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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81화 (81/299)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81화

제23화. 자존심을 걸고서(4)

방송에서는 이석호 트레이너로부터 프로그램에 관한 정보를 몰래 얻는다든지 하는 요행을 부릴 수 있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는 일절 그런 게 없다.

오직 실력뿐.

가수의 보컬 능력에 따라, 안무 실력에 따라, 그리고 퍼포먼스와 무대 매너에 따라 청중평가단의 마음이 움직일지 말지가 결정될 것이다.

그래서 이연은 무대에 서는 걸 좋아한다.

능력 하나만으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앞서 대결을 펼쳤던 연습생들이 그러했듯이, 이연은 대기실이 아닌 무대 아래에서 조용히 진절혜의 공연을 지켜봤다.

여섯 명의 댄서들과 함께 자리를 잡은 진절혜가 입가에 한껏 미소를 머금었다.

-지친 밤 한가운데에서

당신을 위로하기 위해 부르는 노래.

Let‘s sing it!

뜨겁게 타오르는 열정의 불길로

힘껏 뛰어내려 봐!

일렉 기타와 함께 어우러지는 진절혜의 보컬에는 힘이 느껴졌다.

어떤 고난과 역경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다 하더라도 계속해서 걸어가겠다는 가사처럼, 진절혜는 힘이 가득 실린 목소리로 외쳤다.

마이크가 없어도 청중평가단에게 목소리가 닿을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그녀의 노래에 이연은 속으로 감탄했다.

‘성량은 정말 타고났네.’

예전부터 은연중에 느꼈던 거지만, 이렇게 무대에서 보니까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진절혜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노래 장르와 안무, 그리고 퍼포먼스를 들고 나왔다.

본인의 모든 걸 보여주고서라도 이연을 꺾겠다는 것을 대놓고 나타냈다.

구슬땀을 흘리면서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는 진절혜.

이연은 한쪽 입꼬리를 슬쩍 말아 올렸다.

‘진작 저렇게 좀 하지.’

라이벌 관계를 떠나서, 이연은 진절혜가 보여주고 있는 지금 이 무대만큼은 인정하고 싶었다.

만약 진절혜가 초반부터 지금처럼 무대를 향한 진정성을 보이면서 SSS 촬영에 임했었다면, 어쩌면 한 번 정도는 이연을 앞질러서 1위를 차지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렇게 하기에는 시기가 너무 늦었다.

오늘로써 녹화 방송이 모두 끝나면, 이제 마지막 생방송 한 회만 남을 테니까.

진절혜도 이에 대한 아쉬움이 큰 모양인지, 자신에게 허락된 이 시간 동안 원 없이, 최대한 후회가 적게 남도록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연이 끝난 뒤.

심사 위원이 먼저 그녀에게 박수를 보냈다.

청중평가단 역시 이에 질세라 있는 힘껏 손뼉을 마주쳤다.

눈물을 글썽이던 진절혜가 90도 각도로 허리를 숙이면서 감사 인사를 표현했다.

이런 진절혜의 모습을 보면서 이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충분히 잘할 수 있었으면서.’

혼신의 힘을 다한 진절혜의 무대를 봐서 그런 걸까.

그래서 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 * *

진절혜의 무대가 끝나고.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순서가 도래했다.

심사 위원들 중에서도 특히나 오채일 대표가 가장 큰 기대감을 보이고 있었다.

“드디어 끝판왕의 차례인가 보네.”

제작진 사이에서 붙은 이연의 새로운 별명이 바로 ‘끝판왕’이었다.

보컬, 댄스, 비주얼, 그리고 멘탈에 예능감까지.

모든 분야에서 MAX를 찍은 이연이었기에 끝판왕이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이 별명을 처음 사용했던 사람은 민주린이었다.

“이연이는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연습생 같지가 않아요. 이렇게 말하면 잘 어울릴지 어떨지 모르겠는데, 완성형 아이돌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보다도 더 잘하는 거 같아요.”

이연을 추켜세우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민주린은 진심으로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그녀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경력으로 봐도 이연이 그녀보다 한 수 위였기 때문이다.

대선배님이라고 불려야 할 쪽은 민주린이 아니라 오히려 권이연이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루웰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을 때의 이야기일 뿐.

지금의 권이연은 데뷔가 1차 목표인 연습생이었다.

그런 그녀가 마침내 무대 위로 모습을 나타냈다.

1라운드에서 주어졌던 개인 미션 이후로 처음으로 보는 이연의 정식 솔로 무대.

그래서일까. 사람들뿐만 아니라 심사 위원들의 관심이 폭발했다.

본의 아니게 생방송 촬영 직전, 마지막 녹화 무대를 가지게 된 이연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무대는 언제나 그녀에게 긴장감을 준다.

이연은 이 긴장감이 싫지 않았다.

이런 감각 하나하나가 자신이 무대 위에서 살아왔음을 증명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백댄서들이 차례차례로 이연의 뒤를 따라 무대에 들어서면서 각자의 위치를 찾아 움직였다.

대열이 완성되자, 반주가 흘러나왔다.

윤혜미의 ‘Lonely’.

아니, 지금 이 순간만큼은 권이연의 ‘Lonely’라고 할 수 있었다.

-외로움의 늪에 빠져

오늘도 허우적 허우적대.

나오려 해도.

잊으려 해도.

그럴 수가 없어. 너 때문에.

이연의 날카로운 눈빛은 보는 이로 하여금 헛숨을 삼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심사 위원들은 이연의 선곡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다.

이연의 이미지에 너무 잘 어울리는 곡이었기 때문이다.

“안무도 괜찮네요.”

이석호 트레이너는 이연의 안무 동작에 집중했다.

오랜 시간 동안 대기하고, 무대에 올라서 긴장감과 싸우다 보면 집중력이 흐트러지게 마련이다.

연습 당시의 기준으로 70~80퍼센트 정도의 무대를 선보일 수만 있으면 성공했다고 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연은 연습 때보다도 훨씬 더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면서 청중평가단과 심사 위원들을 압도해 갔다.

윤혜미가 던져준 포인트 안무를 펼치기 위해 이연이 홀로 무대 한가운데에 섰다.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자, 댄서들이 팔을 움직이면서 이연의 몸을 끈적하게 더듬었다.

수위가 높은 퍼포먼스를 보고서 관객들은 비명인지 환호성인지 모를 소리를 질렀다.

심사 위원들도 이건 처음 봤다.

중간점검 때 당시만 하더라도 없었던 안무였기 때문이다.

리허설은 딱 1절까지만 하고 끝냈기에 이 퍼포먼스를 볼 기회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더 놀랐다.

“와, 뭐야, 진짜!”

체온이 올라가기라도 한 모양인지, 나현아 트레이너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열기를 식히기 위해 양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무대를 펼치는 이연의 모습은 굉장히 보기 드물었다.

그만큼 그녀 역시 오늘의 무대에 진심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노래가 거의 끝으로 접어들었다.

댄서들이 이연만을 남긴 채 양 사이드로 빠졌다.

혼자 무대에 남은 이연.

고개를 살짝 떨구면서 조명이 꺼지는 연출을 끝으로 그녀가 준비한 모든 공연이 끝났다.

노래 제목 그대로 외로움을 표현하는 엔딩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래도 엔딩 요정은 존재하여만 한다.

카메라가 숨을 몰아쉬는 이연을 집중적으로 비췄다.

속으로 한숨을 삼킨 그녀는 작은 결심을 굳혔다.

‘그래, 서비스다.’

정말 보기 드물게, 윙크를 선보였다.

대기실에서 멤버들이 자신의 이 모습을 보고 얼마나 뒤집어졌을지.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 * *

오랜 시간 끝에 모든 무대가 종료되었다.

관객들이 빠진 텅 빈 현장.

빈 객석에 단 12명의 연습생만이 자리를 잡았다.

이은솔이 그녀들을 바라보면서 옅은 미소를 보냈다.

“오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지막 녹화 방송이었는데, 다들 어땠나요?”

연습생들은 큰 목소리로 ‘아쉬워요!’라는 말을 들려줬다.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그만큼 기억에 남는 일들도 많았다.

인생을 살면서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뜨겁게 불타올랐던 적이 있었을까? 하고 묻는다면 연습생들은 ‘아니오’라고 즉답할 것이다.

그 정도로 이 프로그램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이제 남은 건 결과뿐이다.

“현장 투표 집계와 심사 위원 평가를 합해서 가장 많은 승점을 얻은 팀이 승리하게 됩니다.”

이미 알고 있던 룰이었기에 연습생들은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였다.

“자! 그럼 시간 질질 끌 것 없이 바로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서바이벌 투표를 제외하고 가장 떨리는 순간이 바로 이때다.

각 팀의 멤버들은 손을 마주 잡고 자신들의 팀이 이기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먼저 1차전 결과입니다! 결과, 보여주세요!”

1차전, 듀오 대전.

첫 대결의 승자는…….

[1차전(듀오) : 벨제브 승]

이연의 예상대로였다.

‘시라이시 유키가 너무 셌어.’

시무룩해하는 하니엘 팀과 달리, 벨제브 팀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다전제에서 선취점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여기서 한 번만 더 이기면, 이다음 결과는 볼 것도 없이 벨제브 팀의 승리로 끝나게 되기 때문이다.

초반부터 우위를 점한 벨제브 팀의 기세가 한껏 올라왔다.

하지만 이연이 말했듯이, 무대 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2차전 결과, 공개해 주세요!”

화면이 전환되면서 2차전 승자의 정체가 공개되었다.

[2차전(3인 팀전) : 하니엘 승]

이번에는 하니엘 멤버들 진영에서 환호성이 퍼졌다.

이것도 이연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1차전에서 시라이시 유키가 주인공이었다면, 2차전에서는 나여솜이 주인공이었다.

점수는 1 대 1.

한 번씩 유효타를 주고받았다.

“마지막 3차전 결과에 따라 승리 팀이 결정되겠네요.”

3차전은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대결인 만큼 그 결과가 중요했다.

“마지막 3차전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공개해 주세요!”

모두의 시선이 전광판으로 향했다.

마지막 2차 미션 결과는.

[3차전(솔로) : 하니엘 승]

이변은 없었다.

권이연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진절혜가 이연을 꺾기 위해 칼을 갈고 나왔지만.

그녀의 날카로움도 이연의 단단한 방패를 뚫어내진 못했다.

비아와 리샤가 이연을 와락 껴안으면서 방방 뛰기 시작했다.

“언니, 우리가 이겼어! 이겼다고!”

“잘했어, 연아! 너 없었으면 우리 무조건 졌을 거야!”

“나 혼자 잘해서 이긴 거 아니야. 다 같이 힘냈기에 가능한 거지.”

팀원들을 가리키면서 모두의 공임을 강조했다.

한편, 벨제브 팀원들은 아쉬움을 애써 감추면서 기뻐하는 하니엘 팀에게 박수를 보냈다.

승자와 패자가 갈렸지만, 그래도 이연은 이번 무대만큼은 모두가 다 열심히, 잘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진절혜의 무대가 인상적이었다.

권이연과 진절혜의 시선이 잠깐 교차했다.

예전의 진절혜였더라면 고개를 홱 돌려 버리면서 무시했을 테지만, 오늘은 달랐다.

“축하해.”

이연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전했다.

바뀐 진절혜의 태도에 이연도 미소로 화답했다.

“고마워.”

SSS 사상 처음으로 권이연과 진절혜가 훈훈한 마무리를 지었다.

결과는 이미 나왔고.

아직 하나 더 남은 게 있었다.

“결과 확인했다고 벌써 집에 가려고 하시면 안 됩니다. 우승팀에게 주어지는 베네핏에 대한 설명을 들으셔야죠.”

이은솔의 말대로였다.

무엇을 위해 무대 위에서 열심히 땀을 흘렸겠나.

바로 베네핏을 차지하기 위함이었다.

“이번 베네핏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다음 이어지는 이은솔의 말은 오히려 하니엘 팀을 당황하게 만들고 말았다.

“하니엘 팀이 우승했을 경우, 하니엘과 같이 데뷔할 멤버를 상대 팀에서 한 명 추가로 고를 수 있는 권한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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