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47화
제13화. 예능 도전(4)
인터넷 동영상 플랫폼들을 보면, 유명 연예인들이 방송국에 출근하는 모습이 영상, 사진을 통해 올라오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요즘 핫한 SSS 프로그램의 참가자들답게, 그중에서도 제일 인기가 높은 팀원들답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오직 팀 다재다능의 출근길 모습을 영상,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서.
이런 적이 드문 일은 아닌 모양인지, 미리 대기 중이던 스태프들이 그녀들을 직접 안내했다.
“저기 바닥 밑에 테이프 붙어 있는 곳 보이시죠? 저쪽에 나란히 서시면 됩니다.”
멤버들이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하는 사이, 박도수 매니저가 코디와 함께 연습생들의 개인 짐과 가방을 직접 나눠 들었다.
“가서 촬영하고 와. 우리는 먼저 들어가 있을 테니까.”
이연이 당황하는 연습생들을 대표로 알겠다고 답했다.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오는 이연의 모습에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이연 씨 온다!”
“이연 씨, 이쪽 좀 봐주세요!”
“여기도 한 번만 봐주실 수 있을까요?”
“포즈가 심심하니까 다 같이 하트라도 부탁드릴게요!”
한때 유행했던 손가락 하트를 포함해서 요즘 유행 중인 갸루 피스까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포즈를 취해줬다.
이런 것 하나하나가 팬서비스였기에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기자들과 팬들 앞에 섰다.
이곳도 일종의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즉, 이연이 하염없이 강해지는 공간임을 뜻한다.
포토타임을 모두 마친 연습생들은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곧장 방송국 안으로 들어섰다.
그제야 연습생들의 표정이 풀렸다.
“사람들 앞에 딱 섰을 때, 다리가 풀려서 주저앉을 뻔했다니까.”
“우미 언니. 내가 옆에서 잡아준 거 기억하지? 나 아니었으면 정말로 쓰러졌을걸?”
“고마워, 비아야. 오늘 은혜는 절대로 안 잊을게.”
힘들 때 서로 돕는 게 팀워크 아닌가.
그래도 이연이 앞장을 서준 덕분에 팀원들도 사람들 앞에 설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앨리샤가 이연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물었다.
“너는 저렇게 사람들이 몰릴 거, 알고 있었어?”
“아니.”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는 거야?”
“저기 통과 안 하면 오늘 녹화 못 하니까.”
아주 단순하고도 명쾌한 이유였다.
이연의 이런 패턴에 팀원들은 나름 많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듣고 나면 매번 새롭다.
매니저, 코디와 함께 ‘스타일 나이트’ 녹화 현장으로 향한 멤버들.
이들을 가장 먼저 맞이해 준 사람은 바로 ‘스타일 나이트’의 연출을 맡고 있는 허훈 PD였다.
박도수 매니저가 연습생들에게 슬쩍 눈짓을 보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박도수가 그녀들에게 한 말이 있었다.
허훈 PD는 프로그램 촬영에 있어서 굉장히 깐깐한 사람이니까 가급적이면 실수하지 말고 잘하라고 했었다.
그 말이 떠오른 모양인지, 연습생들의 행동과 표정이 일순간 경직되었다.
깐깐하다는 말처럼, 인상도 굉장히 차가워 보였다.
허훈 PD가 먼저 그녀들에게 물었다.
“저희 조연출한테 말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서 당황하셨겠네요.”
이런 질문이 들어오면 대답은 늘 이연의 몫이었다.
“네. 그래도 그만큼 많은 시청자분들이 저희의 출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당황스럽다기보다는 기뻤습니다.”
연예인은 대중들의 관심을 먹고 자라는 존재다.
아직 데뷔도 안 한 그녀들이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영광인 셈이었다.
이연의 대답이 마음에 든 걸까.
허 PD의 무덤덤했던 표정이 아까보다는 훨씬 밝아졌다.
“그렇군요. 녹화까지는 아직 시간 좀 남았으니까, 대기실에 가셔서 메이크업 받고 그러시면 됩니다. 촬영 들어갈 때쯤에는 저희 스태프가 와서 알려줄 거니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되고요.”
“네. 감사합니다, PD님.”
“천만에요. 그럼 오늘 녹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PD와의 짧은 대화를 마치고 대기실로 걸음을 옮겼다.
미리 대기 중이던 메이크업 담당들이 각자 한 명씩 연습생들을 좌석에 앉혔다.
공간이 넓지 않다 보니 둘, 둘. 이렇게 따로 나뉘어 앉아야 했다.
이연은 비아와 같이. 그리고 우미는 앨리샤와 한 조가 되어 메이크업을 받을 준비를 마쳤다.
긴장한 모양인지, 옆에서 비아의 거친 호흡 소리가 계속해서 이연의 귓가에 들려왔다.
“아직도 긴장하고 있어?”
“언니는 긴장 안 돼?”
“적당히는 하고 있지.”
너무 긴장을 안 하고 있으면 그것도 문제다.
비아는 천하의 이연이 긴장하고 있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언니는 전혀 그런 티가 안 나는데. 연습실에서 안무 연습할 때하고 똑같은 표정이잖아.”
편안한 장소에 있을 때 나타나는 그런 반응들이었다.
이연은 이런 비아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들려줬다.
“사람의 모든 것을 외형으로만 판단하려고 하지 마. 속으로 어떤 칼을 품고 있을지 모르니까.”
“……언니. 칼 품고 있어?”
“표현이 그렇다는 거지.”
이연은 아니지만, 이전에 음유시인으로 활동할 당시에 그의 악질 팬 중 한 명이 품 안에 몰래 흉기를 품고 접근해 온 적이 있었다.
도중에 이연이 직접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덕분에 아무런 사고 없이 넘어갈 수 있었지만,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아찔함이 밀려온다.
그래서 이연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보여도 속으로는 늘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편이었다.
한순간의 방심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연의 메이크업을 담당하던 여성이 잠시 손길을 멈추고 감탄사를 흘렸다.
“진짜 이런 말, 이연 씨한테 실례될지도 모르겠는데, 너무 예쁘세요. 피부도 좋고. 지금까지 제가 담당했던 연예인 중에 단연 최고예요.”
비아가 기다렸다는 듯이 SSS 촬영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일화를 그녀에게 들려줬다.
“SSS 맡고 계시는 메이크업 분들도 똑같은 말씀 하세요. 그래서 맨날 서로 이연 언니 먼저 맡으려고 경쟁한다니까요.”
“공감되네요. 얼굴도 작으시고. 메이크업을 하는 보람이 있어요.”
쏟아지는 칭찬 앞에서 이연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어색하게 웃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어려웠던(?) 메이크업을 다 받고 난 뒤, 이연과 연습생들은 ‘스타일 나이트’의 고정 출연진에게 먼저 인사를 하기 위해 장소를 옮겼다.
스타일 나이트의 출연진은 한 명의 MC, 그리고 네 명의 고정 패널들로 구성되어 있다.
메인 MC는 배우 겸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는 윤혜선이 맡고 있다.
고정 패널들 중에서는 남성 의류 디자이너인 알렉스와 여성 의류 디자이너 황 로즈, 그리고 추가로 각각 개그맨 출신과 모델 출신의 출연자 둘이 프로그램을 이끄는 중이었다.
오늘의 게스트인 다재다능 팀원들을 가장 먼저 맞이해 준 윤혜선이 저절로 지어지는 행복 가득한 미소를 한 손으로 가리면서 말했다.
“너무 예쁘다! 실물이 훨씬 낫네!”
“감사합니다, 선배님!”
“오늘 녹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야말로요. 다들 귀엽고 예뻐서 오늘 디자이너 쌤들 녹화할 맛 나겠네요.”
알렉스, 황 로즈. 두 사람이 작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이 중에서도 특히 황 로즈의 웃음소리가 유독 컸다.
“안 그래도 오늘 SSS 참가자들 온다는 말 듣고서 어제저녁부터 잠이 안 오더라고요. 참고로 디자이너는 모델이 예쁘면 옷을 고르는 것도 굉장히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이 말. 이연은 본능적으로는 정말 공감하고 싶지 않지만, 이성적으로는 맞는 말임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무대 기획자로 공연에 참가했을 때, 의상팀과 함께 배우들의 의상을 골라주면서 느꼈던 감정이 황 로즈가 말했던 것과 매우 흡사했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연이 남자였더라면 이 말을 정말 기쁘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자다 보니 기쁨보다는 불길한 감정이 더 크게 다가왔다.
‘오늘 녹화는 빨리 좀 끝났으면 좋겠는데.’
과연 이연의 이 바람이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
그건 두고 봐야 할 일이다.
* * *
예능 프로그램 ‘스타일 나이트’의 경우에는 크게 세 코너로 나뉘어 진행된다.
첫 번째 코너는 의상 토크. 바지면 바지. 블라우스면 블라우스. 패딩이면 패딩. 어느 한 의류 품목을 정해서 여기에 관한 유익한 정보나 자신이 겪은 일화 같은 걸 토크 식으로 풀어낸다.
두 번째 파트는 디자이너가 게스트들의 옷을 직접 코디해 주는 파트로, 이연이 가장 두려워하는 부문이기도 하다.
마지막 세 번째 파트는 시청자들로부터 사연을 받아 MC인 윤혜선을 제외한 출연자들이 의상을 대신 세팅해 추천해 주는 코너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출연진들이 각자 배정받은 자리에 앉았다.
팀 다재다능 멤버들은 고정 출연진과 다르게 MC가 게스트를 소개할 때 무대로 모습을 드러내기로 했다.
“슛 들어가겠습니다!”
카운트다운과 함께 카메라가 위에서 아래를 비추면서 윤혜선 쪽으로 앵글이 넘어갔다.
윤혜선은 큐시트를 들고서 능숙하게 카메라 쪽으로 시선을 처리했다.
“패션 리더가 되고 싶은 여러분들의 탁월한 선택, 스타일 나이트! 패션 피플 여러분들,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스타일 나이트의 진행을 맡은 윤혜선입니다. 반갑습니다!”
여리여리한 외형과 달리 파워풀한 어조로 힘차게 프로그램의 막을 올리는 윤혜선.
고정 패널들의 소개로 차례를 넘겼던 그녀가 마침내 게스트들을 소개했다.
“오늘은 말 그대로 ‘스페셜’한 게스트분들을 모셔봤습니다. 장안의 화제죠? 스페셜 스타 스테이지의 다재다능 팀원들을 소개하겠습니다! 나와주세요!”
무대 뒤에서 대기 중이었던 이연과 연습생들이 차례로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윤혜선이 네 명의 화사한 아이돌 지망생들에게 단체 소개부터 먼저 부탁했다.
이연이 먼저 팀원들에게 신호를 줬다.
“둘, 셋.”
“안녕하세요! 팀 다재다능입니다!”
이어서 개별 자기소개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선두는 늘 그랬듯 이연이 맡았다.
“팀장을 맡고 있는 권이연입니다. 반갑습니다.”
“맏언니인 양우미입니다.”
“막내 이비아입니다!”
“언니도, 막내도 아닌 중간 라인인 앨리샤입니다.”
어쩌다 보니 포지션이 아닌 나이를 중점으로 언급하면서 자기소개를 하게 되었다.
짧은 자기소개를 마치고 사전에 안내받았던 자리로 돌아가 앉는 다재다능 팀원들.
윤혜선이 비아에게 먼저 물었다.
“비아 씨는 패션에 관심이 많으신 편인가요?”
“네! SSS 녹화 현장에서는 지정된 유니폼이 있어서 제 패션력을 뽐내지 못해 아쉬웠는데. 오늘 그 한을 풀 기회가 생겨서 너무 기뻐요!”
긴장했던 것과 달리, 비아는 애교 넘치는 목소리로 자연스럽게 멘트를 이어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SSS 출연을 통해서 나름 방송감을 익힌 덕분이었다.
멤버들에게도 동일한 질문이 날아들었다.
“이연 씨도 옷 잘 입으시죠? 아무거나 입으셔도 그 자체만으로도 패션쇼가 펼쳐질 거 같은데.”
남자 옷은 잘 입는다. 그러나 여자 옷은 모르다시피 했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아니요. 저, 패션 고자인데요.’라고 말할 순 없지 않은가.
“잘…… 입는 편이죠. 치마 종류도 좋아하고요. 네.”
오랜만에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거짓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