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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30화 (30/299)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30화

제9화. 치어리딩 미션(5)

팀원들한테는 오늘 하루 종일 놀 거라고 말은 했지만.

그렇다고 권이연의 성격상, 4일 뒤에 있을 치어리딩 미션을 아예 생각 안 하고 이런 일정을 짰을 리가 없다.

그녀에겐 다 계획이 있었다.

잠시 걸음을 멈춘 권이연이 제작진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돌발적인 행동으로 인해 촬영은 잠시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앞서 걸어가던 앨리샤와 비아는 혼자서 남게 된 우미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연 언니, 왜 저래?”

“몰라. 갑자기 공연을 하겠다고 그러던데…….”

“공연을? 여기서?”

어리둥절해하는 연습생들.

그사이, 이연은 제작진과 함께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에 길거리 공연을 위한 작은 공간을 확보했다.

제작진이 카메라와 조명, 그리고 음향 장비를 최대한 세팅하는 동안, 이연은 소품팀이 준비해 준 통기타를 건네받았다.

의자에 앉아 기타를 만지는 이연의 모습에 사람들의 발길이 절로 멈췄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예능 중 가장 높은 화제성을 기록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바로 스페셜 스타 스테이지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권이연이 누군지 단번에 알아봤다.

제작진에게 준비 다 끝났다는 신호를 보낸 이연은 지체 없이 기타 줄을 튕기기 시작했다.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현재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3위를 달리고 있는 유명 여성 솔로 가수의 곡인 ‘Maze’.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기 위해서 이연은 일부러 대중들에게 익숙한 노래를 선곡했다.

그녀의 예상대로,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연의 주변을 에워쌌다.

몰려드는 사람들.

이쯤 하면 되겠지 싶을 때.

이연이 마침내 노래했다.

-언젠가 너와 만날 수 있을까.

그날이 오면.

그 시간이 오면.

다시 한번 좋아한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

가사와 선율에 이연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곁들어지자, 어느새 이연의 팀원들도 관객들과 같은 자세와 마음으로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루웰은 권이연이라는 여성의 몸에 들어오게 된 뒤, 편리함보다 불편함을 더 많이 느꼈다.

그러나 장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남자였을 때 자신이 표현하기 힘들었던 음역대를 여자의 목소리로는 쉽게 소화할 수 있었다. 그래서 루웰은 지금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걸 굉장히 좋아했다.

게다가 이연의 목소리는 루웰이 들어도 정말 좋은 톤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가 들어도 반할 것 같은 목소리.

그래서인지 노래를 부르는 당사자조차도 신이 났다.

고음 파트가 꽤 많이 섞여 있는 곡인데도 불구하고 이연은 앉은 채로, 그것도 통기타를 직접 연주하면서 무난하게 음을 높여갔다.

노래방에서 많은 여성들의 성대를 박살 냈던 악명 높은 곡이, 지금은 사람들의 마음을 잔잔하게 만들어주는 자장가가 되어 있었다.

노래가 끝나자.

짝짝짝! 소리와 함께 무수한 박수 갈채와 환호성이 쏟아졌다.

한쪽에서는 ‘앙코르! 앙코르!’를 외치고 있었다.

또 보고 싶은 이연의 무대.

그녀는 기타를 옆에 내려놓고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노래를 듣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팀원들에게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우미와 비아, 앨리샤가 각자 손가락으로 본인들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우리?”

“오라고? 그쪽으로?”

이연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서윤철 PD가 맞은편에서 이연의 말대로 하라고 손짓하는 바람에 팀원들은 마지못해 사람들 앞에 서게 되었다.

그녀들의 등장에 사람들은 재차 환호했다.

이연이 사람들을 향해 먼저 목소리를 높였다.

“안녕하세요! 팀 다재다능입니다!”

그녀들을 모르는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1차 팀 미션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이면서 우승한 팀이었으니까.

“저희가 모처럼 여기까지 나왔는데, 그냥 들어가면 섭섭하겠죠?”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는 이연.

그녀의 예상대로, 관객들은 크게 환호하면서 계속 무대를 보여줄 것을 요청했다.

“셋 중에 아무나 먼저 노래 불러봐.”

“엑, 진짜로?”

비아가 기겁했다.

우미와 앨리샤도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어찌하면 좋을지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다.

결국 이연이 좀 더 등을 떠밀어주기로 했다.

“앨리샤. 네가 먼저 해.”

“내, 내가?”

“이 중에서 그나마 네가 제일 무덤덤해 보이니까.”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이야기일 뿐.

긴장하고 당황하는 건 변함없었다.

그래도 이연의 눈에는 우미나 비아보다는 앨리샤가 스타트를 끊기에 적합한 인물로 보였다.

어정쩡한 걸음을 선보이면서 한 발 앞으로 나온 앨리샤가 이연이 있는 쪽으로 돌아보면서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진짜로 아무 노래나 다 돼?”

“어. 말만 해.”

이 세계로 환생한 뒤로 이연은 웬만한 노래는 다 들어봤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럼…… ‘Street’이라는 노래도 알아?”

“2017년에 영국에서 발매한 MTT의 세 번째 앨범 타이틀곡.”

“맞아, 그거.”

이연의 머릿속 데이터에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유명 노래들도 다 저장되어 있었다.

확인이 끝나자마자 이연의 기타 연주가 다시 시작되었다.

아까보다 훨씬 빠른 템포로 이어지는 반주에 앨리샤는 자신도 모르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다들 나름 오랫동안 가수라는 꿈을 향해 달려온 연습생들이어서 그런지 기본적인 노래 실력은 다 갖추고 있었다.

가사는 모르지만, 사람들은 익숙한 멜로디에 귀를 기울이면서 박자에 맞춰 손뼉을 쳐줬다.

다음 차례인 우미, 비아도 관객들과 일심동체가 되어 앨리샤를 응원했다.

이연에 비해서 잘 부른다고 하기에는 약간 아쉬운 면이 보이긴 했지만, 팝송이라는 요소가 가산점으로 작용해서 그런지 관객들의 호응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앨리샤의 차례가 끝나자, 이연은 우미를 지목했다.

“나도 해야 돼?”

“어차피 한 명씩 다 부를 거야. 반주는 뭐로 넣어줄까?”

이미 관객들은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눈치였다.

나는 못 부르겠다고 하면서 뒤로 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애초에 연습생이 무대를 두려워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긴장감을 물리치기 위해 여러 차례 심호흡을 이어간 우미가 결심을 굳힌 표정으로 앨리샤와 바통 터치를 했다.

“밀크티 선배님들 노래 연주해 줘.”

“‘라스트 찬스’?”

“응, 그거.”

1라운드 팀 미션 때 연습했던 곡이었기에 이연은 거리낌 없이 바로 연주에 돌입했다.

여럿이서 부르는 노래였기에 우미가 소화하지 못하는 구간은 이연이 피처링 형태로 도움을 줬다.

두 사람의 하모니가 관객들의 귀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이연을 시작으로 앨리샤, 우미까지.

성공적인 버스킹을 이어가는 팀 다재다능의 마지막 주자는 이비아가 맡게 되었다.

“이런 건 이연 언니가 해야 하는데…….”

부담감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연은 비아의 말을 강하게 부정했다.

“누가 반드시 마지막 순서를 장식해야 한다는 보장은 없어. 특히 무대에서는 더 그래.”

마지막 무대에 서게 되었으면, 누가 되었든 최선을 다해 대미를 장식하면 된다.

이 순간을 위해서 이연은 일부러 오늘의 일정을 계획했다.

가수로서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무대에 서는 것이다.

비록 1라운드 팀 미션에 비하면 장소도 마땅치 않고 인원수도 굉장히 적지만.

그래도 이곳 역시 엄연한 무대다.

게다가 이비아는 단 한 번도 솔로로서 무대에 서본 적이 없었다.

오늘의 경험이 그녀에게 매우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이연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비아의 선곡은 가수의 꿈을 심어줬던 계기가 된 대선배, 에스엘의 ‘꿈을 찾아서’.

이연의 네 번째 연주가 시작되었다.

도입부에선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던 비아지만, 팀원들과 관객들의 응원을 받고서 점점 자신감을 회복했다.

“보이지 않아도 걱정하진 마~ 꿈은 아직도 너를 기다리고 있어~”

한강을 배경으로 울려 퍼지는 비아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이연은 입꼬리를 슬며시 위로 올렸다.

그러면서 동시에 확신했다.

역시 이번 치어리딩 미션의 센터는 비아가 제격이라는 사실을.

* * *

치어리딩 팀 미션 당일.

야구장으로 속속들이 모인 심사 위원들은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어떤 팀이 먼저 무대에 오를지, 객석에 앉아 순서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나현아 트레이너가 ‘어머’ 소리를 내며 말했다.

“다재다능 팀이 마지막이네요.”

순서에 대해서 이석호 트레이너가 알고 있는 걸 말했다.

“무대 순서는 랜덤으로 돌렸나 봅니다. 이연이가 대표로 나왔는데, 가장 처음에 가장 마지막 순서를 뽑았다고 하더라고요.”

“이상하게 다재다능 팀은 후순위에 주로 많이 배치되는 거 같아요.”

“그러게 말입니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심사 위원들 입장에선 알 수가 없었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게 아무래도 전국에 있는 시청자들의 투표로 생존자가 가려지고 그러다 보니 제작진이 미처 예상 못 하는 일들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곤 한다.

뿐만 아니라 팀 미션의 순위도 그렇다.

사전에 어떤 팀이 1위를 할지. 대충 예상은 할 수 있을지언정 정확하게 확신은 할 수 없었다.

“이번에도 다재다능 팀이 이길까요?”

나현아 트레이너의 말에 이은솔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글쎄요. 이번에는 좀 힘들지도 모르겠네요.”

“어머, 은솔 씨가 별일이네요? 다재다능 팀 응원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마음속으로 응원은 하고 있지만, 중간 점검을 보고 오니까 이번에는 쉽지 않을 거 같더라고요.”

“무슨 일 있었어요?”

“여러 가지 일이 있었죠. 일단 가장 큰 거는…….”

이은솔이 말을 잇기 전에 민주린이 먼저 선수를 쳤다.

“센터가 권이연 연습생이 아니에요.”

“네?”

나현아 트레이너가 귀를 의심했다.

여태껏 권이연은 늘 센터에 서서 팀을 견인하는 역할을 맡았다.

오프닝부터 그녀가 사람들의 시선을 확 사로잡아 주고 시작하는 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데.

그 이점을 스스로 포기했으니, 나현아 입장에선 이해가 안 될 만도 했다.

“은솔 씨가 센터 바꾸라고 하셨다면서요?”

“네. 그런데 그냥 그대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알겠다고 하긴 했는데, 정말로 안 바꾸고 나올 줄은 몰랐어요.”

이은솔은 권이연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했었다.

자기들끼리 연습을 해보다가 도저히 각이 안 나올 거 같다 싶으면 그냥 이은솔이 조언한 대로 권이연이 센터로 가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권이연은 이은솔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고집이 센 여자였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나현아 트레이너와 달리, 민주린은 오히려 권이연의 결정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한번 방향을 정했으면,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게 좋죠. 어중간하게 바꾸면 오히려 처음 선택지보다도 더 안 좋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이때,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던 오채일 대표가 말을 보탰다.

“나도 주린이 생각에 한 표. 때로는 고집을 부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거든. 그리고 너무 이연이만 센터를 맡으면, 결국 나중에 가서는 무엇을 해도 식상해질 거야. 이미지 체인지라는 걸 주기적으로 해줄 필요가 있는 거지.”

단지 신경 쓰이는 점이 있다면.

그 이미지 체인지 타이밍이 너무 빠른 게 아닐까 하는 것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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