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48화
제13화. 예능 도전(5)
“자! 그럼 스타일 나이트, 첫 번째 코너로 넘어가 보실까요!”
윤혜선의 외침에 따라 대형 화면이 바뀌었다.
“오늘의 의류 품목은 뭔가요? 보여주세요!”
이미 출연진은 대본을 통해 첫 번째 토크 코너의 주인공이 누가 될지 알고 있었다.
[플리츠스커트]
하필이면 이연이 가장 싫어하는 치마 종류가 등장했다.
속으로는 욕을 한 바가지 쏟아내고 싶어 했지만, 겉으로 나온 반응은 180도 달랐다.
“와. 너무너무 좋아하는 치마인데. 나와서 기뻐요. 우와.”
이연 본인이 생각해도 너무 기계적인 리액션이었다.
그래도 다른 출연자들의 리액션에 묻힌 덕분에 이연의 반응이 부자연스러워도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PD 마음에 안 든다 싶으면 그냥 편집하면 그만이니까.
이것이 녹방의 이점이다.
윤혜선이 미소를 유지하면서 멘트를 이어갔다.
“오늘은 예쁘고 귀여운 게스트분들이 많이 나오셔서, 일부러 저희 제작진이 거기에 걸맞은 의상을 준비해 주신 거 같아요. 황 선생님. 플리츠스커트, 어떤 종류의 옷인지 설명해 주시겠어요?”
“네. 플리츠스커트는 다들 아시겠지만 치마 주름이 세로로 가 있는 형태의 스커트를 일컫는 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일본에 보시면 세라복 치마가 있잖아요? 그것하고 비슷하시다고 보면 돼요.”
“어머, 그렇군요. 색상도 다양하네요?”
“네. 뉴트럴, 파스텔 등 다양한 컬러가 있으며, 니트나 블라우스처럼 다양한 옷에도 무난하게 잘 어울릴 수 있는…… 치마계의 정석 같은 느낌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길이에 따라서 느낌도 완전히 달라질 수 있어요.”
롱 플리츠스커트의 경우에는 어른스럽고 성숙한 매력을. 그리고 미니 플리츠스커트는 발랄하고 귀여운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
‘길이만 다른데도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군.’
개인적으로 이연은 치마를 굉장히 싫어한다.
그러나 자신이 입어야 할 때만 싫어지지, 평상시에는 그저 그런 수준이었다.
이연이 안 입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본인에게도, 그리고 옷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여성복 전문 디자이너답게 황 로즈의 전문적인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이연은 자신이 모르는 지식을 배우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
아는 것을 통해 얻는 특유의 쾌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황 로즈의 설명에 어느 순간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녹화가 아니라 강연을 드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이연과 반대로 뭔가를 배우는 걸 굉장히 싫어하는 비아도 황 로즈의 설명은 귀에 쏙쏙 박히는 모양인지 눈빛을 초롱초롱 빛냈다.
황 로즈의 짧은 강연이 끝나고.
윤혜선이 게스트들에게 플리츠스커트에 대한 일화가 있는지를 물었다.
이연은 딱히 할 말이 없었기에 팀원들에게 턴을 넘기기로 했다.
평소에도 스커트를 꽤 입고 다녔던 모양인지, 이연을 제외한 세 멤버가 신이 난 표정으로 자신들의 기억 보따리를 꺼냈다.
이연은 팀원들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거나, 리액션을 펼치거나 하면서 소소하게 자신의 분량을 챙겨갔다.
2시간에 가까운 토크 코너가 끝나고.
곧바로 두 번째 코너로 넘어가게 되었다.
“황 선생님이 게스트분들을 위해서 직접 의상을 골라주실 텐데요. 그러고 보니 오늘 알렉스 선생님은 나설 차례가 많이 없으시겠네요.”
“네 분 중에 한 분을 남장시키면 되지 않을까요?”
남장이라는 말에 이연의 귀가 번뜩였다.
그녀가 속으로 ‘이거다!’라고 외쳤다.
“저요! 제가 지원하겠습니다!”
알렉스는 그냥 농담으로 해본 말이었는데. 이연은 그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아니, 진심 수준이 아니라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절박함마저 느껴졌다.
알렉스가 난처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왜냐하면 이건 대본에 없는 흐름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허 PD가 직접 커닝 페이퍼를 작성해서 출연자들에게 보여줬다.
[남장 진행하셔도 됩니다.]
의상은 어차피 남자 옷까지 다 마련되어 있었다.
PD의 허가가 떨어지자, 알렉스는 옷소매를 걷어 올리면서 자신감 있게 무대로 나섰다.
“그러면 실력 발휘 좀 해보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스튜디오에 여성복, 남성복을 잔뜩 걸어놓은 기다란 옷 진열장이 세팅되었다.
알렉스는 이연 한 명 분량의 옷만 골라주면 되는 거였기에 어렵지 않았지만, 황 로즈의 경우에는 세 명분의 코디를 담당해야 했기에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디자이너들이 의상을 골라주는 동안, 비아가 이연에게 아쉬움을 토로했다.
“언니. 왜 남장한다고 했어. 예쁜 옷들 엄청 많은데.”
“괜찮아. 예쁜 건 너하고 우미 언니, 앨리샤한테 양보할 테니까 마음껏 해.”
사실은 자신을 위해서 한 일이었지만, 비아는 여기에 무한한 감동을 느꼈는지 이연의 손을 꼭 붙잡아줬다.
“고마워, 언니. 역시 언니는 우리의 영원한 팀장이야!”
“그, 그래. 알았으니까 손 좀 놔줄래?”
이 와중에도 스킨십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했다.
* * *
디자이너들이 옷을 골라주고, 멤버들은 그것들을 가지고서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기로 했다.
모든 멤버들이 준비되었다는 신호를 접수한 윤혜선이 차례로 멤버들을 소개했다.
황 로즈로부터 코디를 받은 멤버들이 먼저 무대에 등장했다.
각기 다른 길이의 플리츠스커트를 입고서 무대를 활보하는 다재다능 팀원들.
그러나 아직 이연이 남아 있었다.
“번외로 하려고 했는데. 의도치 않게 하이라이트가 되어버린 이연 씨, 나와주세요!”
무대가 열리면서 마침내 남장을 한 이연의 모습이 공개되었다.
블랙 컬러의 구두와 정장 바지, 베스트까지.
여기에 화이트 와이셔츠와 흰색의 정장 벨트로 포인트를 살렸다.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이연이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면서 다른 멤버들과 나란히 일렬로 섰다.
카메라가 멤버들을 전체적으로 한 번씩 비췄다.
치마를 입었을 때와는 다르게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이연.
그녀의 모습은 같은 멤버들조차도 반할 정도로 멋있었다.
윤혜선과 출연자들, 그리고 이연의 코디를 맡았던 알렉스조차도 이렇게까지 이연이 옷을 잘 소화할 줄은 몰랐는지 연신 박수를 쳤다.
“이연 씨, 너무 잘 어울리는데요?”
“나중에 SSS에서 남장 콘셉트로 무대 의상 한번 맞춰주세요! 너무 멋져요!”
이연도 그러고 싶다.
그러나 이번 오리지널 곡의 경우에는 남장과는 콘셉트가 전혀 맞지 않아서 불가능하다.
한편, 이연의 남장이라는 예상치 못한 수확을 거둔 허 PD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였다.
방송이 잘 풀렸다는 직감이 왔을 때 보여주는 그의 습관 같은 거였다.
이연은 이것도 박도수 매니저를 통해 사전에 정보를 입수했었다.
‘난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거였는데.’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그만 아닌가.
이유가 어떻게 되었든, 결과적으로 재미있는 장면이 나올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걸로 충분하다.
* * *
마지막으로 세 번째 코너인 시청자 상담 시간이다.
패션에 영 자신 없어 하는 시청자의 사연과 함께 그 주인공들을 직접 무대로 데려와 옷을 대신 입혀주기로 했다.
첫 번째 사연자와 두 번째 사연자는 20대 여성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 사연자의 경우에는 직장을 다니고 있는 평범한 30대 샐러리맨으로, 옷을 너무 못 입어서 계속 소개팅에서 까인다는 내용의 고민을 안고 있었다.
이 고민을 해결해 주기 위해 스타일 나이트 팀이 나섰다.
“우선 사연을 보내주신 남성분부터 먼저 무대로 모셔보겠습니다. 나와주세요.”
본인이 사연에 직접 썼듯이, 밖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인상을 지닌 남성이었다.
먼저 게스트들이 남성의 옷을 골라주고, 뒤이어 전문가들이 나서서 약간의 디테일을 잡아주는 방식으로 코너가 진행된다.
이번 사연지는 이연과 우미가 나서게 되었다.
“두 분 다 자신 있나요?”
우미가 먼저 윤혜선의 물음에 답했다.
“네. 이길 자신 있어요.”
“이연 씨는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에는 경쟁이라는 요소가 들어간다.
둘 중에 어느 코디가 더 마음에 들었는지. 사연자의 결정에 따라서 승자가 된 게스트에게는 보상이 주어진다.
벌칙은 따로 없지만, 주어지는 상품이 한우 세트로 꽤 호화로운 편이었기에 경쟁심을 불태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겨야 하는 이유가 더 있었다.
‘방송에 나가는 건데. 기왕이면 이기는 모습으로 나가는 게 좋겠지.’
이연의 경쟁심이 다시 한번 발동된 것이다.
남자의 체형을 쭉 훑어본 이연이 빠른 속도로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우미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이 바쁘게 옷을 고르는 와중에 윤혜선이 방금 나왔던 말들을 강조했다.
“사연자분께서는 ‘입어도 불편함이 없는 옷이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해 주셨거든요. 여기에 맞춰서 옷을 골라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네!”
미용도 미용이지만, 기능성과 편리함도 같이 추구해야 한다.
이연은 이것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면서 우미와 비슷한 타이밍에 옷 조합을 완성시켰다.
두 사람이 고른 옷을 차례대로 입고 나오기로 한 사연자.
먼저 우미가 골라준 옷이었다.
네이비색의 와이셔츠에 살짝 타이트한 감이 없지 않아 있는 브라운 컬러의 면바지. 그리고 흰색의 운동화까지.
캐주얼한 느낌을 살리는 그런 콘셉트였다.
윤혜선이 사연자에게 물었다.
“어떠신가요?”
“마음에 듭니다. 근데……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딘지 모르게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사연자를 바라보면서 이연은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어서 사연자가 두 번째로 이연이 골라준 옷을 입고 재등장했다.
옷깃이 붙어서 와이셔츠 같은 느낌을 주는 반팔티와 스판 9부 바지, 그리고 짙은 브라운 컬러의 구두까지.
사연자의 표정이 아까보다 편하게 보였다.
윤혜선도 이 변화를 눈치챘는지, 사연자에게 물었다.
“아까 입었던 옷보다 많이 편하신가 봐요?”
“네. 그게 말이죠…….”
곤란해하는 사연자를 대신해서 이연이 답했다.
“아까 그 바지가 꽉 조였던 거죠? 사타구니 부분이요.”
사타구니라는 말에 우미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그랬어?”
“어. 아까 나도 언니가 골라준 그 바지를 봤었는데, 이건 딱 봐도 고간 쪽이 아파 보일 거 같더라고. 그래서 일부러 그 바지를 안 골랐던 거야.”
“대체 그걸 어떻게…….”
이유야 뻔했다.
남자의 고통은 남자가 가장 잘 아는 법이니까.
그렇다고 이걸 사실대로 말해줄 수 없었다.
이연이 재미없는 농담할 줄 알 테니까 말이다.
윤혜선이 알렉스에게 물었다.
“알렉스 선생님. 이연 씨 말이 정말인가요?”
“네. 안 그래도 저도 첫 번째 코디 보고 ‘많이 쪼이겠는데?’ 하고 생각했었는데. 이연 씨가 그걸 정확하게 꿰뚫어 보셨네요. 아까 남장을 하시더니, 남자들의 기분까지 공감하게 되신 건가요? 하하!”
생각 없이 던진 농담인데.
이연은 입가에 진의를 알기 힘든 애매한 미소가 번졌다.
“그럴지도 모르죠.”
이연의 말에 출연자들이 크게 웃었다.
이 말이 진짜라고 믿는 사람은 당연하게도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권이연 본인만 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