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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42화 (42/299)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42화

제12화. 너의 그림자가 되고 싶어(3)

연습도 실전처럼 해야 효과가 더 큰 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실제 배역을 두고 연기를 펼쳐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 덕분에 이은솔에게 리허설을 부탁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되었다.

예정에 없던 제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은솔은 흔쾌히 허락했다.

“마침 타이밍도 좋네. 제작진도 다 철수했으니까. 우리끼리 부담 없이 연습할 수 있겠어.”

이연도 그 점을 노리고 일부러 이 시간대에 이은솔에게 리허설 부탁을 한 거였다.

연습 과정이 방송에 나와도 딱히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카메라 앞에서 하는 것보다 없는 곳에서 하는 게 더 자유롭게 연습할 수 있으니까. 그게 좋은 것이다.

이연은 주혜연이 얼마 전에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상기시켰다.

자신이 아직 이 배역을 받아들일 마음가짐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했었다.

그리고 이연 본인도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연은 중대한 결심을 내렸다.

‘그래. 이번만큼은 내려놓자.’

머릿속에 아직도 들고 있는 ‘나는 남자다’라는 생각을 잠시 잊어버리기로 했다.

완벽한 여자가 되어 사랑하는 남자를 먼저 두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세뇌했다.

이 세뇌가 어느 정도 통했을까.

S#3, take 1.

연습이 시작되자마자 이연의 얼굴이 완전히 달라졌다.

여태껏 보지 못했던 그녀의 아련한 표정에 이은솔 또한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연이가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었나.’

너무 멍 때리고 있었던 걸까.

이연이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오면서 이은솔을 불렀다.

“선배님께서 먼저 연기에 몰입해 주셔야 저도 대사를 칠 수 있지 않을까요.”

카메라는 순번상 이은솔을 먼저 비춘다.

그러고 난 다음에 조명에 불이 들어오면서 이연을 비춘다.

이때부터 이연의 대사 타이밍이 시작된다.

“미안. 잠시 딴생각 좀 하느라 집중을 못 했어. 다시 갈까?”

“네.”

한번 흐름이 끊겼음에도 불구하고 이연은 아까 이은솔을 놀라게 만들었던 그 표정을 다시 지었다.

마치 연기라는 이름의 스위치가 있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On/Off 상태로 바꾸는 이연의 모습이 이은솔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주혜연이 말했던 대로였다.

이연은 연기에도 재능이 상당하다.

선배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연의 이런 잠재력이 이제는 무서울 정도였다.

더 무서운 건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이은솔이 손을 뻗어 이연의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두 사람의 거리는 닿을 듯 말 듯 좁혀지지 않았다.

이연이 대사를 소화할 차례다.

“오빠…… 더 이상 나에게 미련 가지지 말고, 이제는 그만 나 잊고 오빠만의 행복을 찾아줘.”

약간 변형된 대사를 슬픔이라는 감정으로 가득 포장해 읊조리는 이연의 모습은 연기라는 생각을 잠깐 잊게 만들어 버릴 정도로 리얼했다.

“사랑해, 오빠.”

이연이 그렇게나 어려워했던 마지막 대사도 너무 능숙하게 읊었다.

처음에 이은솔은 이연의 입을 통해 이 말을 들었을 때 연기에 몰입되지 못하고 다른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이연의 연기를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들이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도 같이 이 상황극에 집중되는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대사가 끝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원래의 무표정 이연으로 돌아왔다.

“어땠습니까? 선배님.”

“어…… 조, 좋았어. 굉장히. 지난번보다는 말할 필요도 없이 나아진 거 같은데?”

“감사합니다. 역시 상대 배역이 있어야 저도 몰입이 잘되네요. 두 번 정도만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 그래! 언제든지.”

이쯤 되니 이은솔은 궁금해진다.

과연 이연은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 * *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래도 주혜연의 뼈가 있는 조언 덕분에 오늘의 오프닝 연극 녹화 촬영은 단 한 번의 NG도 없이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이연이 다시 본인의 옷으로 갈아입으러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다재다능 팀원들은 무대 위에서 보여줬던 이은솔, 이연의 연기에 대한 이야기로 뜨겁게 불태웠다.

“아까 이연 언니 봤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사랑해……’라고 말할 때, 내가 다 울 뻔했다니까!”

“보는 사람이 다 슬퍼지더라.”

“이연이, 걔는 이렇게 잘하면서 처음에는 왜 그렇게 헤맸대.”

“감 잡는 게 어려웠나 보지. 우리가 평소에 했던 무대랑 이번 무대는 성격이 많이 달랐으니까.”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잘 나왔으니까.

연습생들도, 그리고 오프닝 무대를 촬영한 스태프들과 PD까지. 모두가 다 만족하는 촬영이 되었다.

“그런데 언니들. 이거, 이연 언니 없을 때 하는 말인데…….”

비아가 뭔가 중요한 걸 눈치챘다는 모습을 보이면서 작게 속삭였다.

“이연 언니가 은솔 선배님, 실제로 좋아하는 거 아니야?”

“에이, 설마.”

우미가 그럴 리가 있냐면서 강하게 부정해 보지만, 비아는 생각이 달랐다.

“아니라니까, 언니? 진짜로 좋아하는 마음이 안 담겨 있으면 어떻게 그렇게 애절한 ‘사랑해……’가 완성되겠어! 그거, 분명 개인적인 감정이 담겨 있는 거라니까! 앨리샤 언니도 나하고 똑같이 생각하지? 응?”

앨리샤는 대답 대신 비아와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려는 듯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일은 저와 전혀 무관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한 자세를 펼쳤다.

앨리샤가 갑자기 태도가 달라진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다시 현장으로 돌아온 이연 때문이었다.

“이비아. 방금 뭐라고 했는지 다시 한번 말해봐라.”

“어, 언니!”

비아가 화들짝 놀라며 자신도 모르게 점프했다.

우미도 어찌나 놀랐는지, 가녀린 어깨가 격하게 들썩일 정도였다.

뒤늦게 상황 파악에 돌입한 비아가 필사적으로 손을 휘저으면서 말했다.

“아무 말도 안 했어! 정말로!”

“…….”

한동안 이연의 날카로운 시선이 비아에게 머물렀다.

난 네가 무슨 말을 했는지 다 알고 있다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런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 없을 때나 재밋거리로 해. 괜히 이상한 소문 돌아서 어떤 기자가 그거 가지고 기사화시키면 선배님한테 민폐니까.”

“미안, 언니.”

“알면 됐어.”

아이돌에게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 기사는 바로 스캔들이다.

괜히 계약서 조항에 ‘연애 금지’라는 키워드를 넣는 게 아니다.

무사히 오프닝 촬영도 끝냈으니까.

“가서 연습이나 하자.”

그동안 이연을 애먹였던 커다란 산을 마침내 넘었으니.

이제 제대로 실력 발휘할 일만 남았다.

* * *

음악 방송 프로그램 녹화일까지 이제 하루도 남지 않았다.

늦은 시간이 될 때까지 연습생들은 이은솔과 함께 연습실에 남아 계속해서 안무 연습에 돌입했다.

평소에는 몇 시까지 안무 연습을 하면 되는지. 따로 시간은 정하지 않았었다.

본인들이 만족할 때까지.

하지만 오늘은 부득이하게 시간을 정해놓아야만 했다.

바로 내일이 음방 미션인데. 늦은 새벽 시간대까지 연습에 매진했다가 괜히 아침에 못 일어나면 큰일이지 않은가.

이은솔이 먼저 나서서 연습생들을 불러 모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더 늦기 전에 집에 돌아가도록 하고. 내일은 새벽부터 움직여야 하는 거 알지?”

“네, 선배님!”

“시간 약속 꼭 엄수하고. 내일은 SSS가 아니라 다른 프로그램에서 일하는 스태프들도 있으니까 그분들한테 너희들 이미지 좋게 남겨야지. 나중에 너희 데뷔하면 그분들하고 자주 보게 될 텐데.”

데뷔라는 말에 팀원들의 머릿속이 순간 복잡해졌다.

물론 아직 데뷔가 정해진 건 아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업계는 좁으니까. 언젠가 다른 곳에서 그들과 마주치는 날이 오게 될 수도 있다.

중요한 무대인 만큼 일찍 와서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기에 이은솔의 지시대로 오늘은 이만 연습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

팀원들과 함께 연습실을 나서기 전에, 우미가 잠깐 발걸음을 돌렸다.

비아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그래, 언니?”

“아니…… 이곳하고도 이제 마지막이구나 싶어서.”

처음에는 낯설게만 느껴졌던 안무 연습실.

하지만 이은솔과 같이 연습하는 지난날 동안, 자신들도 알게 모르게 이곳에 정이 들어버렸다.

이제 이곳을 나서면.

어쩌면 영영 돌아올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권이연이 그런 우미에게 가벼운 어조로 물었다.

“나중에 이은솔 선배님 회사하고 계약 맺으면 되잖아?”

“내, 내가 어떻게…….”

“농담이야.”

앨리샤가 이연의 말을 듣고 휘둥그레졌다.

“나, 이연이 농담하는 거 처음 들어봐.”

“재미는 없지만.”

비아의 톡 쏘는 한마디에 이연의 눈빛이 일순간 날카롭게 빛났다.

그렇다고 딱히 비아의 탓을 하진 못했다.

사실이었으니까 말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이은솔과 하드하게 연습한 덕분에 팀원들의 실력은 금세 늘게 되었다.

이연은 이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고 생각했다.

‘만약에 우리 넷이 나란히 데뷔하게 된다면, 이곳에서의 경험 덕분이겠지.’

이 노력을 헛되이 만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연이 먼저 몸을 돌려 내일로 향하는 걸음을 내디뎠다.

팀원들 역시 조용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

점점 멀어지는 다재다능 팀원들을 보면서 이은솔은 말없이 그녀들을 지켜보는 것으로 조용한 배웅을 마쳤다.

‘내일, 잘할 수 있겠지.’

왜냐하면 그녀들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노력했으니까.

* * *

음방 미션 당일부터 22명의 SSS 연습생들은 정신없이 움직여야만 했다.

원래 음악 방송은 녹화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힘든 것으로 알려져 있는 대표 프로그램이다.

다수의 가수들이 무대에 서야 하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의상과 메이크업, 헤어, 그리고 무대 세팅까지. 일일이 다 바꿔가면서 준비를 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이른 새벽부터 준비를 해도 녹화만 거의 하루 종일이 걸린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막내 가수팀의 경우에는 선배들에게 먼저 일일이 인사를 해야 하는 등 심리적인 압박감도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오늘은 예외였다.

이은솔이 나서서 다재다능 팀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인사하러 가면 나도 하러 가야 되는데. 그러면 괜히 족보가 꼬이니까 그냥 가만히 있어도 돼. 민주린 선배님도 그렇고. 다들 그러기로 합의 봤어.”

이미 선배 가수들끼리 자체적으로 이렇게 하자고 말을 맞춰놨기에 여기저기 다니면서 인사하러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음방 미션에 집중해야 하는 연습생들에게 굳이 이런 인사 문화까지 강요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민주린 선배님이 계셔서 다행이야.”

연습생들은 이은솔의 말에 관심을 드러냈다.

“선배님이 왜요?”

“연습생들에게 오늘 무대에만 집중하게끔 만들어주자고 말 꺼내신 분이 민주린 선배님이시거든. 인사시키는 것도 하지 말자고 먼저 말하신 분도 선배님이셔.”

“아하…….”

이연이 연습생들을 대표해서 말했다.

“좋으신 분이네요. 민주린 선배님.”

“그렇지?”

심사 위원으로서의 민주린은 그저 무섭고 엄격한 대선배로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어느새 굳어져 버린 이런 고정관념에 조금씩 기분 좋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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