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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63화 (63/299)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63화

제18화. 단합 여행(5)

권이연과 마주친 진절혜도 설마 여기서 상대 팀 수장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지 크게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

카메라가 없을 때의 진절혜는 한없이 차갑고 까칠하다.

특히 권이연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연도 진절혜의 이런 상반된 태도가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펜션이 여기거든.”

“뭐?”

당혹감을 드러내는 진절혜.

한편, 이연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자신들의 바로 맞은편 펜션을 응시했다.

“A팀은 저쪽에서 머물고 있나 보네?”

“…….”

진절혜는 답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이연에게는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여전히 그녀는 이연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감추는 게 어설펐다.

제작진의 노림수일까.

아니면 단순히 편리함 때문에 일부러 같은 장소로 잡은 걸까.

어느 쪽이든 이연은 딱히 상관없었다.

한편, 대기 중이던 카메라가 두 리더의 만남을 멀리서 촬영하기 시작했다.

진절혜가 이연에게 쏘아붙이듯이 추궁하려고 하던 순간.

이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카메라, 찍고 있어.”

“뭐? 거, 거짓말하지 마!”

“못 믿겠다면 저기 저쪽 한번 보든가.”

이연이 고갯짓을 하면서 카메라가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이번 단합 여행은 관찰 예능 콘셉트로 촬영되고 있었다.

스태프들의 개입은 최소한으로.

그래서인지 촬영을 할 때에도 웬만하면 연습생들의 시야에 카메라가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진행하고 있었다.

카메라가 바로 눈앞에 있으면 아무래도 행동이 작위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특히 방송에 익숙하지 않은 연습생들 중에서는 이런 경향을 심하게 보이는 경우가 있었다.

권이연이나 진절혜, 두 사람은 딱히 그런 타입은 아니었다.

그래도 카메라가 자신들을 찍고 있다고 하니 표정 관리는 해야겠고.

그래서 진절혜는 이연을 향해 억지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식사 준비하러 가나 봐?”

목소리 톤도 바뀌었다.

180도 달라진 진절혜의 태도를 보면서 이연 역시 미소로 응수했다.

“어. 펜션에서 저녁 해 먹으려고.”

“그래? 우리들은 밖에서 먹을까 생각 중이야. 근처에 호수공원이 하나 있는데, 거기 야경이 괜찮다고 해서.”

“그렇구나. 즐거운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네.”

빈말이다.

물론 이연의 말에 진실성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눈앞에 있는 진절혜가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래도 진절혜는 여전히 미소를 유지했다.

“고마워. B팀하고도 같이 어울려서 놀았으면 좋았을 텐데.”

“나중에 파이널 라운드 끝나면 당분간 한가해질 테니까. 그때 같이 놀러 가면 되겠지.”

이연의 말 속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래서일까. 진절혜는 입꼬리를 계속해서 위로 끌어 올리는 일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너무 억지로 웃어서, 볼에 경련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표정이 흐트러지기 전에 진절혜가 먼저 한 걸음 물러서기로 했다.

“그럼 나중에 또 봐.”

“그래. 단합 여행 재미있게 잘 즐기고.”

“너희도.”

빠른 걸음으로 권이연 팀의 펜션에서 멀어지는 진절혜.

도망친다고 표현하는 게 잘 어울리는 그런 걸음걸이였다.

사라지는 진절혜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연은 다시 한번 웃었다.

‘놀리는 맛이 있는 녀석이라니까.’

진절혜가 들었으면 노발대발할 말을 이연은 속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 버렸다.

* * *

불 앞에서 고기 굽기를 자처하고 나선 앨리샤가 이연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진절혜가 있었다고?”

“어. 우리 맞은편 펜션에 A팀이 머물고 있더라.”

“진짜? 제작진분들이 의도적으로 이렇게 숙소 잡은 거 아니야?”

“모르지.”

그렇다 해도 이연은 딱히 신경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번 단합 여행에서 제작진은 A팀, B팀에게 아무런 터치도 안 하기로 연습생들에게 사전에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특별히 미션 같은 것도 없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이연은 이런 태도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이연이 봐온 SSS 제작진은 방송 분량을 위해서 일부러 연습생들에게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그녀들을 당황하게 만들거나 한 적은 없었다.

치어리딩 미션 때처럼 뭘 시킬지 말을 안 했던 적은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미션 같은 걸 수행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 펜션 단지 내에 놀러 온 사람들 앞에서 깜짝 공연을 선보여서 많은 표를 받아라, 이런 게 아닌 이상은 짐작 가는 게 전혀 없었다.

공연할 수 있는 장소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은 정말로 연습생들끼리 먹고, 마시고, 자고. 그러다가 끝나는 일정이란 소리다.

“신경 쓰지 말고 우리는 우리 즐길 거 즐기자.”

“그럴까? 비아야! 고기 다 구워졌으니까 그릇 가져와.”

비아가 쫄래쫄래 다가와 앨리샤가 주는 고기를 얌전히 받아들였다.

잠시 뒤.

고기를 가져갔던 비아가 다시 이연과 앨리샤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언니들, 아~ 해!”

“네가 싸준 거야?”

“응!”

큼지막한 고기쌈을 들고 온 비아가 애교 섞인 말투로 언니들에게 하나씩 먹여주려고 했다.

그 전에 앨리샤가 혹시나 하는 의심을 드러냈다.

“안에 막 고추하고 마늘 덩어리 들어 있는 거 아니지? 나, 예능에서나 나올 법한 이런 법칙, 싫어해.”

“무슨 소리야, 언니. 내가 얼마나 맛있게 싸 온 건데.”

비아가 삐치기 전에 이연이 먼저 쌈을 입안으로 가져갔다.

우물우물우물.

한참을 씹던 이연이 앨리샤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괜찮다는 뜻이었다.

그제야 앨리샤도 의심을 거두고 귀여운 막내가 싸 온 고기쌈을 입안 가득 머금었다.

그렇게 고기로 배를 채운 그녀들은 잠시 후, 제작진이 준비해 둔 불 앞에 모여들었다.

“카메라 설치해 뒀으니까, 다들 모여서 이야기라도 나누세요.”

“장작은 여유롭게 넣어드렸으니까 더 집어넣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제작진의 의도대로, 연습생들은 불을 한가운데에 둔 채 도란도란 원 형태로 앉았다.

제작진이 모두 퇴장하고.

눈치 빠른 비아가 먼저 자신의 생각을 꺼냈다.

“이거, 딱 보니까…… 그거네, 그거.”

“진솔해지는 시간?”

우미의 물음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행 가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저녁 시간 때쯤에 꼭 이런 시간을 가지곤 한다.

그동안 미션을 수행하느라 서로에 대한 속마음을 전혀 들을 수 없었던 연습생들.

모처럼 새롭게 한 팀이 되었으니, 이번 기회를 통해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 보자는 콘셉트로 이런 자리가 갖춰지게 되었다.

아마 A팀도 이렇게 비슷한 시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활활 타오르는 불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생각이 절로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연습생들의 경우에는 방송이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면서 오지 않았나.

그래서인지 불멍을 하면서 감상에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팀의 분위기 메이커인 비아가 말문을 떼면서 시작을 알렸다.

“언니들은 SSS 방송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게 뭐야?”

화두를 던진 비아의 물음에 우미가 먼저 반응을 보였다.

“나는 1라운드 개인 미션 때.”

“왜?”

“지금이야 팀전이었잖아?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멤버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는데, 그때는 온전히 혼자 해야 했으니까. 물론 이연이하고 비아가 많이 도와주긴 했지만, 오롯이 혼자 카메라 앞에 서서 평가받아야 한다는 게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어.”

연습생들은 모두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미가 역으로 비아에게 물었다.

“너는?”

“난…….”

비아가 대답을 하려고 하기 직전에 앨리샤가 말을 가로챘다.

“치어리딩 미션 때지?”

“앨리샤 언니는 나를 너무 잘 알아서 문제라니까.”

이연도 깊이 공감했다. 그때 비아가 처음으로 방송 출연을 관두고 싶다는 뉘앙스를 풍겼을 만큼 굉장히 힘들어했다.

“이연 언니가 없었으면 나, 그 자리에서 기권했을걸?”

이연은 작게 웃을 뿐이었다.

치어리딩 미션 이야기가 나오자, 나여솜도 할 말이 있는 모양인지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나도 그때가 가장 힘들었어.”

“언제. 치어리딩 미션 때?”

“응.”

“여솜 언니네 팀, 그때 1등 했었잖아. 근데 힘들 만한 게 있었어?”

“오리지널 곡으로 연습한 첫 팀미션이었으니까. 우리는 다재다능 팀처럼 안무 짜는 거에 특화된 사람이 없었거든. 안무 구상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서로 모여서 울기도 하고 그랬어.”

그때의 감정이 다시금 떠오르기라도 한 걸까.

나여솜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안 울려고 했는데…… 진짜…….”

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옆에 앉아 있던 동갑내기 친구, 앨리샤가 팔을 뻗어 나여솜을 살포시 안아줬다.

이번에는 연시우의 차례였다.

우미가 시우를 직접 지목했다.

“시우는? 힘들었을 때 없었어?”

“전 2라운드 내내 힘들었어요. 이유는…… 방송이라서 말은 못 하겠어요.”

자세한 건 물을 수가 없었다.

연시우의 말에서 왠지 모를 분노가 묻어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연은 연시우의 분노가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알지만, 시우가 말한 것처럼 카메라 앞에서 차마 밝힐 순 없었다.

연습생들끼리는 서로 사이좋게, 친하다는 모습을 대중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팀일지라도 굳이 출연자들 간의 불화설을 자초할 필요는 없었다.

연예계는 결국 대중들한테 환상을 보여주는 곳이니까.

적어도 SSS라는 방송 안에서는 모두가 다 아름다운 경쟁을 해나가고 있다는 설정을 유지해야 한다.

비아가 마지막 남은 이연을 가리켰다.

“이연 언니는 힘들었던 때 있었어?”

이번에도 앨리샤가 인터셉트를 시도했다.

“나! 내가 대신 말할래.”

이연은 한번 해보라는 식으로 손짓했다.

앨리샤가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어설프게나마 이연의 어투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난 힘들었던 적 없었어. 단 한 번도.”

비아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와. 이연 언니하고 진짜 하나도 안 닮았다.”

“시끄러워. 연이가 따라 하기 힘든 애라서 그렇다고.”

어떠한 천재 개그맨이 오더라도 이연의 성대모사 앞에서는 고개를 가로젓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시우가 앨리샤의 말이 맞는지, 이연에게 턴을 넘겼다.

“앨리샤 언니 추측대로인가요?”

팀 다재다능 멤버들뿐만 아니라 시우, 여솜까지. 전부 그렇게 예상하고 있었다.

이연은 여태껏 단 한 번도 힘들어하던 티를 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연은 모두의 기대와 전혀 다른 대답을 들려줬다.

“아니, 나도 사람이니까. 힘든 적은 있었어.”

“언니가?”

“거짓말. 방송이라고 일부러 힘들었던 거 억지로 짜내려는 거 아니야?”

앨리샤가 의심을 가득 드러냈다.

우미도 말만 안 했을 뿐이지, 앨리샤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천하의 권이연이 힘들었던 때가 있다니.

잘 상상이 안 갔다.

“언제가 가장 힘들었는데? 알려줘.”

궁금증이 커져갈 무렵. 이연이 마침내 이들의 호기심을 해결해 주기 위해 대답을 내놓았다.

“SSS 촬영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가졌던 월말평가.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더라.”

그날은 이연에게 굉장히 의미가 깊은 날이다.

왜냐하면.

낯선 여자의 몸으로 살아가게 된 첫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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