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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64화 (64/299)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64화

제18화. 단합 여행(6)

캠프파이어를 마친 연습생들은 자정을 살짝 넘긴 늦은 시간에 하나둘씩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부터 본격적인 파이널 라운드가 시작된다.

이 생각 때문일까.

연습생들은 멤버들끼리의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아쉬움과 긴장감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연조차도 그랬다.

펜션 천장을 바라보면서 이연은 쓴웃음을 흘렸다.

‘낯선 천장을 올려다보는 건 많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멤버들에게 가장 힘든 날이 언제였는지를 고백했던 것처럼, 이연은 여자가 된 첫날이 가장 혼란스럽고 힘들었다.

그때 봤던 낯선 천장이 지금은 그 어느 곳보다도 익숙한 천장이 되어버렸다는 게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이불을 덮은 이연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시간은 흐르는 법이다.

오늘이 지나고, 파이널 라운드 1차 미션이 연습생들에게 하달될 것이다.

이연이 예상하는 바로는, 이 단합 여행이 끝날 때쯤 제작진이 파이널 라운드 1차 미션을 깜짝 공개할 것이다.

‘방송의 흐름상, 그렇게 단합 여행이 마무리되는 편이 재미있을 테니까.’

방송에 몇 번 출연하다 보니 이연은 대한민국 예능 프로그램 특유의 흐름 같은 걸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만약에 이연이 PD라면, 이 타이밍에 어떤 연출을 선보일 것이다.

이런 것들이 하나하나씩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미션의 내용까지 정확하게 알아내진 못하고 있었다.

연습생들 중에서 유일하게 단 한 명.

진절혜만이 정보력으로 이연을 앞설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기회를 진절혜는 스스로 걷어차 버렸다.

‘본인 입으로 이석호 트레이너하고 결별을 선언했으니까.’

진절혜의 아버지로부터 무언가 말 못 할 큰 도움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이석호.

그로 인해 그는 어쩔 수 없이 진절혜와 내통하게 된 것으로 보였다.

추측에 불과하긴 하지만.

‘확률은 높아.’

이연의 스마트폰에 두 사람이 내통했다는 물증도 확실히 담겨 있었다.

‘이걸 꺼내는 날이 안 왔으면 좋겠는데.’

이건 적에게 일방적으로 공격을 가할 수 있는 미사일이 아니다.

아군, 그리고 자신마저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다.

터뜨리는 순간, SSS가 조작 프로그램이었다는 이야기가 대중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 나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연과 멤버들에게도 심대한 타격이 가해질 게 분명하다.

그래서 이연은 최후의 순간까지 이 녹취록을 혼자만의 비밀로 가지고 있으려고 생각 중이었다.

‘진절혜를 데뷔 못 시키게 하면 그만이니까.’

팀이 갈리게 된 이상, 이연은 무조건 이길 생각이었다.

내일부터 다시 펼쳐지게 될 보이지 않는 싸움.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슬슬 잠을 청해야 했다.

체력이 받쳐줘야 싸움도 할 수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

* * *

이른 새벽.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만 들려오는 조용한 시간에 가장 먼저 눈을 뜬 연습생이 있었다.

B팀의 리더인 권이연이었다.

무인 카메라가 돌아가면서 권이연이 막 일어난 모습을 앵글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이건 무의미한 시도로 돌아가고 말았다.

권이연의 미모는 막 눈을 뜬 아침에도 열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생얼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는 그녀.

냉장고를 열고 우유 한 잔을 마시면서 빈속을 어느 정도 채웠다.

그사이, 최연장자인 우미가 두 번째로 기상했다.

“잘 잤어, 언니?”

“응. 근데 연아. 넌 아침부터 우유 마시면 배 안 아파?”

“난 괜찮던데.”

“그래? 나는 빈속에 우유 마시면 속이 안 좋더라고.”

아직 잠이 덜 깬 모양인지, 우미는 냉장고 문을 열다가 스스로 이마를 찧고 말았다.

“아야야……!”

“괜찮아? 다친 곳은?”

“어, 없어. 괜찮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으, 아파라…….”

맏언니이긴 하지만, 가끔 이런 엉뚱한 면모를 보여줄 때가 있었다.

그래서 멤버들 사이에서는 우미가 귀여운 왕언니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연과 우미를 시작으로 멤버들도 하나둘씩 기상했다.

평소의 아침이었더라면 멍하니 앉아 있거나 아니면 아직도 침대에 뒹굴거리면서 정신을 차릴 시간을 확보하려고 했을 테지만.

오늘은 평소와 아주 많이 다른 아침이다.

군데군데 붙어 있는 카메라들이 마치 연습생들에게 주의를 주려는 경고판처럼 보였다.

지금 막 일어난 몰골을 보이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연습생들은 이연이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빠른 인사를 건네고서 바로 화장실로 직행했다.

멤버들이 씻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 이연은 우미와 함께 동생과 친구들에게 먹여줄 아침을 준비했다.

우미가 싱긋 웃으면서 방송용 멘트를 날렸다.

“이연 씨. 오늘의 아침은 뭔가요?”

앞에 붙어 있는 소형 카메라를 의식해서 일부러 그러는 거 같다.

카메라가 앞에 있는데.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하는 건 연예인답지 않은 행동이다.

그렇기에 이연도 우미의 이 멘트를 받아주기로 했다.

“샌드위치, 그리고 옥수수크림스프입니다. 따로 따뜻하게 우유도 데워 드리고 있습니다.”

“아침은 평소에 자주 챙겨 드시는 스타일인가요?”

“네. 하루 3끼는 먹어야 힘이 나는 법이니까요.”

걸 그룹 아이돌도 결국은 몸 쓰는 일이다.

무대 위에서 웃으면서 격한 안무를 펼쳐야 하니까.

보통 체력 가지고는 웬만하면 소화하기 힘든 일이다.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해서는 잠, 그리고 속을 든든하게 채우는 것. 이 두 가지가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래서 이연은 아무리 바쁘더라도 3끼는 꼬박 챙기곤 했다.

“우미 씨는 어떠신가요?”

“저요? 저는 늦게 일어난다 싶으면 아침은 거르는 타입이에요. 대신에 점심하고 저녁은 든든하게 먹죠.”

“야식은 안 하시죠?”

“가끔……?”

“파이널 라운드에서는 웬만하면 야식 끊으세요. 다음 날 컨디션 안 좋아질 수도 있으니까요.”

시작은 재미였으나, 끝은 우미의 멋쩍은 웃음소리로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나머지 멤버들이 주방으로 모여들었다.

“언니들. 뭐 하고 있어?”

비아가 수건으로 머리카락에 남은 물기를 닦아내면서 물었다.

우미가 쟁반 위에 가지런히 잘라둔 샌드위치를 선보였다.

“아침 준비. 저쪽에 컵하고 식기 도구 있으니까 가져오렴.”

“네-!”

우미의 지시에 따라 비아도 아침 준비 작전에 투입되었다.

20분 뒤.

모든 멤버가 한자리에 모였다.

식사를 하던 도중에 나여솜이 뭔가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PD님이 우리 단합 여행 끝날 때쯤에 팀명 정하라고 하시지 않았어?”

“맞다. 그러셨지.”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네.”

너무 재미있게 이 단합 여행을 즐기느라 깜빡해 버렸다.

앨리샤가 순식간에 두 번째 샌드위치 조각을 해치우면서 자신의 생각을 멤버들에게 들려줬다.

“다재다능 팀명 그대로 사용할까? 아니면 새로운 멤버 두 명을 영입했으니까 ‘New 다재다능’이라든지.”

그러나 이연은 앨리샤의 의견에 반대했다.

“A팀이든 B팀이든. 둘 중 한 팀이 이 멤버 그대로 데뷔할 거라고 했으니까. 그만큼 팀명도 신중하게 정해야지.”

정식 걸 그룹 아이돌처럼 보일 법한 팀명이 필요했다.

아이디어가 필요한 상황.

이때, 우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니엘(Haniel)’은 어때?”

“하니엘?”

“언니, 그건 무슨 뜻이야?”

멤버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쏟아진 관심에 우미는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천사 이름인데, 사랑, 애정, 평화를 관장하는 천사라고 하더라. 여러 가지 신화가 있는데, 그냥 갑자기 떠올라서.”

“우미 언니, 그런 쪽에 관심이 있었어?”

“관심이 있던 건 아니고. 그냥 인터넷 돌아다니다가 천사에 관련된 자료가 보이길래 재미 삼아서 쭉 읽었는데, 보다 보니까 재미있더라고.”

이연이 우미가 제안한 팀명 후보에 대해 먼저 의견을 드러냈다.

“난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은 어때?”

“나도 찬성.”

“이름 예쁘고 좋다.”

“우미 언니, 네이밍 센스가 있네. 앨리샤 언니하고는 다르게.”

갑자기 의문의 1패를 당해 버린 앨리샤가 비아를 향해 찌릿 노려봤다.

멤버들의 만장일치를 통해 팀명은 ‘하니엘’로 정해지게 되었다.

사랑과 애정, 평화를 관장하는 천사가 과연 이연이 속한 B팀에게 데뷔라는 결과를 가져다줄지.

아니면 탈락이라는 시련을 부여할지.

그건 멤버들의 하기 나름에 달렸다.

* * *

담합 여행이 끝난 후.

담당 PD도 멤버들이 정한 팀명에 흡족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니엘, 좋네요. 심사 위원분들도 만족해하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PD님.”

“그건 그렇고…… 어떻게. 담합 여행은 다들 즐겁게 보내셨나요?”

PD의 물음에 연습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담합 여행은 끝났지만, 아직 촬영이 끝난 건 아니었다.

PD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와중에도 카메라는 여전히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었다.

아직 제작진이 연습생들에게 전달해야 할 말이 남았다는 것을 뜻했다.

“재미있게 잘 즐기셨다니 다행이네요. 그럼 이제부터 파이널 라운드 1차 미션에 대한 내용을 전달해 드릴 텐데요.”

서윤철 PD가 이연을 가리켰다.

“이번에도 이연 씨가 팀장이죠?”

“네.”

투표를 할까 고민을 해봤었지만, 멤버들이 권이연을 중심으로 뭉친 팀인 만큼 그녀가 팀장을 맡아줬으면 한다는 의견이 강해서 어쩔 수 없이 파이널 라운드에도 그녀가 팀장을 하게 되었다.

“이연 씨가 이거 받아 가시면 됩니다.”

서윤철 PD가 건넨 작은 봉투.

미션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봉투를 받고 다시 멤버들과 나란히 선 이연이 PD에게 물었다.

“내용은 여기서 바로 확인하면 될까요?”

“네. 확인하시고 큰 소리로 그대로 읊어주시면 됩니다.”

이연이 대표로 미션 내용을 사람들에게 공개하라는 뜻이었다.

서윤철 PD가 할 수도 있었지만, 한 컷이라도 더 연습생들이 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그의 소소한 배려였다.

내용을 확인한 이연의 고운 미간에 살짝 주름이 생겼다.

그 모습에 멤버들의 불안감은 증폭되었다.

“왜, 언니?”

“안 좋은 내용이라도 쓰여 있는 거야?”

이제 미션이라면 이골이 난 연습생들.

이번에는 쉬운 미션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봤지만.

세상에 쉬운 일은 없는 법이다.

“파이널 라운드 1차 미션 내용입니다. 여러분들은 내일부터 1주일간 원하는 커버곡을 정해서 무대를 꾸미시게 될 겁니다. A팀, B팀. 둘 중 한 팀이 승자가 될 예정이고, 승패를 가리는 방법은…….”

이다음이 1차 미션의 핵심이었다.

“전문가 10인의 평점으로 결정될 예정입니다.”

“전문가라니?”

“글쎄. 그건 안 적혀 있는데.”

연습생들의 시선이 서윤철 PD에게 향했다.

서 PD는 이런 질문이 들어올 줄 알았다는 것처럼 보충 설명을 이어갔다.

“기존의 SSS 심사 위원 네 분과 은솔 씨, 그리고 저희가 섭외할 전문가 다섯 분까지. 이렇게 총 열 분이 여러분들의 무대를 평가할 겁니다. 유명 프로듀서님도 계시고, 여러분들의 선배님도 계시니까 열심히 연습해 주세요.”

대중들이 아닌 전문가에게 받는 평가.

시작부터 난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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