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31화
제9화. 치어리딩 미션(6)
현 시즌 1위, 2위 팀이 맞붙는 경기라서 그럴까.
야구장에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몰려들었다.
대기실에서 바깥 상황에 대해 전해 들은 비아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수차례 쓸어내리면서 불안 증세를 드러냈다.
“왜 하필이면 오늘처럼 사람 많은 날에 치어리딩 미션을…….”
제작진이 혹여나 들을까 봐. 차마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그러나 이연은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사람이 100명은 채워져야 평가를 받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SSS 프로그램 홍보를 생각해서라도 일부러 사람 많은 날로 잡아야 했을 것이다.
SSS가 장안의 화제 예능 프로그램 순위에 오르긴 했지만, 이제 충분히 유명해졌으니까 홍보까지 그만하자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스태프가 연습생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놓고서 어떻게 진행될지, 구체적인 무대 정보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무대는 팀 숫자에 맞게 총 다섯 번 오를 거예요. 경기 시작 전이 가장 첫 번째 순서고, 그다음부터 2회말, 4회말, 6회말, 8회말 끝날 때마다 번갈아서 올라갈 거니까 그렇게 알고 계시고, 순서는 랜덤으로 뽑을게요.”
무대 순서는 굉장히 중요하다.
평소의 이연이라면 어차피 랜덤이니까. 그러려니 하면서 적당히 뽑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이연은 스태프의 설명을 듣기 전, 리허설 겸 연습생들과 함께 자신들이 설 무대를 체크했었다.
리허설이 끝난 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들이 빠르게 무대 앞 객석을 차지했다.
평소에도 치어리더들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일부러 그런 자리를 고르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이연이 확인한 자들의 모습은 치어리더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무대를 비추고 있는 카메라를 통해서도 이연은 계속해서 객석 쪽을 예의 주시했다.
야구 경기나 치어리더들의 무대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수상쩍은 사람들이 최소 20명 정도 보였다.
그들을 보자마자 이연은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진절혜 짓이군.’
이번 치어리딩 미션에는 한 가지 맹점이 있다.
이거, 인맥만 동원한다면 충분히 조작이 가능한 미션이다.
치어리딩 미션 내용에 대해서 미리 숙지하고 있다가 스태프들이 당일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을 알려주면, 그때 그들에게 어디로 모이라고 빠르게 연락을 취한다.
관객인 척 잠복한 그들이 스태프들에게 평가지를 받고, 자신에게 연락을 취한 연습생이 속한 팀에게 5점을 몰아주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꼴찌는 무조건 벗어날 수 있다.
진절혜의 경우에는 집안이 잘사는 데다가 이석호 등 나름의 인맥도 가지고 있다.
20명 정도 되는 인력을 대동하는 건 일도 아닐 터.
‘20명이 무대에 관계없이 전부 다 5점 평가지를 제출한다면, 100점은 무조건 먹고 시작하겠군.’
그러나 이 작전의 무서운 점은 따로 있다.
한 팀에게 점수를 몰아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한다면, 다른 팀들에게 1점 평가지를 대량으로 줄 수도 있다는 뜻이지.’
이연은 이걸 가장 견제하고 있었다.
그래서 웬만하면 진절혜 팀의 순서와 최대한 멀리 떨어지고 싶었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야구 경기에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20명씩이나 계속 똑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스태프들이 당연히 이상하게 볼 것이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사람들이 진절혜 팀에게만 고평가를 내리고 바로 빠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만약에 진절혜 팀 다음으로 권이연 팀의 순서가 짜여진다면.
‘그러면 진절혜가 아마 저들에게 그렇게 말하겠지.’
이다음 팀 점수 테러까지 하고 철수하라고.
마침 스태프가 순서를 적어둔 추첨볼이 담긴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뽑기에 들어가기 전에, 이연은 잠깐의 빈틈을 이용해서 박스 안에 담긴 추첨볼을 살폈다.
1번. 그리고 5번. 두 가지 추첨볼에 슬쩍 마나를 묻혀뒀다.
그런 뒤, 모른 척하면서 제자리로 돌아갔다.
스태프가 다시 연습생들을 불렀다.
“지금부터 팀별로 팀장들이 나와서 추첨볼을 하나씩 뽑겠습니다. 먼저…… 진절혜 연습생부터 시작할까요?”
“네.”
진절혜는 성큼성큼 박스 앞으로 향했다.
그녀가 박스 안에 손을 넣는 순간.
권이연의 동공 색이 짙은 푸른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마치 투시경처럼 박스 내부가 훤히 보이기 시작한 그녀는 방금, 마나 덩어리를 묻혀뒀던 추첨볼들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진절혜의 손에 일부러 1번이 적힌 추첨볼을 들려줬다.
‘꺼내라, 어서!’
권이연의 바람이 통한 걸까.
손에 들어온 추첨볼을 한참 동안 만지작거리던 진절혜는 고개를 한 차례 갸우뚱하더니, 마침내 그것을 꺼내 들었다.
“진절혜 연습생은 1번 뽑으셨네요.”
1번. 그녀는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표정 변화 없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다음은…….”
스태프가 이다음 팀을 부르려고 할 때.
번쩍!
권이연이 팔을 들어 올렸다.
“저희가 뽑겠습니다.”
“네? 뭐…… 그러세요.”
특별히 순서가 정해져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괜찮겠거니 생각한 스태프는 이연에게 다음 기회를 넘기기로 했다.
어차피 랜덤이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권이연이 마법으로 순서를 조작하고 있다는 건 아무도 몰랐다.
권이연이 바라는 숫자는 5번.
마치 자석처럼 끌려온 5번 추첨볼을 꺼내 스태프에게 직접 보여줬다.
“권이연 연습생, 5번입니다.”
진절혜 팀과 최대한 멀리 떨어지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만큼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만족하는 이연과 달리, 팀원들은 애매한 반응이었다.
“5번. 좋은 거겠지?”
솔직하게 말하자면.
“마냥 좋다고는 볼 수 없겠지.”
권이연 본인도 알고 있었다.
이번 치어리딩 미션은 1라운드에서 진행되었던 팀 미션에 비해서 상당히 큰 변수가 존재한다.
바로 야구 경기가 어떤 흐름이냐에 따라 무대의 호응도가 달라진다는 거였다.
SSS 연습생들은 오늘 맞붙게 된 TH 타이거즈와 QW 라이온즈 중에서 TH 타이거즈를 응원할 예정이다.
팀 다재다능이 무대를 가질 8회말 정도가 되면 스코어가 박빙이 아닌 이상, 어느 정도 승패가 보일 것이다.
TH 타이거즈가 경기 흐름을 유리하게 끌고 가야 응원하는 맛도 있는 법.
‘야구팀이 잘해주기까지 바라고 있어야 되는 건가.’
신경 쓸 게 너무나도 많아서일까. 권이연은 치어리딩 미션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 * *
경기가 시작되기 전.
진절혜 팀이 치어리딩 무대에 올랐다.
대기실에서 첫 번째 무대를 가지게 된 진절혜 팀을 모니터를 통해 지켜보면서 이연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녀들이 준비한 무대가 펼쳐지자, 사람들은 크게 환호하기 시작했다.
심사 위원들도 진절혜 팀의 무대에 어느 정도 만족하는 반응을 보였다.
‘실력이 있으면서 왜 자꾸 편법을 쓰려고 하는지 모르겠군.’
불안해서 그런 걸까.
그래도 이연은 진절혜가 사용한 인맥 동원이라는 편법에 딱히 태클을 걸 생각이 없었다.
치어리딩 미션 중에서 아는 사람들을 야구장으로 데려오면 안 된다는 조항은 없었으니까.
어찌 보면 진절혜는 치어리딩 미션의 맹점을 잘 이용한 셈이기도 했다.
물론 다른 연습생들을 생각한다면, 도의적으로 그러면 안 됐지만 말이다.
그래도 타 팀의 점수까지 깎아내릴 생각은 없는지, 진절혜 팀의 무대가 끝나자마자 그녀가 대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도 같이 자리를 떴다.
스태프들이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건네줬던 평가지를 회수했다.
과연 저 박스에 몇 점이나 들어가 있을지.
아직 권이연도 알 수가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아까처럼 투시 마법으로 대충 점수를 환산해 볼 수 있긴 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겠지.’
타인의 무대에 신경 쓰는 것보다 자기의 무대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좋다.
마침 스태프가 팀 다재다능 멤버들을 찾았다.
“의상 나왔으니까 슬슬 갈아입으세요.”
권이연이 가장 걱정하는 의상 타임(?)이 찾아왔다.
그나마 바지라서 다행이긴 한데.
문제는 길이가 너무 짧다는 거였다.
TH 타이거즈를 상징하는 검은색 핫팬츠와 빨간색 탱크톱 상의.
여름이라 그런지 노출도가 제법 있는 옷이었다.
우미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연한테 먼저 이렇게 말했다.
“치마 아니니까 이건 입을 수 있지?”
“…….”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비아도 처음에는 부담스러워했던 센터 포지션을 노력으로 극복해서 서게 되었는데.
이연이라고 의상 때문에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옷을 입어본 권이연은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확인하면서 질색을 했다.
“이렇게 배를 훤히 까고 다니다니…… 문란하기 짝이 없는 의상이군.”
“그래? 나는 예쁘고 괜찮은 거 같은데.”
우미는 의상이 마음에 드는 모양인지, 몇 번이고 옷차림을 살폈다.
비아도, 앨리샤도. 팀원들 모두가 다 마음에 들어 했다.
오직 이연만이 불만 가득이었다.
* * *
TH 타이거즈가 이기기를 바랐던 권이연과 다재다능 팀.
하지만 그녀들과의 바람과는 다르게, 경기는 상당히 박빙이었다.
8회초까지 1 대 1 상황.
치어리더들이 음악에 맞춰서 응원가를 불렀다.
“김동연 안타, 날려 버려라! 김동연 안타, 날려 버려라!”
각 팀의 팬들도 목소리를 높이면서 필사적인 응원전을 벌였다.
8회말.
2아웃 주자 만루. 위기 상황에 몰리게 된 TH 타이거즈의 투수가 체인지업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투수가 던진 공이 정확히 스트라이크존에 안착하면서 상대 팀의 4번 타자를 쓰리 아웃시켰다.
무사히 방어에 성공한 TH 타이거즈. 덕분에 팬들의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다.
지금 이 분위기.
‘나쁘지 않아.’
권이연은 나름 마음에 들었다.
이제 이 분위기를 살리기만 하면 된다.
응원단장이 다시 한번 마이크를 들어 올리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SSS의 마지막 팀 무대! 다재다능 팀원분들을 모셔보도록 하겠습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1라운드 때 보여준 게 많아서일까.
아니면 TH 타이거즈가 기적적으로 방어에 성공해서 그런 걸까.
관중은 앞서 무대에 올랐던 연습생 팀들보다 훨씬 더 뜨거운 열기로 이들을 맞이했다.
팀 다재다능이 무대에 오르기 전에 이미 스태프들이 무작위로 100명에게 평가지를 나눠준 상태였다.
권이연이 대표로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둘, 셋.”
“안녕하세요. 팀 다재다능입니다!”
권이연의 신호에 맞춰서 팀원들이 나란히 관객들에게 인사했다.
그녀들에게 쏟아지는 관심들.
관중들은 이미 스마트폰을 들고서 다재다능 팀의 무대를 영상으로 남기기 위한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였다.
떨고 있는 다른 팀원들과 달리, 이연은 침착하게 멘트를 이어나갔다.
“저희가 여러분들을 위해서 열심히 무대를 준비했으니까, 재미있게 봐주시고 같이 호응해 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부탁드릴게요!”
“네에-!”
권이연의 상큼발랄한 요구에 관중들은 더 큰 목소리로 답했다.
무대 아래와 무대 위에서의 표정이 완전히 다른 그녀.
팀원들은 휙휙 달라지는 이연의 이런 모습에 아직도 적응하기가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