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517화
517화. 전설로 남을(6)
패자 준결승은 매우 빠르게 끝났다.
경기 진행 시간이 더디게 가다 보니, 패자전 시작할 때쯤엔 오후 다섯 시를 넘고 있었고, 그래서 주최 측에선 남자 한 체급의 패자 결승 2게임, 여자 한 체급의 패자 결승 2게임을 한 번에 네 개의 경기장에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패자전이 끝나기까지는 딱 1시간 하고 30분 정도 걸렸다. 아무리 한 번에 전부 진행한다고 해도, 패자 결승도 치열하긴 매한가지라 한 게임이 끝나는 데 10분 이상이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전 체급이 끝나기까지, 1시간이 훌쩍 넘게 걸렸다.
그리고 시작된 결승전.
결승전은 남녀 한 체급씩 들어갔다. 남자 경량급, 여자 중량급. 이렇게 들어갈 줄 알았는데 거꾸로 남자 헤비급에서, 여자 경량급이 들어갔다. 지영의 게임은, 마지막으로 배정되었다. 60, 66이 먼저 들어가고 가장 메인 매치라 할 수 있는 지영의 게임을 마지막에 배정한 것이다. 이러는 이유는 간단했다.
강지영 특수.
혹은.
황금세대 특수라 불리며 현재 한국은 유도의 부흥이 일어나는 중이었다. 예전에는 정말 스케줄 상 여유가 있어야만 중계해 줬던 선발전을 공중파 3사와 메이저급 종편 3사가 전부 중계하는 중이기도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강지영을 포함한 황금세대가 출전해 시청률이 어떻게든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협회는 대미를 강지영으로 장식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 마음을 선수들에게 확인까지 받았다. 사실 그렇게 경기를 비틀면, 선수들은 당연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자신을 무시하는 처사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수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들 모두가 안다.
지금 경기장을 가득 메운 만원 관중이 누구 덕분인지. 중계는커녕, 시합 때 선수 관계자들을 제외하곤 거의 텅텅 비어 있던 체육관을 누가 이렇게 채웠는지. 그것도 2만 명을 넘게 수용하는 체육관이 가득 차게, 누가 만들었는지. 그에 대한 고마움은 분명 있었다.
아시안 게임이나 올림픽 때나 잠깐 반짝하던 스포츠를 지금은 대한민국 최고 인기 종목으로 만든 게, 누구인지. 그 덕분에 사실 지금 그들의 연봉도 상당히 올랐다. 유도의 인기가 올라가다 보니, 황금세대 말고도 덕질을 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외모가 뛰어나고 실력이 좋은 선수를 실업팀에서 영입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봉이 오른 것이다. 많이 오른 선수는 3천 이상 오른 선수도 있었다.
흐름이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궁화 체육단이나 상무에서 유도 T.O.를 늘렸고, 이는 그 자체로 현역 남자 선수들이 수혜를 고스란히 받게 됐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유도 선수들의 방송 출연 빈도도 늘었다. 운동선수들은 그 자체로 섹스 어필이 된다. 특히 남자 선수들은 단단함, 강건함, 강함 등을 자연스럽게 어필할 수 있었고, 여자 선수들도 요즘은 헤어에 신경 쓰고, 워터 프루프 제품을 베이스로 한 메이크업이 기본이었다. 그렇기에 이는 자연스럽게 방송 PD와 작가들의 눈에 들었다. 왜? 운동하는 선수들은 남녀노소 막론하고 그 자체로 빛이 나기 때문이다. 외모를 뛰어넘은, 건강미는 시청자를 화면 앞에 잡아두는 힘이 그들에겐 탐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이전에도 방송가엔 운동선수 출신 방송인들이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이 구기 종목 선수들이었다.
축구, 농구, 야구, 배구.
이 종목의 선수들이 대부분의 T.O.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나마 이 네 종목이 가장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종목이었고, 그래서 국민에게 그 종목의 레전드들이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그걸 깨버린 게 강지영을 포함한 황금세대였다.
물론 이는 한순간 부는 바람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순간 부는 바람은 물론, 억지 바람이라도 끌어와서 카메라 앞에 세우는 게 방송쟁이들이다.
유도 선수로서, 그 미래가 황금세대 덕분에 전체적으로 더 많은 길이 열린 것과 같단 소리였다. 그걸 선수들이라고 모를 리가 없었다. 특히 결승전까지 올라온 선수들은 지금도 방송 제의가 많이 들어오는 편이었다. 운동을 그만두게 되더라도, 이들의 실력이라면 갈 수 있는 곳은 매우 많았다.
특히 코치 자리는 정말로 많았다.
유도가 인기 스포츠가 되면서, 초등부를 비롯해 중등부, 고등부까지 유도부를 창단하는 곳이 정말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지역에 초등학교가 고작 세 개밖에 없는 지역에서도, 세 군데 전부 유도부가 생겼을 정도이고, 아이들 사이에서 강인한 스포츠 유도의 인기가 어떤지 잘 알려주는 좋은 예였다. 이런 공을 그들은 무시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강지영에게 스포트라이트가 가는 걸 거절하는 선수는 다행히 없었다.
물론 불만족하긴 했지만, 협회의 입김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협회도 많이 변했다.
“옛날 같았으면 그냥 통보했을 텐데, 그래도 협회가 많이 변하긴 변했어. 안 그래? 지영아?”
결승전 준비를 끝낸 강한결의 말에 지영은 그러게, 하고 대답했다. 정말 그의 말처럼 이 정도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대한 유도협회는 그래도 좀 각성했다. 내홍을 겪더니, 문제가 있던 관계자들이 축출됐고, 그 자리를 대신한 사람들은 다행히 머리가 깨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작금의 유도 인기를 어떻게 하면 좀 더 오래 유지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선수들의 복지를 챙겨줄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정말, 지극히 정상적이면서 아주 기본적인 것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니, 이것만 해도 진짜 아주 큰 발전이었다.
-지금부터 2027년 국가대표 2차 선발전 결승전을 시작하겠습니다!
경기 진행 이사의 말에, 대기하고 있던 플백 선수와 여자 48체급 선수가 입장했다. 당연히 그 안에는 장대호가 있었다. 황금세대와 비교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재능을 가진 장대호는 지금 세계를 휩쓸고 있었다. 모든 메이저 대회를 석권하는 중이었다.
비록 황금세대보다 인지도에서는 떨어지지만, 세계 유도계에서 장대호는 황금세대와 동급의 괴물로 취급받았다.
그런 장대호는 고작 30초 받아 발목 받치기로 한판을 따냈다. 맞잡고, 툭, 쳐서 중심을 털고 재차 뽑아 올리며 툭! 발목 받치기로 그대로 끝냈다. 상대가 막판에 버틴다고 버텼지만, 그 순간 터진 핸들 치기에 그냥 몸이 날아갔다.
완력에 기술, 그리고 타이밍까지 완벽한 기술이었다.
반면, 여자부 결승전은 오래 이어졌다.
결승전을 이렇게 할 때는 전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보통이라, 남자 마백 선수들은 입장하지 않고 대기했다. 본 게임 4분이 지났을 때도 서로 지도 하나씩이고, 다시 연장전 4분이 지났을 때는 지도 두 개씩이었다.
서로 이제 뒤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밀리면, 패배다.
관중석은 조용했다. 두 선수의 시합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반사적으로 응원도 멈췄고, 그냥 경기를 관전했다. 치열했던 경기는 백색 도복의 대학생 선수가 업어치기를 욱여넣어, 힘으로 밀어 넘기는 거로 끝났다.
아악!
예쁘기보다는 악에, 투지가 가득하니 기합부터 남다르다.
10분이 넘도록 투지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합을 내지르고 심판을 올려다보는 순간, 심판은 그 시선에 맞춰 손을 들어 올렸다.
와자리!
꺄아아아!
그제야 일어나 손을 번쩍 들며 여성처럼 환호하는 선수. 반대로 패자는 매트에 대자로 뻗어서 가쁜 숨을 몰아쉬기만 했다. 승자는 방방 뛰지만, 패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저 모습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광경이지만, 관중들은 뭔가 느끼는 게 있었는지, 그냥 조용히 박수만 보냈다. 이긴 선수도, 진 선수도 잘했다고 보듬어주는 것 같은 박수였다.
열기가 식기 전에 결승전이 이어졌다.
황석 또한 오래 걸리지 않았다. 2분 만에 상대를 허리 후리기로 넘겨 절반을 따고, 조급하게 덤벼든 상대를 다시 받아 던지면서, 3분 만에 시합을 끝냈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여자부 경기도 끝나 있었다.
그렇게 쭉쭉 경기가 이어졌다.
강한결, 임효중은 역시 시합을 오래 끌지 않았다. 이미 황금세대의 체급엔 거의 적수가 없었다. 초기에는 그래도 황금세대를 잡겠다고 버틴 선수들이 많지만, 그랬던 선수들도 실력의 격차를 확인하고 대부분 은퇴한 상태였다.
무주공산.
현재 지영의 체급과 이성진의 체급을 제외하곤, 딱 그 말이 어울리는 상태였다. 81경기가 끝나고 66으로 내려갔다. 이성진과 맞붙는 상대는 신인이었다. 정확히는 대학교 4학년이지만, 처음으로 국내 메이저 대회 결승까지 올라온 선수였다. 대진의 운도 좀 있었다. 강자가 이성진 쪽으로 몰리면서 상대적으로 반대쪽 시드가 좀 여유가 있었고, 그 안에서 살아남은 선수였다.
하지만 역시, 이성진의 상대는 아니었다.
시작과 동시에 안다리 절반. 2분이 지났을 때 특기인 업어치기 한판이 나왔다.
이어서 60 결승전이 이어졌고, 양효걸이 우승을 차지했다.
그렇게 마지막 경기까지 왔다.
지영이 입장하자, 우와! 혹은, 꺄아아! 하는 환호성이 들렸다. 지금까지 잘 참았지만, 메인 이벤트인 강지영의 결승전에서는 참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구혁의 등장까지 환호가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후우.
구혁은 여전히 투지가 넘쳤다.
이미 지영에게 패배한 전적이 상당한데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사실 이 정도 전적 차이가 나면 투지가 꺾일 법도 한데, 그러지 않다는 게 정말 신기했다. 이것만 해도 구혁은 칭찬받아 마땅한 선수였다.
하지메!
경기가 시작됐다.
지영은 어깨를 살짝 늘어뜨린 특유의 자세를 잡았고, 구혁도 자기 본래의 자세로 잡았다. 구혁은 좋은 선수다. 꺾이지 않는 의지는 둘째 치더라도, 재능을 타고난 선수다. 그건 구혁이 세계 대회에서 거두고 있는 성적이 보장한다.
피지컬 또한 타고났다.
딱 73체급에서 이상적인 선수의 피지컬이다. 그런 구혁이지만, 그는 불행한 인간이었다. 그는 시대를 잘못 만났다. 구혁은 한 체급의 에이스가 되기에 충분한 선수다. 하지만 회귀 전엔 이우진이 있었다. 아시안 게임은 한 번 출전한 것 같지만, 그 외의 모든 메이저 대회를 이우진에게 밀려 출전하지 못했다. 지영이 회귀 이후엔? 이우진은 비록 지금 은퇴했지만, 아직 지영이 건재했다. 거기에 지영을 제대로 카피한 장범이 등장했다. 지영이 그랜드 슬램을 이루고 은퇴하더라도, 이제는 더욱더 성장할 장범과 다시 정상의 자리를 두고 겨뤄야 했다.
그러니 그는, 시대를 잘못 만났다.
하지만 지영은 거기에 애도를 표하지 않았다.
만년 이인자.
‘그건 그것대로…… 행복한 거잖아.’
몸 성하고, 운동도 계속할 수 있으니까.
지영에게 그건 축복이었다.
그보다 더 큰 축복은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거대한 축복이었다.
홰액!
쿵!
와자리!
소매를 뿌리치는 걸 쫓아가 모두걸기를 쓸어 절반을 따낸 지영은, 이후 경기 스타일을 대번에 바꿔버렸다.
절반을 빼앗기자, 한숨을 내쉰 구혁은 남은 시간을 확인하고 더욱 강하게 푸쉬를 걸어왔다. 하지만 모든 선수가, 강지영에게 선취점을 뺏기고 그걸 다시 동수로 만들지 못했다. 아, 한 명 있었다.
미야모토 신지.
지구라는 별에서, 유도라는 스포츠를 하는 선수 중에, 강지영의 체급에서 유일하게 그를 잡을 수 있을 거로 생각되는, 유일한 선수. 오직 그만이 지영에게 먼저 절반을 뺏기고도 다시 절반을 따내 경기를 원점으로 돌린 전적이 있다.
하지만 그건 미야모토 신지라서 가능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 또한 천재였다.
천재에도 급수가 있다면, 적어도 강지영의 바로 아래 단계에 있을 선수였다. 그걸 증명하는 예가, 시니어 무대 데뷔 후, 강지영을 제외하곤 무패를 기록 중이란 점이었다. 오직 강지영만이 미야모토 신지를 꺾었고, 미야모토 신지는 오직 강지영에게만 꺾였다.
안타깝게도…… 구혁은 미야모토 신지가 아니었다.
지영은 마치 너는 신지가 아니라고 말하는 듯이, 철저하게 구혁의 공세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지영의 방어 유도는 여기서부터 진짜 진가를 발휘하기도 한다. 상대의 힘을 받아, 흘리면서 잡기 싸움을 하는데, 이게 상대를 아주 미치게 한다. 나는 점수를 빼앗겨서, 빨리 잡고 기술을 걸어야 하는데 지영은 절대로 그걸 상대의 의도대로 따라주지 않는다. 얄밉다 못해, 한 대 갈겨버리고 싶을 정도로 철저하게 잡기를 피한다. 그런데 이런 경우 보통 잡기를 피하는 선수에게 지도를 주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영은 이조차도 이용한다. 어떻게? 지도를 받더라도 같이 받는 방향으로 유도했다.
이게 상대를 미치게 했다.
그 답답함에 중심을 앞으로 쭉 빼고 덤벼들다 보면 그걸 받아서 업어치기나 빗당겨치기를 꽂는다. 제대로 잡지도 않고 억지 기술을 걸면 몸이 돌 때쯤에 뜯어내서 위장 공격을 먹이거나, 아니면 카운터를 친다.
구혁은 그걸 알기에 끝까지 제대로 잡으려고 했다.
힘으로 밀고, 파고들어 겨우 잡기를 끝내면 포지션은 또 지영에게 유리한 상태였다. 업어치기가 그래도 주특기인데, 상대의 팔 밖으로 잡으면 답이 안 나온다. 힘으로 억지로 들어가려고 해도, 지영의 힘도 만만치 않기에 쉽지 않았고, 그냥…… 여러모로 각이 안 나온다. 그렇게 4분이 지났다.
소레마데(거기까지)!
구혁은 고개를 떨궜고, 지영은 몸을 돌려 도복을 고쳤다.
함성과 박수가 쏟아지며 막을 내린 2차 선발전은, 그렇게 이변 없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