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21화
제7화. 영웅이 된 아이돌(1)
치열했던 첫 번째 팀 미션의 결과.
마침내 1위와 2위의 정체가 공개되었다.
[1. 다재다능]
[2. The best]
결국 권이연 팀이 진절혜 팀을 누르고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표 차이도 공개되었다.
현장 투표는 103표 차이.
심사 위원 투표는 단 한 명만을 제외하곤 전부 다재다능에게 가장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
이 중에서 눈에 확 띄는 게 하나 있었다.
민주린이 다재다능에게 준 점수였다.
“민주린 선배님께서 팀 다재다능에게 무려 만점을 주셨네요!”
만점이라는 말에 연습생들은 부러움과 당혹감을 동시에 드러냈다.
연습생들 사이에서 민주린은 호랑이 심사 위원으로 불릴 만큼 굉장히 무서운 존재였다.
평가도 상대적으로 다른 심사 위원들에 비해 박한 편이었다.
그런 민주린이 연습생들을 상대로 만점이라는 점수를 준 건 당연하게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만약 이곳에 심사 위원들이 같이 자리하고 있었더라면, 이은솔은 분명 민주린에게 만점을 준 이유에 대해 물었을 것이다.
사실 잘했으니까. 그래서 만점을 준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특별한 이유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 좀처럼 놀라지 않는 권이연조차도 민주린의 만점 부여에 잠시 눈을 의심했었다.
‘그 여자가 별일이군.’
첫 만남부터 영 느낌이 좋지 않았었는데.
그래도 무대를 평가할 때에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는 거 같아서 민주린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심사 위원이 신경 쓰이긴 하는데.’
권이연의 시선이 오채일, 나현아, 민주린을 거쳐 남은 심사 위원의 이름으로 향했다.
이석호 트레이너.
진절혜가 속한 팀 The best에게 만점을 준 심사 위원이기도 했다.
‘내 착각인가. 이 프로그램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진절혜한테만 유독 점수를 후하게 주는 기분인데.’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일단은 좀 더 지켜보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어차피 오늘 1등은 다재다능이 차지했으니까 말이다.
* * *
1차 팀 미션이 끝나고.
그동안 권이연은 오랜만에 휴가 아닌 휴가를 즐기게 되었다.
휴가라고 해봤자 어디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딱히 할 만한 일도 떠오르지 않았기에 이연은 회사라도 나갈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비아에게 먼저 전화가 걸려오기 전까진 그랬다.
-언니, 오늘 한가하지?
“아니, 할 일 있어.”
목소리를 듣자마자 왠지 모를 불안감이 밀려와서 일부러 일이 있는 척했다.
그러나 비아도 만만치 않았다.
-거짓말. 할 일이라고 해봤자 ‘회사 가서 연습할 거야’라고 말하려고 했잖아. 그렇지?
잠시 못 본 사이에 독심술이라도 익힌 걸까.
권이연의 속내를 아주 정확하게 꿰뚫었다.
-어차피 실장님이 다음 주까지 쉬라고 했잖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또 쉬겠어? 그러니까 우리, 놀러 가자. 어때?
가기 싫은 기분이 마구 샘솟았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아직 권이연은 이 세계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
이론상으로만 알지, 직접 보고 느끼고 체험해 본 것들이 거의 없다.
‘차라리 더 유명해지기 전에 일찌감치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도 괜찮을지도.’
비아나 다른 일행이 있다면, 이연이 몰라서 헤맬 걱정도 덜할 테고.
나쁘지 않은 일이다.
“어디 갈 건데.”
-벨라랜드. 우미 언니하고 이야기하다가 오랜만에 가자는 말이 나와서. 어때?
서울에 위치한 대규모 놀이공원의 이름이다.
놀이공원에 가자는 말이 오늘따라 권이연에겐 너무나도 달콤하게 들렸다.
머리로는 어떤 곳인지 알고 있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미지의 장소.
“그래, 가자.”
-아싸! 역시 언니, 우미 언니하고 앨리샤 언니도 온다고 했으니까 조금 있다가 봐. 사랑해!
“다 큰 처자가 아무 사람한테 사랑한다는 표현을 남발하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통화가 먼저 끊어졌다.
이연은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면서 닿을 리 없는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그래도 일단 약속은 했으니까.
씻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선 권이연은 갑자기 싸한 느낌을 받았다.
‘뭐지?’
권이연은 촉이 굉장히 좋은 편이다.
그래서일까.
비아한테서 전화를 받고 나서부터 이상하리만치 불안한 감각이 아까부터 그녀를 감쌌다.
‘내가 요즘 방송 출연한 것 때문에 예민해진 건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소파를 벗어난 이연.
늦기 전에 후딱 집을 나서기로 했다.
* * *
모자와 안경, 그리고 마스크까지. 얼굴을 가릴 수 있는 건 전부 다 동원한 이연은 놀이공원 입구에 서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우미와 비아를 발견했다.
“일찍 왔군.”
우미와 비아는 권이연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 그녀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이연 언니. 얼굴을 왜 그렇게 꽁꽁 싸매고 왔어?”
“사람들이 하도 알아보니까.”
아직 그녀는 자차가 없다.
그래서 이동할 때에는 택시나 버스, 지하철을 이용해야 한다.
택시를 타기에는 거리가 좀 있고.
그래서 그녀는 지하철을 타고 오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아까 이연이 언급한 것처럼 지하철을 타면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이런 행동을 취하게 되었다.
하지만 비아와 우미는 사정이 달랐다.
비아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나하고 우미 언니는 이렇게 얼굴 다 드러내고 있어도 알아보는 사람 없던데. 심지어 우리도 언니처럼 지하철 타고 왔는데도 그렇더라.”
이연과 비교하면 아직 두 사람은 인지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방송에서는 진절혜와 권이연, 두 사람을 라이벌 구도로 잡으면서 투톱으로 밀어주고 있으니까.
푸쉬하는 강도가 다르다 보니 같은 팀이라 할지라도 인지도 차이가 나는 건 당연했다.
우미가 이런 비아의 작은 등을 쓰다듬어 주면서 위로했다.
“아직 방송 초반이니까. 그리고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처음에는 1, 2화에 자기 분량 10초도 못 챙기던 연습생이 나중에 가선 탑 2위까지 올라간 적도 있으니까.”
“진짜로? 그런 경우가 있어?”
“응. 3년 전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예 전례가 없는 건 아니었다.
자칭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 마니아인 우미가 이렇게 말을 해주니 신뢰가 생겼다.
이연도 우미의 말에 동의했다.
“사람 일이라는 건 어떻게 될지 몰라.”
권이연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잘나가던 음유시인에서 갑자기 환생이라는 과정을 거쳐 성별이 바뀐 채 걸 그룹 지망생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이것만 봐도 인생이라는 게 얼마나 기구한 건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앨리샤는.”
약속 시간이 이미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앨리샤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마침 저 멀리서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는 한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권이연처럼 아니었지만, 그녀도 모자와 안경을 착용하고 왔다.
“미안. 버스 타고 오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하도 말을 걸어서…… 집에서 안경하고 모자 챙겨 오느라 늦었어.”
비아의 어깨가 다시 축 처졌다.
이연과 우미가 기껏 열심히 달랬건만.
“무용지물이네.”
“응? 뭐가?”
사건의 전말을 전혀 알지 못하는 앨리샤였기에 그저 눈만 끔뻑일 뿐이었다.
* * *
놀이공원이 들어서자마자 권이연의 눈동자는 바쁘게 굴러갔다.
‘이게 말로만 듣던…….’
머릿속으로만 아는 것과,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여태껏 보지 못했던 독특한 구조물들의 향연에 이연은 시선을 빼앗겼다.
느려지는 걸음.
앞서 걷던 비아가 이연의 손을 덥석 잡았다.
“언니. 뭐 해? 빨리 가서 줄 서야지.”
“줄? 무슨 줄 말하는 건데.”
“저기, 저거. 여기 왔으면 롤러코스터부터 먼저 타야지.”
놀이공원의 정석이라 할 수 있었다.
비아의 재촉에 팀원들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롤러코스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 몇몇이 그녀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저 사람들.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지 않아?”
“예쁘네. 연예인인가?”
“가만. 저 사람, 권이연이잖아!”
아무리 얼굴을 가렸다 할지라도, 가까이에 있으면 사람들이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그녀를 알아보고 몰리기 시작했다.
“언니! 사진 한 번만 같이 찍어주시면 안 될까요?”
“저, 여기에 사인 좀 부탁드려요!”
“응원하고 있어요! 꼭 데뷔하세요!”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지자, 결국 놀이공원 측 직원들이 나서야 했다.
계속 줄을 서 있기도 그렇고.
결국 롤러코스터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앨리샤가 팔짱을 끼고서 말했다.
“이게 인기인의 삶이라는 거구나.”
방송에 출연하기 전까지는 한번도 누려보지 못했던 기분이었기에 지금의 상황이 굉장히 색다르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좋았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기에 줄을 서기도 좀 애매했다.
그렇다 보니, 대기 줄이 길지 않고 바로 기구를 탈 수 있는 곳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와. 회전목마 재미있다. 와아.”
비아가 기계적인 감흥을 흘렸다.
누가 봐도 재미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어렵게 여기까지 왔는데. 억지로라도 흥을 끌어올리도록 노력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뿔 달린 유니콘에서 내려온 비아가 자신의 허벅지 안쪽을 주먹으로 팍팍 두들겼다.
“아구구, 사타구니 아파.”
이런 동생의 행동에 우미가 크게 당황했다.
“어머머, 얘는!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런 민망한 자세를 하고 있어.”
아까도 그랬듯이, 이들은 어딜 가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행동에도 유의해야 했다.
연예인답게.
그리고 아이돌 연습생답게 웬만하면 대중들 앞에선 예쁘고 밝은 모습만 보여주는 게 좋았다.
그녀들의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나중에 시청자 투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건 나중의 일이고.
비아는 지금 당장 즐기는 것에 집중하고 싶었다.
마침 그녀의 눈에 어느 한 놀이기구가 들어왔다.
“언니들! 저거 타자, 저거!”
비아가 가리킨 건 디스코팡팡이라 불리는 놀이기구였다.
마침 줄이 거의 없는 상태였기에, 가면 바로 대기 없이 바로 탑승할 수 있었다.
비아의 이끌림에 강제로 디스코팡팡 위에 들어서는 팀원들.
기계를 조종하는 직원이 신이 난 듯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 아주 귀한 분들이 오셨네요! SSS의 다재다능 팀 여러분들, 환영합니다!”
하지만 말과 달리, 기계의 움직임은 굉장히 격했다.
이것이 바로 벨라랜드 디스코팡팡의 전통이다.
어떻게든 의자에 매달린 팀원들을 떨어뜨리고자 직원은 더더욱 거칠게 기계를 돌리고, 움직이고, 흔들고를 반복했다.
이미 팀원들은 의자에서 떨어진 채 강제로 디스코팡팡 한가운데로 질질 미끄러지고 있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단 한 명.
권이연만이 너무나도 평온한 자세로 앉아 있을 뿐이었다.
기기를 조작하는 직원의 눈이 변했다.
벨라랜드에서 디스코팡팡 스태프로 일한 지 어언 7년.
그가 떨어뜨리지 못하는 손님은 여태껏 단 한 명도 없었다.
“다시 한번 신나게 가봅시다!”
더 격렬하게 널뛰기를 하는 디스코팡팡.
오늘, 그는 권이연을 떨어뜨리는 데에 사활을 걸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