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91화
491화. 전설로 가는(30)
후.
지영은 준비가 한창인 현장을 보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뭔가 가슴이 간질간질하면서도, 작게 요동치는 심장이 지금 심정이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려줬다. 지영은 가만히 생각해 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게, 시원섭섭한 감정이라는 것을.
마지막 신이다.
홍진아 감독은 이 신을 가장 뒤로 미뤘다.
그런 이유는 하나였다.
작품의 마지막인 만큼, 그 마지막을 가슴에 품고 신에 임해줬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이는 정은정 작가의 바람이기도 했다. 즉, 이 신이 끝나면 나의 무사님의 공식 촬영은 끝이다. 추가 촬영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몇 신 되지 않을 거고, 몇 명 되지 않을 것이다. 크랭크업. 영화에 쓰이는 단어지만, 어쨌든 그렇다.
그러니 오늘이 마지막.
이 현장의 공기를 온전히 마시는 것도 오늘이 끝이라는 뜻이다. 거기에 지영은 커리어의 절반 이상을 이 작품과 함께했다. 지영의 커리어는 단출했다. 예인으로 살어리랏다와 나의 무사님 시즌1부터 3까지. 네 작품이 전부다. 그런데 세 작품을 이 사람들과 함께했다. 제작진은 물론이고 배우도 거의 바뀐 게 없다.
그런 이 사람들과 오늘로 마지막이다.
배우는 물론 연출진, 제작진 측과도 번호 교환을 했으니 끝나고도 종종 만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자주 만나는 건 앞으로 영원히 불가능했다.
이별이란 뜻이다.
이 현장과도, 이 사람들과도.
그 이별이 주는 마음이 아주 진하고 깊게 지영의 정신에 스며들었다. 그래서 마음이 이상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걸 가만히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부상은 이런 풀어진 마음에서 나오니, 짝! 뺨을 세게 때려 정신을 일깨웠다.
“후.”
지영은 시합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이 오직 하나다.
승패.
이기고 지는 것이 경기의 틀 안에서는 가장 중요하다. 승패가 중요하지 않은 경기? 그런 경기가 간혹 나오긴 한다. 하지만 일 년을 통틀어서 몇 경기 나오지 않는다. 전 세계, 전 종목을 다 합쳐도 말이다. 그렇다면 승패 다음은? 여기서부터는 각자 의견이 갈릴 것이다. 하지만 지영의 2등은 매우 확고했다.
부상.
선수마다 2등은 다르겠지만, 지영의 2등은 확고부동하게 부상이었다. 어쩌면 승패보다도 조심해야 하는 거로 부상을 꼽을 수도 있었다. 이런 부상은 솔직히 선수가 관리하기 참 힘들다. 선수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찾아오는 게 부상이다. 하지만 의지에 응답해 찾아올 때도 있었다. 그게 바로 선수의 풀어진, 안일해진 마음가짐이었다.
집중하지 않고 설렁설렁, 대충대충 훈련이나 경기에 임하면 높은 확률로 부상이 찾아든다. 마치 주변에 떠도는 공기처럼 주변에 있다가 이때다! 하고 들어와서 선수의 몸을 파괴한다. 지영은 그런 모습을 질리도록 봤다.
지금이 그랬다.
지금 자기의 마음이, 그 정도로 풀려있었다. 지영은 각오를 다졌다. 조금만 실수해도 다친다. 특히 이렇게 대규모 전투 신은 배우들이 반응하기 참 힘들다. 본래는 몸값 비싼 배우들은 빼고 따로 찍은 다음, 거기에 다시 소규모 인원을 뽑아 주연을 넣어 신을 촬영한다. 그렇게 해서 최대한 부상을 방지한다. 하지만 오늘은 그냥 단체 전투다. 이 신 하나 때문에 김진우가 모든 인맥을 총동원했다.
전부 여섯 개의 액션 스쿨의 배우가 동원됐고, 그들이 머리를 맞대고 짠 합을 배우들이 연습한 것만 해도 3주가 넘었다. 지영도 거의 2주는 빠지지 않고 하루 서너 시간씩 가서 합을 맞춰 왔다.
그런 마지막 신이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네, 들어오세요.”
지영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익숙한 얼굴이 고개를 쏙 내밀었다. 임효중이었다. 지영의 경직된 얼굴이 순식간에 풀렸다.
“어, 효중아. 들어와.”
“잔뜩 긴장했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풀렸나 보네?”
“이 귀신 같은 놈.”
지영은 웃으며 임효중을 반겼다.
“앉아. 아. 마실 거 줄까?”
“탄산수 있어? 있으면 그거로.”
“있지.”
지영은 냉장고에서 탄산수 하나를 꺼내왔다. 연희 중고 근처에서 나는 탄산수다. 옛날엔 이거로 로비도 했다고 할 정도로, 지역 사람에겐 유명한 탄산수기도 했다. 기본 탄산수의 맛은 뭐, 말해 입 아프다. 녹이 슨 맛이 난다. 하지만 맛 때문에 먹는 게 아니었다. 텁텁하거나, 침이 마르거나 할 때 마시기 가장 좋았다.
애초에 지영이나 임효중이나. 아니, 운동선수 전부가 입안에 단맛이 강하게 남는 탄산음료는 잘 마시지 않는다. 특히 체중 관리하는 종목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좋아한다면 비시즌에 폭발하겠지만, 그래도 시즌 중엔 탄산은 일절 입에 대지 않는다.
“어쩐 일이야?”
탄산수 두 개를 꺼내와 임효중에게 건네며 앉은 지영이 묻자, 임효중은 별거 아니라는 것처럼 대답했다.
“그냥 미팅 있어서 잠깐 서울 왔어.”
“미팅? 아, 뮤지컬?”
“응.”
임효중은 춤추고 노래하는 게 취미다. 중학교 때부터 아이돌을 좋아했고, 기회가 왔을 때 프로젝트 아이돌이란 것도 하면서 확실히 눈도장을 찍었다. 사실 지금도 그를 섭외하려는 사람은 많았다. 그걸 거절하다가, 요즘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다시 뮤지컬 쪽 연습을 시작했다. 임효중은 유일하게 유도계에 남겠다고 한 친구였다.
그런데 갑자기 뮤지컬에 도전해 보겠다고 해서, 놀랐었던 기억이 났다.
“잘됐어?”
“아니, 스케줄 빼기 힘들다더라. 그래서 네년 아시안 게임 끝나면 하려고.”
“이런.”
“아무래도 나만 특별히 스케줄 봐달라고 하긴 그렇잖아. 거기에 감독님이 이문정 감독님이야. 대충했다가는 영혼까지 털릴 것 같아서, 고사하고 왔어.”
“아쉽겠네.”
지영의 대답에 임효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그래도 다음 작품에 또 연락해 준다고 하니까, 기다려 봐야지. 그건 그렇고. 너 체중은?”
대화의 주제가 변했다.
지영은 어제 자기 전에 쟀던 체중을 떠올린 뒤 대답했다.
“73.9. 딱 74 정도야.”
“관리 끔찍하게 잘했네. 2주 뒤에 선발전은 괜찮겠어?”
“힘들어도 나가야지. 안 나가면 세계 선수권이 날아가는데.”
“그렇지. 근데 야, 우진이 칼 갈고 있던데? 이번엔 고전 좀 하겠더라. 피지컬을 엄청 올렸어.”
“저번에 한결이랑 가노컵 보면서 나도 봤어.”
이우진.
가노컵에서 봤다. 준결승전에서 신지의 벽을 넘지 못하고 패배했지만, 이우진은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무려 신지에게 절반을 빼앗았다. 신지가 방심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자기 실력만으로 절반을 따냈다. 운이 좋다고 보기도 그런 게, 정말 완벽한 타이밍을 잡아서 쓸었다. 그건 무조건 실력이었다. 경기 시작 30초 만에 나온 점수였고, 아쉽게도 3분이 막 지났을 때 업어치기 한판에 패배했지만, 그래도 실력이 오른 건 느껴졌다.
“뭐,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 강지영이니까.”
“뭐래.”
“뭐긴 뭐야. 칭찬이지. 그럼 난 간다.”
“벌써 가게?”
“응. 약속 있어서 이제 내려가 봐야 해. 왜, 더 있을까?”
“아니, 그 정도까진 아니고.”
“하하.”
임효중은 웃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친구가 왔다 가자, 지영은 신기하게도 마음이 풀려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게 신기해서 지영은 저도 모르게 잔잔히 웃고 있는데 다시 노크 소리가 났다.
“강지영 배우님. 준비해 주세요!”
“네.”
지영의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이 열리더니, 임은진을 필두로 지영의 개인 스태프가 우르르 들어왔다. 거울 앞에 앉아 눈을 감은 지영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풀어졌던 긴장을 다시금 조인 지영은, 점검을 끝내고 현장으로 향했다.
대미의 장식.
화룡점정을 찍을 시간이었다.
* * *
피가 난무했다.
잘린 팔다리가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지독한 악취. 역한 냄새가 온 사방, 천지에서 진동했다. 전투의 승패는 정말…… 허무하리만치 쉽게 갈렸다. 기병을 잃은 제국군은 창병과 동부 방패병을 내세워 저항했지만, 이미 가속도를 받은 기병의 돌격을 막진 못했다.
일점 돌파. 관영의 일대가 뚫은 길을, 산조영의 이대가 재차 뚫어버리며 전세를 그냥 찢어버렸다.
기병의 돌격이 이어지는 순간, 저격이 시작됐다.
악을 쓰며 병사를 독려하던 지휘관급 무장이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다. 매섭다 못해, 악에 받쳐 날아든 철시는 목이나 몸통을 뚫는 걸로도 모자라 뒤에 있던 병사까지 같이 저승으로 보냈다. 그런 저격이 수십 발씩 날아들었다.
제국군은 저항했다.
하지만 그 사이로, 심지에 불이 붙은 폭탄 하나를 매단 화살이 날아들었고,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근처에 있던 병사를 갈가리 찢어버렸다. 천지개벽의 굉음을 처음 경험하는 제국군은 혼이 아예 나가 버렸다.
이어서 두 발 정도가 더 터졌을 때, 제국군은 살고자 하는 발악을 위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지휘관이 도망치는 병사의 등을 베어 가며 악을 썼지만, 그건 효과가 정말로 미미했다. 난생처음 듣는 천지개벽의 굉음에 이미 이성이 마비됐으니 말을 들어 먹을 리가 없었다. 폭탄이 그렇다. 처음 폭탄이 터지는 걸 들었을 때, 재의 이성도 잠시간 아득히 날아갔었다. 그걸 재보다도 약한 일반병이 견뎌낼 리가 없었다.
적진에선 벌써, 천벌이란 단어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렇게 제국군은 찢겨 나갔다.
허무할 정도로 쉽게 전세가 기울어져 버렸다.
‘폭탄’을 예상하지 못했기에 나온 결과였다.
후는 그 모든 참상을 백마에 올라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앞을 지키는 자는 제국제일검 진이었다. 진의 금위군은 마치 최후의 보루처럼 역적 후를 지키고 서 있었고, 재는 끝을 낼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그에 재는 말에서 내렸다.
재가 말에서 내리자 돌격을 끝내고 돌아온 관영과 산조영, 그리고 제선과 선고가 말에서 내려 재의 뒤에 붙었다.
스르릉.
칼을 뽑은 재는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러자 잘린 사지가 천지에 깔린 지옥. 그 지옥으로 스스로 발을 넣는 재를 향해 제국제일검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얼굴에 서려 있는 은은한 여유.
그 여유는…….
쩌엉!
칼을 맞대는 순간 사라졌다. 꿈틀거리는 눈매. 일격의 교환이지만 그는 분명히 알아본 것 같았다. 일전에 붙은 재와 지금의 재는 다르다는 것을.
휘익.
검이 돌아왔다.
옆구리를 찔러오는 아주 단순한 일격이었다. 하지만 절대로 쉽게 볼 수 없는 일격이었다. 재가 들고 있는 칼의 위치, 그걸 들어 틀어서 막더라도 제대로 힘을 받기 힘든 아주 교묘한 위치다.
괜히 제국제일검이라 불린 게 아닌 일검이었다.
하지만 재도 놀고만 있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재도 강해졌다. 특히 학소양에게 배우면서 재의 무력은 또 다른 영역에 들어섰다.
깡!
팔이 다 펴져 근육의 힘을 제대로 받기 전에 재는 칼을 집어넣어, 툭 쳐냈다. 지극히 간결한 동작에 진의 공격은 막혔다. 그에 다시 눈매가 꿈틀거렸다. 공격이 막힌 게 기분이 나빴는지, 조금 감정적인 공격이 이어졌다.
재는 그걸 하나씩 전부, 이전과 똑같이 쳐냈다.
제대로 힘을 받기 직전에, 관절이 곧게 펴지기 전에 전부 쳐내자 진은 한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에게 사사 받았지?”
“그게 왜 궁금한데, 어차피 뒤질 새끼가.”
재는 서늘하게 대답하고는 성큼 걸어 나갔다. 신기했다. 학소양에게 제대로 배우고 난 지금, 진의 공격이 하나도 매섭지 않았다. 물론 이게 진심 전력은 아니겠지만, 재는 진이 진심으로 덤빈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학소양이 가르친 것은, 지금 이 순간 어마어마한 공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재가 다가가자 진이 검을 중단으로 곧추세웠다.
그리고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파괴적인 검격이 뿌려졌다. 간결하지만, 빠르고 강맹하다. 쩌엉! 칼을 맞대 쳐내려 했지만 제대로 힘이 담긴 일격은 재의 힘을 뚫고 들어왔다. 하지만 검에 칼을 댄 순간부터, 이미 회피 각도는 나온 상태였다.
그그극!
그리고 재는 그 틈을 타고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 어깨로 진의 가슴을 들이받았다.
“큭!”
간단한 공격 같지만, 진은 신음을 흘리며 물러났다. 어깨를 치는 그 순간 전신의 근육을 폭발시켜 순간적으로 빡! 끊어쳤으니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처음으로 먼저, 제대로 일격을 먹였지만 재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저벅, 저벅저벅. 진을 향해 걸었다.
그런 재를 향해 금위군이 달려들지만, 불쑥 들어온 산조영의 창이 옆구리를 뚫어버렸다.
재는 도움을 준 산조영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고 똑바로 진을 향해 걸었다. 인상을 찌푸린 진은 이번에는 크게 보폭을 잡아 나왔다. 아니, 거의 달려 나왔다. 언제나 신선처럼 도도하게 무복을 흩날렸던 진이, 고고했던 제국제일검이 몇 번의 격돌로 단정히 묶었던 머리마저 점점 엉망이 되어 흩날리는 채로 달려 나오고 있는 거다.
극단적인 변화다.
재는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후우…… 후우…….”
그리고 길게 내뱉으며, 직선으로 번쩍이는 검광을, 그보다 빠르게 빛살처럼 후려갈겼다. 까앙! 검과 칼이 만나 순간적으로 세상이 밝아졌다. 그 짧은 순간 재는 진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걸 확실히 확인했다. 그래서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걸렸다.
“마음대로 안 되지?”
“…….”
“그래서 답답한가 봐?”
“이익!”
“어떻게 된 거야. 이년 간 놀았어? 어떻게 더 약해진 것 같지?”
“…….”
재는 알고 있었다.
진은 약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재는 강해졌고, 거기에 충분한 실전을 거치며 강해진 자기의 육체에 적응했다. 하지만 진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제국제일검이 됐을 때를 빼고는, 처절한 전투를 겪어본 적이 없었다.
개인의 무력은 한없이 강대하나.
그걸 한계까지 써본 경험은 사실상 전무 한.
그게 진이었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커온 너 따위가, 제국제일검이라니. 하하.”
낮은 재의 말에 진의 표정이 흔들렸다. 전형적으로 모욕받아 일그러진 얼굴이다. 그에 재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수준 낮은 격장지계에 흔들리는 걸 보니, 검은 휘두를 줄 알아도, 마음은 휘두를 줄은 모르는구나.”
전장에 나가면 말이지.
별의별 일이 다 있어. 살기 위해 아이와 여인을 인질로 잡아 죽이기도 하는 개새끼들이 지천에 널렸다고. 그런 놈들을 상대해온 재다. 일신의 무력이 완벽하지 않을 때도 전장의 한복판에서 처절한 사투를 벌여온 재다.
그런 재가, 일신의 무력을 진과 나란히 서게 하자. 무력 말고도 그 외적인 모든 것이 차이가 났다.
서걱.
칼을 살짝 비틀어 빗살처럼 쳐올렸다. 그에 진은 반응하긴 했지만, 완전히 피하진 못했다. 팔등이 길게 찢어져 피를 흘리며 물러나는 진. 전투 중 대화? 이건 무조건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말에 집중하는 순간 공격이 날아들기 때문이다.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걸 보니, 그대는 가망이 없구나.”
재는 말로 더 속을 긁었다.
진이 더 빨리 무너지기를 바라서다. 이런 식의 자극을 재는 즐기지 않았다. 하지만 재는 거침없이 썼다. 전장에서 즐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승리가 확실한 방법을 버리는 건 아주 미친 짓이고, 재는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하압!”
정신을 차리려는 모양인지, 단단한 표정으로 다시금 달려들었다.
하지만.
일신의 근육을 폭발시켜, 검이 떨어지는 속도를 제대로 받기 전에 위로 후려쳤다. 속된 말로 젖 먹던 힘까지 끌어서 당겨 쳐버린 일격이고, 그 일격에 진의 손바닥이 찢어지며 검이 하늘을 날았다.
두 동강이 난 채로.
그 현실을 믿기 싫었는지, 눈이 파르르 떨리는 진의 가슴팍에.
쇄애애액!
철시 한 방이 그대로 처박혔다.
“컥…….”
단말마를 흘리며 비틀거리는 진의 목을, 재는 그대로 쳐버렸다. 촤아악! 핏물이 갈라지듯이 터져 나왔다. 목이 잘리며 솟구치기 시작한 핏줄기. 그리고 재는 서늘하게 굳힌 눈으로 그사이를 바라봤다.
그 뒤엔, 후가 있었다.
재는 그런 후에게 다가갔다. 후의 표정은 담담했다.
체념도, 실망도, 상실도, 분노도, 그렇다고 기쁨도 없는 지극히 담담한 표정.
일국의 황제를 참칭한 자.
그런데 그게 정말로 어울리는 자.
그 야욕을 숨겼다면, 제국의 치세를 이끌었을 자.
그러나 그 대칭에 있던 재에게는 뭐를 하든, 그냥 역적이다.
이미 그를 지키는 금위군은 없었다. 병사도 모조리 도망간 지 오래다. 수만의 병사? 이미 찢겼다. 최소 절반이 넘게. 도망간 자들은 굳이 쫓지 않았다. 그렇게 뒀음에도, 후의 곁에 남은 자는 정말 극소수였다.
하지만 그 극소수도 후를 지킬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처참한 결과를 눈으로 봤기에, 저항 의지를 모조리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저벅, 저벅.
재는 후의 앞에 섰다.
후는 여전히 담담했다.
비굴하지 않았고, 굴복하지도 않았다.
적이지만, 정말이지 대단한 자다. 이렇게 적으로 만나지 않았다면, 진심으로 존경했을, 그런 자였다.
그렇기에 재는.
서걱!
일검에 목을 베었다.