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527화 (527/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527화

527화. 전설로 남을(16)

아시안 게임의 계절, 9월.

폭풍 같던 7월과 8월이 지나갔다. 지영은 7월에, 8월에 결혼식장을 한 번씩 다녀왔다. 7월엔 이우진이 결혼했고, 8월엔 이성진이 결혼해서였다. 지영의 나이 고작 스물둘. 결혼식장은 역시 어색했다.

그리고 불편했다.

이우진의 조부가 지영을 심히 못마땅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조부는 지영이 회귀했을 당시 유도협회장이었다.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 돈 많은 기업 회장님이 협회장이 되는 경우가. 그 이전에는 숙취해소제로 유명한 회사의 회장이 협회 회장을 맡기도 했었다. 유도와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이가 그런 직을 맡는 이유는 간단했다.

돈.

후원.

그러니 회장으로 초빙하는 거다.

가문의 회장도 비슷한 이유였다. 그러나 하나 더 이유가 있긴 했다. 바로 손자인 이우진이 유도 선수였으니, 도움을 주려고. 실제로 그의 조부는 심판을 매수해 지영에게 매우 안 좋은 판결을 몇 번이나 내리려고 했었다. 하지만 한 번도 그 뜻대로 된 적은 없었다. 그리고 역으로 이선영이 낸 기사에 회장직에서 강제로 내려와야 했다. 그랬으니 지영에게 호감이 있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아직도 못 잊은 것처럼 악감정이 넘쳐 보였다. 그러나 오늘은 하나뿐인 손자의 결혼식이다.

그리고 지영은 이우진에게 초대받은, 동창을 제외한 유일한 사람이고.

그래서 불편한 심기로 지영을 노려보기만 했다.

지영은 그래서 사진까지 찍었다. 이우진은 지영, 그리고 같이 간 양유진과 단독으로 사진을 찍길 원했고, 들어줬다. 그때 앞에서 큼큼거리면서 하도 눈치를 줘서, 오히려 재밌었다. 그렇게 이우진의 결혼식이 끝나고 다시 4주 뒤 이성진이 결혼했다. 정소영이 배가 불러오기 전에 드레스를 입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그때도 조금 나오긴 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정소영이 워낙에 마른 체형이라 오히려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신부를 욕하진 않았다.

지인만 초대했다고는 하지만, 하객이 적지는 않았다. 일단 우정혁을 비롯한 더 런닝 멤버들과 두 예능의 담당 PD, 작가진들이 전원 참석했다. 거기에 대표팀 선수들과 인싸 이성진이 평소 알던 친구, 선수, 연예인들도 대거 참석했다. 결혼식의 사회는 진짜 우정혁이 봐줬다. 주례는 연희 재단의 이사장님이 봐주셨다.

이성진의 결혼식은 친구들에겐 정말 뜻깊은 이벤트였다.

뭔가 뭉클했다.

솔직히 지영은 정말 그날, 울 뻔했다. 회귀 전, 추락했던 황금세대 중에 유일하게 살아남지 못한 친구가 이성진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단숨에 다시 잿빛 세계의 주민으로 돌아갈 정도로, 지영에겐 끔찍한 기억이었다. 그랬던 친구가, 결혼한다. 그게 지영에게는 정말 뜻깊은 순간이었다. 둘이 나란히 걸어 나갈 때, 그때 정말로 울 뻔했다.

그렇게 결혼식이 끝나고, 다 같이 밥을 먹을 땐 솔직히 밥이 아니라, 미팅 자리 같았다.

자리가 자리인지라 연예인들도 대거 모였다. 솔직히 방송을 위해서라면 영혼도 판다는 PD와 작가들이 이 기회를 놓칠 거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나올 수는 없었다. 과함은 부족하니만 못하니, 하더라도 적당히 해야 했다. 그게 딱 기획안을 건네주고, 그에 대한 설명까지였다. 지영은 거기까진 이해했다. 그리고 다행히 눈치들이 있어서 그 이상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이성진의 결혼식도 끝났다.

신혼여행은 아시안 게임 뒤로 일정이 잡혔다. 그래서 이성진은 토요일에 식을 올리고, 일요일 저녁에 복귀했다. 신혼여행은 아시안 게임 때문에 나중에 따로 가기로 정한 것 같았다.

그렇게 두 친구의 결혼식이 끝나고, 9월.

아시안 게임이 코앞으로 다가왔기에 지영은 전력으로 훈련에 매진했다. 첫 주, 둘째 주가 지나자, 훈련 양은 급감했다. 컨디션 조절에 들어간 것이다. 이미 이때쯤은 아시안 게임 열기로 후끈했다. 방송은 연일 축구와 야구 같은 종목의 성적을 예측했고, 이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경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서서히 끓어오르는 열기.

9월 둘째 주.

지영은 나고야로 넘어갔다. 현지 적응을 위해서였다.

선수단을 위한 공용 숙소는 있다.

하지만 한국팀은 당연히 공용 숙소에 들어가지 않았다. 대회 한참 전부터 나고야의 객실이 가장 많은 호텔 하나를 선수단 숙소로 잡았다. 선수는 800명이 좀 넘고, 코칭 스태프를 포함한 임원은 200명이 좀 넘게 간다. 1,100명에 가까운 대인원이다. 그래서 당연히 호텔 하나에 다 투숙이 힘들다. 대회장이 먼 종목도 있지만, 나고야시에서 열리는 종목은 모두 이 호텔을 숙소로 이용했다.

유도도 그중 한 팀이었다.

원래 유도만 무도관에서 한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지역 반발 때문에 그건 없던 일이 됐다. 강지영의 팬은 많다. 세계에서 몰려올 건데, 그 전부가 내수 활성에 도움이 된다. 일본은 이제 관광의 나라가 아니게 됐다. 코로나 이전, 이후 한국과의 문제로 한국에서 가는 관광객이 뚝 끊겼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위치 특성상, 한국과 중국의 관광객 수가 절대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일련의 외교 사건과 강지영과의 트러블이 연타로 터지면서 관광객의 수가 뚝 떨어졌다. 일본은 많은 도시가 관광으로 먹고산다. 나고야 쪽이나 아이치 현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그 두 곳이 아니더라도, 아시안 게임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딱 경기만 보진 않을 거다. 경기도 보고, 일본이란 나라도 구경하고.

그런데 예약을 보면 상당수가 외국인이다. 특히 유도 종목은 그게 두드러졌다. 아마 대부분이 강지영의 팬이고, 이들은 분명 유도도 보고, 주변 관광도 즐길 거다. 두 지역은 그런 강지영의 팬을 뺏기기 싫어 격렬히 반대했고, 결국 협회는 한발 물러났다.

이런 해프닝까지 있고 나서야, 유도 종합 체육관에서 열리기로 결정됐다. 2년간의 리모델링 결과, 수용 인력이 무려 2만 명으로 늘어난 체육관에서 유도 경기가 벌어진다. 경기장에 도착한 지영은 당연히 가장 먼저 체중부터 쟀다. 이게 제일 중요했다. 한국에서 만들어온 체중과 현지 체중계와 차이가 나면, 선수는 정말 미치고 환장한다. 당연히 예상했던 감량 시나리오를 수정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컨디션 저하로 이어진다.

감량할 때의 운동선수는 정말이지 어마어마하게 예민해진다.

선수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천하의 황석도 별거 아닌 일에 인상을 찌푸린다. 이때는 장난기 심한 한은정도 절대 황석을 건드리지 않는다. 진짜, 절대로 말이다. 그러니 컨디션이 무너지는 거다.

그리고 이 체중계 가지고 장난치는 인간들이…… 꼭 있다.

“아, 씨…….”

발까지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

600그램 오버다.

1, 200도 아니고 무려 600이다.

숙소 체중계에서 쟀을 땐, 분명 73.50이었다. 여기서 유지하다가 계체 전에 쭉 뽑으려고 했었다. 여태까지 지영은 그렇게 감량을 해왔다. 그런데, 지금 74가 넘었다. 숙소에서 재고, 지금 재는 중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물도 마시지 않았는데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거다. 혹시 몰라 내려왔다가 다시 체중계에 올라갔다. 변하지 않았다. 지영의 짜증에 이성진이 한숨을 내쉬더니, 자기가 올라가 봤다.

역시, 이성진도 66.40에 맞춰 왔는데 67이다.

끝내 대표팀에 뽑힌 양효걸도 역시 오버다. 전 체급 전부 오버다.

“음…….”

체중에 크게 문제가 없는 플백의 장대호만 난감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평체가 120이 넘는 그는 100 이하로만 떨어지지 않으면 문제가 없으니, 이 문제에서 자유로웠다. 그런 장대호를 빼고 체중을 잰 선수 전부가 한숨에서 어떻게든 짜증을 실어 내보냈다. 하지만 얼굴이 찌푸려지는 건 막지 못했다.

“아, 이렇게 또 장난을 치네. 하.”

임효중의 말에 강한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밖으로 나가 전기정 감독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뭐? 600그램?”

“네, 한 명도 아니고 전원 똑같이 나왔어요.”

“아, 이 미친 것들이 진짜…….”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는 사람은 여기 없었다. 일본 협회의 수작질이다. 체중계에 장난질을 쳐놓고, 자국 선수들은 거기에 맞춰 체중을 더 빼게 준비해 놓으라고 시킨 것이다. 이렇게 하면 감량 계획이 꼬이고, 그대로 컨디션 하락이 시작되니까. 고작 600그램으로 뭘 예민하게 구냐고 하겠지만, 고작 600그램이 절대로 아니다. 선수들은 이미 감량을 상당히 진행한 상태였다. 적게는 5에서 6㎏. 많게는 10㎏ 가까이 뽑은 선수도 있었다. 지영이야 훈련 때는 77에서 80 사이를 유지했다. 절대 그 이상은 넘지 않게 조절했기에 많이 빼진 않았지만, 애초에 지영의 피지컬에서 저 체중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다른 선수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에 왜 이렇게 체중을 유지하냐면, 이게 평체기 때문이다.

베스트 컨디션은 이런 평체에서 나온다. 감량이 시작되면, 모든 것이 떨어진다.

근력부터 시작해서, 그 끝에 체력까지, 전부 떨어진다. 그리고 그것만 떨어지는 게 아니었다. 감량이 상당 부분 진행되면 육체의 회복 속도도 떨어지고, 면역력도 같이 떨어진다. 이때는 감기에 걸릴 확률이 극단적으로 올라간다.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하나도 조심해야 하는 게 이 시기다.

이걸 버텨내면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감량해 온 건데, 600그램이나 오버 된다?

이건 진짜…….

“아, 진짜 X발…….”

욕을 안 할 수가 없는 거다.

화끈한 욕설에 뭔가 봤더니, 여자 계체장에서 나온 선수 중 가장 고참 선수가 거침없이 욕을 터뜨리고 있었다. 기가 막혔다. 지영이 있는 남자 체급만이 아니라, 여자 선수들이 올라갈 체중계에도 장난질을 친 게 분명했다. 누구도 그런 여자 선배의 욕을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지영도 끓는 화를 참느라, 안간힘을 쓰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다들 모여봐라.”

전기정 감독의 말에 선수들이 쭉 와서 모였다.

“협회 차원에서 강력하게 항의할 거야. 그런데 아마 소용없을 거다. 그리고 바꿔준다고 해도 절대로 안심할 수 없어. 알겠다고 한 다음 체중계 뺐다가, 본계체 당일에 다시 체중계 바꾸면 대참사 터지는 거야. 알지?”

“네!”

“그러니까 그냥 빼. 빌어먹더라도…… 빼. 그리고 우리 이 정도는 예상하고 왔잖아. 이번에 우리 막기 위해서 일본이 무슨 짓이든 다 할 거라는 거, 알고들 있었잖냐. 맞지?”

“네!”

“더럽고 치사해도 빼자. 빼서 계체 통과하고, 아주 일본 이 쓰레기 같은 것들…… 족쳐 놓자.”

전기정 감독이 험한 말까지 써 가며, 선수단을 독려했다.

그의 눈을 보면, 그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잘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전기정 감독보다 선수들이 현재 더 빡친 상태였다.

감량은…….

“빌어먹을 새끼들이, 감히 신성불가침의 영역을 건드려? 그럼 대가를 치르게 해야지, 안 그래?”

뿌득!

전기정 감독의 말이 맞다.

다른 건 몰라도 감량 체급 선수는 절대로 건드리는 게 아니다. 가족도, 연인도, 절대로. 그런데 이걸 건드리면, 진짜 이 악물고 덤벼들 수밖에 없었다. 쥐가 고양이를 무는 게 아니라, 범이 범을 물어뜯는다고 보면 된다.

배부른 맹수와 배고픈 맹수가 붙으면?

단순한 생각으로 어느 쪽이 강할까? 답은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빤했다. 일본 협회는 지금 선수단을 배고픈 맹수로 만들어버렸다.

“감독님.”

“어, 한결아.”

“이거 다른 협회 통해서 유도 선수 보내는 나라 전체에 공문으로 보내시죠?”

“어?”

“우리처럼 현지 적응 없이 늦게 오는 팀 있지 않습니까. 그런 선수들 피해 보면 안 되잖아요. 감량 끝나가는 선수한테 600그램을 하루 이틀 안에 빼라는 건, 그건 진짜 죽으라는 겁니다. 그런 선수들이 피해받아선 안 되잖아요.”

“오, 그렇지. 그럼 안 되지.”

“그리고 우리뿐만이 아니라 그쪽 선수들도 열 받지 않을까요? 일본이랑 붙으면 더 이 악물고 물고 늘어질 것 같은데요?”

“흐흐, 맞다. 니 말이 맞아. 이건 내가 협회에 부탁하마. 역시 너다. 너 나중에 은퇴하면 여기 감독으로 들어와라. 네가 가르치면 아주 볼만할 것 같은데.”

“하하.”

강한결은 전기정 감독의 말에 그냥 웃음으로 답했다. 하고 싶은 게 명확한 친구다. 이 대회가 끝나면, 강한결은 은퇴하고 유도계와는 안녕할 것이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아마 더 챌린지만 기획하면서 후원 활동을 병행할 거다.

“자자, 이제 몸 풀자.”

“네!”

각자 가져온 가방에서 도복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 몸풀기가 시작됐다. 하지만 선수단 절반 이상이 복잡한 얼굴이었다. 문제의 감량 때문이었고, 지영의 얼굴도 다르지 않았다.

전기정 감독의 말에 힘차게 대답은 했지만.

짜증이…… 격한 짜증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