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92화
492화. 왕의 귀환(1)
[나의 무사님 최종화 54.5%!]
[재는 살고 연은 황제가 되고, 후는 죽었다. 완벽하다면, 완벽한 엔딩이었다!]
[폭탄 하나가 그렇게 전세를 뒤집는다고? 왜란 당시 거북선을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현대의 인간도 총성이 울리면 기겁한다. 그렇다면 무리에 폭탄이 터지면? 혼비백산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 부분을 살린 정은정 작가의 한 수는, 신이 두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몸값 껑충 뛴 배우들! 누가 가장 많이 뛰었나?]
[강서훈! 헐리우드의 거장 마이클 베론 감독 작품과 계약 완료! 역할은 추후 공개할 것!]
[이연, 미블과 DG에서 러브콜 쇄도!]
[소월영 역을 둔 여배우들의 치열한 기 싸움!]
[나의 무사님 전 세계 웹플릭스 전체 1위! 시리즈 총 조회 수 1위 탈환!]
나의 무사님의 시간이었다.
후의 목이 빙글 돌아 떨어지고, 전쟁은 거기서 끝난다. 그리고 이어지는 에필로그. 연은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보고를 받고는, 드디어 황좌에 오른다. 고개를 조아리는 신하를 보며 연의 입가에 설핏 미소가 스쳐 지나갔고, 시청자들은 그 미소에 순간 흠칫 놀랐다.
황좌를 차지한 연의 미소는, 매우 의미심장했다.
이전에 후와 재의 대화를 떠올리기도 했다. 심연을 들여다본 정도가 아니라, 심연 그 자체를 이해하려고 했던 연. 과연 연은 심연 그 자체가 되었을까? 겉만 보고 빠져나왔을까? 그 답을 미소가 보여줬다.
충격이었다.
역대급 반전은 아니었지만, 속내를 숨겼을 거라 예측되는 연의 미소는, 재의 희생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깨달았다.
나의 무사님의 최대 빌런은, 역적 후가 아니라 공주 연이었음을. 하지만 그거로 성토를 하진 않았다. 배드 엔딩이 아니라, 나름 해피 엔딩이기 때문이었다. 수년의 세월이 흐른 뒤, 저잣거리를 머리를 앙증맞게 땋은 소녀의 양손을 잡고 걸어가는 부부의 뒷모습을 보여주며 끝을 맺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면은 암전됐고, 더 앤드.
엔딩으로 완벽했을까?
글쎄. 호불호가 갈리는 엔딩이라고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소 70% 이상이 만족하는 엔딩이었다. 가장 걱정했던 재의 생사가 확실하게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무사님은 끝났다.
다음 주, 총집편으로 돌아온다는 메시지와 함께.
나의 무사님이 끝나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강서훈은 헐리우드의 러브콜을 받았고, 심수정은 1년짜리 휴식에 들어갔다. 머리가 엉망이라 그걸 수습하려면 최소 1년은 작품에 들어가기는 어려웠다. 이연 또한 휴식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차기작은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할 것 같다는 말을 SNS에 남겼다.
조연들은 물이 들어왔으니 열심히 노를 젓기 시작했다.
그럼 주연 강지영은?
왕의 귀환.
강지영은 유도복을 입었다.
* * *
지영은 정말 오랜만에 도복을 입었다. 올림픽 이후 거의 유도복을 입지 않았으니, 시기상으로는 거의 반년 가까이나 됐다. 그래서 그런지, 어색했다. 이런 느낌이 들 줄은 또 모른 지영이었다. 운동 시작 20분 전, 지영은 먼저 나와 몸을 풀었다. 지영이 몸을 풀자 합동훈련 때문에 청주유도회관에 모인 중, 고등부 선수들의 시선이 와다다 몰려들었다. 청석, 대성, 연희, 충북체고, 청주대 등등, 선수들이 전부 모여서 하는 훈련이다.
원래는 각자 학교의 유도장에서 하는데, 지영을 포함한 황금세대가 2주간 훈련한다고 하자 다들 청주유도회관에 모인 것이다. 아직 중고등학생이 많은 만큼, 감히, 현재 대한민국 넘버원 스타인 지영을 돌보듯 하는 건 불가능했다.
지영보다 좀 늦게 도착한 친구들이 도복을 갈아입고 나왔다.
“이야, 이렇게 같이 도복 입은 게 얼마 만이야?”
오기 전에 세수했는지, 물기가 찰랑이는 머리카락을 털면서 들어온 이성진의 말을 임효중이 받았다.
“그러니까. 한 반년 되지 않았나? 지영이가 바로 작품 들어갔으니까.”
“어후, 감개가 무량하네, 무량해. 하하. 맞다, 지영아. 넌 오늘 쉬엄쉬엄해. 괜히 다치지 말고.”
이성진의 말에 지영은 웃으며 대답했다.
“너나 잘하지? 난 도복만 안 입었지, 몸은 계속 풀었거든?”
“그거랑 같냐? 한결아. 지영이 오늘 살살하라고 해. 쟤 다치면 우리 스케줄 죄다 꼬이잖아.”
이성진의 말에 강한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진이 말대로 해. 이삼일은 그냥 몸만 풀어.”
“음, 알았다.”
강한결이 저렇게 말하면 거절하기 쉽지 않다. 그리고 지영도 오늘은 무리할 생각이 없었다. 일단 감각부터 찾는 게 먼저였다. 액션은 물리게 찍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액션이다. 서로 합을 맞춘 액션. 그래서 실전 느낌이 전혀 없었다. 유도는 훈련도 실전처럼 한다. 그래서 서로 감각이 다르다. 몸은 참 정직한 게, 한동안 훈련했던 것에 몸의 감각이 맞춰진다. 수없이 연습했던 것이 몸에 익어버린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영은 이성진이 저렇게 말하지 않았어도 며칠간은 이걸 되돌릴 생각이었다.
“슬슬 시간 됐다. 준비들 해.”
오랜만에 뵙는 임대성 코치의 말에 다들 일어나서 줄을 맞췄다. 가장 뒤쪽에 서서 준비운동을 하고, 구르기와 낙법 등으로 몸을 충분히 매트에 부딪쳐 충격에 익숙해지는 예열을 거쳤다. 이렇게 몇 번 한다고 감각이 돌아오는 건 아니지만, 지영은 낙법을 하면서 다시 유도장에 왔구나란 느낌을 진하게 받았다.
청소를 잘해서 냄새가 나진 않았지만, 유도장 특유의 냄새는 남아 있었다. 그 냄새는 일반인이야 눈살을 찌푸리겠지만, 지영은 오히려 반가웠다.
20분에 걸쳐 준비운동을 끝내고, 익히기에 들어갔다. 익히기, 혹은 부딪치기라 부르는 것으로 쉽게 설명하면 기술 훈련이다. 허리기술 선수는 허리후리기나 허벅다리를 차고, 손기술 선수는 당연히 업어치기를 하고. 빠르게 20개씩 10세트를 달리며 몸에 열을 올렸다.
“오, 아직 안 죽었는데?”
이성진의 말에 지영은 그냥 웃었다.
“야, 자꾸 놀릴래?”
“재밌어서 그렇지. 근데 좀 무거워 보이긴 하네. 좀 더 빨리 차봐.”
“응.”
파트너로 잡은 이성진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이곤 좀 더 속도를 올렸다. 확실히 허벅다리를 차올리는 동작이 둔했다. 살이 쪄서가 아니라, 이 움직임 자체가 익숙하지 않아서였다. 몇 달간이나 도복을 입지 못했으니 이 정도는 당연했다.
지영은 속도를 올렸다.
그리고 생각보다 빠르게 호흡이 가빠왔다. 익숙하지 않은 동작이라서, 호흡 관리 또한 제대로 되지 않아서였다.
“지영이 둔해졌는데?”
임대성 코치의 말에 지영은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순순히 끄덕였다.
“교정부터 해야겠다. 발 찍는 위치 신경 쓰고. 호흡 관리하고. 다시!”
“네!”
임대성 코치의 호통에 지영은 반사적으로 크게 대답한 뒤, 다시 허벅다리를 차기 시작했다. 목깃과 소매 깃을 툭 쳐서 살짝 들고, 발을 찍은 다음 빠르게 회전하며 팡! 이게 1회다. 이걸 20회 빠르게 다시 반복하자, 땀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확실히 몸이 무거웠다.
감각도 엇나가고, 호흡도 엉망이다. 이성진이 그냥 한 말이 아니라는 게 절실히 느껴졌다.
“후우, 후우. 이런 상태면, 후우. 진짜 크게 다치겠네.”
“그치?”
“응. 나 놀리려고 그러는 줄 알았는데, 고맙다.”
“흐흐. 오늘은 고등학생 애들 잡고 몸 풀어.”
“그래야겠다.”
후우…….
숨을 다듬고, 상체를 세워 양팔을 뻗었다. 이성진의 차례였다. 지영의 가슴깃과 소매깃을 잡은 이성진이 부딪치기를 시작했다. 역시, 부드러웠다. 이 큰 신장으로 정말 부드럽게 슥 들어오는 업어치기. 지영은 이성진의 부딪치기를 받아주며 이성진이 훈련을 빼먹은 적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유도계에 오래 남고 싶다는 임효중과 함께 이성진도 훈련에 힘써왔다. 역시, 훈련은 배신하지 않는다.
삐익.
20분 정도 더 지나서, 벨이 울렸다.
“자유 연습 준비! 경량급 나오고, 중량급은 빠져!”
충북체고 코치의 말에 중량, 헤비급 선수들이 우르르 빠졌다.
“저, 지영아.”
“네, 코치님.”
청석고 코치가 다가와 지영을 불렀다.
“우리 유망주 한번 잡아줄 수 있냐? 이제 1학년인데.”
“네, 그럼요.”
1학년 유망주.
사실 나이 차이는 몇 살 안 나지만, 신기하게도 애기처럼 보이는 선수가 청석고 코치의 옆에 서 있었다. 지영이 도복을 고치고 서자 그 앞에 후다닥 달려와 앞에 서는 선수.
“내가 말 편하게 해도 괜찮지?”
“네, 선배님!”
“그래. 이름이 뭐야?”
“정석훈입니다!”
“정석훈. 기억했다. 석훈아. 잘 부탁해.”
“넵! 잘 부탁드립니다!”
얼굴과는 또 다르게 우렁우렁한 목소리다.
각자 파트너를 잡고 적당히 주변과 거리를 두고 서자, 삐익! 호루라기를 불었다. 동시에 타이머가 4분 59초로 내려갔다. 정말 오랜만에 자유 연습이다.
“악!”
힘차게 기합을 내고 달려오는 정석훈.
잡기를 해보니 금방 스타일을 알 수 있었다.
‘전형적인 오른쪽잡이에, 업어치기 선수.’
잡기 스타일만 봐도 느낌이 확 왔다.
지영은 이건 다행이라 생각했다. 의식 초점이 유도에 맞춰지기 시작했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지영의 이 감각은, 강지영이란 선수의 원천이라 할 수 있었다. 누구보다 빠르게 상대를 파악하는 것. 그건 경기에 지대란 영향을 끼쳤다.
툭, 툭툭.
지영이 먼저 소매깃을 잡으려고 하자 크게 털어내는 정석훈.
“뭐 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빼지 말고 붙어!”
“네!”
옆에 있는 청석고 코치의 호통에 정석훈이 바싹 붙어 왔다. 그리고 손을 쭉 뻗었다. 그런데 그건 실수다. 강지영이란 선수의 경기를 봤다면, 해서는 안 되는 실수. 툭, 소매가 잡히는 순간 손바닥을 빙글 돌려, 빗당겨치기.
파앙!
몸은 무거웠지만, 그렇다고 기술을 못 걸 정도는 아니었다. 거기에 손을 뻗을 때 이미 중심축이 앞으로 쭉 몰려왔다. 코치의 호통에 저도 모르게 공세도 바꾼 건데,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지영은 그걸 놓칠 정도로 어리숙한 선수가 아니었다. 빙글 돌아 떨어진 정석훈. 여지없는 한판이었다.
하…….
코치는 자기 호통에 급히 달려들다가 넘어간 것을 알았는지, 한숨을 내쉬곤 다가와 일어난 정석훈을 달랬다. 보통 넘어가면 호통을 치는 코치도 있는데, 이 사람은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이라 다행이었다.
“중심부터 잡고, 차근차근. 그래도 뒤로 밀리지 마. 너 힘 좋잖아? 지영이도 힘 좋지만, 석훈이 너 힘이면 해볼 만하다. 그러니 물러나지 않는 걸 염두에 두고 붙어. 알았지?”
“네!”
악!
다시 기합을 넣고 다가오는 정석훈.
자세를 낮추자 중심이 잡혔고, 확실히 이전보다 쉽지 않단 느낌을 풍겼다. 하지만 지영은 오히려 그게 더 기꺼웠다. 하지만 정석훈의 실력은 지영과 비교하면 한참 아래였다. 유망주는 말 그대로 유망주다. 재능이 있어도 경험과 피지컬이 정상을 찍지 않은 상태다. 지영은 정석훈을 상대로 한 판을 더 던졌다. 그러곤 기술을 되도록 많이 받아줬다. 정석훈은 사력을 다해 기술을 걸어왔다. 그러나 지영은 그 기술을 전부 부드럽게 막았다. 몇 번은 아예 기술 전에 막았고, 몇 번은 기술에 걸렸지만, 수월하게 방어했다.
힘은 백중세라도 피지컬이 지영이 월등하다 보니, 유망주의 기술에 넘어가 각 자체가 없었다. 그렇다고 한 판 떠주자니, 그건 또 훈련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유망주를 상대해 준다고 해도, 억지로 넘어가 주는 건 결국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삐이이익!
그렇게 5분이 지났다.
“감사합니다!”
“응, 수고했어. 기술 좋더라. 열심히 해.”
“네!”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한 정석훈이 다른 파트너를 구하러 떠났다. 지영은 밖으로 나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어때?”
“음, 무겁긴 무겁지. 그래도 할만한데?”
“그래도 쉬엄쉬엄해라. 다치지 말고.”
“알았다니까.”
저…….
이성진과 대화 중에 다시 한 선수가 다가왔다. 이번엔 충북체고의 여자부 코치였다. 나이는 지영보다 당연히 많지만, 조심스럽게 다가온 코치는, 한 선수를 다시 부탁했다. 여고부 헤비급 선수였다. 오늘은 몸을 푸는 날이다. 그리고 다른 학교 코치들은 오지 않는 거로 보아, 아무래도 순번과 선수를 정해놓은 것 같았다. 지영은 거절하지 않았다.
첫날, 이튿날은 그렇게 몸만 풀었다.
그리고 3일째, 지영은 본격적으로 훈련에 돌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