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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514화 (514/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514화

514화. 전설로 남을(3)

2차 선발전.

유도 선발전은 보통 2월에서 3월 사이에 열린다. 그리고 최종 선발전은 5월에서 6월 사이 열리고. 이 두 선발전에서 해외 대회 포인트를 비롯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선수가 속칭 아겜의 대표 선수로 선발된다. 지영은 1차 선발전은 불참했지만, 점수가 낮지는 않았다. 세계 선수권을 비롯한 점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2차, 3차 우승으로 끝내면, 지영의 아시안 게임 출전은 문제가 없었다.

2월 초.

지영은 명절을 보내고 막바지 훈련에 돌입했다. 훈련장은 청주였다. 선발전에 나가는 고등학생도 있고, 대학부도 있다. 그리고 임대성 코치도 있어서 도복 훈련에 이곳만 한 곳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선수촌에 들어가고 싶다. 하지만 선수촌에선 현재 구혁과 장범이 있고, 두 선수가 타도 강지영을 위해 훈련에 임하는 상황이라 그곳으로 가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그래서 청주에서 도복을 입은 지영이 가장 중점을 둔 건 폼을 다시 끌어올리는 작업이다.

힘들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 과정은 지긋지긋하게 겪었으니까.

그렇게 훈련하다 보니 금방 대회 날이 되었다.

시합 전날 계체는 무난히 통과했다. 하지만 약간의 소란이 있었다. 지영의 등장 때문이 아니라, 이우진의 불참 때문이었다. 모든 선발전에 출전했던 이우진은 지영에게 말했던 것처럼 은퇴했다. 본래는 훨훨 날았을 시기이나 지영에게 밀려 커리어가 얼마 되지 않아 따로 기자회견 같은 것도 없이 그냥, 불참했다.

그에 약간의 소란이 있었고, 잠시 뒤 이우진이 유도를 그만뒀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소란이 일었다.

“결국 은퇴했네.”

“뭔 은퇴야. 아직 대학생인데. 그냥 그만둔 거지.”

“그러네. 근데 왜 그만뒀대? 그래도 국대 2, 3선발은 되잖아.”

“왜긴, 강지영 때문이겠지. 2, 3선발이면 뭐해. 큰 대회는 X발, 저 새끼가 혼자 다 해 처먹잖아.”

“하긴…… 우진이 걔도 강지영한테 밀려서 메이저 대회는 거의 다 밀렸지?”

“다가 아니라 전부지. 강지영 쉰 년도 세계 선수권 빼면 전부 밀렸지. 나 같아도 그만두겠다. 그리고 걔 프랜차이즈 가문 외손자라며? 졸라 재벌이니까 아쉬운 것도 없겠지.”

“아 그래?”

“어. 유명하잖아? 솔직히 재벌 3세라서 취미로 유도한 걸걸?”

“에이, 취미로 했던 거치고는 X나 열심히 했는데? 이우진 개 독종이래. 쉬는 시간에 연습 X나 하고.”

“그러면 뭐 하냐고. 제대로 운동도 안 하고 나오는 놈한테도 지는데.”

오가는 말들, 그리고 시선이 곱지 않았다.

이우진의 은퇴는 사실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나이가 제법 있는 선수들, 혹은 황금세대란 벽에 좌절했던 선수들의 은퇴 러시는 이미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꽤 많은 선수가 벽에 좌절하고 그만뒀다. 그러나 정상급 선수들은 아니었다. 선발전에서 5위 안에 드는 선수들 대부분은 여전히 유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우진이 은퇴한 것이다. 정확히는 은퇴보단 그만뒀다는 표현이 맞긴 하지만, 어쨌든 이건 소란이 일어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강지영을 보는 시선이 곱지는 않았다.

밖에 나가면 지영은 팬을 몰고 다닌다. 마스크나 안경을 써서 위장하면 그나마 낫지만, 알아보면 소란이 일어날 정도로 팬이 몰린다. 그러나 그건 밖이고, 유도계는 아니었다. 유도계에서 황금세대는 목표임과 동시에 악당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황금세대 전원이 일반 유도 선수처럼 활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에 소속된 선수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실업팀에 소속된 선수들 전원이 오직 유도 하나만 보고 훈련한다. 물론 그냥 운동했던 관성대로 했던 경우도 있으나, 보통은 한 가지에만 매진한다. 그리고 그게 유도라는 운동이다.

그러나 황금세대는 다르다.

이들은 전원이 연예인이다. 당장 강지영이 미국에서 영화를 찍는 동안에 강한결과 황석은 드라마에 아주 굵직한 조연으로 출연했다. 이성진은 우정혁과 더 런닝을 포함한 예능 두 개를 함께하는 중이다. 임효중도 뮤지컬 오디션을 다시 봤고, 올 하반기에 시작되는 작품에 더블 주인공으로 낙점됐다.

지영만 해도 현재 차기작을 검토 중이고.

이 말은 곧, 황금세대가 유도만 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일 년의 절반은 도복을 입고, 절반은 연예인으로 산다. 이성진의 경우는 선수촌에서도 일주일에 2일씩 촬영장에 다녀온다. 이건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모든 것은 성적이 말해준다. 이성진은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에서 패배한 것을 제외하면 역시 무패 행진 중이다. 중요한 메이저 대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이틀이나 자리를 비우기에, 그 공백을 메우려고 더 열심히 훈련한다. 훈련 중에는 누구보다 독하게 훈련하는 친구라서 전기정 교수도 이해하고 넘어갔다.

이렇듯, 유도에만 집중하지 않는다는 것이 다른 선수들에게 좌절감을 선사했다. 왜? 그들은 1년에 300일 이상 도복을 입고 새벽, 오전, 오후, 야간 훈련에 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선발전 입상이 힘들 때도 있다.

그렇기에, 악감정이 드는 거다.

나는 너보다 더 노력하는데, 너보다 몇 배는 노력하는데, 왜 너는 내 절반도 노력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잘하는 건데! 하는 질투심에서 비롯된 악감정이 드니, 황금세대는 악당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주 작은 문제에도, 유도계에선 이들에 대한 악담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지영을 포함한 황금세대는 이 악담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보다 훨씬 지독한 일도 이미 충분히 겪어봤기 때문이었다.

그런 악담을 그냥 한 귀로 흘리는데, 계체를 끝낸 여자 선수들이 나와 한데 다시 모였다. 그리고 이미 전달받은, 올해 룰 개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미 숙지한 사항이고, 사실 별거 없어서 굳이 듣지 않아도 상관없는 얘기였다.

“형. 안녕하세요.”

그때 자리를 옮긴 장범이 지영을 불렀다.

“응? 범이 오랜만이네.”

“네, 형도 잘 지내셨죠?”

“뭐 적당히? 훈련 열심히 했어?”

“넵. 열심히 했습니다. 체력 문제도 해결했고요. 근데 형, 우진 선배님 진짜 그만뒀어요?”

“응. 연락받아서 한 번 만났어. 가업 잇겠대, 이제.”

“아…….”

장범의 표정이 좀 굳었다.

사실 숙덕거리는 말 중에는 지영에 이어 이제 강지영 짝퉁인 장범한테까지 깨져서 충격받아 그만뒀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런 얘기를 장범이 못 들었을 리가 없었다. 지영은 시선을 돌리지 않았지만, 장범의 탄식에서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눈치챘다. 그래서 잡아줄 필요성을 느꼈다.

“범아. 우진이 너한테 져서 그만두는 거 아니다. 그냥 가업을 잇기로 한 거야. 원래도 집안에서 말이 많았었고.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쑥덕대는 말에 흔들리지 마.”

“……네.”

“그리고 너 때문에 은퇴 좀 하면 어때. 네가 뭐 반칙으로 이겼어? 정당히 실력으로 이긴 거야. 그리고 실력이 전부인 이 바닥이 언제부터 그렇게 물렁 했어? 실력에서 밀리면, 도태되는 거야 당연한 거야.”

“…….”

“누가 너한테 지면 은퇴하겠다고 하면 져줄 거야? 그래?”

“아니요. 그건 아니죠.”

“그러니까. 난 우진이랑 친해. 서로 연락도 주고받고. 그런 관계라고 우리가 시합 때 대충했을 것 같냐? 전혀 아냐. 우린 우리 방식대로 우정을 쌓았지만, 그래도 경기에서 붙으면 서로 최선을 다했어. 서로 원망도 안 했고. 우진이는 그런 부분에선 정말 신사였고.”

“…….”

“그러니 넌 딴생각 말고, 시합에나 집중해. 그런 거 신경 써서, 너 나 잡겠냐?”

그렇게 조용히 말하는 순간, 앞에 있던 심판 위원장이 여기까지입니다. 하고 룰 개정에 대한 설명을 마쳤다. 그 말을 듣고 지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은 체급 선수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지영은 그 시선을 그냥 오연히 받았다. 패자의 질투에 어울려 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유도는 예시예종의 스포츠다. 말 그대로, 예의로 시작해 예의로 끝난다. 경기와 상관없이 남을 헐뜯는 건, 이미 예의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일이다. 그걸 일일이 받아주면, 솔직히 한도 끝도 없다.

그래서 지영은 자기를 험담하던 선수들을 한번 슥 훑어보고 몸을 돌렸다.

불만이 있으면, 직접 와서 얘기하면 된다. 그런데 그것조차 못하고 뒤에서 쑥덕거리는 것들이다.

“워워.”

근처에 있던 이성진이 얼른 일어나 지영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그를 진정시켰다. 좀 올라왔던 짜증이 쑥 내려갔다.

“일일이 반응하면, 너만 피곤하다?”

“알아. 그냥 좀 화가 나서.”

뭘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쯔.

혀를 찬 지영은 이성진과 함께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걸었다. 먼저 일어나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과 함께 경기장을 빠져나와, 숙소로 향했다. 시합장이 서울이라, 숙소는 평소 쓰던 숙소였다. 저녁을 부담 없이 먹고, 거실에서 수다를 떨다 늦지 않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6시. 늦지 않은 시간에 일어난 지영은 스트레칭으로 시합 날의 하루를 시작했다.

몸을 쭉 풀어주고 밖으로 나가자 다들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다가 이미 식사도 차려져 있었다. 임은진을 비롯한 비즈의 스태프가 출동해 시합 날 케어를 시작한 것이다.

“잘 먹겠습니다.”

죽과 함께 소화가 잘되는 음식으로 아침을 챙겨 먹고, 씻고 시합장으로 바로 출발했다. 오늘 선발전은 하루에 끝난다. 그래서 남자부 여자부 같이하고, 경기장 네 개다. 결승전은 남자 여자 따로 두 개의 경기장에서 하겠지만, 어쨌든 오늘은 몸을 빨리 풀어야 했다. 그래서 경기장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아무도 없었다.

괴로운 몸풀기 시간이 시작됐다.

괴롭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익숙한 시간이었다. 40분에 걸쳐 숨을 터뜨려 놓고, 미련 없이 경기장에서 빠져 옷을 갈아입고, 소모한 에너지를 다시 채웠다. 시간이 있을 때 과하지 않은 선에서 이렇게 먹어두는 건 매우 중요했다. 소모한 에너지를 채워놓지 않으면 중요한 순간에 힘이 딸린다. 그걸 방지하는 건, 말했듯이 먹는 거다. 열량이 높고, 소화 잘되는 것들 위주로 말이다.

그렇게 배까지 채우자, 졸음이 몰려왔다.

이때 자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주 짧게, 10분 정도. 너무 자면 몸이 퍼지니, 짧게 자두는 게 좋다.

그렇게 자고 일어났을 때도 경기 시작 전이었다.

20분쯤 지나서 시작된 첫 게임. 선발전이다. 고등부의 입상 선수와 대학, 성인부 선수들이 나오는. 그래서 시합은 제법 빨리 끝나기 시작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고등부 선수와 대학부 선수는 차이가 있다. 대학부와 실업팀 선수의 실력 격차는 없지만, 고등부는 확실히 벽이 있었다. 이 벽은 생각보다 높아서, 웬만큼 난다 긴다 하는 선수들도 넘기 힘들었다.

그렇게 실력이 평준화되지 않은 매칭은 경기를 금방금방 끝나게 했다. 하지만 이건 불합리한 일은 아니었다. 스포츠가 그랬다. 최고가 있으면, 그 아래는 상대적으로 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지영의 첫판도 고등부 선수였다.

경민고 2학년 서정우.

이 선수는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포스트 이우진.

이우진의 스타일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선수였다. 그리고 고1 때 출전한 대회를 석권한 친구였다. 그래서 차세대 국가대표로 꼽히는 유망주 1순위의 선수다. 신장과 기술 또한 상당히 좋았고, 발육이 빠른 건지 피지컬 또한 대단했다.

그런 서정우는 패기도 넘쳤다.

마주 섰을 때, 다부진 표정으로 지영을 노려보기까지 했다. 지영은 그런 서정우의 모습에 조금도 분노하지 않았다. 패기는 좋다. 이제 고작 고등학교 2학년이고, 앞으로 성장하면 좋은 선수가 될 테니까. 지영이 유도를 애정하지 않고, 애증한다고 해서 그만두고 아예 유도와 연을 끊고 살 생각은 없었다.

지도자로 전향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한국 유도가 발전해 지금처럼 세계 최강의 자리를 굳건히 유지했으면 하는 마음쯤은 당연히 있었다. 서정우가 지금처럼 성장만 한다면, 그 바람의 한 축을 담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그래, 지금은 이르다.

하지메!

심판의 시작 사인이 울리고 2분.

서정우의 얼굴에서 패기는 씻은 듯이 사라졌고, 남은 건 확연히 보이는 짙은 좌절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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