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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39화 (39/299)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39화

제11화. 호랑이 선배님(2)

연극이라는 말에 연습생들은 귀를 의심했다.

“연…… 극?”

“갑자기?”

이연이 왜 연극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는지.

노래 가사에 힌트가 있었다.

“선배님의 곡은 예전에 사랑했던 여자 친구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에 그것을 그리움으로 표현하는 콘셉트로 되어 있지 않습니까. 연인을 떠나보내는 그 애절함을 연극으로 표현해 보면 더 극적이지 않을까 싶어서 말해봤습니다.”

음유시인이 무대 위에서 단순히 노래하고 춤만 소화하는 건 아니었다.

때로는 연기도 해야 했다.

펜을 잡았다 내려놨다를 반복하면서 생각에 잠긴 이은솔이 먼저 이연의 아이디어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난 괜찮은 거 같은데. 실제로 다른 가수들도 특별 스테이지를 꾸밀 때 앞에 연극 요소를 집어넣는 경우도 있고. 이미 과거에도 몇 번 나온 거니까, 이런 연출이 대중들한테 낯설게 느껴지진 않을 거야.”

너무 이질적이다 싶으면 이은솔은 아무리 이연의 아이디어라 할지라도 과감하게 쳐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연의 아이디어가 나름 괜찮았다.

아니, 오히려 베스트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때?”

팀원들도 이연의 아이디어에 찬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단지.

걱정되는 게 하나 있었다.

“저희가 연기해야 하는 거죠?”

“연기는 한번도 안 해봤는데…….”

이때, 이연이 그녀들의 말에 반박했다.

“‘한번도 안 해봤다’는 거짓말이지. 이미 여러 번 연기해 봤잖아.”

“엥? 우리가 언제?”

“안무에 맞춰서 표정 연기하고 그랬던 거, 기억 안 나?”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노래는 신나는 표정으로.

반대로 애절한 발라드를 부를 때에는 슬픔에 가득 찬 표정으로 노래를 불러야 한다.

그래야 그 노래의 감정선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수들에게 있어서 표정 연기는 굉장히 중요시되고 있다.

특히나 요즘처럼 아이돌 그룹의 솔로 직캠 영상이 기본적인 요소가 되어 있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연습생들 입장에선 이연의 말이 약간 억지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따지고 보면 아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걸 알기에 이연의 주장을 특별히 부정하진 않았다.

이은솔이 아이디어를 낸 이연에게 좀 더 상세한 내용을 물었다.

“생각해 둔 장면 같은 건 있을까?”

“내일 안으로 생각해 오겠습니다.”

“오케이, 알았어. 그러면 이건 내가 숙제로 내줄게. 세세하게 검사할 테니까 잘해 오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선배님.”

이렇게 말하니 이은솔은 왠지 이연과 선생님, 제자 사이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도 이은솔이 이연과 연습생들에게 무대에 대해 알려주고 있는 입장이니까.

아예 틀린 비유는 아닐지도 몰랐다.

* * *

추가 안무의 경우에도 역시나 이연의 아이디어가 많이 채용되었다.

이전에서 보여줬던 팀 다재다능의 안무 역시 이연의 머릿속에서 나온 시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이은솔은 이번에도 이연이 주도적으로 아이디어 회의를 이끌어갈 거라고 예상했었다.

대신에 여기에 이은솔이 약간만 잡아주기만 하면 되는 거였기에 생각보다 훨씬 편하게 회의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

이미 지하철도 끊겼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연습생들이 스마트폰 어플로 미리 택시 예약을 잡으려고 할 때.

이은솔이 그럴 필요 없다면서 연습생들을 만류했다.

“나하고 매니저 형이 바래다주기로 했으니까 택시 부르지 마.”

“네? 하지만…….”

“괜찮아. 늦은 시간에 끝난 것도 다 내 욕심 때문에 그런 거니까. 바래다주는 것도 내가 책임져야지.”

집이 어느 곳에 위치했는지, 각각 방향에 따라 차를 2대로 나눠 타기로 했다.

우미와 앨리샤가 매니저 차에.

이연과 비아가 이은솔의 차에 타기로 했다.

“이거 타면 돼.”

차량의 엠블럼만 봐도 고가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잘나가는 연예인이니까. 이런 차를 타고 다닌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가장 먼저 내리게 될 비아가 뒷좌석에 탔다.

이은솔의 옆에는 이연이 자리를 잡았다.

안전벨트를 매는 동안, 이은솔이 두 연습생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어느 사실 하나를 알려줬다.

“내 차에 카메라 설치 안 되어 있으니까, 말하고 싶은 거 있으면 편하게 해도 돼.”

스튜디오에서 녹화하는 날이 아니면, 대부분은 관찰 예능 형식으로 촬영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연습생들은 어느샌가 장소를 떠나서 입조심, 행동 조심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

혹여나 이은솔의 차에도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바로 직전, 그가 먼저 아니라고 말을 해준 덕분에 안심할 수 있었다.

이은솔의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비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선배님은 매일 이 시간까지 연습하시는 거예요?”

“매일은 아니고. 오늘처럼 연습이 더 필요하다 싶을 때에는 늦게까지 회사에 있곤 하지.”

내일 아침부터 라디오 녹음 일정이 잡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은솔은 연습생들과 함께하는 무대의 완성도를 위해서 스스로 이런 희생을 자처했다.

한편으로는 연습생들에게 너무 하드한 연습을 강요한 거 같아서 미안하기도 했다.

“아까도 회의 시간에 말했었지만, 미안해. 내가 만족할 만큼의 수준까지 연습이 안 되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하고 반복하는 스타일이거든. 나 자신한테도 그렇고.”

차를 운전하는 동안 이은솔은 벡스가 무명 시절이었을 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유명해질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실력이라고 생각했거든. 최선을 다해서 무대를 만들면, 언젠가 사람들이 우리의 진심을 알아줄 거라고 믿었어. 그리고 이 믿음이 결국 정답이었음이 증명된 거지.”

그래서 이은솔은 무대 준비만큼은 확실하게 하고 싶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다.

연습생들을 위해서다.

신호 대기를 위해 잠시 멈춘 차량.

권이연이 무거운 입을 마침내 열었다.

“저는 선배님의 그런 점,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조, 좋아한다고?”

이은솔이 크게 놀랐다.

반면, 비아는 다른 의미에서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울 언니가 좋아한다는 표현도 쓸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몰랐어.”

“그럼 뭐라고 해줄까.”

적합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비아가 장난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음…… 사랑?”

“내가 옆에 안 탄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라. 만약에 그랬다면, 너한테 꿀밤을 수십 번 먹여줬을 테니까.”

두 사람이 농담을 나누는 동안, 이은솔은 당황해서 파란불로 신호가 바뀐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뒤에서 빵빵! 하고 경적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뒤늦게 차를 출발시켰다.

물론 이연이 말했던 ‘좋아합니다’라는 말에는 이성적인 감정이 포함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이은솔도 잘 안다.

아는데도 불구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 *

이은솔이 집 근처까지 바래다준 덕분에 편하게 집까지 올 수 있게 된 이연.

집에 들어오자마자 권민준이 누나에게 물었다.

“누가 바래다준 거 같던데.”

“그걸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긴. 차 소리가 바로 근처까지 났으니까 알지. 누나가 차를 끌고 다닐 일은 없을 테고.”

애초에 이연은 자차가 없어서 불가능한 일이었다.

권민준이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물었다.

“남자 친구?”

오늘 참교육을 시켜줘야 할 사람이 한 명 더 늘었다.

이연은 남동생의 정강이를 발로 힘 있게 걷어차 버렸다.

빠각! 소리와 함께 권민준의 비명이 한동안 집 안에 가득 울려 퍼졌다.

“아니면 아닌 거지, 왜 때리고 X랄이야!!!”

“농담이라도 나한테 남자 친구 생겼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마라.”

아직 자신이 여자라는 것도 온전히 다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이 상황에서 남자 친구를 사귄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물론 아이돌을 꿈꾸는 입장이었기에 이후에도 연애는 지양해야 한다.

실제로 계약서에도 그렇게 쓰여 있었다.

방으로 돌아온 이연은 곧장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에 오늘 이은솔이 내준 숙제를 떠올렸다.

영감을 얻기 위해서 ‘너의 그림자가 되고 싶어’를 계속해서 반복하고 반복해 들었다.

가사 중에 이런 게 있었다.

-네가 사라진 후에도

나는 여전히 네 그림자로 남고 싶어.

평생 너를 떠나지 않을 거야.

기억해 줘, 내 사랑.

Forever.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는 미련은 후회와 아픔으로 남아 남자를 계속해서 옭아맨다.

이 후회와 아픔을 1분이라는 짧은 연극을 통해 풀어내야 한다.

펜대를 굴리던 이연은 빠른 속도로 콘티를 작성해 나가기 시작했다.

‘음유시인 때에는 이런 일을 많이 맡곤 했었지.’

루웰은 뛰어난 음유시인이면서 동시에 무대 기획자로도 활동했었다.

그가 기획한 모든 무대는 항상 관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가 직접 무대로 올라서는 경우에는 더더욱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이연은 금세 짤막한 이야기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주인공 역할은 당연히 이은솔이 맡을 테고.

주인공의 연인 역할을 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

자신을 포함해서 네 명의 연습생 중에 누가 이 역할에 잘 어울릴까.

생각에 잠긴 이연의 표정은 영 밝지 않았다.

한 인물이 떠오르긴 하지만.

이연은 그 인물이 맡지 않아줬으면 하는 바람도 동시에 들었다.

‘내일 가서 이야기는 한번 해보는 게 낫겠지.’

이연의 원래 스타일과는 맞지 않지만, 오늘의 고민은 내일의 나에게 넘기기로 했다.

* * *

오자마자 콘티를 확인한 이은솔은 솔직히 말해서 놀랐다.

“퀄리티 좋은데? 무대 연출 표현도 세세하게 다 되어 있고.”

“감사합니다, 선배님.”

이연은 평소와 다름없는 무표정으로 답했다.

연습생들도 이연이 가져온 콘티에 연신 감탄사를 흘렸다.

다재다능이란 팀명은 이연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했다.

이 말답게, 이연은 이쪽 분야에도 상당한 솜씨를 자랑했다.

문제가 있다면.

“헤어진 연인 역할은 누가 맡는 건데?”

앨리샤가 이 문제점을 아주 정확하게 지적했다.

남자 주인공 역할에 이은솔의 이름 세 글자가 버젓이 적혀 있는 반면.

여자 주인공 역할은 공란이었다.

두 주인공들을 제외한 나머지 역할들은 거의 비중이 없었다.

잠깐 얼굴만 비치는 정도.

그렇기에 여자 주인공은 신중하게 뽑아야 했다.

이연이 먼저 누군가의 이름을 거론했다.

“우미 언니가 맡으면 되지 않을까.”

“내가?”

“어. 비아는 이미지에 안 어울리고. 앨리샤는 이런 진지한 장면은 잘 소화 못 하니까. 우미 언니가 딱이라고 생각하는데.”

일단 이은솔은 연습생들의 의견을 다 듣기 전까지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다시 한번 콘티를 뚫어져라 살피는 우미.

만약에 우미가 이 역할을 맡는다면, 조금이라도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우미는 알고 있었다.

“이연아. 방금 그거, 거짓말이지?”

“…….”

정확한 지적이었다.

말을 잇지 못하는 이연을 보면서 우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이거, 누가 봐도 너한테 어울리는 역할이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

오늘따라 우미의 말이 이연의 가슴을 마구 후벼 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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