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7화
제6화. 팀플레이(4)
권민준은 설마설마했었다.
학생들이 ‘권이연이다!’라고 할 때에도 아니겠지 하면서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누나, 미쳤어? 학교엔 왜 온 거야!”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자신도 모르게 화를 내고 말았다.
남동생이 화를 내거나 말거나. 권이연은 애초에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다.
“뭐 어때서. 내가 니 학교 찾아온다고 세계가 멸망하기라도 하냐.”
“그건 아니지만…… 아, 아무튼! 누나가 아이돌 지망생이라는 거 숨기고 싶다고 나한테 먼저 말했잖아! 그런 주제에 지가 먼저 이렇게 대놓고 다 밝히면 어쩌자고!”
“내가 그랬다면, 이제부터 취소하도록 하지.”
“뭐……?”
“여기 선생들한테는 너한테 놓고 온 체육복 주러 왔다고 대충 둘러댔으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라. 그리고.”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촬영까지 내팽개치면서 여기까지 온 이유.
“주형운, 걔는 어느 반이냐?”
“형운이는 갑자기 왜.”
“물어볼 거 있어서.”
“그럼 나는. 나한테 볼일 있어서 온 거 아니었어?”
“집에서 지겹도록 보는 놈한테 무슨 볼일이냐. 할 이야기 있으면 집에서 했겠지.”
“…….”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왜 누나가 자신의 친구를 보러 학교까지 쳐들어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서 권민준은 친구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대신, 조건을 걸었다.
“나도 같이 가.”
“마음대로.”
이연은 상관없다는 투로 답했다.
졸지에 누나의 학교 가이드가 된 권민준은 주형운이 속해 있는 반으로 향했다.
권이연이 가는 길마다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었지만, 정작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필요할 때만 살짝 손을 흔들어주는 정도.
그게 다였다.
그러나 학생들에게는 이런 약소한 팬서비스만으로도 충분했다.
한편.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고 책상에 엎드린 채 세상모르게 잠을 청하고 있던 주형운은 누군가가 자신을 흔들며 깨우는 걸 느꼈다.
“어…… 뭐야…….”
아직도 꿈나라에서 완벽히 돌아오지 못한 모양인지, 눈이 반쯤 감긴 상태로 눈앞에 있는 사람을 올려다봤다.
흐릿했던 시야가 서서히 걷히는 순간.
주형운은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어……? 누, 누나?”
아직도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에 권이연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현실은 꿈보다 더 리얼하고 판타스틱했다.
“잘 잤냐.”
“지, 진짜 누나잖아!”
“그럼 내가 가짜겠나.”
잠에서 깨고 보니 권이연이 바로 앞에 있고, 학생들이 이들을 에워싼 채로 있었다.
아직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주형운이었지만, 이연은 시간이 없었기에 그를 배려해 주지 않았다.
“물어볼 거 있는데.”
“저한테요?”
“어. 밀크티라는 그룹 알지?”
“그야…… 당연히 알죠. 걸 그룹 계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명한 팀이니까요.”
걸 그룹이라면 모든 역사를 줄줄이 꿰차고 있는 주형운답게 바로바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권이연이 이 학교에 온 목적이 바로 이거였다.
“밀크티의 ‘라스트 찬스’에 대해서 아는 거 있으면 다 말해봐.”
“예? 여기서요?”
“어.”
전후 사정을 전혀 몰랐기에 주형운은 ‘왜?’라는 생각을 먼저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어리둥절해하는 주형운을 향해 이연이 갑자기 다른 말을 꺼냈다.
“공짜는 아니고. 만약에 내게 협조해 준다면, 밥이라도 한 끼 사줄게.”
그 순간, 주형운의 머릿속에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밥을 먹는다. 이것은 곧 데이트다. 데이트를 하면 자연스럽게 호감이 생기고 사귀게 된다. 사귀면 결혼에 골인. 애는 아들 하나, 딸 하나 해서 두 명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그렇게 밥 한 끼 같이 먹는다는 말로 이연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상상까지 해본 주형운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서 힘 있는 목소리로 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파이팅이 넘치는 친구를 보고 있자니 권민준의 한숨 빈도는 잦아질 수밖에 없었다.
* * *
예정되어 있던 연습 시간보다 훨씬 딜레이가 된 상황.
이렇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우미가 나서서 팀원들을 데리고 연습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앨리샤! 팔 위치가 너무 높아. 어깨 아래로 내려. 그리고 비아는…… 다리 조금만 더 오므리고. 아니, 그게 아니라…….”
이연이 자리에 없을 때에는 우미가 대신 리더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끔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연이 그동안 팀의 모든 것들의 책임지다시피 해서 그런지, 우미 체제에서는 뭐랄까. 이연 때에 비해서 어수선한 모습이 많이 보였다.
누구보다도 우미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자신들이 연습하는 과정은 방송에 안 나올 가능성이 매우 크다.
통편집의 압박.
그래서인지 우미의 얼굴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굳어져 가고 있었다.
“비아야. 이연이한테 아직 연락 안 왔지?”
“응.”
“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이전에는 이렇게까지 튀는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이 때문에 우미와 비아는 루웰의 영혼이 권이연의 몸으로 들어온 뒤부터 이어지는 기행에 적응할 틈이 없었다.
앨리샤는 이연과 같은 소속사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접점이 없었던 사이였기에 원래부터 그녀가 이런 스타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속 편한 걸로 따지면 차라리 앨리샤가 두 사람보다 나았다.
적어도 지금처럼 스트레스받을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 앨리샤가 ‘어?’ 하는 소리를 내면서 입구 쪽을 가리켰다.
“이연이다!”
“뭐?”
“언니! 왜 이렇게 늦었어!”
팀원들은 마치 구세주라도 맞이한 것처럼 이연에게 우르르 몰려갔다.
이연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하지만 그전에 이연이 먼저 선수를 쳤다.
“안무 연습하던 거, 다 캔슬시키자.”
“……???”
“없던 걸로 하자고?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팀원들은 혼동하기 시작했다.
아니,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영상 분석하면서 안무 따고. 방금도 이연이 오기 전까지 여기서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없던 걸로 하자고 하니, 뭘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제대로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우미가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이연에게 물었다.
“이유가 뭔데? 뭐 때문인지 말이라도 해줘. 그래야 우리가 믿고 따라갈 수 있을 거 아니야.”
“그래야지.”
당연히 말은 해줄 생각이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무작정 하자고 하면 설득력이 없으니까 말이다.
권이연이 들려준 말은 그녀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라스트 찬스는 원래 발라드곡으로 나올 예정이었어.”
* * *
밀크티에서 속해 있던 멤버들이 모두가 다 민주린처럼 아직도 연예계에 남아 활동하는 건 아니었다.
몇몇 멤버는 배우로, 그리고 다른 멤버는 아예 연예계를 떠나 일반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최근에 회사에 취직해서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다는 서브보컬 서호연의 인터뷰 영상이 아카튜브에 올라온 적이 있었다.
거기서 서호연은 이렇게 말했었다.
라스트 찬스란 곡은 대중들에게 발표되기 한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발라드 콘셉트로 갈 예정이었다고.
그런데 도중에 너무 임펙트가 없다는 이유로 갑자기 댄스곡으로 편곡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서호연은 굉장히 큰 아쉬움을 토로했다.
-주린 언니가 ‘라스트 찬스’ 원곡 버전을 굉장히 좋아했었거든요.
-주린 씨가요?
-네. 이거, 자신의 인생곡이 될 거라고 장담까지 했을 정도니까요. 주린 언니가 노래하면서 그렇게 행복했던 표정을 짓던 모습을 저는 여태껏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러면 주린 씨는 댄스곡으로 장르가 바뀐 것에 대해서 굉장히 아쉬워하셨겠네요?
-그렇죠. 그래도 모든 멤버가 주린 언니하고 같은 의견은 아니었거든요. 오히려 댄스곡 콘셉트로 바꾸는 게 더 좋다는 멤버들도 있었고. 따지고 보면 발라드보단 댄스 쪽이 더 의견이 많았어요. 그래서 지금의 라스트 찬스가 나오게 된 거고요.
서호연이 인터뷰하는 영상을 직접 보는 권이연과 팀원들.
이 영상을 보고 나서야 이연은 자신이 어제 하루 종일 느꼈던 영상 속 위화감의 정체를 이제야 알아차리게 되었다.
앨리샤가 감탄을 하면서 이연에게 물었다.
“근데 넌 이걸 어떻게 알아차린 거야? 설마.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아니, 그냥 느낌만 그랬지 확신은 없었어.”
그 ‘느낌만 그랬다’라는 경지도 사실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처음부터 댄스곡으로 작곡되었다고 할 정도로 전혀 어색함이 없었던 라스트 찬스.
그 미세한 모순을 찾아낸 권이연의 감각에 앨리샤는 그녀가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우미나 비아도 같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곡에 대한 속사정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러면 우리 무대는 어떻게 할 건데?”
우미가 당장의 일에 관해 물었다.
이연이 이 영상을 팀원들에게 보여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연은 최대한 간결하게 자신의 뜻을 팀원들에게 알렸다.
“선배님들의 못다 이룬 꿈, 후배가 대신 이뤄줘야 하지 않겠어?”
“발라드로 가자고?”
“어.”
팀원들이 서로를 바라봤다.
긍정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연 언니. 이거, 발라드로 하면 우리 춤을 시청자들에게 어필 못 하잖아.”
노래 실력은 확실히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팀들도 댄스곡을 준비하면서 노래와 춤, 두 개의 어필 요소를 강조하기 위해 맹연습 중인데.
이연 팀만 가만히 서서 노래만 부르다가 무대를 끝내기에는 이 기회가 너무 아깝다.
연습생으로서 최대한 보여줄 수 있는 건 다 보여줘야 한다.
다른 선배 가수들처럼, 이들은 아직 데뷔조차 못 한 연습생 신분이기 때문이다.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 한 번 한 번이 소중하기 때문에 이걸 무조건 살려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연의 제안에 다들 반대를 하는 눈치였다.
물론 권이연도 이 문제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지를 하고 있었다.
“다 방법이 있어.”
오랜만에 이연의 입꼬리가 위로 향했다.
* * *
중간 점검을 하기 위해 오채일 대표가 민주린과 함께 LC 엔터테인먼트를 찾았다.
그녀야 LC 소속이기도 하고. 오 대표가 불러서 같이 연습생들의 무대를 체크하기 위해 왔다 치더라도.
“은솔 씨는 왜 온 거야?”
이은솔도 이들과 같이 서 있는 것에 민주린은 의문을 품었다.
“PD님한테 물어보니까 오고 싶으면 와도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연습생들 무대가 어떨지 미리 보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왔습니다.”
비번까지 자진 반납해서 온 거였다.
제작진 입장에서야 좋긴 할 것이다. 인기 많은 남자 아이돌이 먼저 요청도 안 했는데 알아서 추가로 촬영을 하겠다고 하니, 싫어할 리가 없지 않겠나.
오 대표도 이은솔의 참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체크해 줄 때 봐주는 사람들이 많으면 그만큼 피드백도 다양하고 풍부하게 해줄 수 있으니까 좋지, 뭐. 안 그래?”
오 대표가 이렇게 말을 하는데. 소속 가수인 민주린이 안 된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알았어요. 그러면 같이 가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일하러 왔음에도 이은솔의 발걸음은 매우 가벼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