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55화
제16화. 1위의 몰락(2)
1차 서바이벌 투표 결과를 발표할 때처럼 막차를 타게 될 마지막 순위를 남겨두고 그 앞 순위부터 먼저 발표되었다.
“먼저 11위부터 공개하겠습니다!”
지난 서바이벌 투표에서 아슬아슬하게 막차를 타고 2라운드에 진출했던 경험 때문일까.
비아는 11위부터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었다.
그녀의 소망이 하늘에 닿기라도 한 걸까.
“이비아 연습생입니다! 축하합니다!”
1차 투표 때에는 가장 늦게 이름이 불렸던 그녀가 이번에는 가장 먼저 무대에 올라서게 되었다.
비아는 두 손으로 입가를 가리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이연과 우미, 앨리샤까지. 팀원 전체가 그녀의 파이널 라운드 진출을 축하해 줬다.
“다행이다, 비아야!”
“어서 올라가 봐. 은솔 선배님 기다리시잖아.”
이연의 재촉에 비아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무대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그 짧은 구간 동안, 그녀는 벌써 눈물투성이가 되었다.
이은솔은 비아를 보면서 어색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이비아 연습생은 팀 내에서 눈물을 담당하고 있는 게 아닌가요.”
비아를 조금이라도 웃게 만들려고 농담을 던져봤다.
이은솔의 노력이 통한 걸까. 비아의 표정이 아까보다는 밝아졌다.
조금씩 안정을 되찾은 그녀에게 마이크를 건네주며 소감을 물었다.
덜덜 떨리는 두 손으로 마이크를 붙잡은 비아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치어리딩 팀미션 당시의 상황이었다.
“저는 안 될 거라고, 다 포기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언니들이 저를 일으켜 세워줬어요. 고마워, 언니들. 나, 파이널 라운드에서도 열심히 할게! 우리, 꼭 다 같이 데뷔하자!”
막내 팀원의 귀여운 파이팅 외침에 연습생들 모두가 다 박수를 보냈다.
이비아가 첫 스타트를 끊은 지 얼마 안 되어서 10위, 9위, 8위에 이어서 7위 발표가 이어졌다.
“7위를 차지한 연습생은…… 양우미 연습생입니다!”
7위. 지난번 순위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성장세였다.
비아와 다르게 우미는 비교적 침착하게 생존 소감을 전했다.
“여러분들이 주신 표에 걸맞은…… 아니, 그 이상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가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꼭 데뷔할게요!”
11위, 그리고 7위.
팀 다재다능은 벌써 2명의 파이널 라운드 진출자를 배출해 냈다.
이제 남은 인원은 앨리샤, 그리고 팀장인 권이연.
두 사람만 진출하면, 다재다능 팀은 2라운드 팀 중에서 유일하게 멤버들 전원이 파이널 라운드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해내게 된다.
“자, 대망의 3위입니다!”
순식간에 3위의 차례가 왔다.
이때까지 이연과 앨리샤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었다.
아니, 또 한 명의 강력한 1위 후보도 아직 남아 있었다.
진절혜. 그녀도 지금까지 호명된 적이 없었다.
“3위! 앨리샤 연습생입니다!”
1라운드 중반부에서부터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어필했던 앨리샤가 이번 두 번째 서바이벌 투표에서 3위를 차지했다.
마이크를 쥔 앨리샤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카메라를 바라보면서 지금의 기분을 표현했다.
“아직도 잠이 덜 깬 느낌이에요. 감사합니다. 파이널 라운드에서도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제 1, 2위. 그리고 마지막 순위인 12위. 셋의 발표만을 남겨두게 되었다.
먼저 1, 2위를 발표할 차례였다.
큐시트를 바라보던 이은솔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여기서 대이변이 발생했네요.”
그의 말에 연습생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대이변이라니. 어차피 1위 후보는 권이연과 진절혜. 둘일 게 뻔하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결과는 달랐다.
“권이연 연습생. 그리고…… 나여솜 연습생. 두 분을 무대로 모시겠습니다.”
연습생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권이연까지는 예상했었는데.
설마 나여솜이 1위 후보로 올라갈 줄은 몰랐던 것이다.
“잠깐만.”
“그렇다면 절혜는 설마…….”
모든 이들의 시선이 권이연, 나여솜이 아닌 진절혜에게 쏠렸다.
진절혜는 주먹을 꽉 쥔 채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여태껏 1위 후보 자리를 지켜왔던 그녀가 설마.
탈락 후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 * *
무대에 오른 권이연은 자리에 앉아 있는 진절혜를 말없이 응시했다.
솔직히 티를 낸 건 아니지만, 이연도 적지 않게 놀랐다.
‘설마 탈락 후보까지 내려갈 줄은 몰랐어.’
2라운드 마지막 팀미션에서 보여준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인해서 진절혜의 이번 순위가 많이 내려갈 거라고 예상은 했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추락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나여솜도 진절혜가 올라와야 하는 자리에 자신이 올라오게 되어서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스태프들도 적지 않게 동요했다.
다만, 서윤철 PD를 포함한 몇몇 헤드 스태프들은 서바이벌 투표 결과를 미리 알고 있었기에 담담한 모습을 유지했다.
서윤철이 당시에 크게 놀랐던 건 누가 1위를 차지했느냐. 이것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진절혜의 날개 없는 추락 때문이었다.
현장이 어수선해진 사이, 서윤철 PD가 몰래 스튜디오를 찾아온 오채일 대표에게 말을 붙였다.
“연습생들이 많이 당황스러운가 봅니다.”
“그렇겠죠. 절혜가 탈락의 기로에 서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나 오채일 대표는 팀미션 무대를 보자마자 얼추 예상하고 있었다.
영원한 1위도, 영원한 꼴찌도 없는 게 바로 연예계다.
그만큼 이 세계는 굉장히 냉정하다.
진절혜도 이번 일을 통해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을 것이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깨달음을 얻은 진절혜가 과연 파이널 라운드에서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각성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다시 이연과 1위 자리를 두고 경합을 벌일 수 있을지.
아니면.
여기서 탈락하면서 그런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하게 될지.
이건 오롯이 대중들과 심사위원들의 마음에 달렸다.
한편, 녹화 현장의 분위기가 좀처럼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자 이은솔이 직접 나서게 되었다.
“여러분들. 혼란스러워하는 그 마음은 저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입니다.”
현실이다. 이 말이 오늘따라 이토록 무섭게 느껴진 적이 있었을까.
연습생들은 금세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결과는 나왔을 것이다.
그녀들이 해야 할 일은 하나밖에 없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뿐.
“권이연 연습생. 지난번에 이어서 이번에도 1위 후보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소감이라고 할 건 없을 거 같습니다. 지금 제 머릿속에는 1위보단 파이널 라운드에서 어떻게 팀을 구성할지. 이것으로 가득 차 있거든요.”
“팀장으로서 멤버들 전부를 파이널 라운드에 올려놓는 데에 성공하셨는데요. 비결이 혹시 있을까요?”
“주어진 무대에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그게 저희의 비결입니다.”
마치 ‘교과서 위주로 공부를 했어요’와 같은 대답이었다.
뒤이어 나여솜에게도 소감을 물었다.
나여솜은 이연과 다르게 심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 제가 여기에 올라와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사랑의 요정들 팀원들은 치어리딩 팀미션에서 분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무도 파이널 라운드 진출을 확정 짓지 못했다.
팀장인 나여솜 혼자만 살아남은 셈이었다.
과분한 자리에 올라왔다는 부담감과 팀원들을 향한 미안함이 뒤섞여 눈물로 흘러내렸다.
“제가 정말로…… 저만 여기에 올라와 있는 게…… 괜찮은 걸까요……? 흑……!”
그녀를 따라 사랑의 요정들 팀원들 역시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이은솔이 그녀를 위로해 주려고 하기 직전.
권이연이 먼저 나섰다.
“계속 남아 있도록 해야죠. 탈락한 팀원들의 몫까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반드시 데뷔해야 합니다. 그게 팀원들을 위해서 나여솜 양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일 테니까요.”
혼자 살아남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모두의 희망을 안고 자신이 대표로 파이널 라운드에 진출했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한다.
“독해져야 합니다. 앞으로는 더 잔인한 무대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이연의 말이 비수가 되어 그녀의 가슴에 꽂혔다.
마음 약해지면 안 된다.
이연은 이 말을 해주고 싶었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낸 나여솜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이은솔은 냉정하지만 그래도 핵심을 정확하게 지적해 준 이연을 보면서 미소를 보냈다.
자신보다 연하인 데다가 아직 데뷔조차 안 한 연습생이 이렇게 어른스러운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대견스러웠다.
어느 정도 진정된 나여솜의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이은솔은 다시 진행을 이어갔다.
“그럼 1위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스페셜 스타 스테이지, 2라운드 서바이벌 투표! 영예의 1위는 바로……!”
모두의 이목이 한 연습생에게 쏠렸다.
그 연습생의 정체는.
“축하합니다! 권이연 연습생입니다!”
1위만큼은 이변이 없었다.
이연은 다시 한번 마이크를 건네받고서 담담하게 1위 수상 소감을 전했다.
“감사합니다. 파이널 라운드에서는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1위 권이연.
그리고 2위 나여솜.
아직 이변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마지막 12위로 파이널 라운드에 진출하게 될 후보들을 만나보시겠습니다.”
총 3명의 연습생들이 공개되었다.
그중에는 진절혜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진절혜는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푹 숙였다.
긴 머리카락들이 아래로 흘러내리면서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완전히 가려 버렸다.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아마 처참한 기분이겠지.’
이연은 진절혜의 현재 심정이 어떤지 완전히 꿰뚫고 있었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것이다.
2라운드 마지막에는 방송 출연에 올인하는 도박수를 던져가면서까지 이연을 어떻게든 넘어보려고 했던 진절혜였지만.
돌아온 결과는 참혹했다.
엘리트라 불리던 연습생의 몰락.
이연은 조용히 진절혜를 바라봤다.
상위권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하지만, 하위권은 아무리 권이연이라도 확실하게 예상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과연 진절혜가 지옥에서 살아 돌아오는 역전의 용사가 될지, 어떨지.
장담하기가 힘들다.
이은솔이 PD와 짧게 의견을 교환했다.
잠깐 녹화를 끊었다가 다시 이어갈까 하는 것 때문이었다.
계속되는 순위 발표로 인해 연습생들의 피로가 극에 달했기에 끊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10분간의 휴식.
그러나 12위 후보에 오른 연습생들에게는 이 10분이 지옥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앞자리에 앉은 앨리샤가 뒤를 돌아보면서 이연에게 물었다.
“누가 12위 될 거 같아?”
“글쎄.”
이연도 이 순간만큼은 그냥 얌전히 지켜보고 싶었다.
그전에.
이연의 시선이 나여솜에게로 향했다.
“촬영 끝나면 저하고 따로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네? 저하고요?”
“중요한 이야기거든요.”
“……?”
나여솜의 머리 위에 작은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사이, 다시 녹화가 재개되었다.
무대로 올라온 이은솔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파이널 라운드에 진출할 마지막 연습생의 정체를 공개해 주세요!”
화면에 비친 연습생의 이름이 마침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