그램에 나가서 무슨무슨 그룹에 속해 있다고 하면 누가 알아줄까.

그래서 그룹 전체의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일이 상당히 중요하다.

아이돌 그룹이 인지도를 올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무대다.

무대에서 사람들의 머릿속에 하니엘이라는 팀명을 각인시킬 수 있도록 만들게 해야 한다.

파트 분배 역시 이걸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이연이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저는 우미 언니한테 손 들어줄게요.”

여솜도 얼추 예상하고 있었는지 수긍의 뜻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내전에 참가하지 않았던 리샤와 시우, 두 사람은 각각 우미와 여솜에게 한 표를 행사했다.

진세혁의 결정만 남은 상황.

“좋아, 결심했어!”

갑자기 주먹 쥔 손을 들고서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동작을 취했다.

그 모습에 멤버들은 침묵했다.

원했던 분위기가 안 나와서 그런지, 진세혁 프로듀서가 멤버들에게 물었다.

“이거 몰라?”

“네.”

“모르겠는데요.”

스태프들이 뒤에서 킥킥 웃었다.

“선배님. 요즘 애들이 그걸 어떻게 압니까.”

“아, 나는 알 줄 알았지. 이게 1993년도에 나왔던 예능 코너의 유행어인데, 무슨 내용이냐면…….”

또 진세혁의 수다 마당이 시작하려 하기 전에 이연이 먼저 칼 차단을 했다.

“찐 프로님. 멤버들 기다리니까 빨리 결과나 말씀해 주세요.”

이연의 잔소리에 진세혁 프로듀서는 아쉬움에 두 번째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이 파트는 우미로 가자.”

내전이 치열했던 만큼, 결과를 내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 * *

나머지 파트들도 전부 얼추 정해졌다.

그러나 꼭 이 파트대로 간다는 법은 없었다.

“레코딩 들어가기 전에 몇 번 더 연습해 보고, 그다음에 이대로 갈지 말지 한 번 더 정해보자. 알았지?”

“네!”

“좋아, 파트 분배는 그럼 이걸로 마무리를 짓고…… 박 매니저님. 뭐 더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아까부터 뒤에서 서 있던 박도수 매니저가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진세혁은 일부러 그에게 발언 기회를 주기로 했다.

“타이틀곡은 이제 나왔고. 안무는 어떻게 됩니까?”

“퍼플피플 쪽에 파일 넘겼으니까, 서해 씨하고 같이 조율해 보면 됩니다.”

“안무 시안 언제쯤 나오는지 한번 물어봐야겠네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찐 프로님.”

퍼플피플이 안무를 맡게 되었다는 소리에 그쪽 크루를 향한 멤버들의 관심이 샘솟았다.

작업실을 나오자마자 비아가 이연에게 퍼플피플에 관해 물었다.

“저번에 언니가 유닛 대결에서 솔로 쪽 맡았을 때 같이 호흡 맞췄던 팀 맞지?”

“어. 선생님한테 연락 왔었는데, 이번에 정식으로 LC 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되었다고 그러더라.”

SSS가 성황리에 마무리되고. 이석호 트레이너가 미리 오채일 대표에게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회사를 나가게 되면서 댄스 파트 자리에 T.O.가 나게 되었다.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이번에 새롭게 은서해 크루가 영입되었다.

지금까지 줄곧 LC 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팀의 안무를 담당해 왔었고.

그래서 이번 기회에 그녀를 데려오기로 마음을 먹은 모양인 듯했다.

마침 안무 연습실에서 막 나온 은서해와 마주치게 되었다.

“어머, 이연아!”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연을 보자마자 은서해가 빠른 속도로 뛰어와 그녀를 와락 안아줬다.

이연은 최대한 몸을 뒤로 빼려고 했으나, 은서해의 포옹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하여간 너는 참. 스킨십에 약한 건 여전하구나?”

“그래도 이게 많이 나아지긴 한 거예요.”

“더 나아지도록 노력해. 안 그래도 너희들이 불러야 하는 타이틀 곡이 ‘허그(Hug)’라면서? 노래 가사처럼 마구마구 안아줘야 하는데. 그걸 싫어하면 어떻게 하니?”

그렇다고 실제로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안아주고 다니진 않을 것이다.

그냥 안무를 그런 느낌으로 짤 거라는 뜻이었다.

다른 멤버들도 뒤늦게 은서해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렇게 멤버들과 한 자리에서 만나는 건 SSS 파이널 무대 이후로 처음이었다.

“우승하고 난 다음이라 그런지, 다들 얼굴이 활짝 피었네. 어머머, 비아 예뻐진 거 봐.”

“정말요?”

비아가 손으로 자신의 양 볼을 감싸면서 헤헤 웃었다.

비아의 작은 머리를 몇 차례 쓰다듬어준 은서해는 다른 멤버들에게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완전 비주얼 그룹이네, 비주얼 그룹이야. 어쩜 이렇게 다들 예쁠까. 게다가 다 안무 실력도 좋고. 비아 빼고.”

“선생니임! 아까까지만 해도 저 엄청 칭찬하셨으면서.”

“웃자고 한 소리니까 너무 화내지 마. 아무튼 오늘부터 안무 회의 들어갈 거니까 너희들도 원하는 동작 같은 거 있으면 어려워하지 말고 말해줘.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늘 환영이니까.”

은서해도 진세혁 프로듀서처럼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유치하겠다는 말을 들려줬다.

그렇게 은서해와 짧은 인사를 나눈 뒤에 멤버들은 박도수 매니저와 함께 차로 돌아갔다.

시동을 걸기 전에 박도수 매니저가 누군가와 짧게 통화를 나눴다.

그런 뒤에 이제 숙소에 돌아가서 쉬어야지 하고 방심하고 있는 멤버들에게 기습 질문을 날렸다.

“너희 말이야. 브이로그 찍을 줄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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